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흔히 접하는 ‘기업의 사회적 책임(CSR)’이란 말이 있다. 연말에 소외된 이웃에게 월동용품을 전달하고, 직장인들이 끝전을 모아 고아원과 노인정에 기부하거나 기업 오너들이 장학재단을 만들어 가정형편이 어려운 학생들에게 장학금을 주는 사례 등이 여기에 속한다. 그런데 한 발 더 나아가 ‘기업의 공유가치 창출(CSV, Creating Shared Value)’이라는 개념이 새로 등장해 눈길을 끌고 있다. CSV란 기업의 목적을 단순히 이윤 창출에 두는 것이 아니라, 생산활동을 통해 사회적 이익을 함께 이끌어낸다는 개념이다. CSR이 기업 이익의 일부를 단순히 사회에 기부하거나 나누는 것인데 비해, CSR은 기업을 재정의하는 한편 기업의 목적과 사회의 가치를 일치시키는 철학을 담고 있다. 네슬레가 커피의 생산과 판매를 한 지역에서 함으로써 현지 농부들의 소득 증대를 꾀하고, 품질을 개선시키는 것도 일종의 CSV라고 할 수 있다.
이에 발 빠른 기업들은 일찌감치 CSV를 조직문화로 받아들이기 시작했다. 앞으로 CSV가 CSR을 대체할 것으로 보이기 때문이다. 사실 기업들로서는 CSR보다는 CSV가 반갑다. 이유는 간단하다. CSV가 비용이 적게 들기 때문이다. 전국경제인연합회가 발표한 기업들의 사회공헌 실태조사 결과를 보면 매출 상위 600개 기업들은 지난 2013년 CSR 비용으로 약 2조8115억원을 썼다. 기업당 46억9000만원씩 쓴 셈이다. 기업으로서는 CSR 활동 자체가 고비용·비효율의 문제를 안고 있으며, 사회공헌에 대한 지나친 강박을 받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사실 CSR의 책임 범위는 기업의 ‘자유재량’이다. 기업이 득이 되면 하고, 아니면 안 해도 그만인 활동이다. 그러나 기업은 이미지 제고와 마케팅 차원에서 많은 비용을 들여 CSR 활동을 할 수밖에 없는 입장이다. 실제로 기업의 사회공헌 담당자들의 주된 고민은 어떻게 적은 비용으로 높은 홍보 효과의 CSR 활동을 만들어낼까 기획하는 일이다.
그런데 돈이 거의 들지 않는 CSV의 등장은 기업들로서는 혁신적인 일이다. 기업의 수익을 물리적으로 나누지 않고, 기업 활동으로 사회공헌을 하면 되기 때문이다. 실제로 국내에서는 최근 기업들이 사회단체에 노래를 만들어주는 등의 ‘돈이 들지 않는’ 재능 기부 형태로 CSV를 실천하고 있다. 기업들은 이것만으로 CSV를 이행하고 있다고 말한다. 더불어 CSV가 최신 트렌드라며 자신이 변화에 민감한 기업이라는 점을 홍보·마케팅하고 있다. CSV가 사회공헌 비용의 딜레마에 빠졌던 기업들에게 퇴로를 열어 준 셈이다.
※ 해당 기사는 유료콘텐트로 [ 온라인 유료회원 ] 서비스를 통해 이용하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