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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민호의 일본 직설(直説), 요설(妖説) 그리고 곡설(曲説)(8)] 도쿄 ‘오타쿠 여행’-가쓰시카 호쿠사이 흔적을 찾아서 

‘일본의 다빈치’… 그림에 90 평생 바친 위대한 예술가 

모네와 고흐에게까지 영향 미친 19세기 ‘자포니즘’의 대명사
‘가나가와 바다의 높은 파도’ 등 통해 일본 예술 서방에 전파


▎도쿄 호쿠사이 박물관. 일본행 해외 관광객의 필수 방문지로 자리 잡고 있다. 계절별로 행하는 특별 전시회를 통해 호쿠사이의 다양한 모습과 만날 수 있다. / 사진:유민호
681만 명. 지난해 일본을 방문한 한국인 관광객 수다. 전체 외국인 관광객 2375만 명 가운데 28%다. 2위인 대만 407만 명에 비해 270여만 명 더 많다. 한국 인구 5200만 명을 감안하면 대략 100명 중 13명이 일본에 들렀다는 의미다. 일본 내 외국인 관광 열기가 최절정에 달한 시기는 2019년이다. 3118만 명으로, 세계 관광대국 10위권에 들어가기 직전이었다. 아직 지난해 전 세계 결과가 안 나왔지만, 적어도 올해는 2019년 수준을 넘기면서 세계 10위권 내에 진입할 것으로 전망된다.

개인적 판단이지만 관광대국 일본의 기세는 한층 더해갈 것이다. 매력적 관광자원을 보유한 때문이기도 하지만, 중국행 관광객이 급감하면서 나타난 반사이익도 빼놓을 수 없다. 황당한 현실이지만, ‘스파이법’으로 무장한 중국은 투자가는 물론 관광객도 쫓아내고 있다. 지난해 상반기 중국행 해외 관광객 규모는 2019년 같은 기간에 비해 10%대로 주저앉았다. 그나마 해외 여행객 50% 정도는 대만, 홍콩, 마카오 사람들이다. ‘중국 관광=목숨’인 이상 올해는 한층 더 줄어들 것이다. 20세기 흑백시대 흔적이던 ‘철의 장막’이나 ‘죽의 장막’이 2024년 부활한 것이다. 서방 여행 방식이지만, 보통 아시아 관광에 나설 경우 중국이나 일본에 들른 뒤 주변 나라로 옮겨갔다. 달리 말하면 중국이 사라지면서 일본의 독무대가 됐다는 얘기다. 아직 주춤한 상태지만, 앞으로 중국인 관광객의 해외 방문 러시가 재현되면 관광대국 일본의 위상이 한층 더 높아질 것이다.

한국인의 일본행도 한층 더 증가할 것으로 보인다. 엔화 약세를 이유로 들지만, 달러화 가치가 떨어지면서 엔화 가치가 오른다고 해도 일본행 한국인 관광객 수는 줄지 않을 것이다. 이유는 여러 가지다. 일단 한국보다도 물가가 싸다. 왕복 비행기 값을 감안한다고 해도 한국 내에서보다 더 저렴하고 알차게 돌아다닐 수 있다. 한국에서 보기 어려운 상품이 많고, 물건의 질적 수준이나 사람들의 서비스 자세도 탁월하다. 토착왜구·반일·민족 슬로건에 익숙한 사람이라면 일본행을 부정, 아니 죄악시할 것이다. 한국 2030세대에게는 안 통하는 얘기다. 인터넷에 들어가 일본 연예인 이름이나 만화 제목 하나를 검색해보기 바란다. 엄청난 수의 한국인이 관심 속에 관련 지식을 공유하고 있다. 앞으로도 반일 화형식이나 불매운동이 사라지진 않을 것이다. 그러나 대세는 이미 ‘반일 만병통치약’에서 멀어져 가고 있다. 세대가 가고 시대도 달라졌다. 한국이 해방된 지 올해로 79년째다.

