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사회.북한.국제

Home>월간중앙>정치.사회.북한.국제

[트렌드 취재] 코로나19 속 골프 삼매경 2030세대 

“부장님만 하나요? 사원, 인턴도 골프 즐긴답니다” 

회사 끝나면 실내 골프장으로… 젊은 층 워라밸 성향과 맞아떨어져
신세대 특유의 과시 욕구를 골프 관련 SNS와 유튜브로 적극 표현


▎골프아카데미 여성 회원이 직원에게 1:1 지도를 받고 있다.
"회원님, 다리는 살짝만 구부리세요. 네~ 적당하게…그 정도면 됩니다.”

“허리에 너무 힘이 들어갔어요. 몸에 힘 빼세요.”

이상아(29·여)씨는 1개월 전 지인 모임에서 요즘 골프가 유행이라는 말을 듣고 골프 강습을 받고 있다. 골프채에 공이 맞는 경쾌한 소리와 함께 손끝에 전해지는 쾌감이 좋아서 시간이 날 때마다 연습장으로 향한다. 실내 골프연습장에는 그녀와 같은 20~30대 회원이 적잖이 눈에 띈다. 이씨가 처음 등록할 때 골프연습장 직원은 “요즘 회원님 같은 회사원들이 많이 오세요. 서로 친해지면 같이 조인 골프 치러 가기도 하고요”라고 말했다.

양승열(32)씨는 골프에 맛들이다 아예 스크린 골프장 마니아가 됐다. 필드 플레이를 좋아하지만, 추워진 날씨를 감당할 자신이 없어 스크린 골프장을 찾다가 단골이 됐다. 양씨는 일과가 끝나면 모바일 애플리케이션으로 간단하게 예약을 마치고 친구와 골프 약속을 잡는다. 스크린 골프장에 가면 실제 필드와 같은 코스를 선택할 수 있기 때문에 바깥에 못 나가는 아쉬움을 달랠 수 있다. 게임비를 걸고 벌인 대결에서 점수가 뒤진 양씨가 돈을 내기로 했지만 그리 아깝지 않다. 필드였다면 한 달 치 용돈이 날아갈 뻔했지만, 스크린 비용쯤은 큰 부담 없이 낼 수 있다.

장벽 낮추자 젊은 세대 늘어


▎GDR아카데미 서울역점에서 연습 중인 회원들. 골프 인구 가운데 4명 중 1명은 ‘젊은’ 골퍼들이다.
최근 2030세대에게 골프가 인기다.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 네이버 밴드에서 ‘2030 골프’를 검색하면 모임이 412개나 나온다. 전국 10개 대학 골프 동아리가 소속돼 있는 대학골프연합회(NUGA)는 매년 상·하반기에 스크린 골프 대회를 개최할 정도로 성황이다. 서천범(62) 한국레저산업연구소장이 발간한 [레저백서 2020]에 따르면 2030세대 골프 인구는 올해 115만 명까지 증가할 것으로 추산된다. 전체 골프 인구 대비 23%다. 골프 인구 가운데 4명 중 1명은 ‘젊은’ 골퍼인 셈이다.

2030세대 골퍼의 증가를 두고 골프연습장 관계자들은 대체로 긍정적 반응을 보였다. 한 골프연습장 대표는 “젊은 고객은 깔끔하게 군더더기 없이 사용하고 가서 좋다”고 말했다. 10년간 골프연습장 사업을 하고 있다는 이계화(56·여)씨는 “예전엔 전체 고객의 20% 정도가 젊은 층이었다면 지금은 거의 절반 정도가 오는 것 같다”며 “젊은 사람들은 회사 점심시간에 와서 치고 가기도 하고 퇴근하고 바로 오는 경우도 많다”고 말했다. 젊은 세대는 따분함을 싫어한다. 골프는 그동안 중년층의 전유물로 인식됐다. 그런데 N극과 S극 같았던 골프와 2030세대가 이제는 자연스레 결합하고 있다.

