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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장고발] 대학교수-대학원생 ‘갑을 관계’ 천태만상 

“우린 주인님 모시는 도비(집요정)죠” 

박지현 월간중앙 기자 centerpark@joongang.co.kr
연구보조 외에 대리운전은 기본이고 교수 경조사 등 가욋일 챙기는 게 더 많아… 연구비 횡령 꼼수 보고도 ‘논문 심사’ 때문에 침묵할 수밖에 없는 왜곡된 위계질서의 실체는?

#코끼리를 냉장고에 넣는 방법은? ①냉장고를 연다 ②코끼리를 넣는다 ③문을 닫는다. 하지만 이 질문에 대한 답으로 더 간단한 해결책이 있다. 바로 “(교수의) 조교를 시킨다”이다. 요즘 대학원 사회에서 유행하는 자조 섞인 농담이다. 최근 사법당국이나 인권센터 등에 의해 밝혀진 대학 사회의 민낯은 하나둘씩 세상에 알려지고 있지만 좀처럼 개선의 여지는 보이지 않는다. ‘학위 논문’이라는 족쇄 앞에서 자발적 노예를 자처한 전·현 대학원생들은 문제 제기도 하지 못한 채 상처를 키우고 있다.


▎사진:아이클릭아트
‘대리인·아바타·도비·지니·자판기···.’ 대학원 ‘노예’를 칭하는 다양한 버전이다. 교수의 연구 보조 외 개인 업무에 치이는 대학원생들은 스스로를 영화 <해리포터> 시리즈에 등장했던 집요정 ‘도비’라는 애칭을 사용하거나 <알라딘>의 램프 속 ‘지니’라며 하소연한다. 석·박사급 연구원 시절의 교수는 “주인님”이라는 것이다. 노예 못지않게 혹독하게 업무를 시키고 주인처럼 행세하는 교수들에 대한 불만을 엿볼 수 있는 대목이다.

최근 한 언론사가 소셜 매트릭스로 지난 8월 트위터·블로그·커뮤니티·인스타그램·뉴스를 통해 분석한 ‘갑질’ 관련 콘텐트는 16만7876개였다. 권력자의 ‘갑질’에 대한 여론의 분노가 임계치를 넘어서고 있다. 교육계에 만연한 카르텔은 이를 뛰어넘는다. 오랜 관행처럼 치부된 대학 사회의 갑질은 최근 법정으로까지 비화되며 한국 사회의 고질적인 병폐를 압축적으로 보여준다. 상아탑에 대한 불신과 사제 간의 갈등은 더 깊어지고 있다.

‘김영란법’도 못 끊는 선물의 사슬


▎교수의 갑질에 분노한 대학원생들은 최근 인권침해 사례를 공개적으로 규탄하는 데 동참하고 있다. 7월 말 노웅래 더불어민주당 의원과 피해자들이 ‘대학인권센터 설치의무화법’ 국회 통과를 촉구했다. / 사진:연합뉴스
김영란법이 시행된 지 꼬박 1년이 지났다. 지난해 9월 ‘김영란법(부정 청탁 및 금품 등 수수 금지법)’이 시행된 이후 캠퍼스에서도 로비 문화가 잠시 위축되는 듯했다. 졸업생이 은사에게 100만원 이하의 선물을 하는 것은 가능하지만, 현재 학생들은 카네이션도 선물하면 안 된다. 하지만 역설적으로 ‘김영란법’과 무관하게 은밀하고 활발하게 로비가 이뤄지는 공간이 대학이기도 하다. 여전히 법적 기준이 모호하고 해석이 애매해 ‘사회적 상규에 위배되지 않는’ 선이라는 단서로 치부하고 서로 함구해버리면 그만이기 때문이다.

또 김영란법은 ‘더치페이’ 문화를 불러왔는데, 간혹 각자 내는 방식은 ‘모아서 로비하는’ 이상한 형태로 이뤄지기도 한다. 지난 5월 스승의 날 K교수의 연구실 제자들은 룸살롱을 단체로 예약해 더치페이를 했다고 한다. 돈을 걷는 것도 제자들 중심으로 4~5명씩 조를 짜서 합쳐 냈다. 당연히 교수는 한푼도 내지 않았다.

