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기업

Home>월간중앙>경제.기업

[SSG 랜더스 연구 | 쓱 스토리(3)] 지속가능한 원팀은 어떻게 만들어지는가 

SSG의 ‘윈나우(win now)’, 한화와 롯데의 노선도 바꾸다 

김영준 월간중앙 기자
추신수·김광현·비FA 3인방 등 248억 투자하며 우승 쟁취… 점진적 팀 세대교체도 병행
객관적 지표 뛰어넘는 성적 이면엔 협업의 조직문화와 김원형 감독의 자율 리더십 한몫


▎SSG 랜더스는 접전 경기, 연장전 등 잡을 경기를 잡는 집중력으로 2022년 정상을 정복했다. 통계로 명쾌하게 규명되는 영역이 아니기에 조직문화의 힘이라고 보는 해석이 설득력을 얻는다. / 사진:연합뉴스
세상 모든 야구팀의 목표는 윈나우(win now)아니면 리빌딩(rebuilding)이다. 흔히 윈나우는 현장(감독), 리빌딩은 프런트(단장)의 영역으로 간주된다. 하지만 SSG 랜더스 프런트 수장인 민경삼 대표는 리빌딩이라는 말을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다. 민 대표는 “리빌딩이 아니라 리모델링(remodeling)을 해야 한다”고 답한다.

한국시리즈 우승 반지만 6개를 가지고 있는 민 대표는 “지속 가능하게 우승에 도전할 수 있는 전력을 유지하되, 세대교체를 병행하는 것”이라고 리모델링을 규정한다. 그는 선수(1990년 LG), 매니저(1994년 LG), 운영팀장(2007~2008년 SK), 단장(2010년 SK) 그리고 대표(2022년 SSG)로서 우승을 경험했다. 2018년 SK에 우승을 선사한 트레이 힐만 감독 영입은 그가 단장으로서 실행한 마지막 작품이었다.

단장에서 사퇴한 뒤 야인으로 지내던 그를 최창원 SK 구단주가 2020년 10월 대표로 불러들였다. 2020시즌 SK가 9위(승률 0.357)라는 참담한 성적을 낸 직후였다. 야구계는 민 대표 체제에서 SK가 장기적 재건(리빌딩)에 주력할 것이라고 예상했지만, 민 대표는 그해 12월 FA 2루수 최주환과 4년 총액 42억원에 계약했다. “침체는 빠르게 탈출해야 한다. 야구팀엔 시간도 자원”이라는 것이 그의 지론이었다. 최주환 영입을 통해 ‘당장 우리는 가을야구에 도전한다’는 메시지를 전파한 것이다.

이기지 못하는 리빌딩은 공허하다


▎민경삼(앞줄 왼쪽) SSG 랜더스 대표는 “선수는 1군 경기를 통해 키워야 한다”고 본다. 그의 재임기 랜더스는 성적과 세대교체에서 모두 성과를 내고 있다. / 사진:SSG 랜더스
2021년 1월, 그가 대표로 임명된 뒤 불과 3개월 만에 구단의 주인이 바뀌었다. 새 주인 신세계는 예상을 깨고, 민 대표를 유임시켰다. 신세계그룹 핵심 관계자는 “야구를 모르는 우리가 낙하산 CEO를 내려보낼 순 없었다”라고 배경을 설명했다.

임팩트를 중시하는 유통 회사인 신세계는 더 선명하게 윈나우 깃발을 들었다. 정용진 구단주는 2021년 3월 30일 창단식에서 “개인적으로 SSG 랜더스가 올해 144경기 이상을 하게 될 것 같은 강한 느낌을 받는다”고 말했다. ‘정규시즌 144경기 이상’은 곧 가을야구 진출을 의미한다.

이를 위해 랜더스는 메이저리그 외야수 추신수(1년 27억원)를 데려와 전력을 보강했다. 그럼에도 0.5경기 차로 가을야구 티켓을 놓치자 2021년 겨울 랜더스는 ‘비FA 장기계약’이라는 초유의 사례를 만들며 투수 박종훈(5년 총액 65억원)과 문승원(5년 총액 55억원), 외야수 한유섬(5년 총액 60억원)과의 다년계약을 성사시켰다. 이것만으로도 팀 페이롤 1위가 확정이었지만, 시즌 직전 에이스 김광현 복귀에 4년 총액 151억원을 또 투하했다.

