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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ssue - 찜하면 영전 찍히면 낙마 

관치 논란 반복되는 KB금융그룹 

회장·경영진 인선 때마다 관치 논란 4대 금융지주 중 총자산 가장 작아

▎임영록 KB금융그룹 회장이 7월 12일 취임식에서 인사하고 있다.



7월 22일 서울 여의도 KB국민은행 본점 인근은 오전부터 소란스러웠다. 이건호 신임 행장의 취임에 반대하는 KB국민은행 노동조합 노조원 50여명은 1층 출입구에 ‘인간 바리케이드’를 쳤다. 오전 8시 30분경 출근을 시도했다가 노조의 저지로 물러난 이 행장은 오후 3시 40분경 에쿠스 자동차를 타고 다시 나타났다.

취재진이 몰려들었다. 사측 경비원들과 기자들이 뒤엉켰다. 이 행장은 떠밀리듯이 본점 앞으로 걸어갔다. 여기저기서 고성이 터져 나왔다. 이 행장 일행이 다가오자 노조원들은 구호를 외치기 시작했다. “관치금융 물러가라. 이건호는 즉각 사퇴하라.”

사측에서 동원한 경비원들이 이 행장과 노조원 사이에 섰다. 일부 노조원은 계란과 밀가루를 던졌다. 이 행장이 맞지는 않았다. 양측은 약 5분 정도 대치했다. 노조 앞에 서서 난감한 표정을 짓던 이 행장은 결국 발길을 돌렸다. 그는 기자들을 향해 “참 경사스러운 날에 우리 식구들끼리 이런 모습 보여드린 건 참 불행한 일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신임 회장·행장 출근 저지 투쟁 반복돼

그는 차에 올랐고, 노조는 다시 본점 바닥에 앉아 ‘사퇴하라’를 반복해 외쳤다. 한 노조원은 “그에게는 경사일지 모르지만 국민은행엔 또 한번 치욕의 날”이라고 말했다. 그는 “정부가 주인인 우리금융도 내부 출신이 회장과 행장이 되는데, 순수 민간 기업인 KB는 왜 때마다 낙하산을 탄 인사들이 내려오느냐”고 목소리를 높였다.

다른 노조원은 기자의 신분을 물으며 “관치에 반대하는 노조를 노치(勞治)라고 쓰는 언론이 문제”라고 말했다. 이건호 행장의 출근을 막는 노조의 투쟁은 7월 25일에도 계속됐다. 박병권 KB국민은행 노조위원장과 백운선 수석부위원장은 본점 앞에서 삭발을 했다. 그들의 목에는 ‘관치금융 박살!! 이건호 퇴진’이라는 흰색 긴 천이 메어져 있었다.

낯선 풍경은 아니다. 2008년 7월 KB금융지주 초대 회장에 오른 황영기 전 회장도, 금융감독원 부원장 출신인 김중회 전 사장도 출근 저지를 당했다. 2010년 9월 선임된 어윤대 전 회장도 마찬가지다. 재정경제부(현 기획재정부) 차관 출신인 임영록 KB금융 사장이 회장에 선임된 지난 6월 초에도 이 회사 노조는 출근 저지 투쟁을 벌였다. 노조의 구호는 늘 비슷했다.

‘관치 금융, 낙하산 인사 반대’다. 전례로 봤을 때 노조의 이번 반발이 오래갈 것 같지는 않다. 양측은 늘 적당한 선에서 악수를 했다. 그때마다 ‘이면 합의’ 얘기가 흘러 나왔다. ‘회장 길들이기’에 나선 노조는 얻을 것을 얻고, 관치 논란 속에 선임된 CEO는 노조 달래기로 마무리한다는 것이다. 한때 국내 리딩뱅크에서 총자산 순위 4위로 밀린 KB금융그룹의 어제 오늘이다.

100% 민간 회사인 KB금융은 왜 관치 논란에서 자유롭지 못한 걸까. 1995년 초 민영화된 국민은행은 1997년 민영화된 주택은행과 2001년 합병해 KB국민은행으로 재탄생했다. 2008년 5월에는 지주회사로 전환했다. 지주회사 전환 후 내부에서 승진해 회장 자리에 오른 이는 없었다. 주요 계열사 임원도 권력의 핵심 측근이나 고위 관료 출신이 차지하는 일이 잦았다. 국내 4대 금융지주회사 중 현재 수장이 외부 출신인 곳은 KB금융뿐이다.

