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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로컬대학’으로 가는 길] 교육혁신 선도하는 국립군산대학교를 가다 

기업인 출신 총장, ‘사고의 전환’으로 교육 패러다임 바꾸다 

최현목 월간중앙 기자
지난해 신설한 자율전공학부 성공적 안착, 학생 만족도 높아
“삼성 스마트팩토리 이어 굴지 기업들과 채용연계형 만들 것”


▎이장호 국립군산대 총장이 1월 15일 2023학년도 ‘잇다(International Trend Trade Agreement) 프로젝트’ 라오스 해외봉사활동 발대식 현장에 참석해 축하하고 있다. / 사진:군산대
전북 군산고속버스터미널에서 내려 풍광이 아름다운 은파유원지 쪽으로 차로 10여 분 달리면 확 트인 전경이 한눈에 들어온다. 1947년 군산사범학교를 모태로 올해 개교 73주년을 맞이한 ‘KSNU’, 국립군산대 미룡캠퍼스다. 4년제 국립종합대학인 군산대는 이곳 미룡캠퍼스와 오식도동에 있는 새만금캠퍼스를 보유하고 있다. 대학본부가 있는 미룡캠퍼스가 전라북도 고등교육의 본산(本山)이라면, 새만금캠퍼스는 10조원이 투자된 새만금 국가산업단지 개발의 전진기지 역할을 한다. ‘KSNU’라고 적힌 거대한 구조물을 지나 미룡캠퍼스 안쪽으로 들어서자 방학 중인데도 분주히 움직이는 학생들을 어렵지 않게 볼 수 있었다.

고도현(21) 씨도 이날 학교를 찾은 학생 가운데 한 명이었다. 무(無)학과 자율전공학부 학생회장인 그는 생긴 지 1년 된 자율전공학부에 강한 애착을 갖고 있었다. “고등학생 때 진로에 대한 고민이 많았는데, 입학 후 자유롭게 학과를 선택할 수 있는 자율전공학부가 군산대에 있다고 해서 선택하게 됐다. 여러 학과의 강의를 듣고 내가 진짜 공부하고 싶은 분야가 어디인지 고민하고 선택할 수 있는 시간을 준다는 것이 자율전공학부의 가장 큰 장점이다. 얼마 전 학과를 선택했는데, 친구들이 ‘네가 진짜 원하는 걸 발견한 것 같아서 보기 좋다’고 격려해 주더라.”

1학기에는 교양 강의 위주로 듣다가 2학기부터 본격적인 전공을 탐색하기 시작했다는 고도현 학생은 해양생명과학과 강의에 흥미를 느꼈다고 한다. 해양 쪽 연구를 할 수 있는 학과가 전국에 몇 개 없는데, 그중 군산대 해양생명과학과가 가장 전망이 좋아 보였다는 것. 이제 2학년이 되는 그는 “대학 졸업 후 군산 지역 기업에 취업하고 싶다”고 말했다.

2022년 3월 취임한 이장호 군산대 총장은 1년 전 간호학과를 제외한 모든 학과로의 선택권이 100% 보장된 대규모 자율전공학부를 신설했다. ‘미래사회가 요구하는 자기설계 맞춤형 인재 양성’을 목표로 내세운 이 학부는 학생들이 자신의 소질과 적성에 맞는 전공을 탐색하고 군산대 내 모든 학과를 대상으로 자유롭게 전공을 선택할 수 있다. 여기에 더해 ‘아카데믹 어드바이스’ 제도를 도입, 학과에 대한 정보가 부족한 학생들이 언제든 전문가에게 상담을 받을 수 있도록 했다.

자기 설계 맞춤형 인재 양성 추구


▎이장호 국립군산대 총장이 지난해 5월 26일 2023 국립군산대학교 진로진학박람회 학과 소개 부스 현장에서 학생들과 대화를 나누고 있다. / 사진:군산대
학생 중심의 학부 신설 효과는 상당했다. 2022년 신입생 충원율 83%로 위기를 맞았던 군산대는 2023년 신입생 충원율이 96%로 뛰어올랐다. 이 총장이 취임한 후 1년 만에 13%p나 오른 것이다. 이 총장은 “교육부 가이드라인에 ‘군산대가 성공한 무학과 자율전공학부를 확대 적용하라’고 나온다”며 “전국의 대학은 이제 군산대가 개발한 교육혁신 모델을 따라올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자신했다.

시행착오가 없었던 건 아니다. 자율전공학부 학생이 1학년 2학기에는 전과(轉科)를 할 수 없는 문제가 발견된 것이다. 고등교육법에 ‘전과는 2학년부터 가능하다’라고 명시돼 있었기 때문이다. 이러한 어려움을 이 총장은 발로 뛰며 해결했다.

