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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태취재] 게임 사교육 열풍과 그늘 

게임도 사교육 시대, 학원 수강에 뒷돈 과외까지 

손준영 월간중앙 인턴기자
입학설명회 열고 신입생 모집… 프로게이머 되려 학교 대신 학원으로
높은 교육열에 ‘뒷돈 과외’ 받기도, 대리게임 업계 등 음지 개선은 숙제


▎프로게이머라는 직업에 대한 인식이 좋아지면서 그야말로 게임 사교육 열풍이 불고 있다. 사진은 지난해 12월 4일 서초구 서초대로 메가스터디 게임 아카데미에서 열린 리그오브레전드(LOL, 온라인게임) 신입생 설명회. / 사진:손준영 인턴기자
장면 하나. 서울 서초구 신논현역 근처의 한 학원에 열정 넘치는 강사와 수강생들이 모였다. “저는 적극적이고 질문이 많은 학생이 좋습니다. 저만 따라오시면 실력 늘리는 것은 어렵지 않습니다.” 강사의 주도 아래 2시간 넘게 이어진 이날 설명회의 주제는 다름 아닌 온라인게임 ‘리그오브레전드(LOL, 온라인게임)’. 프로게이머를 지망하거나 취미로 게임을 배우고 싶은 수강생들이 소정의 참가비를 내고 본격적인 수업에 앞서 한데 모인 것이다. 강의 내용 하나라도 놓칠세라 집중하는 수강생의 얼굴에 진지함과 긴장감이 엿보였다. 이날 설명회에 참가한 홍나희(24)씨는 “주변에 게임학원에 오고 싶어 하는 친구들이 많다”고 전했다. 분당시에 거주하는 유주안(21)씨는 “재수를 하던 대학생인데 프로게이머를 지망하고 있어서 수능이 끝나고 설명회에 참가했다”고 말했다.

또 다른 학원의 강의실. 통유리에 ‘뷰’가 좋은 세련된 강의실에서 수강생들이 빔프로젝터로 최신 게임 영상을 보며 공부하고 있다. 각자의 책상 앞에는 최신 컴퓨터 모니터가 놓여 있다. 게임 원화, 디자인, 프로그래밍 등 다양한 게임 관련 분야의 수업이 진행되는 강의실이다. 수강생들은 학생들은 서로의 화면을 들여다보며 열띤 피드백을 하고, 휴대용 태블릿 PC에 자신만의 그림을 그리기도 한다.

프로게이머가 되고자 하는 학생들에게 12월부터 1월까지는 일명 ‘게임 아카데미 입학 시즌’이다. 각종 게임 학원에서는 12월 초에 일반 학교처럼 입학설명회를 개최하고, 1월부터 정규반을 개강한다. 실제 벌어지는 게임 영상을 보여주며 진행되는 설명회가 끝나면 학생들은 충분한 질의 시간을 통해 자신이 배우고자 하는 게임에 대해 정보를 얻는다. 이후 개별 설문 문항을 작성하며 자신의 적성을 탐구한다. 5년 차 강사인 장혁주 코치는 “주위에 게임 코치 일을 한다고 말하면 ‘게임이 가르칠 게 있어?’라고 반문하는데, 해가 갈수록 수요가 늘어나고 성장하고 있다는 것을 피부로 느낀다”며 “프로게이머라는 직종에 대한 인식이 많이 바뀌면서 매년 설명회 시즌마다 학생과 학부모의 열기를 체감하고 있다”고 말했다.

바야흐로 ‘게임도 사교육 시대’다. 서울 강남 지역뿐만 아니라 전국 학원가에 ‘게임 아카데미’라는 이름을 걸고 게임을 가르치는 학원이 속속 생겨나고 있다. 일부 사설 학원이 소규모로 운영하던 과거와 달리 프로게이머 구단도 아카데미를 개설하며 그 규모가 확대하는 양상이다. 수학과 영어 등 수능 위주 과목을 가르치던, 수험생에게 친숙한 각종 사교육 업체도 게임 분야에 뛰어들고 있다. 게임 프로그래밍, 게임 디자인 등 개발 직군으로 분류되는 직종의 교육반부터 게임 원화, 메타버스까지 각종 게임 관련 분야에 대한 교육이 활발하다.

