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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덕현의 K컬처 톺아보기(2)] 애플TV+ '파친코', 우리가 잃어버렸던 자화상 

‘경계인’의 시선으로 바라본 한국 근현대사 

외국인보다 가깝게 한국 들여다보지만, 한국인과는 다른 시선
'파친코', '미나리' 호평, 이민자 서사에 대한 보편적 공감대


▎애플TV+ 오리지널 시리즈 [파친코]는 일제강점기부터 1989년까지 이어지는 한 한인 여성의 4대에 걸친 가족사를 다룬 이야기다. / 사진:애플TV+
애플TV+ 오리지널 시리즈 [파친코]에 대한 전 세계의 반응이 뜨겁다. 일제강점기부터 1989년까지 이어지는 한 한인 여성의 4대에 걸친 가족사를 다룬 이야기. 그런데 여기에는 국적의 경계를 넘어선 이민자들의 관점이 어른거린다.

[파친코]를 보면서 필자는 이 작품이 서비스를 시작하기 약 일주일 전 방영됐던 tvN [이어령의 내가 없는 세상]의 한 대목을 떠올렸다. 고 이어령 교수는 부고 전에 찍은 이 다큐멘터리에서 ‘인류의 역사’를 한마디로 정리해달라는 무모한(?) 질문에 ‘반도’에 대한 이야기로 놀라운 답변을 내놓는다. 인류의 역사는 말 탄 사람(대륙을 지배한 사람들)과 배 탄 사람(바다를 지배한 사람들)이 서로 싸워온 것으로 요약된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그는 반도가 왜 중요한가를 설명한다. 반은 섬이고 반은 대륙이기 때문에 말도 타고 배도 타는 반도의 특성을 이야기하며, 대륙과 해양 두 세력은 이 양자의 문화가 공존하는 ‘반도성’을 인정하지 않고 ‘대륙의 반도’, ‘해양의 반도’로 만들려 싸워왔다는 거였다.

실제로 발칸반도, 크림반도, 한반도가 그 사례였다. [파친코]를 보며 다소 단순화시켜 ‘인류의 역사’를 설명한 이어령 교수의 이야기가 떠오른 건, 두 이야기에 담겨있는 ‘경계’라는 키워드가 묘한 울림을 줘서다. 서로 다른 국가나 문화들이 경계를 두고 서로 싸우는 시대에, 이 양자의 국적이나 문화를 모두 가진 ‘경계인’ 혹은 ‘반도인’의 시선으로 바라보는 일이 왜 중요한가를 이어령 교수는 말하고 있었다. 그리고 [파친코]는 바로 그 경계인의 관점을 태생적으로 가진 작품이었다.

[파친코]는 한국의 역사를 담고 있지만, 그 원작은 한국계 미국 작가 이민진의 장편 소설이다. 드라마에도 윤여정이나 이민호, 김민하 같은 한국 배우들이 등장하지만, 동시에 진하 같은 배우나 코고나다, 저스틴 전 감독 같은 한국계 미국인이 함께 한 작품이다. 그래서 [파친코]는 그간 한국에서 제작된 이 시기를 다룬 시대극들과는 사뭇 다른 느낌을 주는데 그것은 바로 이 한국과 미국, 그리고 일본을 겪으며 자란 경계인의 시선이 투영돼 있기 때문이다. 8부작에 무려 1000억원의 제작비가 투여됐고, 그래서 드라마지만 영화에 가까운 색감과 다양한 부감을 담은 한국의 풍광이 담겨 있는 작품이다. 그래서 하다못해 벼가 익어가는 들판마저 이게 한국이 맞나 싶을 정도로 아름답게 포착된 장면들이 등장하는데, 여기에도 경계인 특유의 시선이 담겨있다.