랜더스 프런트의 방식은 존 보글의 인덱스 펀드와 흡사하다. 이들은 ‘저평가 가치주를 선별하는 작업은 얼핏 매혹적이지만, 자칫하면 시간이라는 비용만 소진할 수 있다’는 리스크에 주목했다. 그래서 랜더스는 돈이 많이 들더라도 실패 확률을 최소화하는 루트를 선택했다. 최정·추신수·박종훈·문승원·한유섬·김광현·김강민 등을 비롯해 연봉 100만 달러 이상 외국인선수(폰트·노바·크론) 3명을 영입했다. 이렇게 모아놓으면, 1~2명이 설령 슬럼프에 빠져도, 나머지 선수들의 활약으로 어느 정도 상쇄할 수 있다. 건초더미에서 바늘을 찾으려 하지 않고, 건초더미 전부를 사 버리는 방식이다.

구단의 이념적 지향에 있어서 랜더스와 가장 대조적인 팀이 한화 이글스라 할 수 있다. 한화는 2020~2022시즌 3년 연속 최하위를 포함해 2009년 이후 꼴찌만 8번을 했다. 2023시즌도 최하위권이다. 특히 직전 3년간 정민철 단장, 수베로 감독 체제에서 2군은 물론 1군까지 육성 모드로 운영했다. “아버지(김승연 한화그룹 회장)와 달리 김동관 한화그룹 부회장이 야구단에 돈 쓰는 걸 탐탁지 않게 여기는 것 아니냐?”는 루머까지 돌 정도였다.

결국 한화도 2023시즌을 준비하며 지갑(FA 외야수 채은성 6년 총액 90억원, 투수 이태양 4년 총액 25억원 등)을 열었다. 2023년 5월 수베로 감독을 경질하고 최원호 감독을 임명하며 ‘이기는 야구’로 전환했다.

한화뿐 아니라 롯데도 ‘적어도 KBO리그에선 승리가 수반되지 않은 리빌딩은 성공할 수 없다’는 명제를 인정하기 시작했다. 지난 3년간 롯데는 성민규 단장 체제에서 ‘프로세스’로 명명된 리빌딩 작업을 대대적으로 추진했다. 저평가 가치주를 발굴 혹은 육성하겠다는 것이었다.

실제 성 단장 체제에서 롯데는 손아섭(NC행)이 떠났고 이대호가 은퇴했다. 그만큼 팀 페이롤을 줄였고, 유망주들에게 기회가 돌아갔다. 하지만 3년간 성적은 단 한 번도 승률 5할을 넘지 못하며 7위→8위→8위였다. 결국 2023시즌 롯데는 이강훈 대표 체제에서 대대적 FA 투자로 선회했다. 상당한 시행착오를 거쳐 결국 한화도, 롯데도 ‘야잘잘(야구는 잘하는 사람이 잘한다)’의 세계로 회귀한 셈이다. ‘야잘잘’은 곧 ‘위닝 멘털리티’를 정립하는 것이 우선이라는 문법으로 움직인다.

야구단 프런트가 가장 좋아하는 단어는 ‘왕조(우승)’와 ‘화수분(육성)’이다. 야구인들 사이에서 21세기 최고 명문팀으로 두산 베어스가 꼽히는 이유는 김태룡 단장이 두 가지 가치를 모두 잡았기 때문이다. 김 단장과 민 대표가 선수 출신 프런트 가운데 가장 성공한 케이스로 통하는 이유다.

피타고리안 기대승률을 거스르다


▎SSG 랜더스 서진용은 김원형 감독을 만난 후 강점에 더 집중하며 KBO 최강의 마무리로 변모했다. / 사진:연합뉴스
민 대표의 롤모델은 테오 엡스타인 전 시카고 커브스 사장이다. 엡스타인은 2004년 보스턴 레드삭스 단장으로서 ‘밤비노의 저주’를, 2016년 커브스 사장으로서 ‘염소의 저주’를 깼다. 그는 “언젠가 내가 떠나더라도 영속적으로 우승에 도전할 수 있는 팀을 만들어놓고 싶다”고 입버릇처럼 말한다.