프로게이머 지망생에게 게임 학원은 꿈을 위한 투자


▎수학, 영어, 태권도뿐 아니라 게임을 직접 배우러 학원에 가는 학생이 늘고 있다. 강남의 한 게임 학원에서 학생들이 강사의 지도를 받고 있는 모습.
게임학원에서 가장 인기가 많은 프로그램은 직접 게임플레이를 배워 프로 구단에 입단하는 ‘프로게이머반’이다. 박상현 ‘메가스터디 게임 아카데미’ 원장은 “요즘은 개발 직군보다 프로게이머 과정에 대한 문의가 훨씬 많다”고 말했다. 지원하는 수강생은 중·고등학생부터 20대 초중반대까지 다양하다. 프로게이머반에서는 타 구단과의 스크림(공식 경기가 아닌 연습 경기)이 진행된다. 실전 대회 참여를 통한 성적 향상과 커리어 쌓기도 학원에서 관리해주는 요소 중 하나다. 게임 학원의 프로게이머반은 기본적으로 ‘티어 상승’을 목적으로 한다. 리그오브레전드를 포함한 각종 온라인게임은 게임 내의 순위를 알려주는 티어가 정해져 있어 명칭에 따라 플레이어가 상위 몇 퍼센트에 속하는지 알 수 있다. 최상위권에 속하는 ‘그랜드마스터’, ‘챌린저’부터 프로게이머 구단에 접촉할 가능성이 커지기 때문에 티어를 올리는 것이 프로게이머가 되는 가장 빠른 길이다.

이 같은 게임 사교육의 배경에는 사회적으로 달라진 프로게이머의 위상이 있다. 지난해 아이슬란드에서 개최된 리그오브레전드 세계대회는 분당 평균 시청자 3060만4255명에 동시 시청자 수가 7400만 명에 달했다. 우리나라 10대와 20대 사이에서 게임 대회는 일반 스포츠 경기와 견주어도 밀리지 않는 인기를 자랑한다. 그 이유는 우리나라 학생층의 놀이 문화가 게임으로 바뀐 데 있다. 한국 특유의 빠른 인터넷망과 개인 스마트 기기 보급 및 PC방 시설 확대는 자연스럽게 게임에 대한 관심을 키웠다.

이 같은 환경을 발판으로 세계 최상위권 순위 프로게이머가 속속 탄생했고, 각종 세계대회에서 우승을 차지했다. 특히 50억 원이 넘는 연봉을 받는다고 알려진 리그오브레전드 프로게이머 ‘페이커’(본명 이상혁, 26세)는 국내를 넘어 전 세계 e스포츠의 상징적인 존재다. 게임회사 취직이 꿈이라는 김승한(21)씨는 “페이커는 나의 우상이다. 페이커를 보고 게임에 큰 관심을 갖게 됐다”며 “비록 프로게이머처럼 솜씨가 좋진 않지만 관련 분야에서 내 적성을 찾게 됐다”고 말했다. 과거에는 게임이 단순 취미에 그쳤다면 지금은 자신의 재능을 갈고닦아 직업으로 길을 열 수 있게 된 것이다. 요즘 초등학생 가운데 장래희망을 묻는 질문지에 ‘프로게이머’라고 적어내는 것은 공공연한 비밀이다.

