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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층분석] 저성장·고금리·고물가에 PF 문제 겹친 한국 경제 

경제 바닥 찍겠지만, 리스크 관리부터 챙겨야 생존 

김영준 월간중앙 기자
반도체 수출 회복 전제로 2%대 성장률 기대… 중국 시장서 고전하는 한 반전 난망
尹 정부는 내수 증진에 총력, 규제 완화책 내놨지만 PF 문제 등 위기 불씨 여전해


▎경기도 평택항 수출 부두에 준비된 현대자동차. 기업 수출은 한국 경제의 보루라 할 수 있다.
2024년 새해가 되자 국내외 주요 경제기관들은 잇따라 한국의 경제성장률 전망치를 내놓았다. 가장 긍정적으로 바라본 것은 기획재정부의 2.4% 성장이었다. 하지만 이는 지난해 7월에 공개했던 예상치였다. 기재부는 1월 4일 이 수치를 2.2%로 조정했다. 이 밖에 한국은행 2.1%, 한국개발연구원(KDI) 2.2%, 현대경영연구원은 2.2%로 성장률을 예측했다. LG경영연구원이 가장 보수적인 수치(1.8%)를 제시했다.

해외 주요 경제기관 중에선 경제협력개발기구(OECD)가 2.3%, 아시아개발은행(ADB)과 국제통화기금(IMF)이 2.2% 성장으로 바라봤다. 전반적으로 2%대 경제 성장은 가능할 것이라고 보고 있다. 2023년 1.4% 경제성장률에 비하면 진일보한 흐름이라고 볼 수 있지만, 절대적 관점에선 여전히 ‘저성장’ 상태다.

그나마 2024년 2% 성장률을 기대하는 근본적 배경은 수출이다. 특히 대한민국 수출의 핵심이라 할 반도체, 특히 메모리 반도체가 바닥을 치고 올라올 것이란 기대감이 배어 있다. 반도체 감산 효과로 공급은 줄고 수요는 늘어나고 있기 때문이다. 실제 산업연구원은 전년대비 반도체 수출이 15.9% 증가할 것이란 분석 결과를 내놨다. 글로벌 IT 시장이 회복 단계로 전환하고, 인공지능(AI) 서비스 산업 확산, 데이터 센터 교체 시기가 맞물리면서 외부 여건은 우호적이다.

한국 성장률 견인하는 반도체와 자동차

2023년 기준 반도체 수출액은 986억3000만 달러였다. 2021~2022년 1200억 달러를 넘겼던 시절과 비교하면 심각할 정도로 감소했다. 이 공백을 메워준 산업이 자동차였다. 2023년 자동차 수출액은 708억7000만 달러로 사상 최고치를 찍었다. 자동차가 우리나라 전체 수출에서 차지하는 비중도 반도체(15.6%)와 함께 두 자릿수 비율(11.2%)을 차지하는 수준으로 올라왔다.

자동차(부품 포함) 수출은 2024년에도 성장(2%)을 지속할 것이 유력하다. 미국의 금리 인하가 현실화되면 미국에서의 신차 판매가 더 활발해질 수 있다. 산업연구원이 한국의 2024년 수출액을 전 년 대비 5.6% 증가할 것으로 예상한 근거다. 나머지 주요 기관의 전망치는 더 긍정적이다. 한국은행의 9.3% 전망을 비롯해 무역협회(7.9%), KDI(6.7%)도 반등을 점쳤다.

하지만 수출 전선에 불확실성도 상존한다. 최대 불안요소는 중국 시장이다. 2023년 대중국 무역 수지는 180억 달러 적자였다. 이는 한·중 수교가 이뤄진 1992년 이후 31년 만에 처음 있는 일이었다. 2023년 대비 수출은 무려 19,9%나 감소했다. 중국의 경기 둔화에 따른 직격탄을 맞은 것이다. ‘안미경중’(안보는 미국, 경제는 중국) 패러다임에 금이 가는 일대 사건은 진행형이다. 2018년까지 중국은 우리의 무역흑자 1위 국가였지만 과거형이 됐다.

중국이 빠져나간 자리를 대체한 국가가 미국이다. 2023년 445억 달러의 무역수지 흑자를 우리에게 안겨줬다. 한국의 최대 수출국이 중국이 아닌 미국이 된 것은 20년 만이다. 하지만 중국이 빠져나간 공백을 메우기에는 역부족이다. 산업통상자원부와 관세청 통계에 의하면, 2023년 한국의 수출액은 6327억 달러였다. 반면 수입액은 6427억 달러였다. 수출보다 수입이 더 많이 줄어들어서 적자 폭을 줄인 형국이다.