스승의 날, 교수 생일, 설과 추석 명절, 교수의 결혼기념일 등은 대학원생에게 ‘의식’처럼 중요한 행사다. 연구실마다 대학원생들 사이에서 보이지 않는 경쟁으로 눈치작전이 시작되는 시점이기도 하다. 분위기 좋은 식당을 빌려 이벤트를 기획하거나 선물을 준비한다. 명절이면 고가의 선물이 연구실에 가득 찬다.

추석 연휴가 다가오면서 E대학 박사과정생들은 바빠졌다. “선물을 무엇을 할지 서로 아이디어를 쥐어짜는 시즌”이라며 “행사가 자주 있다 보니 새로운 선물을 찾는 게 쉽지 않다”고 한숨을 쉰다. 일반적으로 상품권·골프채·골프웨어·넥타이·와인·스카프·구두·정장·만년필·건강식품 등이 인기 상품이다. “법 위에 선생 있다”는 말이 대학원생 사이에 회자되는 건 이 때문이다.


▎한국사회에 ‘더치페이’ 문화를 불러온 ‘김영란법’과 무관하게 대학가에서는 부끄러운 거래가 은밀하고 이뤄지고 있다.
선물이 교수들의 기호에 맞지 않으면 되레 역효과다. 서울 소재 사립대 A교수는 대학원생들 몇 명이 십시일반 모아 산 비싼 유명 브랜드 정장 원피스를 선물로 받았다. 그러던 어느 날 A교수는 옷을 수선할 일이 있어 백화점에 갔다가 “아웃렛 매장 제품이라 수선이 어렵다”는 답을 듣고 오자 화가 나 대학원생들을 소집시켰다. 대학원생들 앞에서 원피스를 바닥에 내동댕이치며 “이런 싸구려는 너희나 입어!”라고 소리쳤다고 한다. 당시 대학원생이던 C씨는 “명품 정장이라 아웃렛 제품이라도 우리에게는 엄두도 못 낼 정도로 비쌌다”며 “학생 주머니 사정을 뻔히 안다는 교수가 그렇게 행동해야만 했나”고 토로했다.

논문 심사는 가장 큰 행사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논문의 주·부심에게 ‘거마비(교통비)’ 명목으로 챙겨야 하는 것은 오랜 관례다. 몇 년 전 박사과정을 마친 B씨는 “주심인 지도 교수를 비롯해 부심 교수들 각 개인당 약 100만원의 ‘거마비’가 들어가 논문 심사에만 500만원 정도 들어갔다”고 말했다. 거마비가 현금으로 부족하다 싶으면 심사 장소를 호텔이나 큰 레스토랑 등에서 진행하기도 한다. 이공계를 전공한 대학원생 H씨는 논문 심사 날 다과를 준비했다가 혼쭐이 났다. N교수는 “심사 날 이런 싸구려를 가져와? 넌 논문 두 번 다시 못 쓸 줄 알아!”라며 다과를 집어던지며 폭언을 쏟아냈다고 한다.

대리운전, 경조사 총무··· ‘집사(버틀러)’로 불리는 이유


▎1. 운전면허가 있는 조교들은 대부분 교수의 대리운전 기사 노릇을 도맡기도 한다. / 2. 영화 <해리포터>에 나오는 집요정 ‘도비’와 <알라딘>의 ‘지니’는 대학원생들이 자신을 이르는 자조 섞인 별칭이다.
운전면허가 있는 조교들에게 가장 흔한 심부름은 대리운전이다. 세미나나 학회는 물론 호텔을 가거나 공항으로 이동할 때 운전은 조교들의 몫이다. “연구실에 있는 ○○ 자료를 집에 갖다 놓아라”는 지시도 부지기수다.

특히 교수가 사적으로 갖는 술자리의 마지막을 지켜야 하는 건 기본이다. 술에 거나하게 취한 교수를 집에 데려다주고 퇴근하면 새벽 시간이다. K씨는 자신의 상견례 날 저녁에 교수의 긴급 호출로 부랴부랴 달려갔더니 술에 취한 자신을 데려다 달라고 해 황당함을 감출 수 없었다고 한다.