게임으로 돈을 벌 수 있는 시대가 왔음을 직감한 것은 학생뿐만이 아니다. 게임에 대한 학부모의 인식도 바뀌고 있다. 게임도 수학, 태권도, 바둑처럼 자녀의 미래와 진로를 위한 교육의 하나로 생각하게 된 것이다. 박상현 원장은 “학원에 문의전화를 주시는 분 중에 학부모가 3분의 1이 넘고 직접 상담하러도 많이 오신다”며 “요즘은 학부모들이 게임에 대해 더 열린 자세를 갖고 있다. 프로게이머를 자녀의 진로 선택 중 하나로 생각하고 직접 알아보시는 경우가 많다”고 말했다.

모든 수업은 영어로… 1년 학비 수천만원 사교육도


▎리그오브레전드(LOL, 온라인게임) 프로게이머인 ‘페이커’ 이상혁. 2015년부터 연달아 세계 선수권에서 우승하며 ‘롤계의 메시’, ‘롤계의 마이클 조던’으로 불린다.
게임업계 전문가들에 따르면 게임은 ‘조기 교육’이 중요한 분야 중 하나다. 일정 나이가 되면 선수의 능력이 하락한다는 것을 뜻하는 ‘에이징 커브’가 일반 스포츠에 비해 두드러지게 나타나기 때문이다. 실제로 e스포츠는 선수 수명이 짧고, 20대 중반이면 벌써 나이가 많은 축에 속한다. 프로게이머 구단 DRX에서 코치 활동을 하기도 했던 장 코치는 “나이가 어릴수록 성장 폭이 크다”며 “가르쳤던 학생 중에 선수로 데뷔한 경우를 보면 빠르면 1년, 오래 걸리면 2, 3년씩 걸린다”고 전했다.

이에 따라 아예 학교를 보내지 않고 게임 사교육 기관에 자녀를 보내는 학부모도 늘고 있다. 프로게이머 구단 젠지와 협업하는 ‘젠지 엘리트 아카데미’의 경우 일반 국제학교와 e스포츠가 섞여 있는 형태다. 모든 수업이 영어로 진행되는 해당 커리큘럼에서는 현직 프로 선수와 동일한 방식으로 수업이 진행되고, 졸업 시 미국 정규 고등학교 졸업장을 받게 된다. 이와 같은 국제학교 개념의 게임 사교육 기관은 1년 학비가 수천만원 수준에 달하지만 학부모의 열기는 뜨겁다. 실제 지난해 11월 초부터 한 달간 4번 진행된 신입생 설명회에 자녀를 프로게이머로 키우려는 학부모들로 가득 찼다고 한다.

프로게이머라는 직업이 유망직종으로 떠오르자 사교육이 과열되는 양상도 관찰된다. 특히 학부모들이 게임 사교육을 일종의 ‘투자’ 개념으로 보기 시작하면서 강사에게 ‘뒷돈’을 제의하는 경우도 있다고 한다. 프로게이머 구단 ‘샌드박스 게이밍’의 A 코치는 실제로 학부모들에게 뒷돈 제의를 받았지만 모두 거절했다고 말했다. A코치는 “아예 학원을 새로 하나 차려줄 테니 우리 아들만 전담 과외를 해달라며 천문학적인 금액을 제시하기도 했다”며 “학부모 입장에선 단순 게임이 아닌 미래에 대한 투자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벌어지는 일 같다”고 말했다.

코치를 포함한 게임 학원의 강사들은 정식적인 절차를 밟고 교육청에 등록한 이들이다. 게임 학원도 사업자등록증을 받고 학원등록번호도 있는 엄연한 학원 기관이다. 하지만 뒷돈을 받고 교습장소 외부에 교육청에 신고한 금액을 초과한 교습비 징수가 이뤄질 경우 과태료가 부과될 수 있다. 교육부도 ‘불법 사교육 신고센터’를 만들어 사교육 업계의 투명성을 강화하려 애쓰고 있다.