2022시즌 SSG 랜더스는 KBO리그 역사상 최장기간 1위를 달성했다. 하지만 민 대표는 “‘와이어 투 와이어 우승’보다 나에게 더 기쁜 일은 따로 있다. 랜더스 퓨처스팀에서 1군 즉시전력감이 속속 출현하는 현실이 그것”이라고 고백했다.

압도적 전력으로 개막 10연승으로 치고 나갔던 2022시즌과 달리 2023년 랜더스는 “왜 그런지는 모르겠지만, 끝나고 나면 이겼더라”는 평가를 듣는다. 김광현, 한동민, 박종훈, 추신수, 김강민 등 베테랑 고액 연봉 선수들의 활약이 지난해에 못 미치지만, 팀은 2위(8월 7일 시점 승률 0.571)다. 팀 내부적으로는 “숫자로 딱 떨어지게 설명하자면 복잡하겠지만, 이기는 과정을 지켜본 젊은 선수들이 어떻게든 지지 않는 습성을 물려받은 것 같다”고 말한다.

야구 통계 중에 ‘피타고리안 기대승률(이하 기대승률)’이란 것이 있다. 세이버매트릭스의 창시자 빌 제임스가 만든 공식이다. 시즌 동안 팀이 올린 득점을 제곱한다. 그리고 실점도 제곱한다. 득점의 제곱이 분자를 이룬다. 득점의 제곱과 실점의 제곱이 분모를 이룬다. 분자를 분모로 나누면 피타고리안 승률이 산출된다. 이는 ‘각 팀의 목적은 상대팀보다 많이 득점하여 승리하는 데 있다’는 야구규칙 1조 2항에 기초한다. 기대승률은 득점을 많이 하고, 실점을 적게 하는 팀이 이길 확률이 높다고 추정한다.

2022시즌 SSG 랜더스는 개막전부터 시즌 144번째 최종전까지 단 한 순간도 1위를 놓치지 않는 ‘완전무결한’ 우승을 달성했다. 하지만 기대승률을 대입하면, 의외의 결과가 도출된다.

144경기 동안 랜더스의 득점은 702점, 실점은 622점이었다. 계산을 해보면, 0.573의 승률이 나온다. 반면 LG 트윈스는 같은 기간 715점을 얻었고, 521점을 잃었다. 0.653의 승률이 산출된다.

하지만 현실 세계는 수학적 통계와 괴리를 띠었다. 랜더스는 0.629(88승52패4무)의 승률을 거둬 2위 트윈스(승률 0.613, 87승55패2무)를 제쳤다. 2022시즌 기대승률만 놓고 보면 랜더스는 KT 위즈(기대승률 0.557)와 비슷한 수준이었다. 하지만 위즈의 정규리그 순위는 4위였다.

강해서 이기는 게 아니라 이기니까 강하다


▎2023년 5월 11일 한화는 카를로스 수베로 감독(왼쪽)을 전격 경질했다. 공허한 리빌딩이 아니라 오늘 이기는 야구에 방점을 찍겠다는 선언에 다름 아니다. / 사진:연합뉴스
피타고리안 기대승률은 후행지표다. 해석도 나중에야 ‘갖다 붙일 수’ 있다. 다만 움직일 수 없는 사실은 2022년 랜더스가 객관적 전력 이상으로 많이 이겼다는 것이다. 실제 랜더스가 거둔 88승 중 55승이 3점 차 이내 승리였다. 반면 3점 차 이내 패배는 52패 중 27패였다. 역전승은 43차례 얻은 데 비해 역전패는 22번이었다. 연장전에서는 9승 4무 4패를 거뒀다.

그렇다고 랜더스 불펜이 극강 모드였던 것도 아니었다. 이 팀의 시즌 불펜 평균자책점은 4.68로 리그 전체 6위였다. 선발 평균자책점(3.44, 전체 2위)보다 훨씬 열악했다. 김택형~서진용~문승원~노경은 등 계속해서 마무리 투수가 바뀔 정도로 불안했다.

