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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anagement | 함승민 기자의 ‘센터링 경제학’ ③ 승부차기와 경제 심리 - 축구도 경제도 심리에 좌지우지 

영국 대표팀, PK 트라우마에 정신과 전문의 고용 … 최경환 부총리, 소비심리 살리기에 안간힘 


2004년 6월 24일 포르투갈에서 열린 영국과 포르투갈의 유로 2004 8강전 승부차기에서 베컴이 찬 공이 골대를 넘어가고 있다. 승부차기 후 그가 애꿎은 잔디를 원망스레 쳐다보는 장면은 축구계의 명장면(?)으로 남았다. / 사진:뉴시스



‘삑, 삑, 삑~’ 2004년 6월 24일 포르투갈 리스본의 루스 스타디움. 영국과 포르투갈의 유로(유럽선수권대회) 2004 8강전의 정규시간 종료를 알리는 휘슬 소리가 울렸다. 양팀이 치열한 경기를 치렀지만 결과는 2-2. 결국 승부차기로 결과를 판가름해야 하는 상황으로 흘러갔다.

영국 대표팀의 주장이자 축구 아이콘으로 세계에서 가장 킥 이 정교하다고 불리는 데이비드 베컴이 승부차기에서 가장 중요한 1번 키커로 나섰다. 베컴은 신줏단지 모시듯 조심스레 공을 페널티 스팟에 올려놨다. 그러나 이를 보는 영국 팬들의 시선에는 불안감이 가득했다. 그 해 터키와의 지역 예선에서 베컴이 페널티킥을 실축하며 공을 하늘로 날려버렸기 때문이다. 이를 두고 영국 국민들이 대공황을 일으킬 만한 황당하기 짝이 없는 슛이라고 해서 ‘런던 대공황슛’이라는 신조어가 생기기도 했다.



베컴의 ‘런던 대공황슛’

도움닫기를 한 베컴이 공을 차는 순간, 경기장을 가득 메운 6 만여 포르투갈 홈 관중은 환호성을 질렀다. ‘설마 베컴이 또?’라던 영국의 우려는 현실이 됐다. 베컴이 찬 공은 터키전과 마찬가지로 크로스바를 훌쩍 넘어가 버렸다. 이 실축으로 인해 영국은 탈락의 고배를 마셔야만 했다. 베컴이 승부차기 후 공이 놓였던 자리의 애꿎은 잔디를 원망스레 쳐다보는 장면은 축구계의 명장면(?)이자, 영국 축구대표팀의 승부차기 악몽이 이어지는 순간으로 기록됐다.

축구 종가 영국 대표팀에게 승부차기는 저주 그 자체다. 메이저 무대에서 악령처럼 나타나 번번이 삼사자 군단을 좌절시켰다. 영국은 1990년 이후 월드컵과 유로 대회를 합하면 통산 7차례 승부차기를 했는데 딱 한 번 외에는 모두 졌다. 심지어 최근 다섯 경기는 전패다.

저주의 시작은 1990년 이탈리아 월드컵 4강전이다. 당시 서독과 1-1로 비긴 뒤 승부차기에서 3-4로 졌다. 1996년 유로 8강에서 스페인과의 승부차기에서 이기며 우려를 불식시키는 듯 했으나 바로 다음 경기에서 독일에게 승부차기로 패배를 당했다. 이어 1998년 프랑스 월드컵 16강 아르헨티나전, 2006년 독일 월드컵 8강 포르투갈전, 유로 2012 준결승 이탈리아전 모두 승부차기에서 고배를 마셨다. 20년 넘게 붙어 다니는 악령이다.

승부차기는 축구에서 심리적 중압감이 가장 극한에 다다르는 순간이다. 가로 7.32m, 세로 2.44m 크기의 골대 앞에 골키퍼는 서있고, 키커는 골대로부터 11m 지점에 볼을 놓고 시속 100km가 넘는 슛을 한다. 키커들은 보통 50m 이상의 거리에서도 원하는 위치에 공을 정확히 전달할 수 있는 기술을 갖고 있다. 평소처럼 정확하게만 차면 골키퍼는 알고도 당한다. 승부차기가 ‘11m 러시안룰렛’이라고 불리지만, 과학적으로만 보면 키커에게 절대적으로 유리하다는 게 중론이다. 그러나 결과는 꼭 그렇지만도 않다. 베컴처럼 기술적으로 완성된 수많은 선수들도 골대 바깥이나 골키퍼가 막기 좋은 위치로 공을 차곤 한다. 실패에 대한 불안심리가 작용하기 때문이다.