교수의 집안 행사는 ‘공적 업무’에 가까울 정도다. ‘집사(버틀러)’라고 지칭할 정도로 집안일이 절반에 가까울 때도 있다. P조교는 교수의 사모와 더 가까울 정도다. 교수의 부인은 조교를 부르는 일을 당연하게 여겼다. “집에 물건을 옮길 일이 있으니 와달라” “컴퓨터 파일 백업을 해야 하니 와달라” “남편(교수)이 부탁한 서류가 있으니 가지러 와라”는 등 다양한 요구에 호출이 이어진다. 간혹 교수가 이사하는 날까지 겹치면 조교는 동료 대학원생들까지 동원해 집 안의 모든 물품과 서재를 정리해야만 한다.

P조교는 교수뿐 아니라 자녀들의 종합소득세 신고까지 하느라 세무서를 들락날락하기도 했다. 또 자녀가 장성했을 땐 손자까지 챙겨야 했다. “손녀 생일이 가까워 오니 줄 만한 선물 좀 사오거라.” 할아버지가 된 교수의 세 살배기 손녀 선물을 사기 위해 P씨는 백화점에 달려가 장난감을 사온 적도 있다.

교수의 친인척 상은 물론 자녀 결혼과 같은 경조사의 전반적인 총괄 역할은 조교의 몫이다. 축의금·조의금 정리부터 교수의 지인들을 ‘모시는’ 역할이다. 청첩장과 연락을 돌리는 일도 조교가 한다. 최근 한 사립대 조교는 페이스북에 ‘교수가 자신의 자녀 결혼 주차요원을 하라고 했다’며 고발하는 글을 올렸다가 교수에게 ‘결혼식에 오지 않아도 된다’는 문자를 받기도 했다.

교수의 친족이 상을 당했을 경우엔 발인 날까지 밤새워 보좌 역할을 한다. 상주 연락처를 교수 자신이 아닌 조교 연락처로 돌려놓기 때문이다. K씨는 어느 상주보다 더 바쁘게 조의금을 정리하고 교수의 지인들을 안내했다.

교수 지인들의 경조사에는 조교들을 대신 보내는 방식으로 부조금을 전달한다. 조교들은 경조사를 쫓아다니며 교수의 메신저 역할을 해야 한다. “간접적으로 조교가 대신 전달하면 훨씬 효과가 있다”고 말하는 K씨는 대학원 생활 5년간 직접 다녀온 교수의 경조사만 100여 건이 넘는다고 한다.

연구실에 구비돼 있거나 교수가 소지한 모든 기기에 대한 수리는 조교의 몫이다. 컴퓨터가 간혹 먹통이 되거나 시스템이 오류 나면 “고장 났다”며 책상 앞에서 연신 짜증만 내는 교수 앞에서 기계를 붙들고 화풀이까지 받아내야 하는 조교들 역시 답답한 건 매한가지다.

학문과 연구의 연장선상으로 오해할 수 있는 것이 논문 대필과 채점이다. 국가인권위원회(인권위)가 전국 189개 대학의 대학원생 1906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교수의 논문 작성, 연구 수행의 전체 또는 일부를 대신했다’고 응답한 비율은 11.4.%에 달한다.

학부생들의 시험 채점이 연구조교 손에 맡겨질 때가 있는데 서술형 채점이 조교들 손에 넘어가면 전문성은 물론 객관성도 떨어진다. 일부 조교와 친한 학부생들에게 좋은 점수가 돌아가기도 한다. E조교는 학부생들의 레포트에 대한 답변을 일일이 적어 봉투에 학생들 이름까지 넣어서 줬다. 100여 명의 학부생들은 교수의 세심한 센스(?)에 탄복한다고 한다. 물론 교수는 이 일을 ‘지시’할 뿐이다.