7월 22일 만난 박병권 국민은행 노조위원장은 “임영록 회장이 은행장은 내부 인사를 중용하겠다고 약속한 지 불과 며칠 만에 외부 인사가 행장이 됐다”며 “이번 인사는 임 회장과 ‘모피아(재무부+마피아)’ 세력이 휘두르는 신(新)관치의 망령”이라고 주장했다. 그는 “행원들의 꿈은 행장이 되는 것인데 지금껏 계속된 관치금융을 보면서 꿈을 잃고 말았다”고 말했다.




4대 금융지주 회장 중 유일한 외부 출신

금융감독원 전자공시스템과 KB금융 노조에 따르면, KB금융그룹에서 임원이 되는 것은 하늘의 별 따기에 가깝다. 국내 70여 금융회사 중 전체 직원 대비 임원 수가가 가장 적은 곳이 KB국민은행이다. 직원은 2만1635명인데, 임원은 18명에 불과하다. 그중 여섯 자리는 외부 출신으로만 채워지는 사외이사·감사다. 결국 내부에서 승진해 오를 수 있는 행장·부행장 자리는 12개인데, 이 마저도 외부 인사가 차지하니 불만이 쌓인다는 것이다.

자신이 관치금융 논란에 휩싸였고, 더욱이 2주 간 출근 저지를 한 노조를 달래며 “내부 인사를 쓰겠다”고 말한 임 회장은 왜 그 약속을 지키지 못했을까. KB금융 측은 “이건호 신임 행장은 2011년부터 국민은행 리스크관리 부문 부행장을 맡은 내부 인사”라며 “근무 경력은 짧지만 이 행장이 국민은행 최대 과제인 성장성 정체, 수익성 하락, 건전성 회복 지연을 조속히 해결하고 조직문화를 주도적으로 쇄신할 최적의 인사라고 본 것”이라고 밝혔다.

금융업계에선 다른 얘기가 나온다. 한 자산운용사 대표는 “KB금융은 관치에도 일관성이 없다”며 농담 아닌 농담을 던졌다. 그는 “관치 논란에 휩싸였던 임영록 회장이나, 이건호 국민은행장, 김용수 KB금융 부사장이 모두 다른 라인이라는 말이 있다”고 했다. 그들을 밀어준 세력이 각각 다르다는 얘기다. 임영록 회장은 재정경제부 2차관 출신으로 2010년 8월 KB금융 사장이 됐다. 임 회장의 입지는 애매했다. 관료 출신이지만 3년이나 KB금융그룹 일을 했기 때문에 외부 인사로 보기 어렵다는 얘기도 나왔다.

하지만 회장 후보가 10명으로 압축된 6월 초 신제윤 금융위원장이 “관료 출신도 능력과 전문성이 있다면 금융지주 회장을 할 수 있다”고 말한 사실이 알려졌다. 얼마 후에는 조원동 청와대 경제수석이 “좋은 관치도 있을 수 있고 나쁜 관치도 있을 수 있다”는 말로 관치금융 논란에 불을 붙였다. 임 회장은 신 위원장의 서울대 3년 선배로 재정경제부에서 한솥밥을 먹었다. 조 경제수석과는 경기고·서울대 선후배 사이다.

이건호 행장은 연구기관인 한국금융연구원 연구위원장 출신으로 조흥은행 부행장과 한국개발연구원(KDI) 교수를 역임했다. 그는 국민은행장 인선 과정에서 수면 밑에 있었지만 정찬우 금융위원회 부위원장이 그를 지지한다는 루머가 퍼지면서 유력한 후보로 떠올랐다. 이 행장과 정 부위원장은 금융연구원에서 함께 근무하면서 여러 편의 논문을 함께 썼다.

KB금융지주 홍보를 총괄하는 최고홍보책임자(CPRO)로 선임된 김용수 부사장도 의외의 인사였다. 인사 발표 직후 KB금융 내부에서 그의 구체적인 프로필을 확보하지 못해 애를 먹었다는 후문이다. 올해 53세인 그는 1996년 민주당 부대변인으로 공천을 받지 못하자 탈당, 1999년 한나라당에 입당해 부대변인을 지냈다.

16~17대 국회의원 선거 때 경기 고양 덕양을에 출마했다 낙선했다. 이후 경기도 경제단체연합회 사무총장(2005년 5월~2006년 8월)을 지냈다. 그의 금융계 경력은 산은자산운용 전무·KDB 대우증권 홀세일(기관 대상 영업) 전무가 전부다. 대우증권에선 2010년 9월부터 지난해 9월까지 근무했다.

외부 권력에 의한 영전과 낙마

지주회사 출범 후 KB금융지주 회장은 ‘권력에 의해 영전하고, 권력에 의해 낙마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2008년 7월 황영기 전 우리금융그룹 회장이 KB금융지주 초대 회장에 선임됐다. 당시 국민은행 노조는 “이명박 정부 대선캠프에서 자문위원을 역임한 인물이 KB금융지주 수장이 될 수 없다”며 반대 투쟁에 나섰다.

