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ocus

세계 경제위기 본질을 말하다 

인문학자 10人
시장과 인간이 분리돼 제멋대로 작동
미네르바의 부엉이는 지금 어디 있는가 

한기홍 이코노미스트 객원기자·glutton4@paran.com
문제가 심각할수록 높은 곳으로 올라가 문제의 본질을 살펴야 한다. 모든 경제 주체가 제정신을 찾아야 한다는 자각과 함께, 고통 뒤에 희망이 온다는 인류 역사를 관통하는 저 ‘불멸의 낙관론’을 버리지 말아야 한다. 위기 극복을 위한 인간의 노력은 어떻게 조직되어야 하는가. 이코노미스트가 대한민국 10인의 인문학자에게 그 답을 물었다.

"투자자들이 은행을 믿지 않고 은행이 대출자를 믿지 않는다. 또 주택담보대출 기업들이 주택 구입자를 믿지 않는다. 신뢰가 완전히 무너졌다.”

작년 연말 미국의 시사주간지 뉴스위크의 경제전문기자 대니얼 그로스는 이렇게 절규했다. 불안, 공황, 분노, 체념이 세계경제의 모든 주체를 숨 막히게 하고 있다.

1930년대 대공황을 맞아 “우리가 두려워해야 할 유일한 것은 두려움 자체”라고 역설했던 프랭클린 루스벨트의 말을 귀담아듣는 사람도 없다. 패닉은 더 많은 패닉을 낳고 그 패닉이 시장을 다시 왜곡하는 현상이 지속되고 있다.

요즘 우리는 역사의 획을 긋는 위기의 시대를 살고 있다. 1929년에 필적하는, 어쩌면 그 위기를 넘어서는 위기가 몰려올지도 모른다. 장기간의 호황을 주도한 신자유주의적 경제관은 중대한 도전에 직면했다.

그 시스템 아래서 인간의 탐욕과 이기심은 과도한 버블과 모럴 해저드를 불렀고, 세계경제의 불균형은 심화되기 시작했다. 금융 부문이 이상적으로 비대해졌고 인간과 시장이 분리됐다. 이 속에서 미국에서 발생한 금융 위기가 국제 금융 네트워크를 통해 전 세계로 전파돼 글로벌 위기로 치달았다.

이것이 우리가 맞고 있는 위기의 실상이다. 우리는 이 드라마틱한 위기의 상황을 경제논리만으로 분석할 수 없다고 생각한다. 진정한(본질적인) 통찰은 우선 당면한 위기를 조용히 응시하는 것으로 시작해야 한다는 것이 우리의 믿음이다. 시장과 인간이 분리돼 제멋대로 작동한 결과가 오늘 위기의 본질이다.

그렇다면 신자유주의를 당장 폐기하고 새로운 종류의 경제 시스템 채용이 과연 가능한가. 정부의 통제 강화와 보호주의로의 회귀가 해답이 될 수 있는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새로운 해답에의 길이 있다면 그것은 무엇인가. 물론 그런 거대담론에의 몰두를 무한정 허용할 만큼 상황은 그리 한가하지 않다.

추락을 막으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얼마나 큰 비용과 희생을 감수해야 할까. 얼마나 기다려야 전 세계적인 구제 노력이 효과를 낼 수 있을까. 전 세계의 경제 주체들은 이런 계산으로 분주하다. 물론 생존을 위해서다.

인문학은 세계 물신화 막는 최후 첨병

인터뷰에 참여한 10인의 인문학자
(가나다 순)
고미숙 고전평론가
도정일 경희대 명예교수
배영순 영남대 교수
복거일 소설가
우기동 경희대 교수
이정우 전 서강대 교수
조광 고려대 교수
조지형 이화여대 교수
주경철 서울대 교수
황상민 연세대 교수
문제가 심각할수록 높은 곳으로 올라가 문제의 본질을 살펴야 한다. 모든 경제 주체가 제정신을 찾아야 한다는 자각과 함께, 고통 뒤에 희망이 있다는 인류 역사를 관통하는 저 ‘불멸의 낙관론’을 버리지 말아야 한다.

이번 호 이코노미스트가 인문학자에게 한국과 세계 경제를 묻고자 한 것도 위기의 극복을 위한 인간의 노력이 어떻게 조직되어야 하는가를 알기 위함이다. 애덤 스미스, 리카도, 맬서스, 케인스 같은 경제학자는 그 시대의 경제와 인간을 총체적으로 관찰하고 분석한 철학도였다.