리피터들에게 권하는 ‘오타쿠 여행’


▎호쿠사이는 세대별로 다룬 그림의 주제나 소재가 전혀 다르다. 풍속화나 풍경화도 있지만, 인간과 동물의 모습을 섬세하게 다룬 화보들도 많다. / 사진:유민호
일본행 한국인 관광객의 특징이지만, ‘리피터(Repeater)’가 많다고 한다. 한번 방문한 이후 주기적으로 다시 들르는 사람이 많다는 의미다. 대략 30%대고, 연령대가 낮아질수록 그 비율이 높다고 한다. 세상만사 그렇듯 익숙해지면 무관심하게 된다. 처음에는 가슴이 뛰지만, 서너 번만 경험하면 ‘그 나물에 그 밥’이다. 그 결과가 다양한 관광 루트 개발이다. 최근 한국인의 관광 패턴이지만, 도쿄(東京)나 쿄토(京都) 같은 대도시가 아닌 지방 중소 도시 체험여행도 늘고 있다. 이미 식상해진 곳을 피하고 ‘온리원(Only One)’ 여행을 즐기면서 인터넷에 관련 사진이나 정보도 독점적으로 싣겠다는 의도일 것이다.

필자의 판단이지만, 도쿄를 경험한 한국인이 5200만 인구의 절반 정도는 되지 않을까 싶다. 추측하건데 도쿄에 들르는 즉시 긴자(銀座), 아사쿠사(浅草), 도쿄 타워, 메이지 신궁(明治神宮), 신주쿠(新宿), 우에노(上野)를 바쁘게 돌면서 사진을 찍고 음식도 즐기는 여행이 대부분일 것이다. 나름대로 자기 관심에 맞춰 여행을 하는 사람도 있겠지만, 대부분 비슷한 패턴의 여행으로 이뤄져 있다. 도쿄 거리 곳곳에서 한국어가 들린다는 기사가 나오지만, 방문하는 동선(動線)이 한정돼 있기 때문에 나타나는 현상일 뿐이다. 찾는 곳이 빤하다는 얘기다. 홍대, 경복궁, 남대문, 신촌으로 이어지는 식의 ‘스테레오 타입’ 서울 관광에 비견될 수 있다. 모두가 들르는 곳에 가는 것도 여행 방법 중 하나이긴 하다. 그러나 리피터 관광객 30% 시대에는 맞지 않다. 아무리 파리 에펠탑이라도 한번 가서 사진 찍으면 끝이다. 특별한 인연이 없는 한 에펠탑에 두세 번 찾아가 시간을 보낼 사람은 극히 드물 것이다. 도쿄, 교토를 벗어난 여행에 나서는 사람도 늘지만 아직은 도시형 관광이 대세다. 요즘 말로, 질리지 않으려면 서너 번 도쿄나 교토에 들를 경우 거기에 맞는 새로운 여행 패턴을 준비해야만 한다.


▎호쿠사이는 90세까지 장수한 화가다. 평생을 통틀어 3만 점의 그림을 남겼다. / 사진:유민호


특정 테마 중심 여행 통해 전체를 이해


▎파도에 휘말려드는 후지산의 모습은 호쿠사이는 물론 일본을 대표하는 그림이다. 글로벌 표준 3000여 개 이모지 가운데 화가가 남긴 유일한 그림이기도 하다. / 사진:유민호
‘오타쿠(オタク) 여행’은 리피터 여행객에게 권하는 필자의 어드바이스 중 하나다. ‘왔노라 봤노라 찍었노라’로 이어지는 백화점식 여행이 아니다. 하나의 주제나 테마를 통해 전체를 이해하고, 다른 영역의 세계까지 파악할 수 있는 것이 오타쿠 여행이다. 물론 일본만이 아닌 전 세계 어디에 가도 통할 여행법이기도 하다. 최근 필자 스스로가 일본에서 체험한 ‘행복한’ 시간 하나를 예로 들고 싶다. 장소는 도쿄 간다(神田) 고서점 거리다. 간다는 일본 방문 즉시 필자가 ‘항상’ 찾는 곳이다. 자주 들렀기 때문이지만, 사실 새로운 것도 없고 익숙해진 공간이다. 100엔짜리 중고 문고판이나 신간 흐름을 알기 위해 들르는 일상으로서의 공간이다. 그러나 새로운 관점 하나를 추가한 순간 130여 간다 고서점 전체가 ‘새롭게’ 와닿았다. 흙 속에 잠긴 청동을 꺼내 반짝반짝 깨끗하게 닦은 모습이라고 할까. 우연히 발견한 450엔짜리 흑백 시사 잡지가 출발점이다. 잡지 발간일이 필자 어머니의 탄생 연(年) 월(月)과 일치했다. 이미 저세상으로 간 어머니지만, 탄생일에 즈음해 어떤 일들이 펼쳐졌는지 잡지를 읽으면서 재음미할 수 있었다. 스페인 내전, 독일의 폴란드 침공, 일본 국민 개병제에 관한 기사가 어머니 탄생일에 즈음한 당대의 역사다. 신문이나 책에 기록된 역사가 아닌 어머니 탄생일이란 필터로 음미한 세계라는 점에서 한층 더 가깝고 절실하게 와 닿았다.