김재구(50) 동원대 레저스포츠과 교수는 “방대해진 골프 시장이 2030 골프 인구 증가의 계기가 됐을 것”이라고 말했다. 서울시가 제공하는 골프연습장업 인허가 자료에 따르면, 지난해 8월 기준 서울시에만 골프연습장 3338개가 운영되고 있다. 같은 자료에서 집계한 전국의 골프연습장 수는 1만6484개에 이른다. 그만큼 골프와 만날 수 있는 공간이 많아진 것이다. 젊은 세대는 골프를 게임으로 여긴다. 이런 트렌드는 통계로도 확인된다. 대한골프협회가 집계한 ‘한국골프지표’에 따르면 4050세대는 골프장을 가장 많이 가지만 2030세대는 골프장, 실내 골프연습장, 실외 골프연습장, 스크린 골프장을 고르게 이용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2030세대 골퍼가 늘어난 데는 골프에 대한 접근성이 좋아지고 이용료가 저렴해진 것도 한몫했다. 실외 골프장에 나가려면 대중제 골프장이 약 10만~12만원, 회원제 골프장은 16만원이다. 캐디 피(caddie fee)와 카트비 등은 제외한 금액이다. 반면에 서울 시내 스크린 골프장의 평균 이용 가격은 평일·주말과 오전·오후에 따라 가격이 다르지만 1시간에 최대 3만5000원에서 최저 1만5000원이다. 이처럼 저렴한 가격으로 골프를 칠 수 있게 되면서 2030세대의 만족도가 높아졌다. 실내 골프연습장에서 만난 전희진(28·여)씨는 “저렴해서 좋고, 비나 눈이 와도 상관없이 칠 수 있어 매력적이다”며 “일주일에 한두 번 스크린 골프장을 이용하고 두 달에 한 번은 필드를 나간다”고 말했다. 이제 2030세대는 일상생활 속에서 골프를 즐긴다. 골프에 대한 장벽이 낮아지면서 가깝고 친숙하게 이용할 수 있는 스포츠가 됐다.

‘나’를 위한 소비 형태를 골프에 적용


▎모바일 애플리케이션(우측 사진)을 통해 스크린골프장 가격·위치를 파악하고 예약할 수 있다. 네이버 밴드(좌측 사진)에 지역별로 2030세대가 골프모임에 가입할 수 있다. / 사진:네이버 캡처, 김캐디 캡처
일과 삶의 균형(‘워라밸’)을 중시하고 조직보다 ‘나’를 강조하는 2030세대의 문화도 최근 젊은 층의 골프 열풍과 맞아떨어진다. 회사원 김혜영(31·여)씨 사례가 대표적이다. 김씨는 바쁜 업무가 없으면 6시 정각에 퇴근한다. 골프연습장을 찾아 기계 앞에서 자신의 번호를 누르고 배정된 좌석을 확인하고는 탈의실로 향한다. 편안한 복장으로 클럽을 마음껏 휘두르면 하루의 스트레스가 다 해소되는 느낌이다. 김씨가 다니는 골프연습장엔 인근 빌딩에 근무하는 양복 차림의 젊은 사원을 많이 만날 수 있다. 평일 저녁, 형식적인 야근보다는 자기계발과 취미생활에 투자하는 젊은이들이 골프장을 편하게 찾는 이유다.

2018년 주 52시간 근무제가 도입되면서 퇴근 후 취미생활 문화가 생겨난 것도 젊은 골퍼가 증가한 계기가 됐다. 문화체육관광부가 국민 9000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2020 국민생활체육조사’를 보면 골프 강좌나 강습을 경험한 비율은 전년 대비 1.8% 증가한 12.3%로 나타났다. 다른 생활체육 종목보다 높은 증가율을 보였다. 체육 동호회 가입 종목 순위에서도 골프 가입 인구수가 지난 동기 대비 6.7% 증가해 가장 많이 늘었다.

워라밸을 중시하는 2030세대의 골프 입문은 어찌 보면 당연한 수순이다. 김태훈(33)씨는 “골프는 다른 스포츠와 비교하면 비싸다고 여겨지지만, 신선한 공기도 마시고 푸른 잔디를 밟으며 운동도 할 수 있어서 좋다”고 말했다. 과거 유행했던 ‘욜로(YOLO, You Only Live Once)’가 단순히 소비하는 데 그쳤다면 지금은 자신을 업그레이드하는 소비, 가치 있는 소비로 달라지고 있다. 2030세대는 자신이 좋아하는 것에 돈이나 시간을 아끼지 않는다. 가뜩이나 코로나19로 불안정한 경제, 극심한 취업난을 겪은 2030세대는 가성비를 따지기보다 나심비(나와 심리, 그리고 가성비를 합친 합성어. 소비를 통해 얻게 되는 만족에 초점을 맞춘 소비)를 고려한다. 골프가 좋은 이유에 대해 젊은 층이 가장 많이 한 답변은 “힐링이 되고 성취감을 느낄 수 있다”는 것이었다.