경제학의 사고체계 자체가 그 시대 철학과 역사와 문학의 산물이었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인문학은 학문으로서 위기를 맞고 있지만 여전히 세계의 물신화를 가로막을 최후의 첨병이다.

절제와 투명성, 분배와 지속 가능한 발전, 환경 보호와 새로운 성장 동력의 조화가 인문학의 고민 속에 아직 살아 있다. 거기에는 살아 있는 인간에 대한 깊은 배려와 그들의 고통에 대한 연민이 배어 있다. 우리는 2008년의 위기를 통해 비로소 체계적이고 통합적인 경제의 논리와 철학이 필요하다는 점을 절감하게 됐다.

예컨대 인도의 철학자이자 경제사회 이론가인 P R 사카르처럼 사회, 정치, 교육, 여성, 환경 등 전 분야를 아우르는 사고의 틀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이코노미스트의 이번 호 특집에는 모두 10명의 대한민국 인문학자가 참여했다. 인터뷰를 통해 질문을 던지고 이 질문에 대한 각인의 답변을 논리의 흐름에 맞게 정리한 것이 이번 호 특집의 형식이다.

질문 항목에 대해 세세히 답변해주신 분도 있고, 질문의 틀을 뛰어넘어 독특한 형식과 내용으로 논리를 전개해주신 분도 있다. 공통적으로는 다음과 같은 질문을 드렸다.

▶인문학적 관점에서 세계경제 위기의 본질은 무엇인가 ▶미국의 경제 체제에 대한 평가와 함께 향후 미국의 경제적 패권이 어떻게 조정될 것으로 보는가 ▶신자유주의적 경제 패러다임에 대한 평가와 함께 이번 위기가 향후 자본주의 발전에 어떤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는가 ▶정부와 기업, 시민사회, 국민 개개인이 이번 사태를 통해 어떤 교훈을 얻어야 하는가 ▶주류 경제학과 금융공학이 이번 사태를 예견하지도, 올바른 방향으로 견인하지도 못한 상황에서 인문학적 통찰이 향후 어떤 역할을 해야 하는가 ▶세계 자본주의를 포함, 한국의 경제 시스템이 향후 어떤 지향점을 추구해야 한다고 보는가.

이코노미스트의 이번 인문학자 특집이 현 상황에 대한 결정판적 해답이 될 수 없음은 물론이다. 그러나 새로운 각도에서 우리가 처한 삶의 본질을 인식해야 한다는 문제의식을 던질 수 있다는 점에서 우리는 일단 만족한다. 제 학문의 분야를 허물고 향후 더 많은 토론과 대화가 이뤄져야 한다는 것이 이코노미스트의 믿음이다.

참여한 학자와 논객들은 그간 우리의 인문학계에서 정열적인 노력을 경주, 훌륭한 연구성과를 축적했다. 이분들의 흔쾌한 참여 자체를 우리는 자랑스럽게 생각하며 깊이 감사 드린다.

“미네르바의 부엉이는 황혼 무렵에야 날개를 펴기 시작한다.”

독일의 철학자 헤겔은 그의 역저 『법철학』의 서문에서 이렇게 말했다. 미네르바는 로마 신화에 나오는 지혜의 여신이다. 그녀는 부엉이를 좋아해 항상 부엉이를 데리고 다닌다고 한다. 부엉이는 야행성 조류라는 것을 우리는 잘 알고 있다. 미네르바의 부엉이가 황혼 녘에 날아다니는 이유는 무엇인가.

황혼 녘은 하루가 끝나가는 시점이다. 사람들의 왕성한 움직임이 마감될 무렵 부엉이는 세상 위를 날아다니며 굽이굽이 사람들이 남기고 간 발자취를 살피고 더듬어 본다. 태양이 하늘에 있을 때 세상 사람들이 어떤 자취를 남겼는가. 그들의 욕망과 열정이 어떤 어리석음과 지혜를 만들어냈는가.

사위가 검은 적막에 싸여 있을 때 미네르바의 부엉이는 깊고 넓게, 그리고 꼼꼼하게 통찰한다. 이러한 통찰 속에서 새벽은 훤하게 밝아올 것이란 믿음을 우리는 인문학의 지혜 속에서 발견하게 된다.

971호 (2009.01.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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