물론 “2022년 랜더스는 예외적으로 운이 좋았다”고 치부할 수도 있다. 하지만 2023시즌(8월 7일 시점)에도 랜더스의 타자와 투수 WAR(대체선수 대비 승리 기여도)는 각각 3위다. 타력에서는 LG와 NC보다 밀리고, 투수력에서는 키움과 KT보다 뒤쳐지지만 팀 순위는 최상위권을 달린다.

분명 ‘이상현상’이 목격되고 있지만, 아무도 딱 떨어지는 설명을 내놓지 못한다. 김성용 랜더스 홍보팀장(랜더스 단장과 동명이인)은 ‘선택과 집중’에서 그 원인을 찾는다. “김원형 감독 이하 선수단 전체가 질 경기를 뒤집으려 하는 것보다 이길 수 있는 경기를 놓치지 않으려는” 컨센서스를 공유한다는 관점이다.

끈끈한 조직문화는 랜더스의 첫 시즌부터 감지됐다. 2021년 랜더스는 6위에 그쳤지만 무승부는 14번에 달했다. 이 중 12번이 후반기에 집중됐다. 선발진이 사실상 붕괴됐고, 부상자가 속출했음에도 끝까지 포기하지 않았다는 증거다. 그해 랜더스는 143번째 경기까지 5위였다.

선수는 1군에서 육성한다


▎롯데 성민규 단장은 세이버매트릭스와 피칭랩 등을 내세운 변화를 홍보했지만, 오히려 비용 대비 효율 면에서 의구심을 사고 있다. / 사진:연합뉴스
2023시즌에도 랜더스는 약점(포수)이 뚜렷하고, 투타에서 김광현·한유섬 등의 페이스가 전년도만 못하다. 하지만 그 공백을 불펜 평균자책점 1위로 커버하고 있다. 8월 7일까지 마무리 서진용은 30세이브를 성공시켰다. 18홀드를 기록한 노경은을 포함해 3홀드 이상 투수만 7명에 달한다. 김 감독은 5년 55억원 투수인 문승원도 불펜으로 전환시켰다.

전통적으로 랜더스는 한여름에 약한 팀이었다. 주력 선수들의 나잇대가 높았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2022시즌 이후 그런 불안요소도 희석되고 있다. “선수는 1군 실전에서 육성해야 성장한다”는 기치 아래 신구조화가 진행된 덕분이다.

8월 7일까지 랜더스는 LG, NC, KT 상대로는 9승 20패다. 반면 나머지 6팀 상대로는 43승 1무 19패를 거두고 있다. ‘강해서 이기는 것이 아니라 이겨서 강하다’는 승부 세계의 진리를 여지없이 관철하고 있다.

랜더스 클럽하우스 리더인 김강민은 2022시즌 84경기밖에 출전하지 못했다. 1997년생 최지훈에게 주전 중견수 자리를 내준 것이다. 하지만 김강민은 “지훈이가 있어서 내가 이 성적(타율 0.303, OPS 0.824)을 낼 수 있었던 것”이라고 말한다. ‘최지훈 때문에 벤치로 밀려났다가 아니라 덕분에 체력을 안배할 수 있었다’는 긍정의 마인드다.

에이스 김광현은 지난 1월 사비를 털어 오원석, 백승건, 김건우 등 후배 좌완투수들과 오키나와를 같이 갔다. 그곳에서 훈련하는 동안 숙박비, 식비를 부담했다. 추신수도 퓨처스의 저연봉 선수들에게 배트와 글러브를 선물하고, 소고기(60㎏)를 사준 적이 있다.

개인사업자인 프로야구 선수들은 같은 팀 선후배 사이일지라도 미묘하게 배타적이다. 야구는 언뜻 팀 스포츠로 보이지만, 기록으로 점철된 개인 스포츠의 속성이 짙기 때문이다. 그래서 소수의 고연봉자와 나머지 선수의 갭이 클수록 투자 대비 효율성이 떨어지는 사례가 곧잘 관찰된다. 하지만 랜더스는 추신수, 김광현, 최정 등 고액 연봉자가 즐비함에도 위화감이 통제되고 있다. 제로섬 게임(경쟁자의 이득은 곧 나의 손해)이 아니라 해피 게임(경쟁자가 잘 돼야 나도 잘 된다)이 랜더스 클럽하우스를 지배하는 정서다. 후배가 선배를 롤모델로 삼는 ‘학습하는 문화’야말로 피타고리안 기대승률을 초월한 랜더스의 비결이다.

