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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리 내지 않아도 손님이 온다 

“빗을 예술의 경지로 끌어올려 … 젊은 여성들 하나씩 갖고 다녀”
일본 건국 神에 빗 ‘납품’하는 주산야(13屋)
교토의 천년상인 ⑥ 

홍하상 작가·hasangstory@hanmail.net

1. 매장 내부 모습. 2·3·4. 제품들. 3000엔이 넘는 비싼 가격에도 불티나게 팔린다.

요즘 일본 여성들은 나무빗을 쓴다.핸드백 속에는 아기 손바닥만 한 나무빗이 하나쯤 들어 있다. 디자인이 좋아 마치 액세서리처럼 가지고 다니는 것이다. 교토의 빗 가게 주산야(13屋)는 바로 그 아름다운 빗을 만들어 파는 가게로 전국적으로 유명하다. 가게 이름 작명법이 재미나다.


빗은 일본어로 ‘구시’인데, ‘구’는 9, ‘시’는 4와 발음이 같다. 주산은 9와 4를 더한 숫자 ‘13’을 읽은 것이다. 이 점포는 저녁에 가면 퇴근하다가 들른 젊은 여성으로 만원이 된다.

또 교토에 관광 온 여성들도 가게에 들러 자기가 쓸 빗과 선물할 빗을 사는 광경을 언제나 볼 수 있다. 이 가게는 4평이 채 안 될 정도로 작지만 1000종이 넘은 다양한 빗을 구비해 놓고 있으며 한 달 매출만 1억원이 훌쩍 넘어간다.

빗으로 전국적인 명성을 떨치고 있는 주산야가 문을 연 것은 1875년. 1대 조상인 지산키치(治三吉)는 오사카 근처 기시와다시의 사무라이였는데 메이지 유신으로 사민평등이 되면서 먹고살 길이 없어지자 교토에 올라와 빗 가게를 시작했다. 그 후 4대째인 미치카즈(道和)에 이어지기까지 주산야는 약 100년간 정진했다.

그 결과 한동안 어용가게로 선정돼 일본 천황가에 빗을 납품했다. “플라스틱 빗은 머릿결을 손상시키지만, 버드나무 빗은 머릿결을 보호합니다.” 주산야의 5대 사장인 다케우치 신이치(53)의 말이다. 실제로 현미경을 가지고 플라스틱 빗과 버드나무 빗을 들여다보면 플라스틱 빗의 살이 매우 거친 것을 볼 수 있다고 한다.

반면 버드나무는 타고난 결이 있어 다듬으면 여자의 속살처럼 부드러워 머리카락에 손상을 주지 않는다. 이뿐만 아니라 천연재료여서 오히려 머릿결을 보호해 준다는 것이다.

머리 치장하다 망한 교토 사람들

가게에서 파는 수백 종의 빗 제품은 대부분 버드나무, 회양목 등으로 만들어진 것들이다. 또 나무 빗은 빗을 때 정전기가 일어나지 않고 맨살에 닿아도 상처를 주지 않는 특징이 있다. 천년 전부터 사용해 온 빗의 전성기는 메이지 시대(1868~1912)였다. 그 시절에 일본인들은 가부키 극장에 가서 구경하는 것을 좋아했다.

“도쿄 사람은 보다가 망하고 교토 사람들은 입다가 망한다”는 말이 있을 정도로 도쿄 사람들은 가부키 구경을 좋아했다. 교토 사람들은 옷을 차려입고 치장한 후 외출하는 것을 좋아해 머리 치장에도 많은 돈을 들였다. 교토에서 치장하는 데 가장 돈을 많이 쓰는 여성들은 가부키 극장의 여배우와 게이샤들이었다.

여배우들은 무대에 서야 하므로 당연히 외모에 신경을 많이 쓸 수밖에 없었다. 바로 그 시절, 빗 가게는 가부키 극장의 관람석 뒤에 있었다. 가부키에 등장하는 여배우들은 자신들의 치장을 위해서는 돈을 아끼지 않았으므로 빗도 최고급을 썼다. 30년 전만 해도 교토에 6000~7000명의 게이샤가 있었고, 메이지 시대에는 그보다 숫자가 더 많았다고 한다.

빗의 수요가 많다 보니 빗을 만드는 장인들도 그러한 여성 소비자들의 요구에 맞추어 품질도 좋지만 디자인도 뛰어난 제품을 만들었다. 요즘도 일본에서 팔고 있는 나무 빗은 빗이 아니라 하나의 예술품으로 보일 정도로 디자인이 섬세하다. 소재도 특별하다. 보통 나무 빗을 만드는 소재는 회양목이다. 회양목은 일본에서는 황장목이라고 하는데, 그 이유는 나무 색갈이 담황색을 띠고 있기 때문이다.