문제는 대중국 무역 전선의 적신호가 일시적이지 않을 것이라는 데 있다. 전병서 중국경제금융연구소장은 “이젠 한국은 시장으로서 중국이 아니라, 원자재 공급국으로서 중국을 중동처럼 잘 관리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중국의 고성장을 더 이상 바라기 어려운 조건에서 중국을 대하는 프레임 자체를 수정하자는 의미이지만, 이마저도 여의치 않은 실정이다.

무엇보다 중국이 딱히 한국에서 수입할 만한 물품이 희소하다. 전 소장은 아예 “한·중관계의 수명은 한국의 반도체산업 기술 수명과 같이 간다”며 “반도체에서 기술 격차를 얼마나 오래 유지하느냐가 한·중관계의 관건”이라고 단언했다. 양국 기업 간 기술 격차가 좁혀지며 반도체 말곤 중국에 팔아먹을 게 없게 됐다. 실제 중국의 수입 순위에서 한국은 대만, 미국에 이어 3위로 밀려난 상태다.

더 큰 난관은 향후 ‘원자재 공급국’으로서 중국을 활용할 수 있느냐 여부다. 일례로 흑연, 요소 등 대체 불가능한 중국산 원자재 수입은 자원을 무기화하려는 중국의 정치적 의도에 따라 수시로 움직였다. 한국무역협회에 따르면, 지난해 상반기 수입 실적 1만 달러 이상 품목 9308개 중 43.3%에 해당하는 4030개의 비중 1위 국가가 중국이었다. 이 가운데 70%를 넘긴 품목도 2113개에 달했다. 이를테면 2차전지 산업을 키우기 위한 일부 핵심 소재는 중국에서 수입해야만 생산이 가능하다.

‘물가상승률 〉 경제성장률’ 추세 여전


▎윤석열(오른쪽) 대통령과 최상목(왼쪽) 경제부총리는 감세와 규제완화를 앞세운 ‘역동경제’로 2024년 경제 침체를 돌파하겠다는 복안이지만 성과는 미지수다. / 사진:연합뉴스
미국 수출 상황도 녹록지 않다. 일단 IRA로 상징되는 미국의 보호주의는 민주당 정부에서도 여전하다. 삼성전자나 SK하이닉스, 현대차·기아, LG에너지솔루션 등이 미국에 공장을 지을 수밖에 없는 환경이다. 이러면 한국의 수출로 잡히지 않게 된다. 게다가 11월에는 미국 대선이라는 중차대한 변수가 기다리고 있다. 공화당 유력 후보인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이 당선된다면, 미국 수출 길은 엄청난 제약에 직면하게 된다. ‘아메리카 퍼스트’를 외치는 트럼프는 “재집권하면 모든 수입 제품에 대해 10% 추가 관세를 부과하겠다”고 공약했다.

수출과 더불어 경제의 축을 이루는 내수는 훨씬 더 암울하다. 일단 내수 흐름을 예측할 수 있는 소비심리부터 얼어붙었다. 가장 큰 이유는 물가상승률이 여전히 성장률을 웃돌기 때문이다. 국내외 주요 경제기관의 2024년 경제 전망 중 물가상승률이 성장률보다 낮게 예측된 곳은 없었다. 기재부(2.6%), 한국은행(2.6%), KDI(2.6%), LG경영연구원(2.8%), 현대경영연구원(2.5%) 모두 2.5% 이상 물가가 더 오를 것으로 봤다. 2021년 이후 3년 만에 물가상승률이 2%대로 떨어지는 등 2023년보다는 상승률이 진정되겠지만, 여전히 물가가 지속적으로 오른다는 관점이다.

실제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이나 중동 분쟁은 여전하다. 석유 등 에너지 가격이 쉽사리 잡히기 어려운 조건이다. 농축산물 가격도 오르고 있고, 무엇보다 4월 총선이 끝나면 공공요금 인상이 기다리고 있다. 1월 12일 미국 소비자물가지수(CPI)가 전년대비 3.4% 오르는 등 미국과 유럽의 인플레 공포도 여전하다.