SNS로 소통하고 유행을 좇는 2030세대의 Flex(자신의 성공이나 부를 뽐내거나 과시한다는 뜻, 플렉스) 특성도 골프 트렌드에 불을 지폈다. 이와 관련해 김 교수는 “운동 강사들이 골프 치는 사진이 처음 SNS에 퍼지면서 그들을 동경하고 따르던 일반인도 자연스럽게 골프를 배우려고 하는 욕망이 생겼을 것”이라고 말했다. 실제 인스타그램 분석 서비스인 ‘해시태그랩’에 따르면, 골프 초보자를 뜻하는 ‘#골린이’는 2020년에 누적 건수가 약 18만 건으로 나타났다. 2019년에 비해 99.6%나 증가했다.

골프 2개월 차인 원민지(31·여)씨는 “최근 코로나19로 여행길이 막힌 유명인들이 골프 치러 가는 사진을 많이 올린다. 자연을 배경 삼아 예쁜 옷을 입고 골프 치는 모습을 보니 나도 배워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말했다. 원씨는 “이왕할 운동이라면 고급스럽고 멋지게 보이는 운동을 선택하는 게 당연하다”고 말했다. 2030세대는 달라진 환경에 맞춰 자신을 돋보이게 하는 새로운 문화를 찾기 시작한 것이다. 어찌보면 골프가 그들의 만족감을 채워주는 대체재가 됨으로써 젊은이들의 골프 사랑이 시작됐다고 할 수 있다. 2030세대가 소비하고 유행하는 문화와 골프가 어우러져 ‘골프 플렉스 문화’로 진화한 것이다.

골프업계도 2030세대 집중 공략


▎골프매장에서 고객들이 강아지 캐릭터 모양의 드라이버 등 다양한 골프용품을 살펴보고 있다. / 사진:뉴시스
골프 시장의 새로운 큰손으로 떠오르고 있는 2030세대 골퍼를 위해 골프 관련 업계도 바쁘게 움직이고 있다. 실내 골프연습장 업체 중 매장을 가장 많이 보유(6329개, 2019년 기준)하고 있는 골프존은 국내 240여 개 골프장과 제휴를 맺고 있다. 젊은 골퍼가 필드에 나가기 전에 실전 대비용으로 스크린 골프를 즐기도록 유도하기 위해서다. 골프존 회원 260만 명이 지난 한 해 플레이한 횟수만 6000만 라운드에 달한다. 골프존 회원 김종현(34)씨는 “골프존에서 먼저 플레이를 하고 필드에 나가면 더 잘 치게 되더라”고 말했다. 경쟁사 카카오VX도 지난해 플래그십 스토어, 카카오 프렌즈 캐릭터를 활용한 골프용품 등을 선보이며 적극적으로 ‘골린이’ 취향 저격에 나섰다. 매장도 늘어나 올해 1월 기준 전국 매장 수가 2100개를 넘어섰다. 지난해 프렌즈 스크린 매장을 연 이용진(55·가명)씨는 “최근 젊은 고객이 많이 늘었다”고 말했다.

2030세대가 즐기는 유튜브 골프 영상도 인기다. 올해 1월 기준으로 골프 유튜브 상위 15개 채널의 구독자는 약 20만 명에 달한다. 특히 JTBC GOLF 채널은 약 29만 명이 시청한다. 프로 골퍼, 골프를 좋아하는 연예인이 주로 채널을 운영하는데 각자의 장점과 특색을 살려 구독자의 흥미를 유발한다.

필드에 나가서 사진이나 영상 찍기를 좋아하는 2030세대를 위한 골프 의류 회사의 SNS 홍보 활동도 활발하다. 일본의 골프웨어 브랜드인 마스터바니에디션은 최근 2030세대 골퍼를 대상으로 홍보단 모집 활동을 펼쳤다. 2019년부터 패션에 민감한 젊은 층을 집중 공략해 성과를 올리고 있다.

다만 캐디들은 젊은 층에게 꼭 해줄 말도 있다고 했다. 2030세대가 캐디와 비슷한 나이로 무리한 요구를 하지 않고 친근하게 대해 편하기도 하지만, 기본적인 룰을 제대로 숙지하지 못하고 필드에 나올 때는 힘들다고 토로했다. 3년 차 캐디인 김동훈(27)씨는 “칠 줄만 알고 룰이나 매너는 모르는 분이 꽤 많다. 그렇다 보니 진행에 차질이 생긴다. 고쳤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2030세대 골퍼의 옷차림을 두고 한 캐디는 “젊은 분은 골프를 치기보다는 사진 찍으러 오는 느낌을 받을 때가 있다”고 꼬집었다.

- 글 박남화 월간중앙 인턴기자 p.alice901@gmail.com / 사진 임익순 객원기자

/images/sph164x220.jpg
202103호 (2021.02.17)
목차보기
  • 금주의 베스트 기사
이전 1 / 2 다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