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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간] 조선 문인들의 목숨 건 미각 사랑 

 


한국인의 미각 사랑은 유난하다. 코로나19 유행에도 맛집 앞에 늘어선 줄은 줄어드는 기미가 없다. 한 음식점 사장이 전하는 ‘먹방’ 프로그램 제작과정은 정교하기 짝이 없다. 스태프 60여 명이 꼬박 이틀 걸려 60분짜리 영상 하나를 찍었다고 한다. 영상으로 맛을 전하려는 정성이 대단하다.

이런 모습이 꼭 오늘날 이야기만은 아닌 모양이다. 한문학자인 저자에 따르면, 조선 시대 문인의 글에선 ‘봄이 되면 부들 싹 짧고 하돈(河豚)이 올라오네’라는 문구가 종종 등장한다. ‘물에 사는 돼지’라는 뜻의 하돈은 다름 아닌 복어. 복어기능장도 없던 시절, 조선 후기 문인 서영보는 “복어의 계절 또 보내 버리니 서운하네”라며 입맛을 다셨다. “독이 있어 사람이 많이 죽는다”(허균, [도문대작])는 경고에도 아랑곳없다. 목숨 건 미각 사랑이다.

추사 김정희도 미식가로 손꼽혔다. 유배지에서 아내에게 보낸 편지를 보면 입맛이 참 깐깐하다. “민어는 연하고 무름한 것으로 사 보내주십시오. (…) 겨자는 맛난 것이 있을 것이니 넉넉히 보내십시오. 어란(魚卵)도 먹을 만한 것을 구해 보내주십시오.” 제주 바다를 바라보며 목 빠지도록 아내의 음식을 기다렸을 추사의 모습이 그려진다.

저자는 음식 밖에도 산·반려동물·꽃 등 조선 선비들이 일상을 탐닉하며 남긴 글들을 소재별로 묶어 소개했다. 요즘 블로그 같은 ‘뒷광고’가 없기에 글들은 한층 순박하고 진실하다. 당쟁의 흑백 논리만 있었을 것 같던 조선사를 다채로운 색으로 만나볼 수 있는 책이다.

- 문상덕 기자

202103호 (2021.02.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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