현금화하는 연구비 토해내야


▎교수 본인의 경조사가 있을 때도 대학원생들은 총무나 주차요원 역할을 맡고, 교수 지인들의 행사에 대리인으로 메시지를 전달하는 일이 부지기수다.(사진은 기사의 특정내용과 무관함)
연구비 착취는 상아탑에서 잇따라 불거지는 비리 유형 중 하나다. 수법도 다양하다. 연구 프로젝트 운영비용을 ‘오버헤드(간접 비용)’로 지칭해 인건비를 다시 교수에게 상납하는 구조가 대부분이다.

연구비를 책정할 때 연구보조원의 명목으로 등록된 ‘인건비’는 현금화가 가장 쉬운 항목이다. 연구소 기본 운영비용의 조정이 유일하게 가능해서다. 이 때문에 “추가로 연구운영비에 보태라”는 교수의 지시가 있으면 연구원생들은 일부, 많게는 절반 정도에 이르는 자신의 인건비를 토해낸다. 인권위에 따르면 전국 189개 대학의 대학원생 1906명 중 ‘연구나 프로젝트 수행 후 정당한 보수를 받지 못한다’는 응답이 25.8%였다. 4명 중 1명은 보수 없이 프로젝트를 수행한 셈이다.

교수가 제자 이름을 빌려 허위 등록해 가로채는 방식도 흔하다. 예컨대 프로젝트에 정해진 박사 인력이 4명이면 보조원도 4명 이상이 필요하지만, 실제 일하는 사람은 2~3명으로 줄이고 나머지는 허위로 등록해 인건비를 유용하는 방식이다. 최근 적발된 국립대 모 교수가 착취한 3억원의 횡령금은 자신의 정기예금, 주식 투자, 가족 용돈, 자녀교육비, 신용카드 결제, 아파트 관리비, 회식비 등에 쓰였다고 한다.

일부 점잖은(?) 교수는 대외적으로 드러나는 비위를 피하기 위해 가까운 박사 연구원 중 심복(心腹)을 둔다고 한다. 지도교수 밑에 있는 석·박사 연구원들의 대표 학생으로 다른 연구원들을 이용하는 대리인이다. 후배들의 군기를 잡거나 지도교수의 심기까지 대신 전달하며 ‘비서실장’ 역할을 도맡아 한다. 일부 대학원에서는 ‘심복’ 선배들한테 지도교수보다 더 잘 보여야 한다고 귀띔해 주기도 한다. 간혹 비밀번호를 동일하게 설정한 통장과 현금카드를 대표 학생에게 맡기고 필요할 때마다 현금을 찾아오게 하거나 계좌에 이체시켜 빼돌리기도 한다.

서울 소재 대학원에 다니는 K씨는 자신을 학생·연구원·노동자도 아닌 ‘경계인’이라고 칭했다.

조교들은 비정규직이다. 해고와 해직에 대한 불안은 매일같이 이어진다. 대학들은 ‘조교의 경우 2년을 초과해 기간제 근로자로 사용할 수 있다’는 <고등교육법 제14조>를 내세워 조교들을 계약직 또는 비정규직으로 임용해 오고 있다. 하지만 일정 기간이 되면 내부 인사규정에 따라 해고를 통지하곤 하는 게 관례다.

많은 대학원생이 생활비를 충당하고 경력 한 줄 넣기 위해 연구 프로젝트에 뛰어들지만 그 비용조차 토해내는 실정이다. 대학원생 H씨는 “‘취준생(취업준비생)은 그냥 백수, 대학원생은 프리미엄 백수’라는 말이 괜히 나오는 게 아니다”며 “돈이 없으면 학업에만 집중할 수 없어서다”고 한숨을 쉰다.

이공계생들은 실험실에서 14시간 이상의 노동에 따른 질병과 사고에 노출되기도 십상이다. 최근 과학기술정보통신부(과기부)는 정부출연 연구기관에서 일하는 대학원생에게 처음으로 노동적 지위를 보장해야 한다고 명시했다. 과기부에 따르면 전국 실험실 사고 중 90%가 대학에서 발생한다. 지난해 3월 대전 소재 대학에서 실험을 하던 한 대학원생이 화학물질 폭발로 손가락 두 개를 잃었다. 지난 6월 강원도 소재 대학 실험실에 있던 폐기물 보관통이 터져 학생 5명이 병원으로 실려갔다. 하지만 대학원생들은 산재보험이 적용되지 않는다.

