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워낭소리’가 흥행 대박으로 명동의 대형 멀티플렉스에서도 상영되고 있다. |
한센병에 걸려 소록도까지 흘러온 78세 할머니의 지난한 세월을 보여준 다큐멘터리 ‘동백아가씨’(감독 박정숙)는 워낭소리와 함께 지난해 독립영화계의 기대주였다. 하지만 영화를 본 사람은 11월에 280명, 12월에 153명이었다. 매출은 286만7000원. 극장 측과 5 대 5로 수익을 나누면 143만3500원이 남는다.
독립영화의 평균 배급수수료인 30%를 제하면 대개가 감독 본인이나 그의 친지이게 마련인 ‘제작자들’은 100만원 조금 넘는 돈을 가져가게 된다. 디지털 상영관이 아닌 일반 극장에서 상영할라치면 그나마도 모자라다.
저예산 상업영화 난무할까 우려
장편영화에는 한 권당 35만원 하는 필름 프린트가 5권이나 들어간다. 100편의 독립영화 가운데 99편은 이런 식의 수익모델을 가졌다. 독립영화 ‘워낭소리’는 지난 1월 15일 개봉돼 지금까지 200만 명이 봤다. 보통 관객 1만 명이 들면 3000만원이 제작사 몫으로 배정된다. ‘동백아가씨’와 같은 공식을 대입해보면 제작자인 고영재 스튜디오느림보 대표는 지금까지 적어도 60억원 이상의 수익을 냈다.
워낭소리는 순제작비로 1억원이 들었다. P&A 비용은 개봉 중이라 더 늘어나고 있지만 대략 1억원이다. 수익률이 3000%를 넘는다. 그렇다 보니 이 작은 영화가 벌어들인 돈에 관심이 많다. 돈을 많이 벌었으니 출연자들에게 돈을 어느 정도 주겠지 하는 추측성 말부터 나왔다. 로또에 맞았다느니 수익금을 어디다 쓸 것인지 엄숙하게 캐묻는 목소리도 높다. 고 대표가 기자간담회에서 ‘수익의 30%를 독립영화 지원에 쓰겠다’는 결심을 했다는 보도도 나왔다.
독립영화계에서 이렇게 ‘훌륭한 영화’가 더 나와서 하나의 수익모델이 돼야 한다는 훈수도 많다. 그런데 실상은 참 맥이 빠진다. 고영재 대표는 영화를 만들어 수익이 나면(대개는 적자다) 늘 30%를 독립영화 지원금으로 떼어 왔다. 관객이 8000명만 들어도 독립영화계에서는 ‘기본은 한 작품’이다.
10만 명이 들었던 ‘우리학교’는 가히 블록버스터급이었다. 계약서 쓰고 일당 제대로 받으면서 만드는 독립영화는 많지 않다. ‘워낭소리’도 제작자와 감독, 스태프 간에 특별한 계약서가 없어 ‘n분의 1’로 나누겠다는 게 고영재 대표의 주장이다. 독립영화계가 ‘워낭소리’의 대박을 마음껏 즐기지 못하는 것은 ▶상업영화가 다루지 못하는 다양한 주제와 스타일을 소화하고 ▶사회적인 제약 속에서 외면당하는 곳이라도 어디든 뷰파인더를 들이댈 수 있는 독립영화의 정신이 훼손될까 두렵다는 이유다.
하지만 독립영화가 수익에 더 신경 쓰게 되면 더 이상 ‘독립’이 아닌 단순한 저예산 상업영화가 될 것이라는 위기감이 더 큰 이유다. 고영재 대표는 “워낭소리가 독립영화의 역할모델이 될 수도 없고 돼서도 안 된다”며 “독립영화 제작자가 수익성이라는 책임까지 지게 되면 질적인 역주행이 있을 수 있다”고 말했다.
직업철학은 “반드시 수익 남기자!”
고 대표는 “(독립영화의 상업적 성공으로) 상업영화가 저예산으로 가는 추세가 더 가속화될 수도 있다”며 “독립영화가 가져야 할 내용과 시스템의 미덕이 살려지지 않고 단지 (투자 대비) 고수익만 추구하는 것은 옳지 않다”고 말했다. ‘워낭소리’ 배급을 맡은 독립영화 배급사 인디스토리 곽용수 대표는 “다양성 영화 안에는 독립영화, 저예산 영화가 있는데 상업영화와 이분화시키기에는 어려움이 있다”고 말했다.
지난해 관객 800만 명을 동원한 ‘과속 스캔들’의 이안나 프로듀서는 “상업영화와 독립영화가 수익구조상으로 뭐가 다른지 잘 모르겠다”고 말했다. 이 프로듀서는 대학원에서 만난 독립영화 감독들도 상업영화의 시스템을 원하는 경우를 많이 봤고 도와준 적도 있다고 전한다. 그는 “독립영화에도 프로듀서가 생겨나고 투자도 받아오는 것을 보면 상업영화로 올라오는 중간단계가 독립영화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 때도 있다”고 말했다.
하지만 상업영화와 독립영화를 가르는 기준은 비교적 명확하다. 제작비를 대는 메인 투자자가 누구인지다. 영화의 판권을 누가 소유하느냐가 여기서 결정되기 때문이다. 영화에 돈을 대는 자본은 대기업, 벤처캐피털, 외국계 자금 등 성격이 다른 만큼 지향하는 목표점도 다르다. 영화는 극장 개봉 이후에도 많은 매체를 통해 수익을 창출하기 때문에 판권의 중요성도 그만큼 크다.
그렇다고 자유로운 독립영화는 선이고 수익을 내야 하는 상업영화는 그 대척점에 있다는 이분법은 통하지 않는다. 이안나 프로듀서는 영화학도이던 1999년 ‘흔적’이라는 10분 길이의 단편영화를 만들었다. 자비 200만원이 들었다. 죽은 아버지의 흔적에서 자유로워지지 못하는 소녀의 심리상태를 그렸다.
이 프로듀서는 10년 전 하고 싶은 이야기를 영상으로 풀어내고 싶어 영화를 만들었지만 지금은 ‘흥행이 될 만한 얘기’를 찾는다. 하지만 누구도 그가 변절했다거나 순수함을 잃었다고 말할 수는 없다. 이안나 프로듀서는 아직도 지인들에게 습관처럼 “우리 단편 하나 찍을까” 묻고 독립영화를 하는 학생들에게 자기 사무실도 내준다. 그렇지만 그의 직업철학은 ‘다른 사람의 돈으로 만드는 영화기 때문에 반드시 수익을 남기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