부모를 기리는 마음은 인간 모두의 본능일 것이다. 그러나 모시는 방법이나 수단으로 본다면 백인백색 전부 다르다. 가장 중요한 것은 잊지 않고 생각하는, 영원한 기억에 있지 않을까 싶다. 무덤에 올릴 선물이 되겠지만, 어머니 탄생일에 맞춘 잡지 하나를 통해 전혀 새로운 세계가 나타났다. 당연하지만, 시사 잡지뿐 아니라 다른 종류의 잡지에 대한 흥미도 일어났다. 영화·문학·스포츠 관련 잡지로 살펴본 부모님 탄생 역사다. 간다 130여 고서점 전부를 훑기로 마음먹었다. 부모만이 아닌, 필자 가족에 대한 당대 역사를 알고 싶었다. 일본 출판시장의 매력이지만, 잡지 종류가 넘친다. 잘 정리된 고서점에 가서 100년 전 잡지를 산다고 해도 1000엔이면 충분하다. 5시간에 걸쳐 서점 10군데를 돌아다녔다. 시사·영화·문학·스포츠 잡지를 통해 1930년대 부모 시대 역사와 만날 수 있었다. 당대 흐름과 상황을 기반으로 한 입체적 세계가 눈앞에 펼쳐졌다. 가령 필자가 태어난 해가 서부영화 아이콘 존 웨인, 일본 추리소설 대가 에도가와 란보(江戸川乱歩)의 최전성기였다는 사실도 잡지 발굴 도중 알게 됐다. 필자에게 새겨진 존 웨인, 에도가와 란보의 이미지는 흑백영화나 무성영화 시대 흔적에 그친다. 그러나 탄생일에 즈음한 잡지를 통해 ‘한순간’ 친근하고도 따뜻한 친구 같은 존재로 변해버렸다.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주었을 때, 그는 나에게로 와서 꽃이 되었다.’


▎스미다 강변은 호쿠사이의 주된 거주지인 동시에 그림의 주된 소재이기도 했다. / 사진:유민호
김춘수의 시 [꽃]에 새겨진 의미의 재발견·재확인이라고나 할까? 오타쿠 방식이지만, 탄생일이라는 키워드 하나만으로도 고서점 전체가 가깝게 느껴진다. 물론 부모 탄생일 주변 역사나 흐름도 ‘한순간’ 바짝 밀려온다. 생존해 계신다면 탄생일 당시 1930년대 잡지를 읽으며 얼마나 기뻐했을지, 생각만 해도 가슴이 뛴다. 아직 고서점 방문지 120군데가 남아 있다는 점을 감안하면 탄생일을 매개로 한 간다 재발견과 역사의 재음미는 당분간 계속될 듯하다.

언제부터인지 모르겠지만, 소프트 파워라는 단어가 잊히고 있다. 문화나 스포츠가 아닌 총과 칼로 상징되는 하드 파워, 나아가 샤프(Sharp) 파워가 대세로 자리 잡고 있다. 우크라이나, 가자, 대만을 둘러싼 잔인하고도 척박한 현실이 소프트 파워 종말의 원인일 듯하다. 그러나 모바일 SNS 속에서의 소프트파워는 아직도 건재하다. 바로 ‘이모지(emoji)’다. 특정 단어나 개념을 이미지로 만들어 표현하는 디지털 문자다. 하루에도 메일을 통해 곳곳에 뿌리는 엄지 척, 웃는 얼굴 같은 것들이다. 현재 국제 공인 유니코드 이모지 수는 3000개 정도다. 매년 새롭게 수십 개가 탄생한다. 이모지는 지역, 인종, 민족, 국가에 따라 전부 다르다. 자신에게만 통하는 이모지를 국제 표준 이모지로 만들려는 경쟁이 엄청나다. 한국인이라면 김치 이모지를 만들어 국제 표준 이모지에 올리고 싶을 것이다. 전 세계 200여 개국 모두 똑같은 심정으로 자신만의 이모지를 세계화하려 한다.

