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품 사용설명서 제작 전문 한샘EUG 김양숙 대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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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주력 산업은 여전히 전기전자·자동차 중심의 제조업이다. 그런데 이들 제품에 공통적으로 들어가는 게 하나 있다. 바로 사용설명서다. 많은 제조 업체가 제품의 사용설명서를 내부에서 직접 만든다. 그러나 제조산업이 일정 수준에 오르고 수출이 증가하면 이를 전담 제작하는 곳이 등장한다. 이른바 ‘테크니컬 커뮤니케이션(TC)’이라고 불리는 분야다. 국내 TC산업은 아직 불모지나 다름 없다. 그러나 제조업의 성숙과 더불어 TC산업의 수요도 더욱 늘어날 전망이다.김양숙(54) 한샘EUG 대표는 국내에 TC 비즈니스를 도입한 인물이다. 1990년 회사를 설립해 국내 최초로 TC 전문 서비스를 시작했다. 1997년 삼성전자가 수출하는 모바일 기기 매뉴얼의 현지화 서비스를 계기로 사업을 키워왔다. 현재 삼성전자를 비롯해 안랩·경동나비엔·LSIS 등 국내 기업과 IBM·캐논·지멘스·필립스 등 글로벌 기업에 매뉴얼 개발과 현지화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 지난해 매출은 137억원이다. 최근에는 전문 인력 양성에도 공을 들이고 있다. 경기도 수원의 한샘EUG 사무실에서 김 대표를 만나 국내 TC산업의 성장 가능성을 물었다.
들어오면서 보니 사무실의 보안이 굉장히 철저하다.“매뉴얼을 만든다는 건 해당 제품에 대한 정보를 대부분 갖고 있다는 것이다. 출시가 안 된 제품도 마찬가지다. 고객사의 정보를 지키고 신뢰를 얻기 위해 보안이 철저할 수밖에 없다.”
TC산업이라는 개념이 낯설다.“과거에는 ‘테크니컬라이팅’이라고 불렸다. 쉽게 말해 사용설명서를 만드는 작업이다. 설치·사용·수리 등 제품에 대한 사용정보를 소비자·설치자·서비스맨를 대상으로 제공하는 것이다. 과거 인쇄물 위주에서 최근 온라인·모바일 등 전자형식으로 매뉴얼 형태가 바뀌면서 ‘쓴다’는 의미의 테크니컬라이팅에서 여타 매체를 포함하는 테크니컬커뮤니케이션으로 개념이 넓어졌다.”
해외 시장 상황은 어떤가.“TC산업은 제조업을 따라 성장한다. 제조업 강국일수록 TC산업도 발달했다. 미국·독일은 1950년대부터 관련 시장이 형성됐고, 일본은 1970~80년대 성장했다. TC산업의 분야도 각국의 제조업 경쟁력에 따라 다르다. 미국·독일은 주로 항공·자동차·중장비·컴퓨터 등 전문기술 제품이 주도하고 있고, 일본은 TV·휴대폰·냉장고 등 소비재 상품군이 많다.”
한국도 나름 제조업 강국인데.“제조업 수준은 올랐지만 미국·독일·일본에 비해 역사가 짧아 TC산업이 아직 걸음마 단계다. 수요는 증가하고 있는데, 전문 인력이나 교육기관이 부족한 게 현실이다.”
최근 들어 수요가 증가하는 이유는.“20년 전만 해도 국내 제조 업체는 수출이 많지 않았다. 내수용으로 국문 매뉴얼만 필요했다. 상품 자체도 복잡하지 않아 설명서가 크게 중요하지 않았다. 그러나 제조업 수출이 증가하면서 현지화한 매뉴얼이 필요하게 됐고, 제품도 복잡해져 설명서의 중요성이 커졌다. 또 제조업 초기에는 제조·개발에 치중하지만, 제조 기술력이 어느 수준에 도달하면 차별화를 위해 매뉴얼과 같은 디테일에 신경을 쓰게 된다. 사실 그동안 기업들은 이 부문에 고급 인력을 투입하지 않았다. 이에 따라 국내 제조업체가 전문성과 경쟁력을 갖춘 테크니컬 커뮤니케이터를 찾기 시작한 것이다.”
간혹 수입 제품에서 오역된 사용설명서를 보기도 한다.“제품 매뉴얼의 현지화는 제품 사용법의 안내, 사용자의 안전과 직결된다. 매뉴얼의 질이 떨어지면 해당 제조사에 대한 이미지가 실추될 뿐 아니라 심각한 경우 각국의 관련 규제로 인해 손실로 연결되기도 한다. 제조사가 쉬쉬하고 있지만, 중국에서 이런 사례가 심심치 않게 발생한다. 제품을 해외에서 제대로 판매하려면 현지 시장에 적합한 형식으로 현지화한 매뉴얼이 필수적이다. 단순히 번역만 하는 게 아니라 해당 시장에서 읽히는 용어와 이미지를 넣고, 규정에 맞춰 적용하는 게 매뉴얼의 현지화다.”
모바일 시대로 접어들면서 TC산업도 변화가 예상되는데.“TC산업이 기술의 영향을 생각보다 많이 받는다. 모바일화는 기술의 진화로 사용자가 정보를 습득하는 방식에 변화가 생긴 것이다. 인쇄물로 제공되는 사용정보 역시 모바일 기기에서 접근하고 구독할 수 있도록 제작하는 게 중요해졌다. 이전에 인쇄물 환경에서의 가독성·사용성을 연구했다면 이제는 전자 데이터의 가독성·사용성을 연구해야 한다. 또 전에는 단순히 인쇄 매체에 있는 글과 이미지를 그대로 옮겼는데, 지금은 모바일 환경을 위한 별도의 매뉴얼을 제작해야 한다.”
한국TC협회 활동 등 전문가 양성에 힘을 쏟고 있는데.“테크니컬 커뮤니케이터는 상당히 전문 인력이다. 외국어 능력뿐만 아니라 제품 정보를 파악하는 학습능력, 정보 수집 능력, 표현 능력, 시각화 능력과 팀 플레이를 위한 협업 능력도 갖춰야 한다. 그러나 워낙 시장 자체가 생소하다 보니 유능한 자원이 유입되지 않고 있다. 교육기관도 없고 실무를 경험할 곳도 적어 전문가를 키우기 어렵다. 전문가가 없으면 시장의 수준도 올라가기 어렵다. 소수가 아무리 잘 해봐야 시장 자체가 저평가된 상황에서는 잘 나가는 소수도 제 가치를 인정 받지 못한다. 결국 교육이 TC산업의 시작이자 끝이라는 생각이 들어 한국 TC협회를 통해 전문가 양성에 신경을 쓰기 시작했다.”
회사 성장을 위한 앞으로의 전략은.“일단 시장을 확대시키는 게 중요하다고 본다. 해외 시장 진출과 함께 의료장비·자동차 등 상품군을 확대해 비즈니스 영역을 다변화할 방침이다. 해외 시장 중에서는 중국·베트남 등 아시아 시장을 겨냥할 계획이다. 일본을 제외하면 TC산업의 역량을 갖춘 업체는 아시아권 내에 거의 없다. 특히 중국에 제조회사가 우후죽순 생기고 있는 만큼 TC 수요도 급증하고 있다. 지금 들어가면 좋은 결과를 가져올 것으로 기대한다. 현재 9월을 목표로 중국 현지법인 설립을 추진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