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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간장 실크로드 건너다 

사우디에서 필리핀 간장 파동 … 품질에 승부 걸고 한 번에 50컨테이너 계약 모험
샘표 간장 1000만 달러 수출 

아프리카 원주민을 보고 한 영업사원이 말했다. “여기 아무도 신발을 신은 사람이 없으니 신발이 팔리지 않겠군요.” 또 한 영업사원은 말했다. “여기 신발을 신은 사람이 아무도 없으니 모두에게 신발을 팔 수 있어요.” 그렇다면 간장을 먹지 않는 나라에 간장을 팔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사우디아라비아의 한 마트에서 샘표 간장이 판매되고 있는 모습.

만약 당신이 간장을 파는 사람이라고 해보자. 국내 간장시장은 이미 레드 오션이다. 간장을 팔아 매출을 늘릴 길은 해외로 진출하는 것뿐이다. 당신은 중동 사람들이 간장을 먹지 않는 것을 발견하고 중동에 갈 결심을 하게 된다.

간장을 아무도 먹지 않으니 간장을 모두에게 팔 수 있는 기회라 여겼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가장 먼저 할 일은 간장이 무엇인지 어떻게 먹는 것인지 알리는 홍보가 필요하다.

그래야 사고 싶은 마음도 생길 테니까. 이때 당신은 어떤 방식으로 간장을 알리겠는가. 1번, 간장을 넣어 만든 우리 음식을 가르쳐 간장을 사먹도록 한다. 2번, 그 나라 음식에 간장을 넣어 먹는 방법을 가르친다.

정답은 없다. 이 밖에 다른 방법도 있을 수 있다. 현재 사우디아라비아에 연간 간장을 10억원어치 수출하는 샘표는 둘째 방법으로 중동 간장시장을 넓혀왔다. 샘표 간장의 연간 해외수출 규모인 약 500만 달러에 비하면 중동 시장은 작다.

그러나 사우디를 포함한 중동 시장은 교포 시장이 아닌 현지인 대상으로 간장을 팔고 있다는 점에서 향후 성장 가능성이 높게 점쳐진다. 샘표가 진출하기 전에 사우디에서 간장을 먹지 않았던 것은 아니다. 사우디에서는 필리핀 간장이 팔리고 있었다. 필리핀 간장이 사우디 사람들이 먹는 간장의 100%라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였다.

그렇다면 필리핀 간장은 어떻게 사우디 전역에 깔리게 됐을까. 한국, 일본 간장에 비해 질이 낮다고 평가되는데도 말이다. 필리핀 간장이 보급된 데엔 필리핀 아주머니의 힘이 컸다. 사우디에는 독특한 도우미 문화가 있다. 사우디 중산층 가정에서는 아시아 사람을 도우미로 고용하는 경우가 많은데 예를 들면 이런 식이다. 필리핀이나 인도 등에서 가족 전체가 이민을 와 한 가정에 숙식하며 도우미로 일한다.

그들의 문화를 이해하라


중동 바이어와 샘표 해외마케팅팀의 성강일 부장.
일종의 패키지 개념인데, 부인이 가사일을, 남편이 운전을 하는 식이다. 특이한 것이 있다면 가사일도 세분화돼 한 사람이 한 가지 일만 한다는 것이다. 이를테면 누구는 세탁 담당, 누구는 식사 담당, 누구는 청소 담당이다.

또 한 가정에 여러 국적의 도우미들이 함께 근무하는 경우도 많은데, 인도 사람은 주로 수에 밝아 계산하는 일을 담당한다. 필리핀 여성은 주로 음식을 담당한다.

필리핀 여성이 영어를 잘해 세밀한 맛을 의논할 정도의 의사소통이 가능하고 인도 사람들처럼 강한 향신료를 쓰지 않아 중동 사람들 취향에 거슬리지 않는 맛을 내기 때문이다. 사우디 사람들은 소금이나 허브를 이용해 보통 담백한 맛의 음식을 즐겨왔는데 이 맛을 필리핀 여성이 가장 잘 맞춘 것이다.

지금도 사우디 중산층의 식탁은 대개 필리핀 아주머니가 책임진다. 필리핀 여성이 자국 요리를 선보이며 사우디 사람들에게 간장 맛을 보게 했고, 간장을 사우디의 생선요리 등에도 넣게 되면서 사우디에 ‘간장 길’이 열리게 된 것이다. 그런데 문제가 발생했다. 필리핀 간장에서 인체에 유해한 물질이 검출된 것이다.

2002년 초 사우디는 즉시 필리핀 간장에 대해 전량 수입금지 조치를 내렸다. 샘표 해외마케팅팀의 성강일 부장은 당시 신문기사를 검색하다 우연히 사우디에 간장 파동이 일어났다는 것을 발견했다. 모 IT기업의 해외마케팅팀에서 중동 지역을 커버했던 경험을 살려 레바논의 지인에게 전화를 했다. 아니나 다를까. 사우디에서는 간장이 없어 난리란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다.


