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라마 <정도전>에서는 신구 세력의 갈등을 다뤘다. 드라마 속의 정몽주(왼쪽)와 정도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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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 대학시절 절친했던 동기를 만났다. 그는 교회 장로다. 성격이 활달하고 낙천적이라 동기들과 잘 어울린다. 종교에 대한 편견도 없고 대소사를 잘 챙겨 평도 좋다. 그날따라 그는 평소와 달리 심각한 표정이다. “교회가 엉망이야!” 그는 최근 돌아가는 교회 사정을 털어놓는다. “올해로 20년째 근무하신 목사님이 은퇴하는 데, 장로들 간에 파가 갈려 싸움이 났어.”그는 3대째 장로 집안이다. 몇 년 전 아버지가 돌아가신 후 교회에서 요직을 맡고 있다. 오랫동안 평화로웠던 교회는 신구 갈등으로 불이 붙었다. 노장파는 목사님을 지지한다. 퇴직 후 목사님을 원로목사로 추대하고, 후계 목사 지명권을 주려고 한다. 교회의 막후 실세를 인정하자는 것이다. 소장파는 목사님을 배척한다. 오래 하셨으니 조용히 퇴직해 모든 권한에서 손을 놓기를 바란다.그는 지금 신구갈등의 한 가운데에 서 있다. 소장파로서의 대의명분을 저버리기가 쉽지 않다. 아버님과 친분이 두터웠던 노장파의 입장을 모르는 척하기도 어렵다. 존경했던 목사님에 대한 관계도 저버리기 쉽지 않다. 교회 내 갈등은 더욱 깊어간다.
싸움과 갈등 해결하는 게 정치 편가르기와 희생양 만들기가 진행된다. 각종 비난·비방·험담·모함이 양산된다. 악성 유언비어가 떠돈다. 싸움은 본능적이다. 프로이트의 인간관은 투쟁 과 도피다. 개인과 조직은 위험에 봉착할 때 투쟁과 도피 반응을 보인다. 살려고 하는 자는 상대를 죽여야 한다. 자신의 이익을 챙기려면 철저히 이기주의적이어야 한다. 승-패와 패-승은 결국 패-패로 떨어진다. 싸움은 필연적이다.토인비의 역사관은 도전과 응전이다. 개인과 조직은 문제에 봉착할 때도전과 응전으로 대처한다. 살려고 하는 자는 죽고, 죽으려고 하는 자는 산다. 자신의 이익을 달성하려면 이타주의자가 되어야 한다. 승-패와 패-승에서 승-승으로 나아가야 한다.조직은 유기체다. 사람은 생로병사를 겪고, 조직은 흥망성쇠를 겪는다. 불로장생은 인간의 영원한 꿈일 뿐이다. 역사상 어느 국가도 천년왕국을 이루지 못했다. 진시황은 중국사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친 인물이다. 최초로 중국을 하나의 거대한 제국으로 통일했다. 그는 불사(不死)를 꿈꿨지만 49세의 나이로 요절하고, 자신이 세운 제국도 곧바로 무너졌다. 일찍이 슘페터는 자본주의의 동인(動因)으로 창조적 파괴를 통한 혁신을 주창했다.시장은 새것이 나타나면 옛것을 몰아낸다. 세상은 창조적 파괴활동을 통해 바뀐다. 조직은 혁신을 통해 다시 태어난다. 교회도 예외는 아니다.사람들이 모인 곳에 갈등이 생기는 것은 당연하다. 가족 갈등, 직장 갈등, 사회 갈등…. 신구 갈 등은 모든 곳에 존재한다. 신구 갈등은 문명 갈등이다. 받아들일 수 없고, 버릴 수 없는 평행선에 새것과 옛것이 있다. 갈등이 있는 곳에 싸움이 생긴다. 싸움은 사람들 간의 이해관계에서 발생한다. 싸움은 당사자 모두에게 상처를 남긴다. 인간은 감정적 동물이다. 한 번 받은 상처는 쉽게 아물지 않는다. 갈등과 싸움을 놔두면 사회가 혼란스럽다. 교통정리가 필요하다. 여러 사람들이 함께 행복하게 살기 위해선 정치가 필요하다. 정치란 갈등과 싸움을 해결하는 활동이다.KBS드라마 <정도전>이 전 국민의 관심을 모았다. 정치드라마다. 무혈혁명으로 조선을 건국한 위대한 이야기다. 고려가 무너져 가는 어느날 이방원과 정몽주가 술상을 앞에 놓고 앉았다. 이방원은 혁명의 걸림돌인 정몽주를 회유하며 ‘하여가(何如歌)’를 읊는다. “이런들 어떠하리 저런들 어떠하리….” 이에 정몽주는 ‘단심가(丹心歌)’로 자신의 뜻을 밝힌다. “이 몸이 죽고 죽어 일백 번 고쳐 죽어….” 고려의 충신 정몽주는 이방원의 칼에 숨졌다. 조선의 공신 정도전도 결국 이방원의 칼에 숨졌다. 정도전은 죽으면서 이런 말을 남긴다. “나는 정말로 최선을 다했다.”자, 이제 그에게로 돌아가자. 그는 아무런 의도 없이 정치의 한복판에 서게 됐다. “무엇이 가장 옳은 길인가?” 그는 도덕적 딜레마에 빠졌다. 과연 그에게 탁월한 처방이란 게 있는 것일까? 드라마 <정도전>의 지혜를 빌려 아이디어를 내 보자.