“직접 교육부에 찾아가 학생 선택권을 극대화하기 위해서는 1학년도 전과를 할 수 있게 해야 한다고 설득하니, 교육부는 ‘우리가 기다린 대학 혁신이 이런 거다’라고 기뻐하며 받아줬다. 군산대 덕분에 전국 모든 대학이 1학년부터 전과가 되는 길이 열린 것이다.” 교육부는 빠르면 올해부터 1학년도 전과가 가능하도록 법령을 개정할 예정이다.

군산대는 여기서 한 발 더 나아가 전국 대학 최초로 전과 프리 대학을 선언했다. 대부분의 대학이 입학정원의 10~20% 인원을 기준으로 모집단위 간 이동을 허용한 반면, 군산대는 학년·횟수·인원 제한 없이 모든 문을 오픈한 것이다. 이에 따라 군산대 학생이라면 원하는 학기에 원하는 학과를 자유롭게 선택할 수 있게 됐다.

이외에도 이 총장은 재정지원사업에 탈락한 지 1년 만에 다시 사업을 따내는 수완을 보였다. ICC(산업협업특화센터) 기반 특성화대학부 신설, 마이크로디그리(Micro-Degree, MD) 기반 기업채용연계 공유전공 구축·운영, 통학버스 전면 무료 운행, 지자체-대학 협력기반 지역혁신사업(RIS) 선정, 소프트웨어 중심대학사업 선정 등 주목할 만한 성과를 만들어냈다.

“이차전지 특성화 통한 전문 인재 양성” 기대


▎군산대학교 자율전공학부는 ‘전공박람회’를 열어 자율전공학부 재학생들이 자신에게 적합한 전공이 무엇인지 자유롭게 탐색해 최적의 전공을 선택하도록 돕는다. / 사진:군산대
오늘날 학생들이 대학에 진학하는 첫째 이유는 단연 ‘취업’일 것이다. 기존 대학은 학과를 취업 트렌드에 맞춰서 통폐합하는 방식을 주로 선택했다. 하지만 통폐합 과정에 많은 학내 갈등을 유발하고, 의사결정이 오래 걸려 트렌드를 쫓아가지도 못하는 등의 문제점이 드러났다. 무엇보다 트렌드가 바뀔 때마다 학과를 통폐합한다면 대학의 지속가능성이 오히려 낮아질 수 있다.

국립군산대는 수요자 중심의 새로운 교육과 사고의 전환에 나섰다. 이렇게 만들어진 것이 소학위(Micro-Degree, MD) 기반 기업채용연계 공유전공이다. 기업이 지정한 과목을 학생이 이수하면 해당 기업에 입사할 때 가점을 줘 취업과 연계하는 방식이다.

군산대와 인접한 새만금 국가산업단지를 예로 들어보자. 지난해 새만금 국가산업단지는 이차전지 특화단지로 지정됐는데, 이차전지는 화학과·기계과·물리학과 등 복수 학과와 연결돼 있다. 기존 대학이 이러한 학과들을 통폐합해 이차전지 학과를 만들었다면, 군산대는 여러 교육 단위 학과를 유지한 채 학생이 필요한 과목만 이수하면 채용되도록 했다. 학사 구조가 아닌, 학생들의 교육 패러다임을 바꾼 것이다.

대학의 여러 제도가 좋은 취지로 만들어졌지만, 학생이 참여하지 않으면 말짱 도루묵이다. 그래서 군산대는 MD 기반 기업채용연계 공유전공과 관련해서도 동기부여에 집중했다. 지난 학기 시작한 삼성 스마트팩토리 기업채용연계 공유전공 시범 사업은 학생들이 이 과정을 밟으면 삼성 계열사 내지는 삼성의 협력업체에 취업할 수 있다는 강한 동기부여가 됐다.

오정근 국립군산대 기획처장은 “삼성뿐만 아니라 이차전지 관련 국내 굴지의 회사들과 연계해서 MD 기반의 기업채용연계 공유전공을 만들어갈 방침”이라며 “10조원이 투자된 만큼 새만금 국가산업단지에 많은 기업이 들어서는데, 이들과 협업해 학생들의 취업 길을 늘려가겠다”고 말했다.

MD 기반 기업채용연계 공유전공은 기업과 학생 모두에게 윈-윈(Win-Win)이다. 학생 입장에서는 빠른 시간 내 기업이 필요한 교육을 이수하고 취업에 성공할 수 있다. 예를 들어 군산대 학생은 짧게는 6개월, 길게는 2년 동안 MD 기반 기업채용연계 공유전공 과정을 밟고 곧장 취업할 수 있다.

