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컴윈은 구성원의 43%가 취약계층이다. / 사진:컴윈 제공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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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ummary | 컴윈은 취약계층에 일자리를 제공하려는 사회적기업이다. 재활용 쓰레기 수거로 시작했지만 컴퓨터도 만든다. 제3세계 국가에 적합한 컴퓨터를 직접 생산해 지원한다. 구성원들은 선발 사회적기업이라는 프라이드가 강하다.2002년 안산에 기초생활보장 수급자 8명이 자활을 목적으로 모였다. 보잘것없는 학력·경력에 국가가 조건부로 생계를 책임지는 이들은 할 수 있는 일이 별로 없었다. 몸만 성하면 할 수 있는 재활용 쓰레기 수집을 시작했다. 그러다 보니 그 동네 취약 계층의 일자리를 위협했다. 복사기, 프린터, TV 등 사람들이 외면하는 전자 쓰레기로 눈을 돌렸다. 이것들을 수거해 안전하게 해체하는 작업에 착수했다. 전자전기 폐기물을 적정하게 처리하고 국내외 취약계층에게 재사용 PC를 지원하는 사회적기업 컴윈은 이렇게 출범했다. 2003년 도입된 생산자책임재활용제도(EPR)가 순풍으로 작용했다. 이 제도에 따라 제조 업체는 생산품의 일정량을 의무적으로 재활용해야 한다.그 덕에 불용장비 재활용이라는 생소한 분야에 진출했지만 성장이 눈부셨다. 인력이 26명으로 늘었고, 그동안 PC 2만대를 필리핀, 케냐, 카자흐스탄 등 16개 나라에 지원했다. 2013년엔 매출액이 23억원에 달했다. 그 후로도 생산량은 유지했지만 재활용 시장의 침체로 매출액은 줄었다.
컴윈은 국내 최초의 사회적기업을 자처한다. 유럽의 사회적기업을 연구해 2003년 설립 당시 정관에 사회적기업이라고 명시했다. 2007년 사회적기업육성법이 제정되기 4년 전 일이다. 유럽에 사회적기업이 처음 출현한 건 1800년대 후반이지만 사회적기업을 법제화한 나라로는 한국이 유일하다.컴윈이 추구하는 사회적 가치는 세 가지다. 우선 취약계층에 일자리를 제공한다. 이 회사는 또 버려지는 불용 전기·전자 폐기물을 안전 처리해 원료로 다시 쓸 수 있도록 하는 한편 오염원인 전자기판을 안전관리를 통해 적정하게 재활용되도록 한다. 폐휴대폰 등의 전기·전자 제품에서 귀금속, 희유금속 등을 뽑아내는 ‘도시광산’ 기능을 하는 것이다. 우리나라는 바젤협약 상국가 간 이동금지 품목인 전자 폐기물의 불법 수출국가라는 오명을 벗지 못하고 있다.컴윈은 일이 많을 때도 잔업을 하지 않는다. 일감이 많으면 잔업으로 해결하기보다 추가 고용을 해야 한다는 게 회사의 정책이자 구성원들 간의 합의이기 때문이다. 이런 합의가 지켜져야 한다는 입장이면서도 일부 직원들은 불만을 토로한다. 잔업을 해야 집에 돈을 더 많이 가져갈 수 있기 때문이다.컴윈은 2006년 경영난으로 1차 부도의 위기를 겪었다. 컨설턴트와 상의해 영업·재무 구조를 바꾸는 150여 가지 실천과제를 뽑아 이행했다. 생산이 늘고 마침내 회사가 살아났다. 기업문화도 바뀌었다. 업종도 다각화했다. 자원 순환만 하다 플라스틱 분쇄를 시작했고 컴퓨터도 생산한다. 이 두 가지가 컴윈의 미래 성장동력이다. 매출 신장 등 영리기업이 기본적으로 추구하는 가치, 지속가능성에 대해서도 고민하기 시작한 셈이다. 경제적 성과를 내야 사회적 가치도 창출할 수 있기 때문이다. 컴윈이라는 상호엔 ‘컴퓨터의 부가가치를 통해 새로운 인생에서 반드시 승리하자’는 결의가 담겼다. 전체 직원들이 워크숍에서 머리를 맞대고 만든 이름이다. 당시엔 컴퓨터를 전자 폐기물로 바라봤지만 지금은 제3세계 국가에 인도할 컴퓨터를 생산한다. 전원 아웃 같은 외부의 전기적 충격에도 안정적이고 전기 공급에 문제가 생겨도 하드디스크가 영향을 받지 않는 컴퓨터다. 이를 위해 전체 인력 26명 중 12명이 컴퓨터기능사 자격증을 땄다.과제는 이런 경제적 가치와 사회적 가치 간에 균형을 유지하는 것이다. 권운혁 컴윈 대표는 “기업으로서 미래를 계획하고 만들어가는 게 중요하지만 전 구성원이 열심히 일하다 보면 미래는 열리게 마련”이라고 말했다. “우리는 미래 먹거리를 만드는 것보다 얼마를 벌어 직원복지에 얼마를 쓰겠다고 한 약속의 이행을 더 중시합니다. 미래 가치 못지않게 현재의 신뢰가 중요해요. 미래는 전체가 만들어가는 것이기 때문이죠.”- 이필재 더 스쿠프 대기자
