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olumn

[Letter] “경제부총리도 우간다만 못해” 

 


한 대형 은행의 지방 영업점에서 근무하는 친구가 있습니다. 이따금 주말에 만나 술 한 잔 하는 게 소소한 즐거움입니다. 보통 금요일에 만나는데, 저녁 식사 때 그를 만나본 적이 한 번도 없습니다. 드물게 이르면 8시 반, 늦으면 11시를 넘기기 일쑤입니다. 간단한 안주를 놓고 술 한 잔 하고 나면 벌써 새벽입니다.

오랜만에 멀리서 벗이 왔는데 친구는 테이블 앞에서 꾸벅꾸벅 좁니다. 몇 잔 마시지도 않았으니 술기운 때문은 아닐 겁니다. 그래도 월급을 많이 받으니 장시간 노동을 견디는 것 아니겠습니까? 하지만 요즘 그 친구 생각은 좀 다르더군요. “돈도 싫고 승진도 싫으니 집에만 보내줬으면 좋겠다.”

과거 은행원은 공무원과 더불어 정시 출퇴근을 특징으로 하는 직업이었습니다. 하지만 요즘 은행 풍경은 달라졌습니다. ATM이 보편화되면서 각 영업장 직원 수를 줄이는 한편 서류 작업이 훨씬 늘었습니다. 은행 주요 업무가 예·출금에서 대출로 바뀌었기 때문입니다.

그 친구는 그날 얼마나 일을 했느냐는 질문에 “오늘만 70개 찍었다”고 말합니다. 자영업자 등을 통틀어 하루에 70억원 대출을 해줬다는 얘깁니다. 그럼 그날 안에 각각 신용도를 점검하고 재무기록을 꼼꼼히 살피고 최종 승인을 받아야 합니다. 실수하거나 잘못 판단하면 부실 대출이 됩니다. 70억원을 걸어놓고 어떻게 6시에 퇴근할 수 있을까요?

최경환 경제부총리는 최근 페루 리마에서 “오후 4시에 문을 닫는 은행은 지구상에 우리나라 밖에 없을 것”이라며 “근무형태를 다양화해서 일반 근로자가 일하는 시간에 맞춰 은행 문을 열어야 한다고”고 말했습니다. 그래서 “한국 금융이 우간다만 못하다는 평가가 나온다”고 덧붙였습니다.

참 현실 모르는 말씀입니다. 오후 6시로 마감 시간을 늦추면, 퇴근 직후 몰려오는 고객들로 영업장은 북새통이 됩니다. 영업장에 들어온 고객들을 몰아낼 수도 없으니 저녁 시간에 일이 집중됩니다. 그럼 서류작업은 더 지연되고 은행원은 일러야 새벽에 퇴근하게 될 겁니다. 정상적인 사람답게 살고 싶다는 친구는 말합니다. “경제부총리도 우간다만 못하다”고.

1307호 (2015.10.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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