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olumn

[Letter] 지을 수 없는 어린이집 

 


얼마 전 한 월급쟁이 사장님을 만났습니다. 함께 나온 간부 직원은 취학 전인 두 아이를 기르는 워킹맘이었습니다. 그 워킹맘은 마음 놓고 아이를 맡길 어린이집 구하기가 하늘에 별따기보다 어렵다고 하소연했습니다. 아이가 태어나기도 전부터 어린이집을 알아보고 다녀야 한다는 얘기는 이미 전설에 가깝습니다. 오죽하면 ‘시월드’라도 아이를 맡아줄 수 있는 시부모를 둔 워킹맘이 부러울까요? 그러다 보니 직장어린이집이 아쉽답니다. 다니는 직장에서 아이를 돌보니 그만큼 믿고 맡길 수 있기 때문입니다.

사장님도 직장어린이집을 만들어주고 싶어하더군요. 능력있는 여직원들을 위해 육아 부담을 줄여주면 그만큼 실적이 올라가고 더 좋은 인재를 받아들일 수 있다고 생각하더군요. 하지만 만들어줄 수 없답니다. 매년 목표를 웃도는 실적을 보이는 사장님 입장에서 직원 복지를 위해 쓰는 돈은 별 문제가 되지 않는답니다. 다만, 오너(결정권자)가 아니어서 집행을 할 수 없다고 합니다. 반드시 해야 하는 복지도 아닌데 왜 투자하느냐는 핀잔만 듣는답니다. 오히려 “법률로 직장어린이집을 강제로 만들라는 규정이 있으면 좋겠다”고 말합니다.

현행 법률에 따르면 ‘상시 여성근로자 수 300명 이상 혹은 상시근로자 수 500명 이상인 기업’은 직장어린이집을 의무적으로 둬야 합니다. 10년 전 만들어진 규정입니다. 이 범주에 해당하는 기업은 대개 이름 있는 대기업이나 잘나가는 중견기업 정도입니다. 최근 야당에서 법률 개정안을 발의해 ‘상시근로자 수 300명 이상’으로 대상을 확대하려는 움직임이 있습니다. 하지만 그렇지 않아도 어려운 경기에 중소기업 경영에 부담을 준다는 반대 주장도 만만치 않습니다.

대통령은 취임 직후 워킹맘을 위해 직장어린이집을 확충하겠다고 공언했습니다만, 임기 절반을 넘긴 현재 여성 노동정책은 경력단절 여성들에게 시간제 일자리를 제공하는 데 집중하고 있습니다. 경력단절의 주요 원인이 보육이란 점은 간과한 모습입니다. 보육부담만 줄여줘도 직장을 그만두는 여성들이 크게 줄테니까요. 단기 경기 부양에 집중할지 복지를 통한 장기 생산력 강화에 투자할지, 경제와 복지에 대한 정권의 통찰력이 필요한 시점입니다. 워킹맘에게 아이들이 ‘혹’이 되지 않길 바랄 뿐입니다.

- 박상주 기자 park.sangjoo@joins.com

1303호 (2015.09.21)
목차보기
  • 금주의 베스트 기사
이전 1 / 2 다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