승부차기는 기술보다 심리 영향 커

이에 대한 재미있는 에피소드가 하나 있다. 2006년 독일 월드컵 8강전에서 독일은 아르헨티나를 만났다. 이 경기 또한 승부차기로 이어졌다. 이때 독일의 골키퍼 옌스 레만이 양말에서 ‘커닝 페이퍼’를 꺼냈다. ‘리켈메 왼쪽, 메시 왼쪽, 크레스포 도움닫기 길면 오른쪽’ 등 아르헨티나 선수 몇몇의 습관을 적어놓은 쪽지였다. 레만은 쪽지에 적힌 2명의 키커 중 한 명의 슛을 막고, 한 명은 방향을 맞췄으나 막지는 못했다.

문제는 네 번째 키커로 나선 캄비아소였다. 원래 없었던 건지 글씨가 땀에 젖어 번진 건지 레만은 쪽지에서 캄비아소에 대한 지시를 찾을 수 없었다. 그러나 레만이 종이를 오래 들여다보는 것만으로도 효과가 나타났다. 캄비아소는 ‘저들이 대체 뭘 알고 있는 거지?’라는 생각에 혼란에 빠졌다. 그는 결국 ‘아무것도 모르는’ 레만이 막기 편한 곳에 공을 차버리고 말았다. 경제학자들의 연구에 따르면 사실 레만의 쪽지는 의미가 없다. 페널티킥의 방향은 선수와 상관없이 무작위에 가까워지기 때문이다(사실 승부차기는 여러 분야에서 활용되는 게임이론 과도 관련이 깊다. 다음 기회에 이를 자세히 살펴볼 것이다). 대신 레만은 키커의 불안심리를 극대화 하는데 성공해 좋은 결과를 얻었다고 볼 수 있다.

승부차기의 저주에 걸린 영국 대표팀의 경우 상대팀 골키퍼가 아니라 스스로 불안감을 증폭시켰다. 실제로 승부차기 저주 얘기가 본격적으로 나오기 전까지 영국의 승부차기 성공 확률은 그리 낮지 않다. 승부차기로 패배한 경기에서도 마찬가지다. 유로 1996 준결승에서는 6명의 키커 중 5명이 성공시켰고, 프랑스 월드컵에서는 5명 중 3명, 2004년 유로 대회에서는 7명 중 5명이 성공했다. 그러나 최근 2개의 메이저 대회 승부차기에서 8명 중 3명만이 골을 넣었다. 성공률은 75%에서 37.5%로 줄었다. 패배 경험이 쌓이면서 심리적 중압감에 의해 확률이 급격히 떨어진 셈이다.

이를 의식해서인지 영국 축구대표팀은 최근 색다른 처방을 내놨다. 승부차기를 더 잘 차고, 잘 막는 훈련을 하는 게 아니라 정신과 전문의에게 도움을 받기로 한 것이다. 브라질 월드컵을 3개월 앞두고 호지슨 영국 대표팀 감독은 영국 럭비 대표팀과 지난해 프리미어리그 준우승 팀 리버풀의 멘털트레이너로 유명한 스티브 피터스 박사를 대표팀 전문 심리 상담가로 고용했다. 승부차기 징크스 때문에 심리 치료를 하기 위해서다. 결국 해답을 기술이 아니라 마음에서 찾기로 한 것이다.

심리적인 요인으로 부진을 면치 못하 는 건 영국의 승부차기뿐만이 아니다. 한국경제도 얼어붙은 소비심리 탓에 침체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박근혜정부 들어 1인당 국민소득, 경상수지 흑자 규모 등 경제지표는 회복 기미를 보이고 있는 것 같지만 체감경기는 냉랭하기만 하다.

