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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제 기업인] 외벽 노출형 대피시설 ‘살리고’ 개발한 최승수 ㈜디딤돌 대표 

“안전에 탁월… 집 평수도 1평 넓어지는 효과” 

나권일 월간중앙 기자 na.kwonil@joongang.co.kr 사진 오종진 객원기자
건물 외벽 탈출형 화재 대체시설로 국토교통부 인정 받아…“바닥 해치 열면 경비실과 위아래 층에 비상벨 울리고, 사다리 계단 통해 아래층과 지상으로 대피 가능”

▎최승수 ㈜디딤돌 대표는 “내 가족의 안전을 도모해 행복한 가정을 지키는 심정으로 ‘살리고’를 개발했다”고 밝혔다. / 사진:오종진 객원기자
한국은 아파트 등 공동주택에 전 국민의 60%가 거주하는 아파트 국가다. 최근에는 30~40층 아파트가 늘어나며 날로 초고층화·대형화돼 가고 있다. 하지만 그만큼 비상시 안전 문제에는 취약점도 많다.

최승수(63) ㈜디딤돌 대표는 2010년 10월 1일 부산 해운대의 한 주상복합아파트에서 일어났던 화재 장면을 잊지 못한다. 당시 4층에서 시작된 화재는 외벽 치장재인 알루미늄 패널로 옮겨붙으면서 순식간에 꼭대기 층인 37층까지 불길이 번졌다. 다행히 스프링클러가 작동하고 소방차가 긴급 출동해 큰 인명피해가 발생하지는 않았지만 해운대 마천루 숲을 이루던 초고층 아파트가 화마에 휩싸였던 아찔한 모습은 많은 이의 뇌리에 남아 있을 것이다.

실제 고층건물의 화재는 적지 않게 발생한다. 정종섭 자유한국당 의원이 2017년 10월 12일 국토교통부 국정감사에서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매년 국내 고층건물(높이가 30층 이상이거나 120m 이상의 건축물)에서 100건 이상 화재가 발생했다. 2014년 이후 고층건물 화재 발생 건수는 400여 건. 인명피해가 39명, 재산 피해는 93억여원에 이르는 것으로 나타났다. 정부와 지방자치단체는 해운대 주상복합 대형화재 사고를 계기로 공동주택과 ‘고층건물 화재안전대책’을 통해 현관 등 ‘양방향 피난로’ 확보를 적극 권장하고 있다. 한쪽 통로가 막혔을 경우 또 다른 통로를 이용해 피난 안전층이나 지상으로 대피할 수 있어야 한다는 의미다.

아파트 외벽에 별도 설치하는 긴급 피난시설


▎1. 국토교통부의 아파트 대피시설 인정서. / 2. ㈜디딤돌이 개발한 외기노출형 대피시설인 ‘살리고’는 캔틀레버(cantilever) 공법을 사용해 콘크리트 바닥 철근을 맬 때 ‘살리고’를 건물 외벽에 연결해 달아매는 형태다. / 3. ‘살리고’ 제품 이미지
젊은 시절부터 주택 건설업에 뛰어들어 40년 넘게 일해온 최승수 대표도 이를 계기로 화재에 안전한 대피시설에 관심을 갖고 연구를 시작했다. 화재 발생 시 내 생명과 가족의 생명을 구할 수 있는 ‘골든타임’은 불과 5분 안팎이다. 특히 11층 이상의 고층빌딩이나 아파트에서 화재가 발생했을 때는 현관 등 외부로 대피하거나 스프링클러에 의존해야 하지만 제때 화재 진압이 이뤄지지 않는다면 유독가스에 중독돼 목숨을 잃기 십상이다.

현행 건축법에는 화재 등 비상시를 대비해 4층 이상의 건물에는 대피 공간을 두도록 돼 있다. 건축법 시행령에 따라 공동주택 베란다에 설치된 2~3㎡ 면적의 ‘세대별 대피 공간’이 그것이다. 유사 시 3~4명이 긴급 피난할 수 있는 이 공간은 화재가 발생했을 때 1시간 이내 구조를 전제로 한 임시 대피시설이다. 하지만 2005년부터 시행된 발코니 확장 합법화 이후 거실 확장이 가능해지면서 이 임시 대피시설은 사실상 유명무실화된 지 오래다. 수납 공간의 부족으로 보통은 다용도실·세탁실·창고 등으로 이용되고 있는 게 현실이다. 사실상 법을 위반하고 있는 것이다.