명장이 아니라 팀에 맞는 감독을 영입


▎염경엽(오른쪽) 감독은 1994년 이후 우승이 없는 LG의 숙원을 풀기 위한 해결사로 간택됐다. / 사진:연합뉴스
야구의 바이블로 통하는 레너드 코페트의 [The new thinking fan’s guide to baseball](국내에는 ‘야구란 무엇인가’로 번역)은 감독의 지분에 대해 이렇게 썼다. “어떤 감독은 아무런 차이도 만들어 내지 못한다. 어떤 감독은 가만히 내버려 뒀더라면 이길 수 있는 게임을 공연히 주무르다가 망쳐 놓는다. (…) 그러나 대부분의 감독은 팀 승수에 거의 영향을 미치지 못한다. 시즌을 치르면서 각 팀이 보유한 기본 전력이 고스란히 나타나기 때문이다.”

2023시즌 개막을 앞두고 어느 야구인은 “올 시즌 SSG 랜더스와 LG 트윈스를 유심히 보게 될 것 같다”고 말했다. 공히 우승권 전력을 갖춘 두 팀이지만, 감독의 운영 방식은 사뭇 달랐기 때문이다. 김원형 SSG 감독은 KBO리그에서 손꼽히는 리버럴한 스타일이다. 반면 염경엽 LG 감독은 디테일한 전술가의 면모가 짙다. 게다가 염 감독은 랜더스 데이터센터장 출신인 김정준을 수석코치로 영입했다. 김 코치는 KBO 역사상 가장 완고한 카리스마적 리더인 김성근 전 감독의 아들이다.

8월 7일 시점까지 LG는 1위(57승35패2무), SSG는 2위(52승39패1무)로 경합 중이다. 흥미로운 지점은 염 감독이 SSG의 전신인 SK 와이번스에서 감독으로 실패(2019년 3위·2020년 9위)를 경험했다는 것이다. 이후 부임한 민경삼 랜더스 대표는 전임 감독과 대비되는 리더십을 선택했다. SSG 내부 관계자는 그 배경에 관해 이렇게 고백했다. “명감독이 오면 팀이 달라질까? 그렇다면 김성근 감독은 왜 SK에서 성공하고 한화에서 실패했나? 오히려 과거의 성공 경험은 현재와 호환되지 않으면 해로울 수 있다. 그래서 우리는 ‘감독이 팀을 바꾸는 것이 아니라 팀에 맞는 감독을 데려와야 한다’는 결론에 다다랐다.”

김원형 감독은 SK 와이번스 역사상 유일한 투수 출신 캡틴이었다. 선임에 관여한 류선규 랜더스 전 단장은 “감독 경험은 없었지만 팀의 히스토리와 문화에 익숙했고, 학습능력을 갖췄다”고 발탁 사유를 말했다.

배우 이상윤을 닮은 미중년 외모가 무색하게, 김 감독을 잘 아는 이들은 하나같이 그의 ‘상남자’ 기질을 증언한다. 일례로 1999년 7월 그는 타자가 친 공에 얼굴을 정통으로 맞고 쓰러진 적이 있었다. 생명은 건졌지만, 코뼈와 광대뼈 함몰 진단을 받았다. 주변에서는 수술 후 트라우마를 걱정했지만 그는 지체 없이 마운드로 돌아왔다. 어떻게 그 두려움을 이겨냈는지 묻자 김 감독은 대수롭지 않게 답했다. “마침 그때 내가 결혼을 했었다.”

KS 기간 중 감독 재계약 발표


▎김원형 SSG 랜더스 감독은 2022년 3년 재계약(총액 22억원) 이후 팀의 지속가능성을 더욱 염두에 두는 용인술을 펼치고 있다. / 사진:연합뉴스
김 감독은 현역 시절 144패를 당했고, 225개의 홈런을 맞았다. 하지만 위축되지 않고 계속 싸웠고, 2171이닝을 던지며 134승을 거뒀다. 그 과정에서 무려 29번의 완투를 포함해 7번의 완봉, 1번의 노히트노런을 달성했다. 그는 프로 데뷔전에서 완투승을 기록했고, 당대 최고의 투수 선동열과 붙어 1-0 완봉승을 해냈다.

