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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발취재] 국방부 ‘민·관·군 합동위원회’는 여론 면피용? 

“미리 정답 만들어놓고 거수기 노릇”… 현장점검·공청회도 못 열고 종료 앞둬 

‘부실급식’ ‘성폭행’ 여론 뭇매에 국방부 위원회 만들었지만 지원에 소극적
내놓는 軍 대책마다 허점투성이, 철저한 이행 점검 필요하다는 지적 나와


▎서욱 국방부 장관은 6월 28일 서울 국방컨벤션센터 태극홀에서 열린 병영문화 개선을 위한 ‘민·관·군 합동위원회’ 출범식에서 “국민과 장병이 공감할 수 있는 근본적인 개선방안을 마련하기 위해 최선을 다하겠다”고 의지를 밝혔다. / 사진:국방부공동취재단
"문제가 뭐냐면, 국방부가 이미 정해놓은 답이 딱 있어요. 그 답을 위원회에 와서 보고하고는 우리는 그저 그 결론에 따라오기만 하라는 식이죠.” 국방부가 지난 6월 구성한 ‘민·관·군 합동위원회(이하 위원회)’에서 활동하고 있는 A씨의 한숨 섞인 말이다. 부실급식 논란과 성폭행 등 여론의 뭇매를 맞은 국방부가 ‘국민 눈높이’에서 해결책을 찾겠다며 위원회를 만들었지만, 국방부의 소극적 지원과 알맹이 없는 운영으로 여론 면피용에 그치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위원회 설립 배경을 이해하려면 올해 초부터 언론을 뜨겁게 달군 군부대 부실급식 문제로 거슬러 올라가야 한다. 몇몇 장병이 닭복음탕에 닭이 없거나 김치와 김이 반찬의 전부인 식단을 휴대폰으로 촬영해 SNS에 올리면서 사회문제로 불거지기 시작했다. 서욱 국방부 장관이 4월 28일 기지회견을 열고 국민에게 사과했지만 이후에도 페이스북에 부실급식 제보 사진이 속속 올라왔다. 여기에 더해 군부대에서 성폭행을 당한 공군 여중사가 스스로 목숨을 끊는 사건까지 발생하고 문재인 대통령까지 나서 진상규명을 지시하면서 국방부를 향한 여론은 더욱 싸늘해졌다.

서 장관은 사건이 발생할 때마다 국방부 내에 태스크포스(TF)를 가동했으나 국민 신뢰가 바닥에 떨어진 상황에서 군 스스로 ‘자정작용’을 할 수 있는지에 대한 국민의 의심은 더 가중됐다. 이에 서 장관은 투명하고 공정하게 국민과 장병이 공감할 수 있는 대책을 마련하겠다며 6월 28일 위원회를 만들고 자신이 위원장을 맡았다. 박은정 전 국민권익위원장이 공동위원장으로 위촉됐다. 위원회는 ▷장병 인권보호 및 조직문화 개선 분과 ▷성폭력 예방 및 피해자 보호 개선 분과 ▷장병 생활여건 개선 분과 ▷군 사법제도 개선 분과 등 4개 분과를 구성하고 국방부 관계자를 포함해 각 분야 민간 전문가와 관련 부처 인사 등 30여 명을 위원으로 위촉했다.

하지만 위원회 출범 두 달이 넘도록 위원회 활동은 겉돌고 있는 상황이다. 월간중앙 취재 결과 8월 중순까지 위원회에서 이뤄진 회의는 국방부가 마련한 대책을 몇 차례 보고받는 데 그쳤다. 위원들에 따르면, 위원회가 실현 가능한 대책을 내놓기 위해서는 관련자료를 검토하고 현장점검이 필수적인데 그런 과정은 생략됐다. 또 다른 분과위원 B씨에 따르면, 위원회에 대한 국방부의 비협조적 자세도 문제지만 국방부가 제시한 해결책이 마치 확정된 것처럼 행동하는 국방부의 태도가 더 문제라는 지적이 나온다. 국방부가 잇따른 군문제 해결에 대한 의지보다는 보여주기식 활동에 치중하고 있다는 것이다.

