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30년대 한국 사회는 ‘황금에 미친 시대’(黃金狂時代)라 불릴 만큼 금광 열풍이 뜨거웠다. 한반도 전역에서 금광 개발이 진행되었고, 남녀노소 할 것 없이 금을 찾아 헤맸다. 1937년 재계에 혜성처럼 등장한 이종만은 함경남도 장진 일대에 4억 평에 달하는 광대한 지역의 금광 개발권을 소유하고 있었다. 32년 동안 28번의 실패 끝에 이룩한 결실이었다.
이종만은 1885년 울산군 용잠리에서 7남매 중 둘째 아들로 태어났다. 어려서 한학을 공부했으나 16세에 뜻하지 않은 병마를 만나 3년을 병석에서 보내고 학업까지 중단했다.
19세에 다시 학업에 뜻을 두고 공부를 시작했지만, 얼마 후 또다시 병이 도져 학업을 놓을 수밖에 없었다. 병과 씨름하며 유년시절을 보낸 이종만은 20대에 접어든 1905년, 얼마 안 되는 논밭을 팔아 부산에 나가 어물상을 차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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