“당신 교수가 총각이니까 가끔 만져주고 그래”


▎전국의 실험실 사고 중 90%가 대학에서 발생하지만, 대학원생들에게 산재보험은 적용되지 않는다.(사진은 기사 특정내용과 무관함)
대학원생들에게 곤혹스러운 자리 중 하나는 바로 술자리다. 교수의 술 동무, 동행 멤버로 다니다 보면 원하지 않은 자리에 참석했다가 봉변을 당하는 경우도 생긴다. 특히 바로 여기서 성희롱과 추행, 폭력 범죄 등이 발생하기 쉽다. 주로 피해자는 여학생들이다. 취재에 응한 여성 대학원생들은 교수가 술 약속을 잡는 날이면 어김없이 “술집에 종사하는 ‘마담’이 된 기분이었다”고 토로했다.

술자리가 무르익으면 교수들은 여성 조교를 마치 종업원 대하듯 술을 따르게 하거나 옆에 밀착해 앉아서 잔심부름을 시킨다. 손을 어루만지거나 허벅지에 손을 올린다든가, 어깨를 두르는 행위로 자연스러운 스킨십을 하는 경우도 적지 않다.

더 큰 문제는 대부분 증거가 없고 학생 측에서 문제 제기도 어려워한다는 점이다. 상습적으로 추행을 당하거나 성희롱을 당하는 것에 대한 증거가 부족해 학생들이 되레 법정에 갔을 때 고통만 가중되는 경우가 많다. 교수는 “기억이 나지 않는다”로 일관하거나 동석한 사람들조차 증언을 피하기 일쑤다.

문제 제기를 해 학교에 소문이라도 나면 그만두는 쪽은 늘 학생이었다고 한다. 이런 문제로 지도교수를 바꾸는 과정은 더 험난하다. 같은 학과에서 지도교수를 바꾸려면 학칙상 현지도교수의 승인을 받아야 한다는 이상한 구조 때문이다. T(여)씨는 “‘뛰어봤자 벼룩’이거나 ‘부처님 손바닥 안’”이라며 “학생 편에 서 있는 경우는 드물다”고 하소연했다. T씨는 상습 성추행으로 공황장애까지 왔지만 학교를 그만두고 지금도 문제가 불거지는 걸 원치 않는다고 말했다. 문제 제기를 하려 하자 교수가 주변에 “술 마시러 올 때면 늘 야하게 화장하고 끼부리는 ‘꽃뱀’”이라고 소문을 냈기 때문이다.

L(여)씨도 비슷했다. 7월 말 만난 L씨는 당시 이야기를 하면서 격앙된 목소리를 감추지 않았다.

종교적 이유로 술을 안 하던 L씨는 3학기가 끝날 무렵 지도교수가 ‘논문 지도를 도와줄 테니 연구계획서를 가지고(근처 주점으로) 오라”는 지시로 술자리에 동석했다. 타 대학 동료 교수와 지도교수는 술잔을 기울이고 있었다. 두 교수는 L씨에게 “교수가 되려면 술을 마실 줄 알아야 한다” “예쁘니까 술 따라야지” “언젠가 내가 술을 권할 날이 올 거다”는 등의 발언을 했다.

술자리가 깊어지면서 발언 수위는 높아졌다. 지도교수의 타 대학 동료 교수는 “L선생, 당신 교수가 총각이니까 가끔 만져주고 그래”라는 말을 던졌다. 지도교수는 한술 더 떠 “어디를 만져달라 그럴까?”라며 L씨의 손목을 낚아채 자신의 신체로 가까이 가져갔다. 강하게 저항하는 L씨 손을 교수 자신의 목덜미에 끌어 당기며 두 교수는 재미있다는 듯 킬킬댔다. L씨는 “소름 끼치게 싫었지만 그 와중에 논문 생각이 나 아무 말도 나오지 않았다”고 회고했다. L씨가 그날 교수를 데려다주면서 들은 말은 “오늘 밤 일은 잊어라”였다. 며칠 병가를 내고 학교에 가질 않은 L씨는 명확한 설명 없이 이틀 만에 조교에서 해임됐고, 현재 성추행과 부당해고 등으로 법정 싸움 중이다.