“국방부가 ‘정답’ 만들어놓고 위원회 동의만 구해”


▎‘민·관·군 합동위원회’ 회의장면. 위원회 소속 한 분과위원은 위원회 활동을 적극적으로 지원하지 않고 국방부 ‘자체안’에 무게를 두는 군 태도에 불만을 표출했다. / 사진:국방부공동취재단
구체적 사례를 들어보자. 국방부는 지난 7월 11일 장병 생활 여건 개선 분과위원회를 소집해 회의를 끝낸 뒤 군 급식문제와 관련해 대책을 내놓았다. ▷급양관리관(약 480명)·조리병(약 1000명) 보강 ▷영양사·민간조리원 확충 ▷‘先식단 편성·後식재료 경쟁조달’ 시스템 전환 위해 영양사 채용·배치 등이 주요 골자다.

월간중앙이 다수의 분과위원을 취재한 결과, 해당 내용을 국방부가 분과위원들에게 보고한 것은 맞지만, 위원회에서 논의돼 의결된 사안은 아니었다고 한다. 분과위원 A씨는 “국방부가 분과위원회에 보고한 자료를 회의가 끝난 뒤 보도자료로 배포했다”며 “자기들이 다 결정해놓고 우리 동의만 구하는 격”이라며 격앙된 반응을 보였다.

실제 국방부는 군 부실급식 문제 대책으로 급양관리관·조리병을 충원하겠다고 위원회에 보고했는데, 이 사안은 추가적 논의가 필요한데도 국방부가 마치 확정된 것처럼 발표했다고 한다. 국방부 관계자는 “향후 입대하는 인원 가운데 행정병 충원 보직을 조리병으로 전환한다. 급양관리관도 육군 부사관에 임용되는 인원을 추가로 급양관리관 보직에 임명한다는 계획을 갖고 있다”고 발표했다. 국방부는 이 같은 대책을 “올 하반기부터 준비해서 내년까지 계획을 실행한다는 방침”이라고 밝혔다. 하지만 국방부의 이 같은 대책은 위원회에 보고만 됐을 뿐 충분한 검토가 이뤄지지 않은 것으로 확인됐다. 장병 생활여건 개선 분과위원 C씨는 “부실급식 문제 해결을 위해 국방부는 조리병을 충원하고 민간조리원을 확충하겠다고 하는데, 군 전체 인력구조를 고려해 실현가능한 것인지, 군 전력의 누수는 없는지 등을 군 내부 자료를 바탕으로 따져봐야 한다. 그런데 국방부가 관련 자료를 요청해도 주지 않고, 검토할 시간도 주지 않는다. 이럴거면 국방부가 위원회를 왜 만들었는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위원들 사이에서 지금의 위원회가 형식상 허울뿐인 위원회 활동이라는 불만이 나오는 이유다.

실제 부실급식 논란을 불러온 근본 원인은 급식이 필요한 인원 대비 과도하게 적은 조리병 인원이 꼽힌다. 올해 5월 기준으로 육군의 조리병은 7000여 명, 해·공군이 각 1000여 명으로 총 9000여 명이다. 전체 병력 55만 명 중 1.6%에 해당한다. 그나마 해·공군의 조리병은 식수 인원 150명당 4명이 배치된다. 이와 달리 육군은 150명당 2명이다. 같은 업무를 2배 적은 인원이 소화하고 있는 실정이다. 군 부실급식을 호소하는 사진이 육군에서만 나오는 이유다.