도쿄 주변에 펼쳐진 호쿠사이 흔적


▎도쿄시는 스미다 강 주변에 20여 개의 호쿠사이 그림 동판을 만들어 전시하고 있다. 스미다 산책을 통해 200년 전 도쿄 모습과 비교할 수 있다. / 사진:유민호
현재 3000개 국제 표준 가운데, 한국발 이모지는 태극기를 포함해 3개에 불과하다. 아시아, 아니 전 세계를 통틀어 국제 표준 이모지의 발명·발견 최첨단 선진국은 일본이다. 무려 40개나 된다. 아이폰에 실린 국제 공인 이모지를 보자. 스시에서부터 후지산, 온천, 삼각김밥에 이르는 다양한 이모지가 일본발 창작품이다. 40개 이모지 가운데 필자가 주목한 것은 그림이다. 놀랍게도 국제 공인 이모지 가운데 특정 화가의 그림 하나가 포함돼 있다. 후지산을 배경으로 파도가 치는 풍경을 묘사한 가쓰시카 호쿠사이(葛飾北斎)의 우키요에(浮世絵)가 주인공이다. 한국인 눈에도 익숙한 부악 36경(冨嶽三十六景) 중 하나인 ‘가나가와 바다의 높은 파도(神奈川沖浪裏)’라는 제목의 목판화 그림이다. 일본에 들른 한국인이라면 기념품으로 한 장 정도 구입했을 법한 유명한 그림이다. 국제 공인 이모지 가운데 특정 화가의 작품은 호쿠사이의 파도 그림이 유일하다. 레오나르도 다빈치나 피카소 그림조차도 이모지 영역 밖이다.

필자의 지론이지만 호쿠사이는 일본행 리피터에게 통할 오타쿠 여행용 최고의 길라잡이가 될 수 있다. 간단히 얘기해 호쿠사이라는 창문을 통해 도쿄와 일본을 보면 전혀 다른 관점의 세계로 나아갈 수 있다. 이미 식상해진 모습과 세계라도, 호쿠사이 눈을 통해 재음미할 경우 양적, 질적으로 다섯 배 혹은 열 배 커진 일본과 만날 수 있다. 도쿄만이 아니라 열도 전체에 적용될 얘기지만, 호쿠사이 관련 전시회가 넘치고 넘친다. 박물관은 기본이고, 특별·상설 전시회나 기획전이 곳곳에서 열린다. 호쿠사이 전시회는 유럽이나 미국에 가도 마찬가지다. 어딘가에서 반드시 열리고 있다. 호쿠사이는 모네와 고흐에게도 영향을 준 이른바 19세기 유럽 내 ‘자포니즘(Japonisme)’의 대명사다. 호쿠사이 그림을 통해 일본의 예술·문화·역사가 서방에 전해졌다고 볼 수 있다. 예술가 한 명이 나라 전체 이미지 구축에 공헌한 셈이다. 그 결과지만, 호쿠사이에 관한 국제적 평가는 서방의 다빈치에 준한다고 봐도 될 것이다. 15세기에 활동했던 다빈치에 비해 호쿠사이의 경우 19세기 인물이란 점에서 한층 더 가깝게 느껴진다. 미국 잡지 라이프(Life)는 1998년 ‘인류 1000년을 통해 본 위인 100선‘을 발간했다. 1위가 에디슨, 2위는 콜럼버스로, 호쿠사이는 아시아인으로는 유일하게 86위에 올랐다. 호쿠사이는 건강·장수 화가로도 유명하다. 90세까지 살았다. 덕분에 무려 3만 점이란 천문학적 규모의 그림을 남긴다. 목판화를 통해 복사한 그림까지 합칠 경우 수백만, 아니 수천만 점의 그림이 팔려나갔을 것이다. 21세기에도 통하는 글로벌화가 가운데 양적으로 호쿠사이 작품 수에 필적할 인물이 있을지 의문이다. 다빈치의 경우 유화와 일기 속 작은 스케치를 포함해 평생 남긴 그림이 수백 점에 그친다.