예를 들어 [파친코]가 재연해 보여준 1920년대 부산 영도의 항구와 어시장 풍경은 분명 우리의 부산 사투리가 정겨운 당대 한국의 풍경이지만, 이를 부감으로 잡아 보여주는 모습은 어딘가 미국 근대를 담은 영화의 한 장면 같은 느낌을 준다. 또 한수(이민호)가 처음 등장할 때 어시장에서 바다를 바라보는 장면 역시 마치 미국의 갱스터 누아르 영화처럼 연출돼 있다. 또 선자(김민하)가 일본 오사카로 가는 배 안에서 일본인들의 연회 무대에 선 한국인 가수가 갑자기 춘향가의 한 대목인 ‘갈까부다’를 부르는 장면도 그렇다. 거기에는 여러 국적의 영상들이 뒤섞여 있는 듯한 묘한 느낌이 있다. 그런데 이것은 마치 할리우드 블록버스터 영화 속에 등장하는 어색한 한국말처럼, 잘 몰라서 어색해진 연출이 아니다. 그건 재일 동포나 한국계 미국인 같은 여러 국적이 겹쳐진 경계인이 생각하거나 본 한국의 풍경이다. 이들은 외국인들보다는 훨씬 가깝게 한국을 이해하고 들여다보고 있지만, 한국인들과는 사뭇 다른 시선으로 한국을 바라본다. 그건 어쩌면 우리가 너무 익숙해서 놓친 한국의 풍경일 수 있다.

쌀밥 한 끼는 우리에게 그리 대단한 것으로 여겨지지 않을 수 있다. 하지만 어쩔 수 없이 고국을 떠나 타국을 떠돌게 된 이들에게는 남다른 감흥으로 다가온다. 선자가 고국을 떠나 오사카로 가기 전 엄마 양진(정인지)이 이 땅에서 난 쌀로 한 끼 밥을 해주는 에피소드가 그렇다. 일제 때문에 함부로 쌀을 팔 수 없다던 쌀집 아저씨가 딸이 고국을 떠나게 됐다는 양진의 이야기에 선선히 쌀을 내주는 장면이나, 그 쌀로 정성껏 밥을 지어 내놓자 그걸 쳐다보며 하염없이 눈물을 흘리는 선자의 모습이 각별한 감동으로 다가오는 건 거기 경계인들이 가진 남다른 정서가 묻어나서다. 이 쌀밥 한 끼의 서사는 후에도 계속 이어져, 선자가 오사카에 도착했을 때 첫 끼로 경희(정은채)가 내준 쌀밥에 울컥 눈물을 흘리는 장면과 1989년 노년의 선자(윤여정)가 한 재일 동포에게 쌀밥을 대접받는 장면으로 연결된다. 밥을 먹어본 선자는 그 쌀이 고국에서 온 거라는 걸 순식간에 알아차린다. 결국 엄마가 고국을 떠나기 전 차려줬던 쌀밥 한 끼는 그 후 수십 년을 해외로 떠돌면서도 한인들이 그 정체성의 뿌리를 잊지 않는 중요한 모티브로 그려진다.

태생적으로 경계인, 반도인의 관점 가진 작품


▎이민진 작가의 동명의 원작소설 [파친코]는 “역사가 우리를 망쳐 놨지만, 그래도 상관없다(History has failed us, but no matter)”라는 문장으로 시작한다.
쌀밥 한 끼의 서사에서 알 수 있듯이 재일 동포 같은 경계인의 관점은 완전한 이방인이어서 낯설다기보다는 가까이 가곤 싶지만, 떨어져 있어서 애틋해진 시선이 담긴다. 게다가 거기에는 우리가 너무 익숙해져서 잊고 있었던 자존감 넘치는 우리 자신의 모습도 발견된다. 첫 회에 등장했던 1915년 일제강점이 막 시작된 시기에 영도를 중심으로 살아가는 조선인들의 모습이 그렇다. 하숙집을 하는 선자네 집에 머물며 어부 일로 살아가는 노동자들이 저녁에 막걸리 한 잔을 하며 ‘뱃노래’를 부르는 장면에 깃든 흥과 한은 어딘가 우리가 잃어버렸던 자화상을 찾아낸 듯한 느낌을 준다. 일제강점기와 한국전쟁을 거치고 개발 시대를 통과해 자본화가 급격히 되면서 잃어버린 자존감이나 당당함 같은 것들이 그것이다. 가난해도 정이 있어 서로 나누고 총칼 앞에 핍박받는 두려움이 존재하지만, 그러면서도 꼿꼿한 당당함을 잃지 않는 그런 질깃한 생명력 같은 게 그 노동자들의 얼굴에서 느껴진다. 이것은 이들 경계인이 한국 사회 바깥에 위치해 있어 여전히 그때의 그 모습을 선명히 기억하는 데서 비롯된 것이 아닐까 싶다.