이런 상황에서 한국은행이 금리 인하를 단행하기란 쉽지 않다. 자칫 물가와 부동산시장을 자극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미 2023년 9월 가계부채는 역대 최대인 1875조6000억원에 달했다. 그렇다고 정부가 확대재정을 펼치기도 어려운 형국이다. 이미 가계·기업·정부 부채를 더한 한국의 총부채는 6000조원을 돌파한 것으로 추정된다. GDP의 3배에 가깝다. 고용도 2023년보다 9만 명가량 줄어든 23만 명 증가로 예측됐다. 정부가 만든 노인 일자리 14만7000개를 제외하면 민간이 만드는 신규 일자리는 사실상 10만 개에도 못 미치는 형국이다.

이에 대해 김광두 국가미래연구원 원장은 “지금의 한국 경제는 고지혈증, 고혈압, 과체중 상태”라며 “달콤한 부채를 끊고, 고통스럽지만 다이어트라는 체질 개선을 해야 할 때”라고 지적했다. 이를 위한 특효약은 어떻게든 성장을 키우는 것이라고 요약했다.

당장 금리 인하를 기대할 수 없는 현실에서 재정 중독을 끊고 성장률을 높이려는 기본 방향성은 윤석열 정부에서도 목격된다. 1월 4일 기재부가 내놓은 ‘2024년 경제정책방향’이 그 단초다. 최상목 신임 경제부총리 겸 기재부 장관은 민생 경제와 역동경제 등에 중점을 둔 정책을 제시했다. 핵심은 “규제 혁파와 감세를 통해 내수 회복과 기업 투자 확대를 끌어내 일자리를 늘리는 선순환을 일으키겠다”는 것이다. 첨단 산업 육성을 위해 윤 정부는 개발제한구역, 농지, 산지 등의 규제를 개선하기로 했다. 또 시설투자 임시투자세액 공제를 1년 연장해줬고, R&D 투자세액공제율은 10%p 상향 조정했다. 축소일로인 설비투자를 2024년 3% 이상 늘리겠다는 복안이다. 그러나 투자세액공제는 국회에서 조세특례법을 개정해야 할 사안이다. 제1당인 민주당의 포지셔닝과 4월 총선이 경제에도 영향을 미칠 수밖에 없다.

건설업 역성장 여파 금융업 전이 막아야


▎태영건설 PF 위기가 건설업과 금융업계 전반으로 확산하지 않도록 정부는 정책 수단을 총동원하고 있다. / 사진:연합뉴스
윤석열 대통령은 1월 4일 민생경제 토론회에서 “답을 내는 정부로 탈바꿈하겠다”고 말했다. 하지만 태영건설 워크아웃에서 드러났듯 일단 부동산 PF(프로젝트파이낸싱) 문제부터 발등의 불이다. 태영건설이 금융업계 80곳에서 직접 차입한 금액은 1조3007억2000만원이다. 보증 대출 규모로 보면 400곳, 9조1816억원에 달한다. 사태 확산을 미리 차단하기 위해 기재부는 85조원 수준의 유동성 공급 프로그램을 집행, 한국토지주택공사(LH)가 매입해 정상화하는 방안을 추진한다. 또한 최 경제부총리, 김주현 금융위원장, 이복현 금융감독원장 등은 금융사가 PF 시장에서 과도하게 자금 회수를 하지 않도록 주시하고 있다.

정부 기준 2.2% 성장 목표를 발표했지만, 정작 내수를 살리기 위해 절실한 건설업은 경제위기의 뇌관으로 지목되고 있다. 건설투자는 -1.2%로 역성장이 예상되고 있기 때문이다. 특히 건설업 설비투자는 -18.2%로 줄어들 위기에 봉착해 있다. 더 큰 문제는 건설경기 침체가 일시적이지 않을 것이란 데 있다. 건설수주나 건축허가면적, 건축착공면적 모두 감소 추세다. 건설사의 연쇄도산을 걱정해야 할 판이다. 이미 100대 건설사 중 40개 이상이 워크아웃이나 법정관리 상태에 놓여 있다. 건설사의 파산이 제2금융권으로 전이되는 최악의 시나리오도 배제할 수 없다. 가계와 기업, 정부 공히 리스크 관리를 2024년의 화두로 둘 수밖에 없는 상황이 펼쳐지고 있다.

- 김영준 월간중앙 기자 kim.youngjoon1@joongang.co.kr

202402호 (2024.01.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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