감독이 된 뒤에도 그는 투수들의 도망가는 피칭을 용납하지 않는다. 랜더스 투수가 스트라이크를 던지지 못하면 덕아웃에서 대놓고 소리친 적도 있었다. 김 감독은 투수들에게 “타자의 약점을 찾으려 하지 말고, 네가 가진 가장 자신 있는 무기로 싸워라”고 독려한다. 마무리 서진용이 이런 마인드 개조 덕분에 환골탈태한 대표적 케이스다.

2022시즌은 김 감독의 2년 계약이 종료되는 시기와 겹쳤다. 야구판에선 ‘연봉 248억원을 쏟아붓고도 우승에 실패하면 랜더스는 김 감독과 재계약하지 않을 것’이라는 루머가 퍼져 있었다. 키움 히어로즈와 맞붙은 한국시리즈에서 랜더스가 우세를 점하지 못하며 4차전까지 2승 2패로 대치하자 소문은 더욱 증폭됐다.

사실 정용진 랜더스 구단주는 10월 8일 정규시즌 최종전 때, 대구를 찾아 김 감독에게 재계약 언질을 전했다. 구단은 관례대로 한국시리즈 종료 후 공식 발표를 준비하고 있었다. 하지만 시리즈가 예상외로 급박하게 흘러가자, 민 대표는 5차전(11월 7일) 직전 정 구단주에게 “오늘 감독 재계약 발표 재가를 해주셨으면 한다”고 직보했다.

전례가 없는 상황이었지만, 정 구단주는 지체 없이 승낙했다. 그날 랜더스는 김 감독의 9회말 대타(김강민) 투입이 적중(끝내기 역전 3점홈런)하며 시리즈의 승기를 잡았다. 다음날 6차전도 4-3, 1점 차로 이기며 비원의 우승에 닿았다. 김 감독은 11월 17일 현역 감독 최고 대우(3년 총액 22억원)로 랜더스와 재계약했다.

“사람 먼저, 그 다음이 전략”


▎정용진(오른쪽) SSG 랜더스 구단주는 한국시리즈 5차전 직전 김원형 감독 재계약을 수락하는 파격을 감행했다. / 사진:연합뉴스
우리의 MZ 세대보다 먼저 일본에서 ‘유토리(ゆとり) 세대’라는 용어가 유행했다. 2008년 세이부 라이온즈의 일본시리즈 우승을 이끈 와타나베 히사노부 감독은 [관용력]이라는 책을 썼다. 감독의 ‘그립’과 선수의 절제를 중시하는 일본 풍토에서 ‘믿어줄수록 선수는 성장한다’는 그의 철학은 반향을 일으켰다.

김 감독을 보좌하며 랜더스의 2022년 우승을 목격한 구단 인사는 “이번에 우승을 못 하면 김 감독이 위태로울 수 있다는 위기의식을 선수단 전체가 공유하고 있었다”며 “결국 선수들이 김 감독과 야구를 하고 싶어 했고, 그 마음이 바라던 결과로 이어졌다”고 증언했다.

국민감독으로 지칭되는 김인식 전 WBC 국가대표 감독은 “감독에게 감독의 최선이 있듯, 선수들에게는 그들 나름의 최선이 있다”고 선수의 지지를 끌어내는 ‘비결’을 들려줬다. 김인식 리더십의 권위는 ‘자발적 폴로우십(followship)’을 끌어내는 힘에 있다. GE의 전설적 CEO 잭 웰치의 표현을 빌리면 “사람 먼저, 그다음이 전략(people first, strategy next)”라고 할 수 있다.

김원형 감독은 쌍방울 시절 김인식 감독의 애제자였다. 시대는 달라져도, ‘어떻게 팀원이 같은 곳을 바라보게 만드는가’에 관한 화두는 여전히 유효하다. 구성원의 컨센서스를 확보하는 감화력의 여부야말로 리더십의 성패를 가른다.

- 김영준 월간중앙 기자 kim.youngjoon1@joongang.co.kr

202309호 (2023.08.17)
목차보기
  • 금주의 베스트 기사
이전 1 / 2 다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