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스토케 제공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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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시작된 ‘프랜대디(친구 같은 아빠)’ 열풍이 해를 넘어서도 뜨겁다. 초보 아빠가 자녀를 돌보거나 함께 여행을 떠나는 각종 육아 예능 프로그램이 큰 인기를 끌어서다. 퇴근 후 ‘아버지 교실’을 찾거나 육아에 적극적으로 개입하고, 아예 육아휴직을 하는 남성들도 점차 느는 추세다. 과거 가부장적인 가장이 보편적인 아버지 상이었다면 최근에는 자녀와 함께 놀고, 소통하는 아버지가 바람직한 모델로 떠올랐다. 사실 ‘프랜대디’의 원조 모델은 북유럽 가정에서 비롯됐다. 영국의 더 타임스는 2011년 자녀와 많은 시간을 보내며 정서적 유대감을 키우는 북유럽 아버지를 두고 ‘스칸대디’라는 용어를 처음 사용했다. 육아에서 아버지와 어머니의 역할을 따로 구분하지 않고, 자녀의 눈높이에 맞추는 북유럽의 교육방식은 국내에서도 각종 언론과 도서를 통해 소개되며 관심을 받고 있다.세계적인 유아용품 기업 ‘스토케’가 ‘프랜대디’의 본고장인 노르웨이에서 탄생한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인지도 모른다. 국내에서 스토케 브랜드는 ‘유모차계의 벤츠’로 불리는 명품 유모차로 유명하다. 제품 가격이 100만원을 호가할 만큼 비싸다. 비싼 가격만이 명품으로 불리는 이유는 아니다. 스토케 제품의 가장 큰 특징은 인체공학적으로 설계된 디자인이다. 유모차를 비롯해 각종 유아용 침대, 의자 등 영유아를 대상으로 한 제품이지만 내구성은 성인 가구 못지 않다는 게 스토케 측의 설명이다. 그 배경에는 평범한 가구 회사에서 출발한 스토케의 역사가 자리잡고 있다.스토케의 역사는 창업주인 게오르그 스토케가 1932년 노르웨이 알레순드에 공장을 설립하면서 시작됐다. 그의 목적은 편안한 버스 좌석을 제작하는 것이었다. 산업 디자인에 대한 인식이 높지 않았던 시기에 스토케는 인체공학적인 디자인을 시도했다. 이는 곧 버스 좌석뿐 아니라 다른 가구를 만드는 데도 적용됐다. 1950년대 초반 들어서 전문 디자이너와 건축가를 고용해 가구를 제작하기 시작했다. ‘가장 편안한 가구’를 목표로 한 스토케의 단순하면서도 실용적인 디자인은 곧 스칸디나비안 디자인을 대표하는 공식이 됐다.
자녀의 눈높이 맞추는 북유럽 교육방식그렇게 탄생한 제품이 바로 유아용 의자 ‘트립트랩’이다. 스토케 최초의 유아용품이기도 하다. 이 제품을 디자인한 주인공은 노르웨이 출신의 세계적인 산업 디자이너 피터 옵스빅이다. 옵스빅은 기능에 초점을 둔 디자인으로 유명하다. 옵스빅은 어린 아들 토르에게서 제품 아이디어를 얻었다. 성인용 식탁 의자에 앉아 밥을 먹던 아들이 식탁에 팔이 닿지 않아 음식을 제대로 먹지 못하는 모습을 본 옵스빅은 높낮이를 조절할 수 있는 디자인을 고안했다. 그 결과 아이의 성장 과정에 맞춰 14단계로 조절할 수 있는 유아용 식탁 의자를 개발했다. ‘나의 목표는 누구나 앉을 수 있는 의자를 만드는 것’이라고 공언한 옵스빅의 말대로 이 제품은 유아부터 성인까지 모든 연령이 사용할 수 있다. ‘유아용 가구는 얼마 못 쓰고 버린다’는 고정관념을 과감히 깬 것이다.트립트랩은 1972년 출시되자마자 높은 판매고를 올리며 유아용 가구시장에서 큰 반향을 일으켰고, 곧 스토케의 스테디셀러로 자리잡았다. 지금까지 전 세계적으로 900만대 이상 팔려나갔다. 트립트랩의 성공을 계기로 스토케는 평범한 가구 회사에서 유아용품 전문 업체로의 변신을 꾀했다. 이후 어린이용 가구 제작 부서를 별도로 운영하고 아이를 위한 제품 기획과 생산에 초점을 맞추며 전 세계 50여 개국에 진출했다. 1990년대 들어서는 ‘어린이와 함께 자라는 가구’라는 콘셉트를 내세우며 빠른 행보를 이어갔다. 하루가 다르게 크는 아이들이 짧게 사용하고 버리는 가구가 아니라, 크기와 모양을 조절하거나 용도를 달리해가며 지속적으로 사용할 수 있는 제품을 만드는 것을 목표로 내세웠다.