그는 평소의 성희롱과 추행도 언급했지만 모두 증거 불충분으로 채택되지 못한 상태다. 교수는 L씨의 옷 가슴 근처에 박힌 브랜드를 손으로 쿡 찔러 보거나 팔을 툭툭 건드리는 게 다반사였다. 갑자기 “너 러브호텔 알아?”라는 뜬금없는 질문으로 당황하게 하기도 했다. 하지만 함께 있던 지인들은 모두 침묵한 상태다.

스승이자 선배라는 고리


▎대학가 일부 교수는 아직도 술자리에서 대학원생들을 종업원을 대하듯 술을 따르게 하거나 스킨십으로 추행을 일삼기도 한다.(사진은 기사 특정내용과 무관함)
대학이 크고 작은 ‘갑질’의 온상이 된 건 학위 지도교수가 전권을 쥐고 있어서다. 평가와 인사는 물론 입학과 학사 업무 등에 이르기까지 교수의 권한은 막강하다. 교수의 말 ‘한마디’와 추천서 ‘한 장’의 힘으로 취업과 유학의 진로가 정해진다. 마음만 먹으면 언제든 비리와 비위가 통용될 수 있다는 방증이기도 하다.

대학원은 좁은 사회다. 교수는 학위논문 통과 여부를 결정하는 절대자이기 이전에 학문 분야의 선배다. 학교 선배가 업계 선배가 되다 보니 학창 시절의 평판은 직장까지 그대로 이어진다. 이런 특수한 관계는 한국 사회의 ‘유교적 문화’를 끊임없이 답습하게 한다. 자연스럽게 강력한 위계질서가 생긴다. J교수는 기분이 안 좋아지면 연구실의 물건을 내던지거나 폭언을 일삼았다. 몇 년 전 Y씨는 J교수가 던진 연필꽂이에 맞아 옷이 찢어지고 팔까지 다쳤지만 주변에 말하지 못했다고 한다.

사회 진출의 기회가 적은 것도 문제다. 석·박사를 마친 대학원생들이 교수직으로 진출하는 통로는 더 좁아졌다. 대한민국 석·박사 대학원생은 33만 명에 이르지만 청년 취업난이 심화되면서 늘어나는 대학원생 수와 비교했을 때 사회 진출 비율은 턱없이 낮다. 대학원생들이 교수에 대한 의존도가 높아진 이유다.

최근 대학가에서는 이 고리를 끊기 위한 움직임이 보인다. 지난 6월 ‘연세대 텀블러 사제폭탄 사건’이 발단이 됐다. 서울대 학내 온라인 커뮤니티 ‘스누라이프’ 대학원생 게시판에 각 연구실의 비리 내용을 올렸고, 7월 갑질 교수들을 비판하고 대책을 요구하는 공개 시위를 했다. 국회에서는 노웅래 더불어민주당 의원과 대학원생 인권침해 피해자들이 ‘대학인권센터 설치의무화법(고등교육법 일부개정법률안)’ 통과를 촉구하는 기자회견을 열기도 했다. 2015년부터 연재된 고려대 웹툰 <슬픈 대학원생들의 초상>은 꾸준한 인기를 누리며 영화화도 기획하고 있다. 현재 교원의 징계 시효를 최대 7년으로 늘리자는 법 개정안이 국회에 발의된 상태다.

여전히 대학가는 깊이 곪아 있다. 지금까지 세상에 알려진 사건은 ‘빙산의 일각’이라고 표현할 정도다. 대학원생·연구원·조교들은 교수의 비인격적 처우나 모욕·착취·횡령을 침묵으로 견뎌왔다. 제도의 강제성에 앞서 의식과 문화가 바뀌어야 할 시점이라는 말이다. 오늘도 어느 대학원생은 ‘주종(主從)’의 고리를 끌어안고 하루를 견디고 있을 것이다. 이 사회의 미래를 이끌어간다는 진리의 상아탑에서 매일같이 벌어지는 일이다.

