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팔 접경의 이 북쪽 마을은 드높이 개인 가을 하늘 아래 한껏 고즈넉했다. 주인 없는 집 봉당에 흰 박통만이 흰 박통을 의지하고 있었다. 어쩌다 만나는 늙은이는 담뱃대부터 뒤로 돌렸다. 아이들은 또 아이들대로 멀찌감치서 미리 길을 비켰다. 모두 겁에 질린 얼굴들이었다.”(『황순원 전집 3: 학/잃어버린 사람들』, 문학과 지성사)
황순원 선생의 단편소설 『학』은 이렇게 시작한다. 내가 이 소설을 처음 읽은 것은 고등학교 시절이었다. 이번 민통선 기행을 앞두고 다시 한 번 찾아서 읽어 봤다. 새롭게 발견한 사실은 이 작품이 쓰인 것이 1953년 1월이라는 점이다. 아직 한국전쟁이 진행되던 때였다.
이 소설은 한 마을에서 태어나 성장한 두 친구인 성삼과 덕재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삼팔선이 그어지면서 헤어진 두 친구는 국군이 삼팔선을 넘어 진격했을 때 다시 만난다. 성삼은 국군을 따라온 치안대원이고, 덕재는 농민동맹 부위원장이다. 성삼이 덕재를 호송하는 길이 소설의 줄거리를 이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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