이 때문에 정작 위급 상황에는 본래의 기능을 상실하고 소중한 인명피해를 초래하게 된다. 설령 이 대피 공간으로 피난했다고 하더라도 생명과 안전이 보장되는 것은 아니다. 화재보험협회의 실험 결과, 화재 발생 25분이 경과되면 내부 온도가 100.4도, 60분이 경과하면 171도까지 상승하고 유독가스로 가득 차는 문제점이 발생하기 때문이다.

유독가스로 비상계단이나 엘리베이터를 사용할 수 없는 비상 상황이라면 고층 아파트에서 나와 우리 가족은 어떻게 살아남을 수 있을까? 만약 아파트 내부와 철저히 차단되는 피난 공간이 아파트 외벽에 설치돼 있다면, 그리고 그 공간에 방화벽이 구축돼 있다면 대피해서 시간을 벌고 지상으로 피난하는 방법이 있지 않을까? 최승수 대표와 ㈜디딤돌 직원들이 수년간의 연구 끝에 ‘살리고’ 제품을 개발해 세상에 내놓게 된 계기다.

‘살리고’는 아파트 외벽(후면)에 설치되는 긴급 피난시설이다. 화재 등 비상시에 대피한 뒤 바닥의 해치를 열면 바로 비상벨이 울려 아파트 관리사무실과 경비실, 그리고 해당 아파트의 위아래 층에 즉시 전해져 사고를 인지하도록 돼 있다. 해치를 여는 동시에 접혀 있던 사다리 계단이 내려오면서 아래층으로 대피가 가능하다. ‘살리고’가 기존 대피시설과 차별화되는 지점은, ‘외기(外氣)노출 탈출형 대피시설’이라는 점. 아파트 내부가 아닌 외벽에 설치돼 화재 시 화기와 유독가스로부터 완전히 차단할 수 있다.

또한 장애인·노약자 등 피난 약자(弱者)들의 안전까지 고려한 화재 대피시설이다. 현행 건축법 시행령에는 화재 대피시설과 관련해 장애인 등 피난 약자의 안전 확보에 관한 규정이 없다. 소방법에서도 장애인의 자력 탈출을 위한 피난설비 설치에 관한 강제규정이 없는 실정이다. ‘살리고’는 이 점을 보완해 이 시설을 개발해냈다.

사람은 본능적으로 화재가 발생하면 밖으로 나가고 싶은 심리가 있게 마련이다. 화재가 발생하면 현관 쪽으로 나가려고 하는 것도 그래서다. 최 대표는 “살리고는 화재가 발생했을 때 선택할 수 있는 사람의 본능에 따른 시설이자 양방향 피난로 확보를 권장하는 정부 방침에 부합한다”며 다음과 같이 설명했다. “아파트 외벽에 내화벽체와 방화문으로 둘러싸인 별도의 피난처를 두기 때문에 어른이나 노약자, 장애인이라도 이곳으로 대피하면 안전하게 구조를 기다릴 수 있다. 그래도 위험하다면 자동으로 작동하는 해치를 열고 사다리를 타고 아래층으로 내려가 지상까지 도달할 수 있도록 만든 시설이다.”

노약자·장애인 등의 안전 확보에도 탁월한 효과

‘살리고’는 이처럼 기존 대피시설의 구조 및 기능상의 문제점을 보완해 화재 안전성, 대피 용이성, 유지 관리성 등을 향상시켰다는 평가를 받는다. 대피자는 화재 현장에서 신속히 이탈해 안전한 ‘살리고’에 머물면서 구조를 기다리거나, 소방장비에 의해 구조가 가능한 층까지 이동 또는 지상으로 자력 대피할 수 있다.

‘살리고’는 까다로운 국토교통부 중앙건축심의를 통과해 2017년 11월 1일 아파트 대피시설로 인정받았다. 혁신적인 제품이기 때문에 설치비용이 많이 들지는 않을까? 최 대표는 이에 대해 “신축 건물과 아파트 설계 때 반영하면 소비자 입장에서는 별도의 설치비가 필요하지 않다. 평균적으로 베란다에 대피 공간을 만드는 데 가구당 170만~180만원이 소요되지만 살리고는 150만원 안팎이면 충분하다”고 말했다.

‘살리고’는 또한 현재 아파트 내부 베란다에 설치돼 있는 ‘세대별 대피공간’과 달리 이를 아파트 밖으로 빼내 외벽에 별도로 설치되는 것이기 때문에 입주자 입장에서는 현재 다용도실이나 창고로 사용하는 1평 정도의 기존 ‘대피공간’을 합법적으로 사용할 수 있게 된다. 또한 외벽에 설치되는 ‘살리고’ 1평은 현행 건축법상 분양면적에 포함되지 않아 입주자에게 추가 부담도 없다.