호쿠사이 그림자로 넘실대는 스미다 강변


▎호쿠사이 무덤은 다른 일반인에 비해 조금 크다. ‘그림에 미친 노인’이란 글씨가 비문에 새겨져 있다. / 사진:유민호
‘접근 용이성’은 필자가 호쿠사이를 여행 리피터를 위한 최적의 테마로 잡은 이유다. 다빈치처럼 가끔 볼 수 있는 고가의 특별 전시회가 아닌, 저렴하고도 일상적 생활을 통해 호쿠사이를 만날 수 있다. 오타쿠 여행법이지만, 인생 흔적이 진하게 드리워진 공간이야말로 특정인을 이해할 최고의 증거이자 단서다. 생활 터전이나 활동 무대를 통한 분석이다. 호쿠사이의 경우 도쿄 북동쪽을 가르는 스미다(隅田)강이 주된 무대다. 프랑스 파리에 들른 한국인이라면 센 강변에 대한 추억이 남다를 것이다. 도쿄의 경우 스미다가 센 강에 해당된다. 모든 것이 그렇듯 가까울 수록 간과하기 쉽다. 관광용 플라스틱의 모습에서 벗어나 화장기 없는 도쿄를 알고싶다면 스미다부터 들를 것을 권한다. 도쿄의 일상이 잔잔하고도 평화롭게 밀려드는 공간이다. 도쿄에서 좀처럼 보기 어려운 석양의 시간도 만날 수 있다. 스미다는 관광객 필수방문지인 아사쿠사 바로 옆에서도 접할 수 있다. 자전거를 타고 달릴 경우 왕복 2시간 정도면 스미다 전체를 이해할 수 있다.

호쿠사이는 스미다에서 대면할 수 있는 최고·최적의 선물이다. 평생 93회 이사를 한 인물이 호쿠사이다. 하루 세 번 이사를 한 적도 있다. 20세기 이전 아시아 상황을 보면 이사 자체가 드물다. 조선시대가 그러했듯, 태어난 집에서 죽는 것이 보통이다. 호쿠사이가 이사를 빈번하게 행한 것은 자신의 예술에 변화를 주기 위해서다. 환경을 바꾼 뒤 새로운 이웃을 만나면서 색다른 소재, 작품, 작풍에 몰두했다. 연령대별로 살펴볼 경우 호쿠사이 그림은 너무도 다르다. 전혀 다른 사람의 작품으로 오해할 정도로, 세대별 그림의 소재, 주제, 작풍이 전부 다르다. 도쿄 스미다 주변은 호쿠사이의 주된 거주지다. 여기저기 옮겨 다녔지만, 크게 보면 스미다 주변에 그친다. 따라서 강 주변에 관한 그림이 많다. 벚꽃과 매화로 뒤덮인 강 풍경은 기본이고, 특별한 축제나 서민들의 일상이 당대의 그림을 통해 지금까지 남아 있다.

도쿄시는 스미다 강변 곳곳에 동판으로 된 호쿠사이 그림 안내판을 전시하고 있다. 스미다를 소재로 한 당대의 그림들이 동판 속에 새겨져 전시됐다. 18세기 말부터 19세기 중엽까지의 도쿄 모습이 20여 점의 동판 속에 재현된 셈이다. 당대의 풍경과 21세기 스미다 모습은 전혀 다르다. 그러나 그림을 보면서 200여 년 전의 풍경과 문화, 사람들을 만날 수 있다. 호쿠사이 그림 속에는 당대의 유명한 식당이나 음식에 관한 흔적도 남아 있다. 한국에 갈 때마다 선물용으로 들고 가지만, 스미다 강변의 노포 ‘벚꽃떡(桜餅)’ 가게도 호쿠사이 그림 속에 등장한다. 아사쿠사에서 북동쪽으로 2㎞ 떨어진 조메이지(長命寺) 근처에 있는, 1717년 창업된 유서 깊은 노포다. 벚꽃 잎으로 만든 220엔짜리 떡을 통해 18세기 에도는 물론 호쿠사이 생존 당시의 분위기를 체득할 수 있다. 어제와 오늘을 연결시켜주는 시간여행(Time Slip) 그림들이 스미다 주변을 지키고 있다.