이들의 시선에 포착된 당당한 한국인의 면모는 선자라는 인물에 잘 투영돼 있다. 태생적으로 귀하게 태어난 이 인물은 어려서부터 남다른 총명함을 보이고, 일본 순사들 앞에서도 고개를 숙이지 않는 당당함을 드러낸다. 특별히 교육을 받은 것도 아니고 부유한 집안의 자녀도 아니지만 그렇다고 핍박 앞에 고개 숙이지 않는 모습은 1915년에서 1989년까지의 격동기를 살아낸 이민자 선자가 가진 생명력의 원천이 어디에 있는가를 잘 담아낸다.

당당한 한국인의 면모, 선자라는 인물에 투영


▎애플TV+ 오리지널 시리즈 [파친코]에서 노년의 재일 동포 선자를 연기한 윤여정은 “아홉 살 선자가 해녀(처럼 물질) 할 때 아버지가 (뭍에서) 같이 숨 쉬어주는 장면을 보고 울었다. 한국인의 사랑을 느꼈다”고 했다. / 사진:애플TV+
그 생명력의 원천을 [파친코]는 선자의 부모를 통해 제시했다. 선자의 엄마 양진은 ‘생명을 살려내는 인물’로 캐릭터화돼 있다. 박복했던 삶이었지만, 끝내 선자의 아버지를 만나 가정을 꾸리고 아이를 셋이나 잃었지만, 끝내 선자를 낳은 인물. 그는 의원도 손쓸 수 없다던 이삭(노상현)을 간병해 끝내 살려낸 인물이기도 하다. [파친코]는 어떤 상황에서도 살아남고 살려내는 생명력의 원천으로서 선자의 어머니 양진을 그리는데, 이것은 아마도 이민자로 살아온 작가가 가진 어머니이자 고국, 그리고 한국인에 대한 이미지가 투영된 결과로 보인다. 어떤 외세에도 끝끝내 버텨낸 끈질긴 생명력으로서의 어머니 혹은 한국인.

한편 선자의 아버지는 언청이(구순열)로 장애를 갖고 태어났지만 ‘인간의 도리’를 아는 인물로 그려진다. 그 누구보다 딸을 사랑하고 귀하게 여겼던 아버지는 병으로 죽어가며 선자에게 ‘부모 될 자격’에 대한 이야기를 유언처럼 남긴다. 혼자 외롭게 살다 죽을 모진 팔자인 줄 알았는데, 살아보니 삶은 팔자랑 상관이 없고 대신 그럴 만한 자격을 얻어야 되는 거더란다. 부모 될 자격을 얻어야 아이를 갖는 행복도 가질 수 있다는 것. 그러면서 선자에게 말한다. “나중에는 니 얼라들도 생기겠지. 그때 되면 니도 그럴 자격이 돼야 된다. 선자 니는 할 수 있다. 나는 니를 믿는다.” 작가는 왜 아버지의 입을 빌려 ‘부모 될 자격’에 대한 이야기를 유언처럼 남겼을까. 그것은 선자가 앞으로 꾸려나갈 가족에 대한 이야기이면서 동시에 나라가 힘이 있어야 백성도 행복할 수 있다는 의미로도 읽힌다. 나라가 힘이 없어 먼 타지까지 떠나와 살아가게 된 이민자들이 고국에 대해 갖는 생각이 바로 그런 것일 게다.

[파친코]에 윤여정이 캐스팅됐다는 소식은 여러모로 그에게 아카데미 여우주연상을 부여한 영화 [미나리]를 떠올리게 한다. 한국인이지만, 미국인이기도 한 그 경계에 서 있는 이들이 타국에서 미나리처럼 질깃하게 살아남는 삶은 전 세계 이민자들의 폭넓은 공감대를 얻었다. [파친코]가 일제강점기로 인해 고국을 떠나 일본에 정착해 살아가는 재일 동포들의 파란만장한 삶을 다루고 있지만, 글로벌한 호평과 찬사가 나오는 것 역시 바로 이 이민자 서사에 대한 보편적인 공감대가 깔렸기 때문이다.

이민자라는 경계인의 시점은 지나치게 민족주의적으로 흐르지 않고 그렇다고 있었던 역사를 간과하지도 않는다는 점이다. 그것은 특유의 ‘거리감’에서 비롯되는 것으로, 여전히 국가주의·민족주의 시대에 겪었던 역사로 인해 현재까지 벌어지고 있는 차별과 분쟁에 대한 대안적인 시선을 마련해준다. 이어령 교수의 말을 빌려 하자면, 반도 같은 경계의 위치에서 양자를 수용하며 바라보는 시선이, 과거 국가주의·민족주의 시대에 국가나 인종·피부색 등등으로 나누어 대결 구도로 바라보던 시선을 넘어설 수 있는 대안이 돼준다는 것이다.

