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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폴크스바겐의 ‘디젤 게이트’] 한국에서도 배출가스 조작 파문 

환경부 조사 결과 유로5 차량에서 조작 ... 리콜 명령에 과징금 141억원 부과 


▎국립환경과학원 연구원이 아우디 차량의 배기가스량을 검사하고 있다. / 사진:중앙포토
summary | 환경부는 11월 26일 폴크스바겐이 한국에서 판매한 차량에서 배기가스 배출 장치를 불법 조작한 사실을 확인했다. 폴크스바겐코리아 측은 ‘한국 정부의 검사 결과가 나온 다음에야 리콜을 포함한 보상을 진행할 수 있다’는 입장이었다. 환경부는 이번 사태를 계기로 국내에서 디젤차를 판매 중인 모든 제작사로 조사를 확대하기로 했다.

폴크스바겐에게 이번 겨울은 유난히 춥고 길 듯하다. 환경부는 11월 26일 폴크스바겐이 한국에서 판매한 차량에서 배기가스 배출 장치를 불법 조작한 사실을 확인했다. 환경부는 해당 차량에 대해 리콜 및 판매정지 명령을 내렸고, 제작사에는 141억원의 과징금을 부과했다. 홍동곤 교통환경과장은 “관련 데이터가 명확하기에 폴크스바겐도 결과를 인정할 것”이라며“리콜 계획서 제출 기한은 2016년 1월 6일”이라고 밝혔다. 이로써 지난 9월 미국에서 터진 폴크스바겐 경유차의 배출가스 저감장치 조작이 한국에서도 공식 확인됐다. 미국에선 48만대에 대한 리콜과 벌칙이 진행되는 동안 폴크스바겐코리아 관계자는 “한국 정부의 검사 결과가 나온 다음에야 리콜을 포함한 보상을 진행할 수 있다”는 입장이었다.

6번의 실험 통해 조작 확인


이날 환경부는 폴크스바겐이 구형 엔진 차량의 배출가스를 조작한 방법을 상세히 설명했다. 환경부의 첫번째 실험에서는 장치가 정상 가동했다. 하지만 두번째부터 다른 결과가 나오기 시작했다. 장치의 작동이 줄며 질소산화물(NOx) 배출량이 증가하기 시작했다. 홍 과장은 “이 같은 현상은 차량 전자제어장치가 실험이 한번 끝나면 인증시험이 종료된 것으로 오인해 일어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인증시험 모드만 통과하도록 제작사가 장비를 조작했을 가능성이 크다는 것이다. 다음 실험 과정에선 급가속 등의 특정 조건을 연출했다. 역시 배출가스 재순환 장치가 작동하지 않았다. 차량 에어컨을 가동하는 등 실내 인증 시험과 다른 환경을 만들었을 때에도 질소산화물 배출량이 증가했다. 마지막 여섯번째 실험인 실제 도로주행 테스트에서도 실내 인증시험에 비해 질소산화물 배출량이 크게 늘어났다. 환경부의 발표 결과에 대해 폴크스바겐 측은 “정부의 지적을 겸허히 받아들이며 소비자 피해를 줄이기 위한 대책을 마련하겠다”고 말했다.

자동차 업계에선 폴크스바겐이 차량 제조 비용을 줄이기 위해 무리수를 둔 것이란 분석이다. 저가 또는 소형 배출가스 저감 장치를 사용하는 대신 프로그램을 조작해 인증시험만 통과해 온 것이다. 저가의 저감장치(LNT 방식)는 40만원 안팎이지만, 배출가스 저감 효율이 높은 저감장치(SCR 방식)의 가격은 200만원 수준이다.

폴크스바겐코리아는 이른 시일 안에 리콜을 진행한다는 입장이다. 지난 10월 1일 폴크스바겐은 검사 결과에 관계없이 한국에서 판매된 모든 디젤엔진 배출가스 조작 차량에 대해 자발적 리콜을 실시하겠다고 밝혔다. 국내 판매된 해당 차량은 폴크스바겐 브랜드 9만2247대, 아우디 브랜드 2만8791대 등 총 12만1038대에 달한다. 폴크스바겐 관계자는 “독일 본사에서도 한국 정부의 조사 결과에 대해 면밀히 검토할 예정이며 리콜을 포함한 다양한 보상을 준비할 것”이라고 말했다. 폴크스바겐은 유럽을 시작으로 2016년 1월부터 리콜을 진행할 계획이다.