[박스기사] 기상천외한 ‘주종’ 관계 - “화장실에 말려 둔 팬티는 챙겼니?”


대학원가를 취재하는 동안 입이 벌어질 만큼 사례들은 황당하고 다양했다. 대학원생이 겪은 기상천외한 사례를 몇 가지 모았다.

● 제가 국정원 요원입니까?

“휴대폰을 비행기에 두고 내렸다, 찾아봐라.”

“예?”

일본으로 출장을 간 사립대 U교수는 비행기에 휴대폰을 두고 내렸다며 새벽부터 조교에게 다짜고짜 지시하고는 전화를 끊었다. O조교는 어안이 벙벙했다. 출국 시간과 지역, 비행편에 대한 정보가 전혀 없었기 때문이다. 휴대폰을 잃어버린 교수에게 다시 연락할 방법도 없었다. O조교는 각종 수소문과 추리력을 동원해 교수의 휴대폰을 찾았다고 한다. 이외에도 “지난번 그 자료 있잖니, 거기에 있는 그 레퍼런스(각주) 좀 다오.” 이 문장에 등장한 ‘지난’ ‘그 자료’ ‘거기’ ‘그 레퍼런스’에서 조교들은 당황하지만 오래 지내다 보면 ‘지시대명사’만 들어도 의중을 파악할 수준이 된다고 한다.

● 교수님의 숨소리만 들어도 반응하는 ‘파블로프 개’

배고픈 개에게 먹이를 줄 때마다 종소리를 들려주니 이후 개가 종소리만 듣고도 침을 흘렸다는 ‘파블로프의 개’ 실험. 교수가 부르는 톤, 발자국 소리, 숨소리만 들어도 교수의 심리 상태까지 알 수 있다는 데서 붙여진 별명이다.

박사과정을 마치고 기업에 다니는 한 직장인 M씨는 “오후 3시 정도면 교수가 꼭 연구실에서 가글을 하던 습관 때문에 나도 모르게 일하다가 자리를 박차고 일어날 때도 있다”며 “이젠 몸이 기억하나 싶어 씁쓸하다”고 웃는다.

24시간 ‘대기조’로 카톡이건 e메일 모두 알람을 켜놔야 한다. 늦은 밤이든 새벽 시간이든 즉시 답을 하지 않으면 불호령이 떨어지기 때문이다. L씨 또한 ‘바로 전화를 받지 않았다’는 이유로 조교에서 해임됐다. 그날 교수가 문자를 보낸 시간은 밤 10시였다.

● “웬 춘장이 위벽에?”

배가 아파 병원에서 위 내시경을 받은 L조교는 의사의 말에 깜짝 놀랐다. 위벽에 손톱만 한 춘장이 굳어서 붙어 있었다는 것. ‘어려서 짜장면을 자주 못 먹었던’ 교수가 하루가 멀다 하고 중국집에서만 배달시켜 먹었던 탓이다. 역대 조교들은 모두 “짜장면을 조심하라”고 조언할 정도였다. 연구실에는 중국음식점의 젓가락만 수두룩하게 쌓여 있다. L조교는 졸업 후 짜장면 냄새 맡기가 싫어졌을 정도라고 했다.

● “팬티는 안 챙겼니?”

해외 출장을 함께 가게 된 조교 K(여)씨는 귀국 날 아침 교수에게 호출을 당했다. 자신의 짐을 싸라는 것이었다. 호텔 방에는 교수의 옷이 어질러져 있었다. 빈 여행가방에 부랴부랴 짐을 챙기고 공항으로 가는 길, 교수가 물었다. “팬티는 챙겼니?” 잠시 머리를 갸우뚱한 사이, 교수의 표정이 돌변하며 “화장실에 널어놨잖아!”라며 소리를 꽥 질렀다. K씨는 “가족도 아닌 남이 입고 널어 놓은 속옷까지 가져와야 한다는 게 이해가 잘 되지 않았다”고 말했다.

- 박지현 월간중앙 기자 centerpark@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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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10호 (2017.09.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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