유아용 의자 성공 후 본격 변신
▎‘평생 쓰는 가구’ 임을 강조한 유아용 의자 ‘트립트랩’.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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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립트랩에 이어 1999년 출시한 유아용 침대 ‘스토케 슬리피’는 길이 확장이 가능해 신생아부터 키 165cm에 이르는 성인까지 쓸 수 있다. 침대로 쓴 이후에는 일반 소파로 변신하는 것이다. 기저귀 교환대인 ‘스토케 케어’의 경우 선반이나 책상으로 변형 할 수 있다. ‘트랜스포머’처럼 변신하는 제품이 출시할 때마다 히트를 치자 스토케는 1999년 유아용품 전문 업체로 완전히 방향을 틀었다. 스토케가 유아용품을 개발하며 최우선으로 여긴 가치는 ‘아이에게 가장 좋은 것’이었다. 아이가 부모와 밀착 돼 교감하고, 세상을 인지하면 부모와 아이 모두 편안함과 안정감을 느낄 수 있다는 북유럽식 사고 방식에 따라 모든 제품을 개발했다.트립트랩이 아이와 부모가 같은 식탁에 앉아 식사를 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해 개발됐듯 유모차도 아이와 엄마가 교감할 수 있게 디자인했다. 유모차 제작은 ‘트립트랩에 바퀴를 달아보자’는 단순한 발상에서 비롯됐다. 이렇게 나온 유모차가 2003년 출시한 ‘스토케 익스플로리’다. 이 제품은 시트를 높이고, 바닥 부분에 발을 넣을 수 있는 공간을 둬 부모가 아이에게 더 가까이 다가갈 수 있도록 했다. 유모차가 나아가는 방향으로 아이를 두는 대신, 유모차를 끄는 부모와 아기가 마주볼 수 있도록 디자인해 교감을 높였다.제품 개발을 주도한 힐데 안겔포스 디자인 혁신 총괄이사는 “아이가 가장 필요로 하는 유모차를 개발하기 위해 지속적인 연구와 설문 조사를 진행했다”며 “연구를 통해 아이가 외부의 낯선 세계를 바라봤을 때보다 엄마나 아빠와 눈을 마주칠 때 느끼는 안정감이 훨씬 더 크다는 결과를 얻었고, 업계 최초로 유모차에 양대면 방식과 높은 시트를 적용했다”고 말했다. 성인의 시선이 아닌 아이의 입장에서 제작한 유모차는 출시 이듬해 미국 시사주간지 타임이 선정한 ‘가장 위대한 발명품’ 중 하나로 꼽히기도 했다.이후 스토케 유모차는 국내에서도 입소문을 타기 시작했다. 스토케가 2006년 한국 시장에 진출하기 전부터 일부 엄마들 사이에서 ‘명품 유모차’로 불리며 직구 열풍이 불기도 했다. 2012년 11월 스토케 코리아를 설립할 당시 스토케 측은 “한국 매출이 아시아·태평양 시장의 30%를 차지한다”고 밝혔을 정도로 인기를 끌었다. 주력 제품인 익스플로리 유모차는 전 세계 물량의 13%를 한국에서 판매했다. 지사를 설립하기 전 5년 동안 연평균 매출 성장률이 50%에 달해 본사에서도 눈 여겨 보던 시장이 바로 한국이었다.토마스 스테빅 최고경영자(CEO)는 2012년 스토케 코리아를 설립하며 “지난 2006년 유모차로 한국 시장에 진출하며 한국 프리미엄 유아용품 시장의 성장 가능성에 대한 확신을 얻게 됐다”며 “스토케 코리아 출범을 통해 기존의 주력사업이었던 유모차 시장에서의 라인업을 강화하고, 유아용 가구 등 전통적인 제품에 대한 시장 공략을 가속화해 프리미엄 유아용품 브랜드로서 위상을 높일 것”이라고 포부를 밝혔다. 이후 스토케는 국내 프리미엄 유아용품 시장을 선도하며 승승장구해왔다. 한때 본국인 노르웨이를 비롯해 유럽·미국 등 해외 시장에 비해 2배 가까운 가격을 책정해 논란이 되기도 했다. 그럼에도 국내에 진출한 40개가 넘는 해외 유모차 브랜드 가운데 압도적인 시장 점유율을 자랑하며 본국 못지 않은 인기를 누렸다.노르웨이 출신의 이 유아용품 기업은 지구 반대편에서의 사랑이 이어지자 한국 기업으로 주인을 바꾸기에 이른다. 스토케를 인수한 기업은 국내 게임업체 넥슨의 지주회사인 NXC다. NXC의 투자전문 자회사인 NXMH BVBA의 벨기에 지부가 스토케를 인수한 것. 김정주 NXC 대표는 2013년 12월 스토케 인수를 밝히며 “(스토케가) 글로벌 브랜드로서 성장 가능성이 유망하다고 판단해 인수를 결정했다”며 “80년 동안 스토케를 운영해온 스토케 가문에 이어 운영을 맡게 돼 영광”이라고 말했다.
스토케 새 주인에 한국 넥슨의 지주회사 NXC
▎창업 초창기인 1940년대 스토케 임직원들 모습.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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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르웨이 현지 언론에 따르면 당시 스토케 인수가격은 4억8300만 달러(약 5225억원)로 알려졌다. 스토케는 그간 다른 가구 업체와 사모투자전문회사로부터 인수 제안을 받았으나 결국 NXC를 택하며 한국과의 남다른 인연을 이어가게 됐다. 이로써 창업주인 스토케 가문이 3대째 이어온 가업이 80여년 만에 한국 기업으로 넘어왔다.이를 두고 업계 관계자는 “(스토케 인수가) 넥슨이 영역을 넓히고 있는 분야인 캐릭터·교육교재 등 어린이 관련 사업과 시너지 효과를 낼 수 있을 뿐 아니라 글로벌 인지도를 높이는 데도 도움이 될 것”이라고 평가했다. 스토케의 주인이 바뀐 후 1년이 지났지만 아직 이렇다 할 성과는 보이지 않고 있다. 다만, 이제 더 이상 노르웨이의 장수기업이자 가족회사가 아니란 점에서 큰 변화가 예상된다. ‘평생 쓰는 유아용품’을 지향하며 신제품도 곧 스테디셀러로 만드는 스토케의 북유럽 DNA가 새 주인을 만나 어떠한 시너지 효과를 가져올지 귀추가 주목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