기본적으로 군 급식은 자율 배식이 원칙이지만 인기가 많은 메뉴는 조리병이나 급양관리관이 배식을 하거나 관리·감독을 해야 음식이 골고루 돌아갈 수 있다. 하지만 군부대 현실은 조리병이 부족하고 급양관리관도 겸직하는 경우가 많아 급양관리관이 다른 임무를 하고 있는 상황이면 배식 과정을 감독할 수 없다고 한다. 이 때문에 간헐적으로 조리병·급양관 공백이 발생한다. 군 장병들이 ‘도덕적으로’ 자기가 먹을 음식을 가져가면 음식이 부족해지는 문제가 발생하지 않지만 그 반대 사례가 더러 발생하는 것이다. 뒤늦게 뒷정리를 하며 남은 음식으로 격리 병사의 도시락을 챙기니 반찬이 없는 경우가 발생한다고 한다. 실제 군부대에서는 야전초소 경계 근무나 다른 임무 때문에 정해진 식사시간이 끝날 무렵에 오는 인원도 남겨진 반찬에 불만이 생길 수밖에 없는 구조다.

행정병과 인원 조정해 조리병 늘린다? 현실성 없어


▎군은 최근 논란이 됐던 ‘군 부실급식’과 관련해 배식 현장을 공개했다. 6월 3일 공군 3여단 8978부대 조리병들이 음식을 준비하고 있다. / 사진:연합뉴스
국방부는 사정이 이러한데도 군부대 조리병 수가 부족하니 인원을 늘리겠다는 단순한 논리로 대책을 내놓은 것이다. 인사 관련 보직을 맡아 10여 년 넘게 군생활을 하고 전역한 한 예비역 장교는 “행정병과 인원으로 조리병을 늘리겠다는 건 현실성이 없어 보인다. 군 장병이 지속적으로 감소하고 있는 상황에서 비전투 인원을 축소한다면 나중에 ‘행정병 과로사’ 문제가 발생할지도 모른다”며 “조리병 충원 대상이 왜 행정병과가 돼야 하는지 합리적 이유나 근거를 국방부가 제시하고, 전투 인원을 포함한 군 인력 운용 계획을 밝혀야 한다”고 말했다.

군 급식 논란 때마다 단골처럼 등장하는 민간조리원 채용과 민간 위탁 급식 계획도 도마 위에 올랐다. 조리병이 부족하니 국방부 예산으로 민간조리원을 채용하겠다는 단순한 논리지만, 도서 벽지나 외진 지역에 주둔하는 부대는 민간 조리원을 뽑고 싶어도 정작 오겠다는 사람이 없다. 국방부가 오래전부터 발생한 고질적인 문제를 알고 있는데도 이런 대책을 내놓아 땜질식 처방이라는 비판이 나오는 이유다.

국방부는 육군부사관학교에서 시범 운용 중인 병영 식단의 민간위탁을 확대하겠다고 밝혔지만 민간위탁은 대규모 식수 인원이 확보돼 현재의 급식비로도 충당 가능한 부대에서나 가능한 일이다. 조리병이 휴식을 취할 수 있도록 간편식을 도입하겠다는 국방부 계획을 두고도 한 예비역 장교는 “장병에게 건강식을 제공해도 모자랄 판에 인스턴트 음식을 제공한다고 하는 게 말이 되느냐”고 꼬집었다.

국방부가 강력하게 추진하겠다는 군 급식 조달체계 개편을 놓고도 논란이 많다. 국방부는 ‘先식단편성·後식재료 경쟁조달’ 체계로 변화시키기 위해, 학교급식시스템을 벤치마킹한 장병급식 전자조달시스템(가칭 MaT)을 단계적으로 도입하겠다는 입장이다. 한 분과위원은 이에 대해 “국방부는 경쟁 조달체계를 도입하겠다는 것인데, 기존 국방부 급식조달 시스템이 수의계약에 따른 일종의 독과점처럼 운영되는 만큼 공정성을 위해 개선해야 하는 것은 맞지만 경쟁 입찰은 결국 저가 경쟁에 따른 품질 저하를 불러올 수도 있다”고 우려했다.