문제는 유망 직종으로 떠오른 프로게이머와 달리 프로게이머 코치의 경우 아직 제대로 된 연봉체계가 확립돼 있지 않다는 점이다. 장혁주 코치는 “코치 쪽은 인프라 설계가 아직 안 돼 있어 능력에 따라 받는 경우가 많다”며 “월급 30만원을 받고 일하는 경우도 있어 게임학원 강사를 병행하는 코치가 많다”고 전했다. 이처럼 돈의 유혹에 넘어가기 쉬운 구조라서 실제 불법 사교육을 자행하는 게임 강사가 존재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라고 한다. 장 코치는 “저는 직접 제의를 받은 적은 없지만 그런 일이 있다고 들어본 적이 꽤 있다”며 “실제로 제의를 받은 강사를 알기도 한다”고 귀띔했다. A 코치 또한 “개인 과외를 은밀히 따로 진행하는 강사들이 있을 것으로 본다”며 “이런 유혹에 넘어가면 안 된다”고 우려했다.

뒷돈 받는 불법 사교육은 그늘… 대리게임도 근절돼야


▎국제 게임 전시회인 ‘지스타 2021’ 행사가 열리고 있는 부산 해운대구 벡스코 제1전시장을 찾은 젊은 관람객들이 새로운 게임을 체험해보고 있다.
학원과 과외를 빙자한 ‘대리게임’ 업계도 기승을 부리고 있다. 대리게임은 류호정 정의당 의원이 이화여대 게임동아리 회장직을 맡고 있던 학생 시절에 논란을 통해 한 차례 사회문제로 이슈화된 바 있다. 리그오브레전드라는 게임의 특성상 대리게임은 공정성을 크게 해치는 행위다. 리그오브레전드는 기본적으로 5:5 게임 방식이고, 랭크 게임은 최대 2인이 함께 팀을 이뤄 플레이할 수 있다. 해당 게임은 승리 시 포인트를 주고 티어(게임 내 순위)가 결정되는 ‘랭크 게임’이 존재하는 시스템이다. 랭크 게임은 한 판에 30~40분이 소요되고, 점수의 등락 폭이 크지 않아 일반적인 실력으로는 티어를 올리는 속도가 느릴 수밖에 없다. 티어는 결국 실력을 증명하는 척도이기 때문에 프로게이머 구단 영입에 절대적인 기준이 된다. 1승당 1만~2만원에 달하는 비용에도 수십만원을 들여 대리게임 업체를 이용하는 이유다.

현직 코치와 강사들은 학원을 빙자한 대리게임 업체가 많다고 증언한다. 장 코치는 “요새는 대놓고 대리게임 업체라고 광고하진 않는다”며 “2인이 같이 게임을 하는 ‘듀오’ 방식으로 강의해준다며 접근한다”고 말했다. 실제로 카카오톡 오픈채팅방에서 ‘롤 강의’를 검색하면 ‘신규 10% 할인 듀오 강의 ○○팀’, ‘신규할인 강의 육성 □□팀’ 등 수많은 대리게임 업체를 쉽게 발견할 수 있다. 장 코치는 “학부모들도 관련 업체에 접촉해 자녀들의 티어를 우선 높이고, 그 이후에 정식 강의를 받아서 프로게이머 구단에 제의를 받으려는 시도가 있는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2019년 6월 대리게임 처벌법(게임산업진흥에 관한 법률 개정안)이 시행되면서 대리게임에 참여한 업체는 2년 이하 징역 또는 2000만원 이하 벌금에 처해질 수 있다. 하지만 2020년 4월 26일 기준 2000여 곳이 넘는 업체가 적발되는 등 대리게임은 계속해서 기승을 부리고 있다. 장 코치는 “게임은 아직 완전히 자리 잡지 못한 업계이다 보니 법이 있어도 아직 음지가 많다”며 “정부를 비롯해 관련 게임사가 발 벗고 해결에 나서야 한다”고 말했다.

- 손준영 월간중앙 인턴기자 storkism@naver.com

202202호 (2022.01.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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