[박스기사] 권운혁 컴윈 대표사회적기업의 실험실이자 학습장권운혁 컴윈 대표는 “컴윈 직원들은 선발 사회적기업의 구성원으로서 사회적 책임을 다하겠다는 각오가 뚜렷하다”고 말했다. “10년 이상 지속된 사회적기업으로서 후발 사회적기업들이 장기 전망을 세울때 자연스레 우리 회사가 참고 대상이 됩니다. 사회적기업 인사 및 운영 시스템의 실험실일뿐더러 후발 사회적기업의 학습장이 될 수밖에 없어요. 비록 우리가 끝까지 가지 못하더라도 우리의 실험을 통해 다른 사회적기업들이 더 나은 사회적기업으로 성장할 수 있다면 기꺼이 학습장 노릇을 하겠다는 게 우리 직원들의 공통된 생각입니다.”
그런 자세가 전제되면 일례로 일자리 창출이라는 사회적 가치가 어떻게 실현되나요?“우리가 생각하는 핵심 가치는 사람이 성장하는 사회적기업이 되는 겁니다. 젊고 똑똑한 사람을 쓰려면 급여를 많이 주면 됩니다. 그런 사람들로 회사가 채워지면 이들이 이윤을 창출하고 이 사람들이 회사의 문화를 주도하게 됩니다. 이들의 효율을 따라잡지 못하는 사람들은 결국 도태될 수밖에 없죠. 컴윈의 초심은 그런 회사가 되지 않겠다는 것이었고 그래서 우리는 그런 선택을 하지 않습니다.”
사회적기업의 노사관계는 어떻게 다른가요?“대표는 CEO인 동시에 대표 사원입니다. 저의 급여는 직원 총회가 결정하고 대표자 포함해 직원들의 급여는 주주총회에서 정해지는데 주주가 우리 직원들입니다. 직원협의회 대표가 이사회에도 들어와 어떻게 보면 경영을 노사가 같이하는 셈이죠.”권 대표는 사회적기업가로서의 보람은 오히려 2000년대 초반 사회적기업이 많지 않던 시절에 더 컸다고 말했다. 사회적기업이라면 설립 목적 자체가 달라야 한다고 덧붙였다. “국가가 사회적기업 육성법을 만든 취지대로 사회적기업을 필요로 하는 시장과 업종이 있다고 봅니다. 가령 혁신형 사회적기업이라고 하면 그에 상응하는 모델이 만들어져야 합니다.”
중소기업 고유업종처럼 사회적기업 고유업종 식의 접근이 필요하다는 거군요?“그렇게 봅니다. 삼성전자도 장애인을 고용하지만 사회적기업이라고 하지 않잖아요? 취약계층을 고용해서라기보다 이 사람들이 주체가 되어 어떤 사회적 가치를 만들어내야 저는 사회적기업이라고 봅니다. 사회적기업의 정체성 문제가 있다는 거죠.”그는 같은 간병 서비스라도 시장 영역과 사회적 영역이 있는데 간병인을 쓸 능력이 안 되는 사람에게 제공되는 서비스라야 사회적 가치를 창출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가령 취약계층의 고용을 유지하려 이들의 급여를 올리지 않는다면 그건 사실 노동 착취입니다. 취약계층이라고 하더라도 생산 능력이 높아지면 그에 상응하는 임금을 지급해야죠. 그래서 이들이 자활할 수 있도록 만들어줄 때 비로소 사회적 가치가 창출되는 거예요. 이렇게 본다면 취약계층 고용률이 높다고 무조건 사회적기업이라고 할 수 없어요.”
사회적기업에 대해서도 정성적 접근이 필요하군요.“정량적 접근만으로는 실상을 파악하기 어렵습니다.”
지금 사회적기업들에 꼭 필요한 게 뭔가요?“사업계획을 보고 투자하는 사회적 금융입니다. 유럽 식으로 특정 사회적기업에 대해 얼마나 큰 사회적 가치를 만들어낼 수 있느냐를 평가해 투자한다면 사회적 비용을 크게 줄일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