장병 생활여건 개선 분과위원회를 대표적 사례로 들었지만 각 분과위원회가 내실 있는 활동을 하지 못하고 있다는 사실은 위원회의 전체회의 의결 내용에서도 드러난다. 국방부는 7월 21일 위원회 제2차 정기회의를 진행했다고 밝혔다. 회의에서 4개 분과위원회에서 논의한 안건을 전체회의에서 의결하고 향후 권고안에 포함하겠다고 했다. 앞서 거론한 급식 문제와 관련한 의결 내용을 보자. “조리병 업무부담 경감과 안전사고 예방을 위해 충분한 예산을 확보하여 조리기구의 현대화를 추진하는 것이며, 군 조리인력 구조 개선도 마련할 계획입니다.” 본래 분과 위원회 존재 목적에 해당하는 구체적 대책을 의결한 것이 아니라 ‘마련할 계획’을 보고하는 데 그친 것이다.

내놓은 대책마다 허점투성이… 지속적 점검과 확인 필요


▎국회 국방위원회는 6월 24일 군 급식 점검 차원에서 고양시 육군 9사단을 방문했다. 사진은 당시 한 장병의 식사 모습. / 사진:국회사진기자단
장병 생활여건 개선 분과위원 D씨의 말이다. “국방부는 위원회가 뭐라도 하는 것처럼 외부에 부풀려야 하는 것 같다. 우리 분과는 자료 검토부터 현장점검, 공청회 등을 거쳐야 하는 첨예한 문제들이 많은데도 아직 시작조차 못한 상황이다.” 그에 따르면 분과위원들이 8월 중순까지 5차 회의까지 진행해 ▷급식 ▷시설 ▷피복 등 3개 소위원회 구성에 합의했는데, 국방부가 소위원회 구성에 난색을 표했다고 한다. 9월까지 의미 있는 점검과 대책 마련이 가능하겠냐는 기자의 질문에 D씨는 “어려운 상황인 건 사실이다. 그래도 해보는 데까지 해봐야 하지 않겠느냐”고 말했다.

국방부는 앞서 위원회 출범 이유를 두고 “국민과 장병이 공감할 수 있는 근본적인 개선방안을 마련하기 위함”이라며 “향후 현장점검 및 실태조사, 피해자 증언 청취, 전문가 간담회, 장병·예비역 대상 설문조사 및 공청회 등 다양한 활동을 통해서 현장의 목소리에 기반을 둔 구체적인 정책을 수립하고 즉각 조치가 가능한 과제는 신속한 개선 방안을 도출하고 입법 등이 뒷받침되어야 할 중장기 과제도 우선순위를 정하는 등 국민적 기대를 충족시켜나가겠다”고 밝혔다. 하지만 부실급식 문제만 봐도 위원회가 해야 할 ‘구체적인 정책 수립’은 국방부가 마련한 자체 안을 위원들이 추인하는 식으로 이뤄지고 있는 실정이다. 게다가 위원회 활동 기한은 한시적으로 9월까지다. 고질적인 군 급식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깊이 있는 논의가 필요하지만 남은 시간도 많지 않은 상황이다. 이대로 어영부영 위원회가 종료되는 것 아니냐는 우려가 나오는 이유다.

국방부의 후속 조치를 점검할 시간도 부족하다. 국방부가 애초 위원회 활동 기한을 9월로 못 박았기 때문이다. 분과위원 A씨는 “군 문제 해결은 그 특성상 여러 해가 걸리는 게 부지기수라서 지속적인 점검과 확인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위원회가 ‘들러리’로 끝나지 않으려면 활동 종료 이후에도 국방부의 이행 사항을 점검할 수 있는 대책 마련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한편 국방부 관계자는 위원회 활동 기한과 관련해 “애초 계획은 9월까지였으나 10월까지 활동 기한 연장이 논의되는 것으로 알고 있다”고 답했다. 이행 점검과 관련해서는 “국방부 해당 관련 사업국에서 지속해서 과제를 추진해나가면서 필요하다면 국회에 보고하고 언론에 알려 드릴 예정”이라며 “분과위원장이나 위원들이 자료를 요청하면 활동이 종료돼도 설명해 드리겠다”고 밝혔다.

- 조규희 월간중앙 기자 cho.kyuhee@joongang.co.kr

202109호 (2021.08.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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