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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태완의 ‘디자인 싱킹(Design Thinking)’⑧ 통계는 디자인 감각 완성하는 수단 

통계자료와 직관·통찰의 균형이 중요 … 빅 데이터 혁명으로 더욱 편리해져 

김태완 ‘완에디’ 디자인컨설팅 대표

▎소니 창업주인 모리타 아키오 사장은 1978년 워크맨 개념의 제품을 소비자가 원하는 않는다는 통계자료에도 본인의 직관과 통찰을 믿고 제품을 내놓아 대성공을 거뒀다.
2014년 각종 언론 매체에서 가장 많이 등장한 단어 중 하나가 통계다. 놀라운 속도록 쌓여가는 방대한 양의 빅 데이터(Big Data)는 각종 통계 자료의 원천이 되고 정부와 기업에서 여러 지표를 만들어냈다. 실제로 정부와 기업에서 새로운 프로젝트를 기획할 때 가장 먼저 검토하는 자료가 통계 자료다. 지금까지의 모든 성과와 시장조사 결과가 한눈에 알아보기 쉽게 수치화된 자료로 만들어지기 때문이다. 하지만 통계 자체로는 직관과 통찰력이 수반되지 않은 수치일 뿐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하는지 완벽한 해답을 갖고 있는 건 아니다.

일반적으로 통계는 믿을 수 있는 자료로, 특히 중대한 결정을 할 때 설득력을 높이는 효과가 있다. 한국지엠에 재직할 당시 매주 사장 주최로 부문장 회의가 있었다. 회의 특성상 요약된 보고가 주를 이뤘고 간결하게 정리된 향후 계획을 공유했다. 그중 마케팅 부서의 경우 90% 이상 통계자료였다. 차종·기간별 판매량을 분석하고 소비자 설문조사를 통해 나온 자료를 토대로 다음에 개발될 차량을 정하는 식이다. 디자인 관점에서 예측한 자료가 있었지만, 수치화된 통계자료에 맞서 다른 의견을 내놓는다는 게 쉽지 않은 일이었다. 기업의 입장에서 객관적인 자료를 놓고 이와 다른 주관적인 의견에 손을 들어준다는 건 모험을 감행한다는 의미이기 때문이다. 이렇듯 통계는 성공 확률을 높이기 위한 수단이자 실패 확률을 낮추기 위한 방패막인 동시에 기업의 결정권자들에게 불안감을 제거해 주는 쉽고도 강력한 처방전으로 사용됐다.

하지만 통계만 따르다 보면 창의적인 기업, 혁신 기업으로 도약하기 어렵다. 한 예로 소니 워크맨의 탄생에 대한 이야기다. 1978년 소니 창업주인 모리타 아키오 사장은 걸어 다니면서 음악을 들을 수 있는 소형 오디오를 만들겠다는 결심을 한다. 당시만해도 모리타 사장의 계획은 터무니 없는 말에 불과했다. 녹음 기능은 빼고 재생 기능만 있는 오디오를, 그것도 걸어 다니면서 듣는다는 건 당시 소비자 중 누구도 원한 제품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이미 소비자 조사 통계자료를 통해 검증된 사실이었다. 주위의 만류에도 모리타 사장은 본인의 직관과 통찰력을 믿고 워크맨을 개발해 판매했다. 그 결과는 예상 밖이었다. 워크맨은 전 세계적으로 인기 상품이 되었고 가장 받고 싶은 선물 1순위가 됐다. 또 사람들의 라이프 스타일을 바꾸어놓았다.

당시 모리타 사장은 이런 말을 남겼다. “고객들은 무엇이 가능한지 모른다. 미국의 자동차 회사 포드의 창업자 헨리 포드가 사람들에게 무엇을 원하느냐고 물었다면 그들은 아마 ‘자동차가 아닌 더 빠른 말’이라고 대답했을 것이다. 새로운 아이디어를 얻기 위해 시장조사를 하는 것은 어리석은 짓이다.” 이 말은 소비자에게 새로운 제품을 선보여 생활을 바꿔 나갈 수 있는 건 기업의 몫이라는 것이다. 그 이유는 기업은 무엇이 가능 한지를 알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그래서 소니는 워크맨을 통해 소비자들에게 세대를 뛰어 넘는 추억을 선물했다. 그리고 이어 카셋트 테이프·CD·MP3 등으로 기술 발전을 이끄는 데 선도적인 역할을 했다.

통계는 성공 확률 높이고 실패 확률 낮춰

직관과 통찰력은 끊임없이 고민하고 할 수 있다는 믿음을 가진 사람들에게서 나온다. 통계를 이용하면 한발 더 앞서 나갈 수 있지만 직관을 이용하면 날개를 달 수 있다. 디자인을 잘하는 디자이너에게도 직관이라는 게 있다. 흔히 감각이라고 말한다. 디자이너의 감각은 더 나은 제품을 만들기 위한 해결방법을 찾는 과정에서 얻어진 것이라 과학·수학으로 설명하기 어렵다. 그냥 자연스럽게 감각과 느낌이 머릿속부터 눈으로, 손끝으로 전해진다. 어떤 면에서 보면 온몸의 감각으로 터득한 통계의 결과가 바로 디자인이다.