장수의 비밀
□ 조상의 전통 존중
□ 최고급 가고시마산 나무 고집
□ 웰빙 열풍으로 나무빗 유행
□ 섬세한 디자인으로 젊은이까지 사로잡아
주소 : 교토시 시모교쿠 시조도리 데라마치
히가시이리 13
전화 : 075-211-0498

회양목은 일본 남부지방에서 잘 자란다. 나무 재질이 치밀해 단단한 것이 특징이어서 빗이나 도장, 장기알 등을 만드는 데 많이 쓰인다. 회양목 중에서도 규슈 최남부인 가고시마산을 최고로 친다.

빗 가게에서는 아예 가고시마 빗이라는 상품이 따로 있을 정도로 그 품질을 인정받고 있다. 실제로 가고시마의 회양목으로 만든 빗은 나무가 아니라 마치 대리석으로 만든 것처럼 그 재질이 매끄럽고 단단해 보인다.

값도 비싸다. 제일 싼 것이 5000엔(7만5000원) 정도이고 거의 대부분이 1만 엔 이상이며 한 개에 7만 엔(105만원)이 넘는 빗도 있다. 가고시마 빗이 비싼 또 다른 이유는 하나만 가지면 10년 넘게 쓸 정도로 수명이 길기 때문이다.

요즘 부잣집 처녀들은 시집갈 때 가고시마 빗 3개를 가지고 간다. 그 3개만 있으면 평생 빗 걱정을 안 해도 되기 때문이다. 다케우치 신이치는 요즘도 가고시마에서 나는 30년생 회양목이나 버드나무를 직접 구입해 혼자 야마나시의 공방에서 빗을 만든다. 조상 대대로 해 오던 것처럼 오전에는 빗을 만들고 오후부터는 가게에 나와 저녁 8시까지 빗을 판다.

일본 건국 신이 사용하는 주산야의 빗

주산야의 빗은 일본 내에서는 최고로 알아준다. 일본 최고의 신궁인 이세신궁에서도 이 빗을 납품 받아 사용하고 있다. 이세신궁은 일본의 10만8000개 신사 중에서 가장 계급이 높은 오오노카미 아마테라스를 모신 신궁. 오오노카미 아마테라스는 일본을 개국했다는 여신이다. 이것 하나만으로도 주산야의 실력을 알 수 있다.

그러나 한때 주산야의 빗조차 일본에서 소외 받던 때가 있었다. 플라스틱 빗이 유행했던 것이다. 그러나 다시 나무 빗의 시대가 온 것 같다. 그것을 입증이라도 하듯 필자가 인터뷰하는 1시간여 남짓한 시간에도 손님이 끊이지 않고 들어와 이야기가 자주 끊길 정도였다. 하루에 이 가게를 찾는 고객은 봄, 가을에는 300명 이상이고 비수기에도 100명 이상에 이른다.

이처럼 나무 빗이 다시 각광 받는 것은 건강에 좋기도 하지만, 그 자체를 예술의 경지에까지 끌어올렸기 때문이다. 실제로 주산야에 진열되어 있는 나무 빗에 그려진 그림이나 문양을 보면 그 디자인이 초현대적이고 색상이 다채로워 빗이 아니라 예술작품이라고 느껴질 정도다. 이처럼 디자인이 좋아지면서 소비자들은 빗을 머리를 다듬는 도구가 아니라 액세서리, 혹은 부의 상징으로까지 여기고 있다.

무심코 꺼내 머리를 빗는 것처럼 보이지만 빗 자체가 예술이기 때문에 단번에 남의 시선을 끄는 것이다. 다케우치 사장은 “품질이 좋다는 것은 소리 내지 않고 손님을 모으는 것”이라며 품질만이 자신과 가게를 지키는 첩경이라고 말했다. 특히 요즘은 디자인의 향상에 많은 신경을 쓰고 있다. 단 1년이라도 나무 빗을 써본 고객들은 그게 좋다는 것을 알게 되어 결국 평생 자신의 가게 고객이 된다는 것이다.

지금의 목표는 예전에 조상들이 만든 수준의 제품을 만들어 소비자를 만족시키는 것이다. 과거 선조들이 만든 빗 중에는 국보가 되어도 무색하지 않을 만큼 뛰어난 빗이 많았다고 한다. 그 목표를 향해 자신은 과거 선조들이 해왔던 것처럼 “예술의 경지에 오를 때까지 목숨 걸고 만들 뿐”이라고 얘기했다.

일본 천황가에서는 예로부터 지금까지 플라스틱 빗을 쓴 적이 한 번도 없다고 한다. 오로지 최고급 나무에 예술가들이 디자인한 빗을 사용하는데 그중에는 국보급 작품이 있다고 한다. 오로지 빗 만들기 140년. 현재 주산야의 명성은 이미 일본 전국이 알고 있다. 모두 좋은 품질 때문이다.

다케우치는 명문 도시샤 대학 기계과를 나와 샐러리맨이 되고 싶어 도쿄에서 3년간 직장생활을 했으나 3년 만에 접고 가업을 이어받았다. 올해 스무 살인 그의 아들은 도시샤 대학에서 경제학을 공부하고 있으며 대학을 졸업하는 대로 가업을 이을 예정이라고 한다.

979호 (2009.03.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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