경계인 서사가 세계적으로 공감 받는 이유


▎애플TV+ 오리지널 시리즈 [파친코]가 재연한 1920년대 부산 영도의 어시장 풍경은 분명 당대 한국의 풍경이지만, 어딘가 미국 근대를 담은 영화의 한 장면 같은 느낌을 준다. / 사진:애플TV+
버락 오바마 대통령은 2019년 이민진 작가의 소설 [파친코]를 추천하며 “첫 문장부터 당신을 끌어당기는 매혹적인 책!”이라고 평가한 바 있다. 그 첫 문장은 이랬다. “역사가 우리를 망쳐 놨지만, 그래도 상관없다(History has failed us, but no matter).” 그들을 두고 한국인이냐 미국인이냐 혹은 일본인이냐고 묻는 건 이들 경계인의 맥락에서는 그다지 의미가 없는 일이다. 또한 [파친코]가 미국 드라마냐 아니면 한국 드라마냐를 따지는 일도 이 맥락에서는 그리 의미가 없다. 그들은 물론 고국에 대한 그리움이 부모 세대부터 자식 세대로 이어지며 고국에 대한 애틋한 마음을 갖고 있지만, 그 어느 한 나라가 아닌 여러 나라의 정체성을 한몸에 갖고 현재를 살아가는 이들이다. 과거의 아픈 역사를 직시하지만, 세대를 거치며 구분하고 구별하는 대결적 관점이 아닌 그 다양함을 모두 포용하는 관점으로 세상을 바라본다는 것. 이것이 경계인의 관점을 공유하고 있는 [파친코]가 가진 가치다.

송일곤 감독의 다큐멘터리 영화 [시간의 춤]은 100년 전 [파친코]의 선자처럼 고국을 떠나 멕시코로 갔다가 그곳에서 다시 쿠바로 들어가 갖은 고생 끝에 정착한 한인들의 이야기를 담았다. 그런데 그 작품에서 가장 인상적인 부분은 그곳에서 가족을 꾸려 사는 디모테오 할아버지에게 쿠바가 어떤 의미냐고 묻는 대목이었다. “나에게 쿠바는 조국이지. 나의 출생을 지켜봐 주고 나에게 삶을 준. 그래서 커다란 애정을 품고 있는 땅.” 그렇게 말하며 그는 덧붙였다. “한국은 나에게 아버지의 조국이야. 마지막 순간까지 그토록 사랑했던. 나는 한국을 가슴에 담고 있어.” 쿠바하고 한국하고 야구를 하면 어디를 응원할 거냐는 다소 짓궂은 질문에 90세의 호르헤 김 조 할아버지는 “쿠바를 응원할 것”이라며 껄껄 웃는다. 이들은 정기적으로 모여 한복을 입고 한국 민요를 부르며 파티를 하면서도 현재 쿠바에서 뿌리내린 삶을 중요시했다. 과거와 현재, 고국과 타국 나아가 언어나 피부색은 물론이고 생각의 차이 같은 다양성을 수용하는 삶은 글로벌 시대를 맞이했지만, 여전히 싸우고 분쟁함으로써 전 지구적 위기를 만들고 있는 현실에 중대한 과제가 아닐 수 없다. 그래서 [파친코] 같은 작품을 통해 경계인의 관점을 공유하는 일은 중요하다. 그것은 과거의 상처를 파내기 위함이 아니다. 지금 현재를 더 잘 살아가기 위함이다. 호르헤 할아버지가 마치 삶의 비의를 들려주 듯 건네는 말이 긴 여운으로 남는다. “아, 진실을 말해줄게. 내 생에 가장 행복한 순간은 바로 지금 내가 살고 있는 이 순간이야.”

※ 정덕현 - 대중문화평론가이자 칼럼니스트. 연세대학교 국어국문학과를 졸업하고 MBC 시청자 평가원, JTBC 시청자 위원으로 활동했다. 또 백상예술대상, 대한민국 예술상 심사위원이며 SBS ‘열린TV 시청자 세상’, KBS ‘연예가중계’ 등 다양한 방송에 출연했다. 저서로 [숨은 마흔 찾기], [다큐처럼 일하고 예능처럼 신나게], [웃기는 레볼루션] 등이 있다.

202205호 (2022.04.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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