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명박 대통령이 대국민담화를 발표하면서 쇠고기 문제에 대해 국민에게 사과하고 있다. |
우리는 경험적으로 잘 알고 있다. 사랑하는 사람 사이에도 ‘미안하다’는 말은 꼭 필요하다는 것을! 가까운 사이일수록 더 자주 ‘미안하다’는 말을 해야 할지 모르겠다. 사과할 일이 없으면 좋겠지만, 인간인 이상 서로 실수하거나 상처를 주게 마련이다. 이때 사과로 상대방에게 다가설 수 있어야 신뢰가 쌓이고 인간관계가 회복된다.
존 레넌도 말하지 않았던가. “사랑이란 15분마다 미안하다고 말하는 것”이라고. ‘사과’에 있어서 만큼은 존 레넌이 엘턴 존보다 한 수 위다. 그런데 “미안하다”는 말 한마디로 상대방에게 용서를 구하고 관계를 복원할 수 있을까? 심리학자인 게리 채프먼과 제니퍼 토머스는 “부부 상담을 하다 보면 한 사람은 분명히 사과했다고 주장하는데, 상대방은 이에 전혀 동의하지 않는 경우가 자주 있다”고 말한다.
혹시 배우자나 친구와 다투다가 “그래서 내가 미안하다고 했잖아”라고 버럭 외치며 ‘사과’라는 표현을 쓴 적이 있는가? 드라마에서도 이런 장면을 가끔 볼 수 있다. 심리학자들에 따르면 “미안해”라는 말은 사과의 시작일 순 있어도 그 자체로 완성은 아니다. 그런데 소리까지 쳤으니!
스티븐 셔 교수는 프린스턴 대학에서 존 달리 교수의 지도를 받아 박사 논문으로 사과에 대한 연구를 실행했다. 그는 뉴욕주립대 학생 32명(이 중 75%는 여성)을 대상으로 흥미로운 실험을 했는데 이 논문은 심리언어학 연구 저널(Journal of Psy-cholinguistic Research)에 실렸다.
이 연구는 지난주에 언급한 사과의 표현 중 대표적인 네 가지를 골라 각 표현의 조합이 갖는 효율성을 살펴본 것이다. 실험대상자들에게는 다음과 같은 상황을 제시했다. ‘랄프는 취업 인터뷰를 할 예정인 친구에게 필요한 정보를 오후 2시 전에 전화로 알려주기로 약속했다. 그런데 랄프는 약속을 잊어버렸고 며칠이 지나서야 친구에게 전화를 하게 된다.’
문장 조합에 따라 인식 달라져
학생들을 피해자인 친구라고 가정하고 랄프가 전화에서 할 수 있는 서로 다른 여덟 가지 방식의 사과를 보여줬다. 여덟 가지 사과문은 다음과 같은 네 가지 표현 방식을 활용해 만들었다. 먼저 유감의 표현으로 “지난번 전화로 정보를 알려주기로 해놓고 잊어버려 정말로 미안해”라고 말한다.
그리고 책임의 표현으로 “내가 잘못했다는 것을 잘 알고 있어”라는 문장도 만들고, 재발 방지를 약속하는 표현으로 “이런 일이 앞으로는 절대로 일어나지 않도록 약속할 게”라는 표현도 만든다. 그리고 개선책을 제시하는 표현으로 “조금이라도 너에게 내가 뭐라도 할 수 있는 일이 있다면 알려줘” 등의 문장을 만든 후 이 네 문장을 적절히 배합함으로써 여덟 가지 사과문을 만들었다.
유감의 표현인 “지난번 전화로 정보를 알려주기로 해놓고 잊어버려 정말로 미안해”라는 문장은 모든 사과문에 들어가지만 나머지 표현은 넣기도 하고 빼기도 해서 여덟 가지 조합의 사과문을 만들어낸 것이다(배열은 위의 순서를 따랐다).
그리고 실험대상자들에게 다양한 사과문 유형에 대해 사과가 얼마나 적절했는지, 랄프가 미안해 하는 태도가 충분히 느껴졌는지, 랄프를 비난하고 싶은 마음은 어느 정도인지, 앞으로 랄프를 친구로서 피하고 싶은지, 친구로서 얼마나 신뢰가 가는지, 마지막으로 랄프가 남에 대한 배려가 있는 사람인 것 같은지를 숫자 척도로 물었다.