황 전 회장은 1년 만에 사퇴했다. 금융당국이 황 전 회장이 우리금융그룹 회장 시절 주도한 파생상품 투자 실패의 책임을 물어 중징계를 내린 후 자진 사임하는 모양새였다. 하지만, 금융업계에선 황 전 회장이 우리금융 재직 때 금융당국과 대립각을 세우며 공격적인 투자를 해 미운털이 박혔다는 얘기가 파다했다.

강정원 전 국민은행장 역시 ‘관치의 쓴 맛’을 봤다. 2009년 12월 3일 강 행장은 회장후보추천위원회 만장일치로 KB금융지주 회장에 내정됐다. 직후 금감원은 정기검사를 앞두고 10여 일간 대규모 인력을 투입해 특별감사를 실시했다.

KB금융 사외이사는 물론 임직원의 컴퓨터를 샅샅이 뒤졌고, 강 행장의 운전기사도 조사를 받았다. 이 과정에서 당시 진동수 금융위원장이 강 행장에게 사퇴를 종용하는 전화를 했다는 의혹까지 불거졌다. 진 전 위원장은 이를 부인했다. 사퇴 압박설에도 뜻을 굽히지 않던 강 행장은 결국 2009년 12월 마지막 날 사진 사퇴했다.

10개월 간 공석이던 회장 자리에 앉은 것은 어윤대 전 국가브랜드위원장이었다. 이명박 전 대통령과 고려대 2년 선후배 사이인 그는 2010년 7월 13일 회장에 취임했다. 이때에도 정정길 대통령 실장이 회장추천위원회에 개입했다는 의혹이 일었다. MB정부의 대표적인 낙하산 인사로 거론됐던 어 전 회장 역시 박근혜 정부가 들어서면서 사퇴 압박을 받았다.

ING생명 인수를 놓고 사외이사들과 갈등을 겪던 그는 2012년 12월 20일 중국 베이징에서 열린 술자리에서 술잔을 집어 던지는 소동을 벌였다. 이 사실이 알려지자 금감원은 어 전 회장에게 경위서 제출을 요구했고, 이후 금감원·한국은행·국세청의 검사·세무조사가 시작됐다.

관치의 사슬 끊으려면 인식의 전환 시급

지난해 중순까지만 해도 그는 연임 의사를 묻는 한 언론 인터뷰에서 “주주들이 더 하라고 하면…”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올 4월 말 기자회견을 열고 “연임을 포기한다”고 밝혔다. 그는 이 자리에서 “KB금융은 정부가 한 주의 주식도 있지 않은 민간은행인데, 이런 조직에서 연임을 한다, 안 한다를 사회적으로 언급할 이유가 있는지 의심스럽다”고 말했다. 정부의 간섭에 불편한 심경을 드러낸 것이다. 그나마 그는 KB금융지주에서 임기를 다 마치고 물러난 첫 회장으로 기록됐다.

임영록 회장은 7월 12일 열린 취임식에서 “리딩뱅크 위상을 되찾겠다”고 했다. 실제로 KB금융의 위상은 예전만 못 하다. 지난해 KB금융 순이익은 전년 대비 25% 감소한 1조7029억원이었다. 4대 금융지주사 중 3위다. 만년 1위던 총자산 순위는 KB금융 직원들이 스스로 말하는 ‘잃어버린 10년’을 거치면서 지난해 4위로 내려앉았다.

KB금융은 관치의 사슬을 끊을 수 있을까. 이 회사가 외풍에 약한 이유는 뻔하다. 확실한 주인이 없는 지배구조, 관치 금융의 잔재, 독립적 이사회 등 견제세력의 부재, 권력의 금융 장악 유혹, 인사와 관련해 정치권에 줄을 대는 악습…. 지배구조를 바꾸고 전문적이고 독립적인 이사회 운영해야 한다는 해법도 나와 있다. 하지만 금융 전문가들은 ‘인식의 전환’이 먼저라고 말한다.

한 민간 경제연구소 연구위원은 “이런 인사 관행이 오랫동안 이어진 만큼 제도 개선만으로는 단번에 해결할 수 없다”며 “관행을 뿌리뽑자는 인식부터 갖추는 일이 근본적인 해결책”이라고 말했다. 이에 대해 KB국민은행 노조 간부는 “대통령이 직접 나서 금융권 인사에 개입하는 관료는 이유를 막론하고 엄벌하겠다고 천명하고 이를 지키면 이런 악습이 바뀔 수도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1199호 (2013.08.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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