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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간] 남한 좌·우 진영 ‘협력’과 ‘봉쇄’의 도그마에 

 


▎미중 패권전쟁과 문재인의 운명/구해우 지음/글마당/1만7000원
최인훈의 소설 [광장]에서 주인공 ‘명준’은 중립국으로 향하는 배에 오른다. 남한은 개인의 욕망만 넘실대는 밀실, 북한은 개인의 욕망이 거세된 광장에 지나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 책의 저자인 구해우 미래전략연구원장의 마음 행로 역시 ‘명준’과 크게 다르지 않은 것 같다. 고려대 법대 84학번이었던 그는 당대 주사파(주체사상을 지도이념으로 한 학생 운동권 세력) 3대 조직 중 하나로 꼽히던 ‘자민통(자유·민주·통일)’의 리더로 활약했다.

2000년대 들어 ‘북한 선진화 운동가’로 노선을 바꾼 그는 2013년 국정원 1차장(해외 및 북한 담당) 산하 북한담당기획관(1급)을 지내기도 했다. 남북의 통일전략을 각각 내부에서 들여다본 셈이다.

저자가 소설 속 ‘명준’처럼 극단적 투신을 택하는 건 아니다. 보다 보편적인 이념으로 발길을 돌린다. 그는 권위주의적 체제를 용인하는 민족주의에서 벗어나 ‘자유주의적 애국주의’로 나아가자고 제안한다. 쉽게 말해 ‘핏줄’ 집착에서 벗어나자는 것이다.

그의 정세분석도 눈에 띈다. 그는 남한의 좌·우 진영이 각각 ‘협력과 봉쇄의 도그마’에 빠져 북한의 새로운 통일전략에 대응하지 못하고 있다고 비판한다. 남한만이 ‘20세기적 통일전략’에 갇혀있단 이야기다. ‘중국 역할론’에 기대는 것도 위태롭다고 말한다. 미·중 패권전쟁이 본격화된 이때 남한에 ‘중립국의 길’은 없다는 게 그의 결론이다.

책은 그때그때 언론에 기고한 글을 모아 편집했다. 보통의 평론집이었다면 다소 게으르단 인상을 줄 법하다. 그러나 그 점이 오히려 이 책에는 미덕으로 작용한다. 사후 평가가 아니라, 이슈가 발생한 그 시점에서 저자의 논리에 따라 진단을 내리기 때문이다. 진정성의 미덕이다.

- 문상덕 기자

202001호 (2019.12.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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