설문 결과는 사과의 표현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보여줬다. 모든 문장에 미안하다는 표현이 들어있었지만, 어떤 말을 덧붙였느냐에 따라 사과를 받아들이는 정도가 매우 달랐다. 유감 표명만으로 그친 경우가 아니라 자신의 책임을 표현하고 재발 방지를 약속하고 개선책을 제시할수록 상대방에 대한 부정적 인식이 크게 줄어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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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히 실험대상자는 책임감의 표현이나 개선책의 제시를 하나도 포함하지 않은 사과문을 가장 적절하지 않다고 평가했다. 두 가지 중 하나라도 포함되면 랄프를 비난하거나 처벌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목소리가 크게 줄었다.
물론 책임의 표현과 재발 방지 약속, 개선책 제시가 모두 들어있을 경우 사과의 효과는 가장 컸다. 사과의 표현과 수위에 대한 논란은 개인뿐 아니라 사회관계에서 자주 이슈화된다.
2008년 정부의 종교 편향 이슈와 관련해 이명박 대통령은 국무회의를 통해 “본의는 아니겠지만 일부 공직자가 종교 편향에 대한 오해를 불러일으킬 수 있는 그런 언행이 있어서 불교계가 마음이 상하게 된 것을 심히 유감스럽게 생각한다”고 말했다. 이를 놓고 청와대 측에서는 깊은 유감 표명을 했다고 자평했고, 불교계는 미흡하다며 사과를 받아들이지 않아 양측의 시각 차를 드러냈다.
청와대가 대통령 발언에 대해 ‘유감 표명’을 했다고 표현한 것은 문자 그대로 해석하면 맞는 말이다. 하지만 그 유감 표명 앞에 ‘본의는 아니겠지만’이나 ‘오해를 불러일으킬 수 있는 언행’이라고 표현함으로써 그것이 상대방의 오해인 것처럼 표현했으니 불교계는 그것을 진심 어린 사과로 받아들이기 어려웠을 것이다.
전형적인 ‘반쪽짜리’ 혹은 ‘정치적’ 사과라 할 수 있다. 또 다른 사례로 중앙선데이(2008년 6월 22일자)가 미국산 쇠고기 수입 사태와 관련한 이 대통령의 두 차례에 걸친 사과를 분석한 것을 들 수 있다. 이에 따르면 대통령의 첫 번째와 두 번째 사과의 다른 점이 감성적 표현의 증가, 사과 표현의 증가, 책임 인정의 표현 등장으로 나타났다.
청와대는 사태의 경과에 따른 변화라고 하겠지만 사실 제때 적절한 사과를 하지 않아 여론을 더 악화시킨 것으로 보는 게 맞다. 초기에 자신들의 정책을 몰라준다며 오히려 국민을 나무라는 태도를 취한 것이 그 이유다.
자존심 세우다간…
상황을 고려해 책임성을 당장 인정하기 힘든 경우에도 몇 가지 사과의 효율성 개선을 시도할 수 있다. 무조건 사과 표현은 짧고 박하게 하는 것이 최선이라는 태도에서 벗어나 유감 표명과 함께 재발 방지나 개선책을 포함하는 열린 태도를 검토해야 한다. 사과는 누구에게나 힘든 일이다. “미안해”라는 말 한마디를 뱉기 힘들 정도로 ‘자존심 강한 존재’가 바로 인간이다.
사랑하는 사람, 경쟁하는 사람, 함께 일하는 아랫사람, 그리고 국민 앞에서 “미안합니다”라는 말 한마디를 하기는 더욱 어렵다. 그러나 만약 미안하다는 말을 해야겠다고 결심했다면, “미안합니다”로 그치지 말고, 무엇이 미안한지, 그 책임은 누구에게 있는지, 재발 방지를 위해 앞으로 어떻게 할 것인지를 명확하게 표현하는 것이 현명한 사과의 기술이다.
“미안해”는 사과의 필수조건은 될 수 있어도 사과의 충분조건은 되지 않기 때문이다. “미안해”는 ‘사과의 반쪽’이며 그것으로 상대방을 절대 만족시킬 수 없다. 사과의 기술을 연구하는 학자들이 당신에게 전하는 메시지는 간결하다. “미안해”라는 말을 하고도 용서를 얻지 못하는 것이 더 자존심 상하는 것이라는 걸 안다면, 사과의 충분조건을 마저 채우라는 것이다. 그것이 진정한 자존심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