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olumn

눈치 좀 그만 봅시다 

 

진재욱 하나UBS자산운용 대표

지난 25년간 글로벌 금융회사에서 일했다. 그 과정에서 다양한 가치의 탄생과 충돌이 얼마나 중요한 일인지 체감했다. 관리자가 된 지금, 나름 직원들에게 그것을 강조하고 있다. 다양성(Diversity)의 핵심 가치는 명료하다. 여러 인종, 연령, 종교, 언어, 문화적 배경을 가진 사람들이 자연스레 어울리는 것. 그리고 그것들이 자유롭게 결합해 더 나은 판단과 결과를 만들어내는 것이다. 조직 내에 같은 생각을 가진 구성원만 존재한다면 급변하는 시장과 경쟁 환경에 효과적으로 대응하기 어렵다. 다양한 시각에서 시장과 이슈를 분석하고, 새로운 아이디어를 적용하지 않는데 유연하고 창의적인 대안이 나올 리 없다.

이런 측면에서 우리나라는 아쉬운 점이 많다. 단일 민족, 단일 언어, 단일 문화 국가의 특성인 듯하다. 그러나 이미 국가 간 경계가 희미해지고, 한국에 사는 외국인이 100만명이 넘는 시대다. 이제까진 ‘단일’이 화두였는지 몰라도 앞으로는 분명히 아닐 것이다. 그런데도 다양성의 시대는 아직 멀리 있는 것 같다.

한국인이 언어 생활 속에서 가장 많이 틀리는 동사 중 하나가 바로 ‘다르다’와 ‘틀리다’다. 많은 이들이 두 동사를 혼용한다. 그러나 ‘다름(Difference)과 틀림(Wrong)’은 명백히 다르다. 어쩌면 이러한 실수가 우리의 사고에 영향을 미치는지 모른다. 나와 생각이 다르거나, 나와 조건이 다르다고 상대방이 ‘틀리다’고 단정하는 식이다. 그러다 보니 무의식적으로 편견과 아집에 빠지게 된다. 갈등이 발생하고, 타협은 어려워진다. 다름을 인정하고 포용하는 게 중요하다고 말하면서도 실제로는 그렇게 행동하지 않는다. 지금 우리의 정치가 그렇고, 더 솔직히 말하면 우리의 행동이 그렇다. 나는 아니라고 할 게 아니라 함께 반성해야 한다.

우리의 사소한 일상부터 바꿔갔으면 한다. 사실 그리 어려운일도 아니다. 눈치 좀 덜 보고, 눈치 좀 덜 주면 된다. 우리나라기업 문화에서 골프를 좀 못 쳐도, 술을 잘 못해도 전혀 비즈니스에 지장이 없어야 한다. 한국인이라도 김연아나 류현진을 싫어할 수 있어야 한다. 다들 짜장면을 시킬 때 당당히 짬뽕이나 볶음밥을 주문할 수 있어야 한다. 따져보면 하나같이 과도한 ‘눈치문화’에서 출발한 것들이다. 그러니 아이들도 배운다. 다른사람을 이상한 사람, 비정상으로 생각하게 된다. 그게 다름 아닌 왕따다. 왜 다문화 가정 아이들이 손가락질을 받아야 하는가?

이젠 눈치 좀 그만 보고 살았으면 좋겠다. 다양성의 결여는 단순히 사회 문제로 끝나지 않는다. 다양성은 곧 힘이다. 우리 사회를 발전시켜온 많은 아이디어는 소수 문화나 소수 의견에서 출발했다. 지금 당연해진 대부분의 복지 정책은 10여년 전만해도 ‘헛소리’ 취급을 받았다. 다양성에 대한 존중이 사회를 한 단계 더 발전시키는 동력이 될 수 있다. 정부가 강한 의지를 보이고 있는 창조경제도 마찬가지다. 제대로 꽃을 피우려면 생각부터 변해야 한다. 창의성은 다양성 속에서 꽃 피고, 개방성 속에서 열매를 맺는다. 다양한 의견을 자유롭게 말할 수 있고, 그걸 거리낌 없이 받아들이는 분위기가 조성돼야 한다. 아무리 좋은 제도나 지원도 이게 없으면 소용이 없다. 우리는 좀 더 섞이고, 어울려야 한다. 한식의 상징과 같은 음식이 바로 비빔밥 아니던가?

1287호 (2015.06.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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