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계의 연말 인사 윤곽이 속속 드러나고 있다. 기업마다 처한 상황은 다르지만 경쟁에서 한발 앞서고 미래를 준비하려는 다양한 노력을 엿볼 수 있다. 경영 전면에 나선 오너 일가의 3, 4세가 늘었다. 경영진의 세대 교체를 단행하면서도 최고경영진의 물갈이는 가급적 줄이는 방식으로 안정을 꾀하기도 했다. 새로운 성장동력 발굴에 방점을 찍고 불황을 돌파하려는 노력도 엿보인다.◇신성장동력 확보= 주요 대기업 가운데 가장 먼저 인사를 단행한 LG그룹에선 구본무 회장의 동생인 구본준 부회장이 그룹의 미래 먹거리를 책임지는 중책을 맡았다. 구 부회장이 맡은 보직은 LG그룹이 집중하고 있는 소재 부품, 자동차 부품, 에너지 등 미래 성장사업과 신성장동력 발굴을 집중 지원하는 자리다. 구 부회장은 그룹의 미래 사업 총괄뿐만 아니라 LG전자 이사회 의장도 겸직한다. 구 부회장이 어떤 신사업을 발굴해서 키울지 관심이 모이고 있다.삼성그룹 인사에선 고한승 삼성바이오에피스 부사장의 사장 승진이 주목을 받았다. 삼성의 신성장동력인 바이오 사업을 이끌어갈 인물로 낙점 받은 것이다. 고 사장은 삼성의 바이오 사업 진출 초기 기획과 바이오 시밀러 사업 진출을 주도했던 인물이다. 삼성그룹 관계자는 “고 사장은 2000년 종합기술원에 입사한 이후 바이오헬스연구소장을 역임했다”며 “불모지에서 일군 바이오사업을 삼성의 대표 사업으로 조기에 성장시킬 적임자”라고 설명했다.12월 말로 다가온 현대차동차그룹의 연말 인사도 관심을 모은다. 현대차는 차세대 성장동력으로 제네시스 브랜드를 밀고 있다. ‘제네시스 초대 CEO’ 자리에 앉아 정의선 부회장과 호흡을 맞출 인물이 누구일지 관심거리다.◇세대교체 확대= 현대중공업에는 세대교체 바람이 불었다. 대주주인 정몽준 아산재단 이사장의 장남인 정기선 상무가 30대 중반에 전무로 승진하며 세대교체 시점을 앞당겼다. 현대중공업은 신규 상무보 선임자 57명 가운데 40대가 거의 절반인 28명을 차지할 정도로 지속적인 세대교체가 진행 중이다. 현대중공업은 앞서 해양플랜트 사업 등의 대규모 적자로 대대적인 구조조정이 이뤄지면서 인사폭이 커졌다.GS그룹에선 본격적인 3세 경영자 시대가 열렸다. 고 허만정 창업주의 2세 중 유일하게 계열사 대표이사를 맡고 있던 허승조 GS리테일 부회장이 용퇴하면서 3세 시대가 활짝 열렸다. 허승조 부회장의 자리는 3세 경영인인 허연수 GS리테일 사장이 맡았다. 또 허창수 회장의 장남인 허윤홍 GS건설 사업지원실장은 이번에 전무로 승진했다. 4세 경영인으로 허남각 삼양통상 회장의 장남인 허준홍 GS칼텍스 법인사업부문장도 전무로 승진했다. 허광수 삼양인터내셔널 회장의 장남인 허서홍 GS에너지 전력·집단에너지 사업부문장은 이번 인사에서 임원에 올랐다.신세계그룹에선 이명희 신세계그룹 회장의 딸 정유경 부사장이 백화점부문 총괄사장으로 승진했다. 신세계그룹은 12월 3일 대대적인 인사를 진행했다. 김해성 그룹 전략실장 사장을 부회장으로 승진 발령하는 등 사장 승진 3명, 신규 대표이사 내정자 4명, 승진 57명, 업무위촉 변경 20명 등 총 85명에 대한 임원 인사를 했다. 정용진 부회장과 함께 경영의 한 축을 맡고 있는 정 신임 사장은 1996년 조선호텔 상무로 입사한 지 19년 만에 사장 직함을 달았다. 신세계그룹은 이번 인사의 틀을 ‘미래준비, 책임경영, 핵심경쟁력 강화’로 요약했다. 그룹 측은 “신규 임원의 30%가 발탁 승진자”라며 “그룹의 미래 준비에 반드시 필요한 역량을 갖추고, 실질적 기여가 가능한 인물을 엄선해 등용했다”고 인사 배경을 설명했다.LG 그룹에선 통신 업계 최장수 CEO로 꼽히던 이상철 LG 유플러스 부회장이 물러났다. 후임은 LG화학에서 배터리사업을 진두지휘하던 권영수 사장이다. 다른 분야 출신인데다 나이도 10살 넘게 차이가 난다. 경영진 세대교체를 통해 LG유플러스에 새로운 바람을 불어넣으려는 포석으로 풀이된다.◇안정 도모= 계열사간 사업 재편, 화학 계열사 매각 등을 진행한 삼성그룹의 사장단 인사는 ‘안정’에 무게가 실려 있었다. 그룹을 이끌어온 핵심 경영자들이 자리를 유지하면서 업무 일부를 신임 경영자들과 분담했다. 무선사업부장과 IM부문장을 겸했던 신종균 사장은 무선사업 업무를 후배에게 물려줬다. CE부문과 생활가전사업부를 이끌었던 윤부근 사장의 업무도 줄었다. 생활가전사업부장에서 손을 뗐다. 권오현 부회장도 겸직했던 종합기술원장을 정칠희 종합기술부원장에게 넘겼다. 변화는 있지만 신 사장과 윤사장, 권 부회장 모두 그룹에 남아 중장기 사업전략 구상과 신규 먹거리 발굴에 참여한다. 주력 계열사인 삼성전자 세트 부문의 주력 사업부 리더를 교체했지만, 보고 라인은 그대로 유지하며 안정감을 줬다.연말 인사를 앞둔 롯데그룹은 조직 안정에 무게를 둔 인사를 단행할 전망이다. 신동빈 롯데그룹 회장은 12월 4일 사장단 회의를 열어 계열사별 실적 평가를 마친 뒤 12월 말 인사를 할 예정이다. 롯데그룹은 복잡한 현안을 마주하고 있다. 경영권 분쟁을 겪으며 호텔롯데 상장도 준비해야 한다. 면세점 탈락의 휴유증에서도 빨리 회복해야 한다. 조직 결속력 강화가 어느 때보다 중요한 시기다. 신 회장은 “임직원에게 책임을 묻지 않겠다”고 수차례 강조한 바 있다. 롯데 주요 계열사 사장들은 대부분 자리를 지킬 가능성이 크다.12월 중순 연말 인사를 진행할 SK그룹 인사도 안정에 초점이 맞춰질 전망이다. SK그룹은 2014년 SK이노베이션, SK텔레콤 등 주요 계열사 CEO를 대거 교체했다. 1년 만에 다시 대규모 인사를 단행하기는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2015년 호실적을 거둔 SK하이닉스와 SK이노베이션에서 얼마나 많은 승진 잔치가 벌어질지 관심거리다. 최태원 회장이 책임경영 차원에서 등기이사에 복귀할지도 관심사다.- 조용탁 기자 cho.youngtag@join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