호쿠사이 무덤은 서방 여행객 필수 방문지

다빈치 무덤이 그렇듯, 예술가가 남긴 최후의 흔적은 모두의 관심사 중 하나다. 도쿄 호쿠사이 무덤은 급증하는 서방 여행객들의 필수 방문지 중 하나다. 아사쿠사 사찰에서 서쪽으로, 도보로 20분 떨어진 곳에 호쿠사이 무덤이 있다. 동쪽 스미다를 기준으로 할 경우 도보 1분 거리에 있는 사찰 세이쿄지(誓教寺)가 호쿠사이 최후의 무대다. 스미다 강변 호쿠사이 청동 그림들을 둘러본 뒤 무덤으로 향했다. 세이쿄지는 가로, 세로 50m 정도의 작은 사찰이다. 예술 순례라고 할까? 워낙 많은 방문객이 찾아오기 때문이겠지만, 80대 정도의 호쿠사이 두상과 안내판이 사찰 왼쪽에 특별히 세워져 있다. 사찰 오른쪽 내부로 들어가자 수백 개의 무덤이 나타났다. 잠시 헤매다가 작은 지붕으로 장식된 무덤 하나가 눈에 들어왔다. 비석에 ‘그림에 미친 노인의 묘(画狂老人卍墓)’란 글자가 새겨져 있다. 원래 가족묘였지만, 1960년대 호쿠사이 무덤으로 따로 분리해 만들었다고 한다. 불교를 상징하는 ‘卍’이란 문양은 호쿠사이가 평소 사용했던 이명(異名)이다. 세계적 예술가라고 하지만, 죽음의 공간은 다른 사람과 똑같다. 프랑스 앙부아즈(Amboise) 교회에서 만났던 다빈치 무덤도 왜소하지만, 세이쿄지 호쿠사이 무덤은 다빈치보다도 한층 더 초라하게 느껴졌다. 화려하고 크다고 해서 좋은 것은 아니다. 반면, 그림에 90 평생을 바친 위대한 예술가에 대한 결례(缺禮)라는 생각도 든다. 그러나 호쿠사이 그림의 배경이자 삶의 주된 기반이던 스미다 주변 사찰에 묻혔다는 점에서 다빈치와 크게 구별되는 듯하다. 다빈치는 고향인 이탈리아 피렌체를 떠나 이국 프랑스에서 생을 마쳤다. 호쿠사이는 스미다 주변에 거주하면서 가끔 도쿄 밖 여행에 나섰을 뿐, 평생의 대부분을 아사쿠사 근처에서 보냈다.

여행은 자유다. 일본이든 미국이나 유럽이든 어디든 다니면서 느끼고 이해할수록 자유의 깊이도 깊어질 수 있다. 새로운 세상과의 만남은 새로운 인생관, 세계관으로 연결된다. 예수, 부처, 마호메트 모두 평생 여행을 통해 인간, 세상, 신과 만났다. 고여 있으면 썩는다. 흥미를 잃고 모든 것을 당연시하면서 창조적 자유도 외면하게 된다. 스미다 강변은 호쿠사이 그림자로 넘실대는 일본의 어제이자 오늘이다. “앞으로 10년, 아니 5년만 더 살아도 그림의 정수를 전부 이해할 수 있을 텐데…” 그림에 미친 노인이 남긴 유언이 스미다 바람을 타고 하늘 위로 퍼져나간다.

※ 유민호 - 미국 워싱턴에 있는 에너지·IT 컨설팅 회사 ‘퍼시픽21’의 디렉터. ‘딕 모리스 선거컨설턴트’ 아시아 담당. 연세대 정치외교학과를 졸업하고 서울방송(SBS) 기자로 일하다가 1994년 일본 마쓰시타정경숙 15기로 입숙해 5년 과정을 마치는 동안 125개 나라를 순회했다. 조지워싱턴대학 E-Politics 프로젝트 디렉터, 일본경제산업성 연구소(RIETI) 연구원을 지냈다. [백악관에서 일하는 사람들] [중국 소프트파워] [미슐랭을 탐하다] 등 다수의 저서가 있다.

202403호 (2024.02.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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