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olumn

[Letter] 혼란만 부추기는 금융당국 엇박자 

 

얼마 전 30대 초반의 한 예비 창업자를 만났습니다. 그는 함께 일할 동료를 모으고, 투자를 받으러 다니며 바쁜 일상을 보내고 있었습니다. 현재 가장 힘든 점이 무엇이냐고 물었더니 생각지도 못한 답이 돌아왔습니다. “통장 개설이 너무 힘들어요.” 사연을 들어보니 금융감독원이 ‘대포통장’ 개설을 막겠다며 신규 통장 발급을 제한하는 바람에 예비 창업자 신분으로는 통장 개설이 어렵다는 것이었습니다. 금감원은 최근 시중은행에 신규 통장 개설과 관련한 관리지침을 내려 보냈습니다. 지점과 가까운 주소지의 신청자만 받아야 하며, 통장 개설 사유를 명기하고, 이에 대한 증명을 받으라는 겁니다. 소득을 입증할 서류도 반드시 첨부해야 합니다. 신분이 보장된 직장인도 명함이나 재직증명서·신용카드 등 2차 신분 확인 절차를 밟아야하며, 자영업자는 사업자등록증 사본을 내야 합니다. 가정주부나 구직자·대학생·노인 등 실질적으로 소득이 없는 사람은 사실상 통장을 새로 만들 수 없습니다.

주택가의 한 은행 영업점을 방문해 한동안 지켜봤습니다. 왜 통장 개설이 안 되느냐며 호통치는 60대 어르신, 곤혹스러워 하는 30대 아기 엄마, 황당하다는 듯 쓴웃음 짓는 20대 청년…. 금감원이 은행·개인 간에 사적 계약에 간섭해 혼란을 초래한 것입니다. 물론 대포통장은 근절돼야 할 범죄입니다. 그렇다고 소득 유무를 따져 무작정 통장 개설을 막는 것은 과잉 조치입니다. 부모나 배우자, 자녀 등을 통한 연대 신분 확인만으로도 충분할 텐데 말이죠.

이런 가운데 금융위원회는 오히려 통장 개설을 편리하게 하겠다며 비대면 영역을 강화하겠다고 합니다. 은행 영업점에 방문하지 않고도 집에서 화상통화·공인인증서 등 간단한 본인 인증 절차만으로 통장을 만들어주겠다는 겁니다. 시중은행들이 영업점 운영비를 줄이기 위해 이 같은 안을 금융위에 제시했고, 임종룡 위원장은 이를 받아준 것입니다. 이쯤에서 금융위·금감원에 묻고 싶습니다. 당국의 정책 목표는 대포통장 근절인지, 아니면 거래 편리성 제고인지. 소비자들은 어느 장단에 맞춰야 하는지. 숙성되지 않은 정책과 조율되지 않은 업무 처리, 두 기관의 기싸움이 혼란을 부추기고 금융당국의 신뢰성도 떨어뜨리는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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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86호 (2015.05.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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