한 다큐멘터리 프로그램에서 애플의 로고를 디자인한 산업디자이너 롭 제노프는 이렇게 말했다. “애플 로고가 황금비율(1:1.618)이라고요? 전혀 몰랐는데요. 로고를 디자인할 당시 황금비율을 전혀 고려하지 않았어요. 저는 수학을 잘 못하거든요. 제가 알고 있던 건 스티브 잡스가 귀여운 걸 좋아하지 않는다는 것뿐이었어요. 그 당시에는 컴퓨터로 정교한 작업을 할 수 없었기 때문에 그냥 손으로 직관적이고 자연스러운 감각을 살려 그려냈습니다” 제노프의 대답은 디자이너의 감각이 얼마나 특별한 것인지, 경영자의 직관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말해준다.

자동차 회사에서는 3~5년 후에 생산될 자동차의 색을 미리 정하는 데, 이때 사용되는 게 과거의 판매량 통계자료다. 우리나라의 경우 검정색·흰색·은색회색 같은 네 가지 색상의 자동차가 꾸준하게 80% 이상 판매돼 다른 색상에 크게 중요성을 두지 않는 게 관례였다. 그런데 한국지엠에서 경차인 스파크에 핑크색상을 출시해 화제가 됐다. 한 판매 대리점 직원과 대화를 나눈 게 기억이 난다. 그 직원은 “새로 출시된 핑크색 스파크 덕분에 스파크 판매량이 늘었습니다. 사람들이 어디선가 그 차를 보고서는 판매점을 찾아와요. 결국에는 흰색을 구입하는 경우가 많지만 이렇게 예쁜 색을 만들어주셔서 고맙습니다”라며 악수를 청했다. 때로는 새로운 도전이 통계를 뒤엎는 결과를 가져 오기도 한다.

통계자료만으로는 프로젝트를 성공시키기 위한 아이디어가 부족하다. 바퀴를 달아서 굴릴 것인지, 날개를 달아서 날릴 것인지 그 방법은 통계자료에 나타나 있지 않다. 이 부분은 직관과 통찰력으로 채워져야 한다. 결국 직관과 통계의 적절한 균형이 필요하다. 물론 상황에 따라 한쪽으로 치우친 결정을 하는 경우도 있겠지만 궁극적으로는 균형을 맞추는 게 현명한 방법이다.

통계는 거짓이 아니지만, 거짓말쟁이는 통계를 이용한다는 말이 있다. 숫자라는 강력한 힘을 과시해 누군가에게 유리한 자료를 만들어낼 수 있다는 말이다. 그렇기 때문에 경영자들은 숫자에 속지 말아야 한다. 그리고 직관에 대한 감을 잃지 않도록 끊임없이 감각을 키우는 연습을 해야 한다. <오리진(Origin)이 되라>는 책의 저자는 “경영자에게 필요한 아이디어의 80%는 경영 테두리 밖에서 나온다”고 말했다. 또 “다른 세계와의 융합을 통해 ‘나다운 것(Originality)’을 찾아낼 수 있다”고 했다. 너무 깊게 들여다보면 함정에 빠질 수 있으니 적당한 거리를 유지하면서 취할 건 취하고, 버릴 건 과감하게 버려야 한다는 의미다.

핑크색 스파크 성공의 의미

디자인 트렌드도 과거의 데이터를 수학적·통계적 방법으로 분석한 결과를 이용한다. 통계와 디자인은 더 이상 대립적인 관계가 아니다. 더 나은 제품, 더 나은 세상을 만드는 데 서로가 필요하다. 어제가 과거가 되어버리는 초고속 시대에 살고 있는 지금 통계는 빅 데이터를 활용해 새로운 해석으로 미래를 예측하기 위한 준비를 하고 있다. 통계가 사람의 직관을, 디자이너의 감각을 대신할 수는 없지만 충분히 든든한 동력장치 역할을 할 수는 있다.

김태완 - ‘완에디’ 디자인컨설팅 대표. 미국 브리검영 대학교에서 디자인을 전공하고 영국 왕립예술학교(RCA)에서 디자인 석사를 받았다. 자동차·항공기를 디자인하는 영국 IAD(후에 대우 워딩연구소)에서 일하다 이탈리아 피아트로 옮겨 친퀘첸토(피아트500)의 컨셉트 모델을 디자인했다. 이후 한국GM 디자인 총괄 부사장을 지냈다. wanedesign@gmail.com

1269호 (2015.01.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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