체감경기는 보통 소비자동향지수와 기업경기실사지수 (BIS)를 잣대로 판단한다. 각각 소비자와 기업에게 “경기가 좋아질 것 같으냐”고 물어 응답결과를 집계한 경제지표다. 100을 기준으로 높을수록 ‘경기가 좋아질 것 같다’, 낮을수록 ‘안 좋을 것 같다’고 응답한 것이다. 올해 8월 소비심리지수는 107로 한 달 전보다 2포인트 상승했지만 세월호 사고 이전보다 낮은 수준이다. 같은 달 제조업 기업경기실사지수(BSI)는 72로 13개월 만에 최저치다.

소비자들이 ‘살림살이가 나아질 것 같지 않다’고 느끼면 당연히 소비를 줄인다. 소비가 위축되면서 내수시장은 침체를 면치 못하고 있다. 이로 인해 기업이 돈을 벌지 못하면 투자와 고용 도 줄어든다. ‘저성장의 늪’에 빠졌다는 우려가 나오는 이유다. 이대로라면 ‘런던 대공황슛’ 같은 우스갯소리가 아니라 실제 대공황을 염려해야 할지도 모른다.




심리 처방을 내놓은 최경환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왼쪽)과 로이 호지슨 영국 축구대표팀 감독. / 사진:중앙포토
위축된 소비심리에 내수시장 침체

특히 침체된 심리의 영향을 많이 받는 금융과 부동산 시장은 가계소득과 소비심리에 큰 파장을 일으킨다. 주가가 오르거나 부동산 시장이 호황일 때는 ‘부의 효과(wealth effect)’가 나타난다. 내가 가진 주식이나 집값이 오르면 개인들은 자신의 자산이 늘었다고 느껴 투자와 소비를 늘리는 효과다.

그러나 최근의 금융시장과 부동산 침체는 그 반대인 마이너스 부의 효과를 내 투자와 소비를 위축시켰다. 더구나 부동산의 경우 과도한 대출로 집을 마련해 고통을 겪는 ‘하우스푸어’ 마저 양산되는 분위기다. 이들에게 부동산 가격 하락이 주는 여파는 더 강렬하다. 투자·소비 위축심리가 깊어질 수밖에 없다.

이런 상황에서 한국 경제의 키를 잡은 최경환 경제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도 호지슨 감독과 비슷한 처방전을 생각한 듯하다. 소비 주체들의 소득을 늘려 소비를 진작시킨다는 소득주도성장론이라는 틀 안에서 경제정책을 펴고 있다. 사내유보금 과세, 배당확대 정책, 부동산 규제 완화 등 최 부총리가 말하는 ‘지도에 없는 길’이라는 게 대부분 ‘각자의 주머니에 돈이 생길 테니 맘껏 쓰자’는 식의 소비심리를 회복시키려는 상징적인 정책이다.

그러나 심리라는 게 그리 쉽게 회복되지는 못하는 모습이다. 최 부총리의 정책이 발표될 때마다 시장에선 최경환 효과가 빛을 발했지만, 두 달이 지나면서 심리부진은 계속되고 있다. 이를 두고 전문가들은 부의 쏠림 현상, 기업과 개인 간 소득 괴리, 일자리 부족과 임금 정체로 인한 가계 실질소득 저하, 가계부채 증가와 고정지출 증가 등 구조적인 문제가 해결되지 않은 상황에서 심리 처방은 반짝 효과만 보여 줄 뿐이라고 지적한다.



본선에 오를 역량 길러야 심리 처방도 효과

다시 돌아와서, 심리치료라는 같은 대책을 내놓은 로지슨 감독의 영국은 어떻게 됐을까? 안타깝게도 영국은 브라질 월드컵에서 본선 토너먼트에 진출하지 못하고 조별 예선에서 조기 탈락했다. 조별 예선에서는 승부차기가 없기 때문에 승부차기 심리 치료는 결국 실험조차 하지 못했다. 어쩌면 심리 회복이라는 처방은 축구에서나 경제에서나 본선에 갈 정도의 기초 실력이 받쳐준 상황에서야 빛을 내는 것일지도 모른다.

1256호 (2014.1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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