미국 규제 당국이 폴크스바겐 디젤 차량의 배기가스 배출량을 예의주시하게 된 시발점은 한 미국 대학의 평범한 연구였다. 웨스트버지니아 대학교(WVU) 공과 대학이 자체 기금으로 설립한 ‘대체 연료 엔진·배기가스 센터’에 유럽 비영리 연구단체인 국제청정교통위원회(ICCT)가 연구를 의뢰했다. 시험 결과에 연구진은 당황했다. 유독 폴크스바겐의 차량에서 훨씬 많은 배기 가스가 나온 것이다. 수차례 실험을 반복한 연구진은 2014년 5월 미국 환경보호청(EPA)과 캘리포니아 대기자원위원회(CARB)에 보고서를 제출했다. 연구를 진행한 댄 카더 소장은 “정기 검사를 진행하는 실험실과 실제 도로 주행 중에 차량이 배출하는 배기가스 양에 큰 차이가 있었다”고 설명했다. 보고서를 접한 폴크스바겐은 연구자의 자질과 실험 방법을 문제 삼았다. 하지만 9월 3일 폴크스바겐은 배출가스 조작을 시인했다. EPA와 CARB은 폴크스바겐 차량 48만대에 대한 리콜을 명령했고, 사건은 글로벌 이슈로 떠오르기 시작했다.

독일 슈피겔 ‘조작 비리 인지 임원 적어도 30명’


▎환경부 홍동곤 교통환경과장이 폴크스바겐 경유차가 배출가스 저감장치를 조작했다고 브리핑하고 있다. / 사진:중앙포토
곧 유럽에서도 폴크스바겐의 배기가스 조작이 드러났다. 유럽에서 판매한 차량 800만대에서 조작이 확인됐다. 폴크스바겐은 전 차량을 리콜할 것이고, 이를 위한 비용 일체는 폴크스바겐이 부담할 것이라고 밝혔다. 하지만 클린디젤을 주창하며 친환경 기업으로 포장했던 이미지는 이미 만신창이가 됐다. 폴크스바겐의 배출가스 조작스캔들에 따른 후속조치로 영국 정부는 디젤차에 대한 보조금 지급 중단을 검토 중이다. 프랑스 정부는 향후 5년간 디젤 차량에 대한 금전적 지원을 중단하겠다고 밝혔다. S&P와 피치는 폴크스바겐이 벌금과 민사소송 해결을 위한 법적 비용 발생 위험을 안고 있다면서 신용등급 전망을 ‘부정적’ 등급으로 낮췄다.

폴크스바겐의 모국 독일은 큰 충격을 받았다. 알렉산더 도브린트 독일 교통장관은 “그동안 전 세계에서 판매한 1.6L, 2.0L엔진의 폴크스바겐 디젤차량이 배출가스 조작과 관련이 있다”고 말했다. 도브린트 장관은 아울러 이번 조작 파문을 계기로 별도로 꾸려진 조사위원회에서 폴크스바겐 차량뿐 아니라 다른 독일산 자동차에 대해서도 무작위 조사를 실시할 것이라고 밝혔다.

이번 사건으로 마르틴 빈터코른 최고경영자(CEO)가 사퇴한 폴크스바겐에선 인사 태풍이 몰아쳤다. 감독이사회를 열어 경영진을 추가 경질하고 검찰 수사를 통해 형사처벌을 요구했다. 최고경영진의 개입에 대한 의혹도 여전하다. 폴크스바겐은 배기가스 조작 프로그램 개발에 수백억원을 사용했다. 경영진의 승인 없이 진행하기 어려운 금액이다. 독일 슈피겔은 “폴크스바겐의 배기가스 조작 비리를 사전에 알고 있던 임원이 적어도 30명에 이른다”고 보도했다. 폴크스바겐 내부 조사와 로펌에 위탁한 조사에서 슈피겔의 보도 내용이 확인되며 파장이 커지고 있다. 폴크스바겐은 지금까지 소수의 임원만 관여 했다며 조직적인 비리 여부는 부정해왔다.