중동 전통음식에 간장 소스가 쓰이고 있다.

“사우디에서 언제 필리핀에 다시 수출허가를 내줄지 모르는 상황이었기 때문에 모든 것을 1년 이내에 해야 대응할 수 있다는 판단이 섰습니다.” 빠르게 들어가는 방법은 하나.

동양 사람과 거래해 본 수입상을 찾는 것이었다. 1960년대 한국 사람이 건설로 사우디에 많이 진출했기 때문에 이때 한국인과 인연을 맺은 중동계 회사부터 수소문했다.

중동의 문화는 가업 계승이 일반적이기 때문에 예전 루트를 추적하다 보니 적절한 수입상과 만날 수 있었다. 다만 중동 비즈니스 문화상 돈 이야기를 꺼내기가 힘들었다. 중동 사람들은 돈 이야기가 나오기 전까지는 무조건 ‘오케이’다. 중동 사람들은 사업을 하다 돈을 떼여도 속으로만 앓지 겉으로 표현하지 않는다.

진정한 맛의 세계화란

샘표간장 전용 매대.
이자를 받는 것도 알라의 이름으로 금지돼 있다. 몇 컨테이너를 보낼지도 확실치 않은 상황에서 수입상은 50컨테이너를 말했다. 10억 병 분량의 간장이었다.

보통 이런 거래에서 4개월 만에 대금을 주지만 중동과 거래할 때는 정확한 시점을 기대하기 어려웠고 이들의 문화상 독촉할 수도 없는 현실이었다. 하지만 성 부장은 지금이 기회란 생각에 박진선 사장에게 준비된 상황을 보고했다.

박 사장은 선뜻 승낙했다. 성 부장이 이직한 지 6개월 만의 일이었다“지금 생각하면 회사에 큰 손실을 끼칠 수 있는 도전이었지만 해외 진출에 열심인 샘표로서는 해볼 만한 도전이었다고 생각합니다. 중동 시장은 일본계와 중국계가 접근하기 어려운 시장이란 점에서 한국에 유리합니다.”

성 부장은 2002년 말 들어간 물량의 대금을 1년 뒤에 다 받을 수 있었다. 딱히 경쟁자가 없었던 6개월 동안 샘표 간장은 매장을 장악할 수 있었다. 현재는 필리핀 간장도 수입이 재개돼 샘표 간장의 절반 값에 팔리고 있지만 샘표의 점유율이 50%를 넘는다. 샘표는 필리핀 간장 파동을 마케팅에 적극 활용하지 않았다.

간장 자체에 대한 신뢰도를 떨어뜨릴까 우려했기 때문이다. 대신 이런 광고문구를 썼다. ‘요리에 실패하지 않는다’ ‘소금보다 진한 감칠맛’ ‘알코올 없는 발효식품’. 한국에서는 딱히 통할 것 같지 않은 문구지만 사우디에서는 다르다. 사우디는 볶거나 굽는 음식이 많은데 캐러멜이 들어간 다른 간장을 쓰면 타기 쉬워 깨끗하지 않다는 인상을 줄 수 있었다.

또 여전히 소금을 쓰는 주부에게 간장을 권유해 더 맛있는 음식을 요리할 수 있음을 제안했다. 알코올이 금기시되는 중동에서 발효식품에 대한 걱정을 씻어냈다. 또 콩을 원료로 했기 때문에 항암 효과가 있다고도 강조했다. 중동 사람들의 암 발병률이 세계에서 가장 낮음에도 불구하고 이 문구로 커다란 반향을 불러일으킬 수 있었다.

성 부장은 “한국의 간장을 팔기 위해 한국음식을 소개하려는 시도도 중요하지만 한국의 간장을 팔기 위해선 그 나라 음식 어디에도 간장이 어울릴 수 있다는 것을 알려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한국음식을 모르는 그들에게 한국음식에만 간장을 쓰라고 하면 얼마나 쓰겠는가”라고 반문했다.

“해외에서 매일 먹는 음식에 우리 양념이 쓰일 수 있도록 한다면 한식 세계화도 앞당길 수 있지 않을까요? 그들 스스로 퓨전을 만들어낼 것입니다.” 샘표는 ‘간장이 어느 나라 요리에나 어울린다’는 컨셉트로 현재 미국과 러시아의 문도 두드리고 있다. 이와 같은 노력의 결실로 샘표는 지난해까지 10년 동안 ‘누적 수출 1000만 달러 돌파’라는 성과를 이뤄냈다.

980호 (2009.03.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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