기업 입장에서는 자신들이 원하는 소양을 갖춘 인재를 뽑을 수 있다. 특히 현장실습 경험을 갖췄다는 점에 높은 점수를 준다. 군산대 학생은 기업채용연계 공유전공을 이수하는 동안 현장실습으로 학점을 취득하기 때문에 업무 이해도가 높을 수밖에 없다.

국립군산대 산학협력단은 MD와 연동되는 제도를 구상하고 있다. 이를테면 이차전지 ICC(산업협업특화센터)를 설립해 관련한 모든 학과의 교수들이 언제든 협업할 수 있는 무대를 마련하는 것이다. ICC가 관련 기업들과 네트워킹하고, 연구개발(R&D)을 해나가는 형태다. 이는 산학협력을 분야별로 특성화하는 전략이다.

김상영 군산대 산학협력부단장은 “산학협력 프로젝트를 기업채용연계 공유전공과 연결해 학생이 프로젝트에서 기업-교수들과 함께 R&D에 참여하면 습득하는 정도가 훨씬 높아질 것이라고 기대한다”고 말했다. 궁극적으로 군산대는 학과 중심의 학위가 아닌, 몇 학점 이상 이수하면 해당되는 소학위(MD)가 나오는 MD 중심 학위 제도도 고려하고 있다.

직업 탐색 돕는 글로벌 프로그램 해외 인턴십


▎국립군산대 수산생명의학과 학생이 실험 실습을 하고 있다. 서해안 중심 대학인 군산대는 해양 관련 학과에 강점을 갖고 있다. / 사진:군산대
군산대는 재학생의 해외 진출에도 지원을 아끼지 않고 있다. 진로탐색학점제와 연계한 글로벌 프로그램 ‘G-SEED’는 학생들이 글로벌 감각과 역량을 함양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해 도입했다. 앞서 10개 팀 내외로 선발할 계획이었지만, 지도교수와 재학생들의 많은 관심으로 총 18개 팀(재학생 95명, 지도교수 18명, 총 113명)을 선발했다.

해외 인턴십도 군산대를 대표하는 글로벌 프로그램이다. 다음 달 미국 뉴저지에 있는 회계법인으로 인턴십을 떠나는 4학년 김모(25) 씨는 “해외 기업에서 일할 기회는 흔치 않다”며 “실무 경험뿐만 아니라 영어 공부도 할 수 있어 장래에 많은 도움이 될 것 같다. 학점으로 인정해주는 점도 마음에 든다”고 밝혔다.

오정근 기획처장은 “학생이 주인이 되는 학교를 만들어 가고 이 학생들이 지역에 정주할 수 있도록 도움을 주는 대학이 목표”라며 “지역 기업의 어려운 점도 학교가 해결해주고 지역의 다양한 문화적인 정주 여건도 재능 기부 등의 형태로 개선해 간다면 학생들이 군산에 뿌리를 내릴 것”이라고 말했다.

군산·새만금·장항 국가산업단지의 중심에 있는 군산대는 국가산업단지가 필요로 하는 전문 인력을 양성하는 데 최적의 지정학적 이점을 갖고 있다. 지난해 신설된 군산대 에너지신산업학부는 이차전지를 비롯해 소형모듈원전(SMR)과 신재생 에너지와 관련된 다양한 에너지신산업 분야를 기업과 연계하고 있다. 이는 원자력 생태계 복원이라는 정부의 정책 기조와도 맞아떨어진다. 지원도 아끼지 않는다. 에너지신산업학부 재학생에게 장학금과 지원금을 전액 지급하고 있으며 관련 과목을 듣는 다른 학과 학생들에게도 지원금을 주고 있다.


▎지난해 8월 국립군산대 기계공학부 학생들이 기업체 현장견학을 하고 있다. 군산대는 학생들에게 다채로운 직업 탐색 활동을 지원하고 있다. / 사진:군산대
군산대의 올해 목표 가운데 하나는 ‘글로컬대학 30’이다. 교육부가 2026년까지 단계적으로 비수도권 지역에서 약 30개의 글로컬대학을 선발하는 것으로, 대학 1곳당 5년간 약 1000억원의 예산을 지원한다. 지난해 발표한 1차 연도에서 아쉽게 탈락한 군산대는 올해 최종 선발을 향해 차근차근 준비해나가고 있다. 오 처장은 “지난해 서류를 제출할 때는 MD 기반 기업채용연계 공유전공이 실적에 없었지만, 올해는 포함될 것이기 때문에 지난해보다 훨씬 가능성이 높아졌다”라며 “군산대 주변 대학들과 여러 형태의 거버넌스를 구축하는 방안까지 고려하고 있다”고 말했다.

- 최현목 월간중앙 기자 choi.hyunmok@joongang.co.kr

202402호 (2024.01.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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