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 생활

Home>월간중앙>문화. 생활

[책갈피] 한 해 16만명 절망死, 미국 중년 백인들에게 무슨 일이 

불공정한 룰에 미래를 강탈당하다 

부유층으로 부(富) 쏠리는 거꾸로 재분배 심화
소외감 커진 저학력·저소득층 극단 선택 급증


20세기 이후 사망률이 줄어들고 기대수명이 늘어나는 것은 전 세계적인 추세다. 그런데 이에 역행하는 사례가 있어 관심을 모았다. 1990년대 후반부터 중년 비히스패닉계 미국 백인의 사망률이 다른 나라들처럼 하락하지도 않았을 뿐만 아니라 오히려 상승하기 시작한 것이다.

[절망의 죽음과 자본주의의 미래] 두 공동 저자는 1999년부터 2017년 사이에 일반적인 추세라면 죽지 않아도 됐을 미국 중년 백인의 수를 60만 명으로 추정한다. 특히 2017년 한 해 그 수치는 15만8000명이었을 것으로 본다. 45~54세 고졸 이하 백인 사망률이 25% 상승한 반면 대졸 이상 사망률은 40% 하락했다. 도대체 무슨 일이 벌어졌길래 죽을 이유가 없는 백인들이 그 기간에 그렇게 많이 죽었을까.

노벨경제학상 수상자인 앵거스 디턴 미국 프린스턴대 경제학 교수와 같은 대학 앤 케이스 경제학 명예교수는 그 죽음의 원인을 극단적 선택, 약물 과다복용, 알코올성 간 질환 3가지에서 찾았다. 이들은 이런 유형에 ‘절망사(death of despair)’라는 이름을 붙이고 비히스패닉계 백인들의 절망사를 초래한 근본적인 경제적·사회적 원인을 자세히 파고들었다.

세계화와 디지털화 등으로 좋은 일자리를 잃고 실질임금 감소를 경험하면서 미국 저학력 백인 노동계층의 삶은 피폐해졌다. 절망감, 박탈감, 삶에 대한 의미 상실, 미래에 대해 기대할 수 없는 상황, 소외감 등으로 우울증과 중독이 만연하고 절망사를 가져오는 환경이 조성됐다는 것이다. 저학력 백인에 앞서 아프리카계 미국인 다수가 이미 겪었던 행로다.

그 이면에는 미국 자본주의 시스템이나 사회 구조 등에서 오는 더 근본적인 원인이 작동한다고 저자들은 분석한다. 부가 부유층에서 빈곤층으로 아래로 재분배되는 것이 아니라 실제로는 빈곤층에서 부유층으로 위로 재분배되고 있는 사회가 되어 가고 있는 게 무엇보다 큰 문제라고 지적한다. 금융 위기 이후 사람들이 일자리와 집을 잃는 가운데 은행가들은 보상을 계속 받으면서도 책임을 지지 않자 미국 자본주의는 일반적인 번영의 엔진이라기보다는 상향식 재분배를 위한 부정한 돈벌이 수단처럼 보이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노동계급이 상대적으로 더 못살게 된 불평등의 문제는 상류층의 부와 소득 상당 부분이 불법 취득한 것이라는 데서 출발한다고 저자들은 본다. 다시 말해 불평등한 사회에 살고 있어서가 아니라 불공정한 사회에 살고 있어서 문제가 된다는 것이다.

저자들은 도둑을 막는 방법은 도둑에게 더 많은 세금을 부과하는 것이 아니라 도둑질을 하지 못하게 막는 것이라고 주장한다. 예를 들자면, 은행가와 부동산 중개업자들이 자신들의 이익에 맞게 규제와 세법을 만들지 못하게 막아야 한다는 것이다.

게다가 미국은 유럽 등 다른 부유한 나라들에 비해 훨씬 포괄적이지 못한 사회 안전망을 가지고 있다. 미국인 2700만 명은 건강보험 혜택을 누리지 못하고 있다.

한국의 자살률은 2016년 10만 명당 25.8명으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중 1위를 차지했다. 한국은 미국처럼 약물과 알코올로 인한 사망률은 높지 않은 편이지만 사회적 격변으로 많은 한국인이 절망의 벽으로 몰리고 있는 건 사실이다. 미국 사회가 안고 있는 불평등과 불공정, 능력주의와 교육 양극화, 독과점과 정경유착, 공동체 붕괴와 가족 해체 등의 문제는 한국도 어느 정도 겪고 있다.

이 책은 미국의 경우를 거울로 비춰볼 수 있는 좋은 참고서가 될 것이다. 자본주의의 미래는 절망이 아닌 희망의 미래여야 한다는 것은 언제나 옳은 명제다.

- 한경환 기자 han.kyunghwan@joongagn.co.kr

※ 이 기사는 중앙콘텐트랩에서 월간중앙과 중앙SUNDAY에 모두 공급합니다.

202108호 (2021.07.17)
목차보기
  • 금주의 베스트 기사
이전 1 / 2 다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