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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곽대희코너] 여러 여자를 탐하는 본능 

 

곽대희 피부비뇨기과 원장
인간관계가 일부일처제라는 틀로 이어져온 것은 그리 오래 된 일은 아니다. 스스로 상국(上國)임을 자처하며 섬기기를 강요하던 중국도 17세기까지는 일부다처가 사회적 지위와 부의 상징이었고 만인이 오매불망 그리던 이상이었다.



그래서 가능한 한 많은 자식을 동일한 여자의 자궁을 통하지 않아도 좋으니 다산하라는 것이 그 당시의 윤리도덕이었다. 따라서 외도의 쾌락은 다양한 자세 변화와 세련된 테크닉이 수반된 섹스에서 온다고 믿고, 남자의 바람기는 중국인의 생활관습으로 이해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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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83호 (2021.05.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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