유연한 사고 가져야 첫째, 충성(忠誠)이다. 정몽주를 따라보자. 누구를 향한 충성인가? 영웅 이순신은 12척의 배로 300척이 넘는 왜 선을 무찔렀다. 이순신은 이렇게 외친다. “충(忠)은 왕이 아닌 백성을 향한 것이다.” 하버드대 마이클 샌델은 베스트셀러 의 저자다. 샌델은 이렇게 외친다. “정의란 미덕을 키우고 공동의 선(善)을 고려하는 것이다.” 교회는 그리스도를 따른 사람들의 공동체다. 구성원 모두가 나름대로 돈과 시간과 에너지를 투자했다. 흔쾌히 기회비용을 내 놓은 것이다. 매몰비용을 고려해서는 안 된다. 교회는 어느 누구의 소유도 아니다. 충(忠)은 소장파, 노장파, 목사님이 아닌 공동선을 향해야 한다. 공동선이란 무엇인가? 모두에게 행복을 주는 것이다. 샌델은 정의의 기준으로 자유와 평등보다 행복을 최고로 여겼다.둘째, 유연(柔軟)이다. 이방원을 따라보자. 이런들 어떠하고, 저런들 어떠하겠는가? 노장파의 주장이 틀리지 않다. 목사님은 20년 동안 교회를 이끈 훌륭한 리더다. 엄청난 일을 했다. 어떤 다른 목사가 이를 대신할 수 있겠는가? 그대로 원로목사로 대우하고, 젊은 목사를 선발하면 되지 않는가? 혁신이 웬 말인가? 교회가 평화로운데 굳이 바꾸면 혼란만 야기된다. 잘못하면 교회가 둘로 갈라진다. 소장파의 대의명분도 틀리지 않다. 한 목사님이 너무 오래 통치했다. 이제 바꿀 때가 됐다. 박수칠 때 떠나야 한다. 교회에 청년은 사라지고 노인과 그 자녀들만 남았다. 이제 새로운 리더가 필요하다. 혁신을 통해서 다시 태어나야 한다. 이래도 안 틀리고, 저래도 안 틀린다. 노자는 무위자연(無爲自然)을 얘기했다. 억지로 하지 않고 자연의 순리에 따르는 것이다. 그는 3대 미덕으로 자애, 검약, 나서지 않음을 말했다. 자애 때문에 용감할 수 있고, 검약 때문에 널리 베풀 수 있으며, 나서지 않음 때문에 천하를 다스릴 수 있다.셋째, 최선(最善)이다. 정도전을 따라보자. 누구를 위한 최선인가? 자신을 위한 최선이 돼야 한다. 정치적 인간이란 무엇인가? 자신을 들여다보기 두려워 세상을 비판하는 사람이다. 도덕적 인간이란 무엇인가? 자신이 부족해서 세상을 비판하고 싶지 않은 사람이다. 종교적 인간이란 무엇인가? 자신의 마음과 세상의 모습을 연관시켜 보는 사람이다. 사람들은 보통 상대가 싫거나 부러울 때 비판한다. 부러움을 느끼지 않고, 가엾게 보일 때 비판해야 한다. 먼저 비난과 비방, 험담과 모함을 하지 않는 사람이 돼야 한다. 우선 자신과의 싸움에서 이기고, 이어 세상과의 싸움에 임해야 한다. “내면에서 하나를 이루면 파워가 생기고, 외부와 하나를 이룰 때 평화가 찾아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