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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간] 믿음은 죽지 않는다 형태를 바꿀 뿐 

 

문상덕 기자

▎신뢰 이동 / 레이첼 보츠먼 지음 / 문희경 옮김 / 흐름출판 / 1만6000원
“당시의 위기는 인간의 행동과 무대책의 결과지, 천재지변이나 컴퓨터 모델 문제가 아니다. (…) 잘못은 저 별들이 아니라 우리에게 있다.”

2011년 2월, 미국 금융위기조사위원회(FCIC)는 2008년 경제위기의 원인을 분석한 525쪽 분량의 보고서를 발표했다. FCIC 보고서는 ‘자리를 지키지 않은 감시병’이란 표현으로 규제기관의 무능을 지적했다. 언론도, 자선단체도, 심지어 종교단체까지도 책임에서 자유로울 수 없었다.

불신의 파문은 금융위기에 그치지 않는다. 폭스바겐의 ‘디젤게이트’, 파나마 페이퍼스 같은 대규모 조세 회피…. 한국에선 두 전직 대통령의 잇따른 구속, 청와대 대변인의 부동산 투기 의혹도 같은 맥락으로 읽힌다.

저자는 묻는다. “제도가 제대로 작동하지 않는다면 뭘 믿어야 할까?”

저자는 책에서 신뢰가 무너졌다고 말하지 않는다. 대신 “신뢰가 이동(shift)하고 있다”고 주장한다.

눈에 띄는 징후는 2016년 트럼프 대통령의 당선이다. “이제 신뢰와 영향력은 엘리트 집단과 전문가, 정부 당국보단 가족과 친구, 동료, 심지어 낯선 사람 같은 ‘사람들’에게로 향한다.” 개인이 기관보다 중요하고, 개별 고객이 브랜드를 정의한다. 단적으로, 낯선 사람을 자신의 집에 머물게 한다는 발상이 어떻게 유수의 호텔들을 이길 수 있었을까.

저자는 우리가 ‘분산적 신뢰’ 시대의 여명에 있다고 주장한다. 소규모 지역 공동체에서 살던 ‘지역적 신뢰’에서 계약과 법률로 작동하던 ‘제도적 신뢰’를 거쳐 세 번째 신뢰 혁명에 다다랐다는 것이다. 그가 말하는 혁명은 낙관론이 아니다. 영구히 남는 평판의 흔적 등 새로운 시대의 가능성과 위험을 다각도로 검토하는 데도 소홀히 하지 않는다.

201905호 (2019.04.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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