최 대표는 “우리 계산으로는 한 개층마다 콘크리트와 철근비용이 2만원 정도 소요되는데, 시공사가 감당할 만한 액수다. 소비자 입장에서도 1평이 더 늘어나는 셈이며, 1평이면 서울의 경우 2000만원이다. 이 공간은 분양 면적에도 포함되지 않으니 소비자 입장에서는 큰 이익”이라고 설명했다.

하늘 아래 새로운 것은 없다. 물론 살리고 제품 이전에도 유사한 제품 1, 2호가 출시된 바 있다. 그렇다면 ‘살리고’ 제품은 기존 제품들과 어떻게 다를까? 최 대표는 시공법이 다르다고 했다. 기존 제품들은 골조 공사 후에 각 층마다 앵커 볼트(anchor bolt)로 연결해 설치한다. 이 때문에 고층에서 작업하면서 안전 문제가 제기될 수 있고, 세월이 흐르면 앵커 볼트에 녹슬어 지진이나 태풍 등 자연재해 등에 취약할 수 있다. 이에 비해 ‘살리고’는 응력(應力, stress)에 견딜 수 있는 캔틀레버(cantilever) 공법을 사용한다. 콘크리트 바닥 철근을 맬 때 ‘살리고’를 건물 외벽에 연결해 달아매는 형태라서 건물과 일체화되기 때문에 자연재해에도 그만큼 안전하다. 최 대표는 “시공사가 콘크리트와 철근 작업을 할 때 함께하면 되기 때문에 별도의 설치 작업이 필요하지 않다”고 덧붙였다.

긴급 대피시설이 지금처럼 아파트 베란다 안에 있지 않고 외벽에 노출된다면 소비자인 주민들이 미관상의 문제를 제기할 수 있지 않을까? 이에 대해 최 대표는 “디자인을 고급화하기 위해 국내 최고 수준인 포스코 디자인연구소와 연구를 했다”며 “시공사가 지상에서부터 꼭대기 층까지 이어지는 외벽에 LED 등을 달아주면 밤에 미관상 더 좋다”고 말했다.

“신축 아파트 설계·시공 단계부터 필요한 시설”

그래도 궁금한 게 하나 있었다. 고층빌딩이나 아파트의 외부 벽체에 지상과 통하는 공간이 생긴다면 외부 침입자 등에 대비하는 보안 문제에 허점이 생기지 않을까? 최 대표는 이에 대해 “만약 10층에 불이 나면 9층과 11층, 경비실에 자동적으로 경보가 울리는데 밖에서는 문을 열 수 없고, 안에서만 열게 돼 있는 구조다. 이 때문에 외부 침입자를 걱정할 필요가 없다”고 말했다.

‘살리고’를 개발한 ㈜디딤돌은 광주광역시에 주소지를 두고 있는 중소기업이다. 서울에도 사무실을 두고 있다. 현재는 전북 익산시의 신축 아파트에 ‘살리고’를 시범 설치 중이다. 부산 지역 한 언론사와는 양해각서(MOU) 체결 문제를 조율하고 있다고 했다. 최 대표는 “초고층 아파트와 건물이 많은 부산시는 피난시설 설치를 조례로 제정하는 것도 준비하고 있다”며 “건물 설계 때 반영하면 좋은 제품이기 때문에 설계사무소나 시공사가 많은 관심을 가져주었으면 한다”고 말했다.

‘살리고’라는 제품 이름은 최 대표가 직접 작명해 상표등록 출원까지 마쳤다. “내 가족의 안전과 행복한 가정을 지키자는 심정으로 ‘살리고’를 개발했다”는 게 최 대표의 얘기다. 사용이 간편해 동영상을 한 번만 보면 대피 방법을 금방 이해할 수 있다고도 했다. 그러고 보니 ㈜디딤돌이라는 회사 이름도 예사롭지 않았다. 최 대표는 “사업체를 운영하면서 이웃에게 도움이 되는 사업, 사람을 살리는 일에 보탬이 되는 일을 하고 싶은 소망이 담겨 있다”며 “최근 대규모 재개발·재건축 아파트는 다시 지을 수 없기에 설계 단계부터 시민의 안전을 고려해야 한다”고 말했다.

- 나권일 월간중앙 기자 na.kwonil@joongang.co.kr 사진 오종진 객원기자

201801호 (2017.12.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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