미국에선 지금도 폴크스바겐을 겨냥한 새로운 행정조치가 나오고 있다. CARB는 11월 25일 폴크스바겐의 3000cc급 디젤차량에 대해 추가 리콜 명령을 내렸다. 그동안 폴크스바겐은 해당 차량에 대한 위법을 부정해왔지만 미 당국은 개의치 않고 리콜을 강행했다. 추가 리콜 대상 차량은 2009년부터 2015년 사이 미국에서 판매된 약 1만5000~1만6000 대에 해당된다. 전 세계 판매량 추산치는 약 8만5000대에 달한다. 이번 리콜에는 폴크스바겐 고급차 브랜드인 아우디와 포르쉐도 포함된다. CARB는 폴크스바겐·아우디·포르쉐의 3개 브랜드의 배기량 3000cc급 차량에서 보조배출통제장치(AECD)의 존재를 확인했다. AECD는 문제가 된 2000cc급 차량과 마찬가지로 배기가스 규제를 회피하기 위한 불법 소프트웨어에 해당한다. 이번 리콜로 인해 폴크스바겐이 부담해야 하는 비용은 수천만 유로에 달할 전망이다.

환경부, 국내외 16개 브랜드 대상 조사 예정

한국에서도 폴크스바겐 배출가스 조작 파문은 당분간 이어질 전망이다. 환경부에 이어 국토교통부가 조사에 나섰다. 가스배출량을 확인하는 것이 환경부의 역할이고, 국토부는 국내에서 운행하는 차량의 연비를 검사·인증하는 역할을 한다. 국토부는 환경부 시험 자료를 분석해 12월 중순까지 연비 상관성을 확인하기로 했다. 가스배출량과 연비 사이의 연관성을 확인하면 폴크스바겐 차량 연비를 전면 재조사한다. 2016년 상반기에 조작 설치 의심 차량과 동종인 신차의 리콜 전·후 시험실 연비를 측정해 공인연비(신고연비)와 비교할 예정이다. 국토부는 조사 결과 연료소비율 기준을 위반하면 과징금 등 행정처분할 예정이다.

폴크스바겐코리아 상대로의 집단소송도 한창 진행 중이다. 미국에선 10월 23일 집단 소송이 시작했다. 미국 전역에서 폴크스바겐을 향한 고소가 이어졌고 연방법원은 각주에서 시작한 폴크스바겐 관련 집단소송을 미국 연방다주소송조정위원회로 이관했다. 12월 4일 재판을 시작한다. 한국에서도 법무법인 바른을 통해 서울중앙지방법원에 소장을 제출한 원고수가 2390명에 달한다. 소송에 필요한 서류를 제출한 사람도 6500명에 달한다.

미국과 캐나다에서 시작한 고객 지원 프로그램을 한국에선 찾아 볼 수 없는 점도 큰 불만이다. 폴크스바겐 측은 미국과 캐나다의 자사 디젤차 소유주 48만2000명을 대상으로 소유주 1인당 1000달러 상당의 상품권 카드와 바우처로 보상하고, 3년 동안 무상으로 수리도 하겠다고 발표했다. 상품권 보상 규모만 4억 8200만 달러(약 5586억원)에 달한다. 한국에서 집단소송을 이끌고 있는 바른의 하종선 변호사는 “미국에선 적극적으로 사과하며 소비자를 위한 프로그램을 진행한 폴크스바겐이 국내에선 아무런 움직임이 없다”며 “한국 고객을 무시하는 처사여서 많은 이들이 소송에 참여하고 있다”고 말했다. 폴크스바겐 코리아 관계자는 “한국 소비자를 위한 지원 방안을 준비하고 있다”며 “미국 소비자와의 차별은 있을 수 없다”고 반박했다.

환경부는 이번 사태를 계기로 국내에서 디젤차를 판매 중인 모든 제작사로 조사를 확대하기로 했다. 국산 및 수입차 브랜드 16개사가 대상이다. 불법이 드러나면 리콜명령, 인증취소, 과징금 부과 등의 제재가 뒤따른다. 환경부는 실제 도로 주행시의 배출가스 허용 기준이 완비되지 않은 문제점이 이번 사태를 통해 드러났다고 보고, 관련 기준을 2016년부터 순차적으로 도입하기로 했다. 김필수 대림대 자동차학과 교수는 “이번 사태로 폴크스바겐뿐만 아니라 글로벌 자동차 메이커에 대한 신뢰가 크게 흔들렸다”며 “성능과 검사 결과를 투명하게 공개하며 신뢰를 쌓으려는 노력이 없다면 어느 브랜드라도 한순간에 무너질 수 있다”고 지적했다.

- 조용탁 기자 cho.youngtag@joins.com

1313호 (2015.12.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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