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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수입차 시장 20년의 명암] 파상공세로 국산차 아성에 도전 

소비자 눈높이 높이며 점유율 13.9% 차지 ... 배기가스 조작 사건으로 이미지 먹칠 


▎정재희 한국수입자동차협회장이 11월 25일 서울 중구의 한 호텔에서 열린 '한국수입차협회 20주년 기념식'에서 인사말을 하고 있다. / 사진:뉴시스
summary | 올해 수입차 판매량은 20만대를 넘어설 것으로 예상된다. 1996년 1만대 판매 돌파 후, 20배 수준으로 성장했다. 수입차의 선전은 국내 자동차 업계 발전에 자극제가 됐다. 하지만 부실한 AS, 탈세 수단으로의 악용 등 문제도 많다. 최근에는 폴크스바겐 디젤 게이트로 몸살을 앓고 있다. 수입차가 이런 위기를 극복하고 신뢰를 회복할 수 있을지 관심을 모은다.

“올해 국내 시장의 수입차 판매량은 지난해보다 20% 늘어난 23만5000대 정도다. 역대 최다 판매량이다. 2016년에는 25만대가 팔릴 것으로 기대한다. 올해와 비교하면 증가율은 낮지만 그만큼 내실을 다지는 한 해가 될 것이다.” 윤대성 한국수입자동차협회(KAIDA) 전무의 기대 섞인 말이다. 한국수입자동차협회는 11월 25일 서울 중구의 한 호텔에서 20주년을 기념하는 기자간담회를 열었다. 국내 수입차 시장의 현주소를 진단하고, 문제점을 논의하는 자리였다. 정재희 한국수입자동차협회장이 인사말을 하고, 윤대성 전무가 수입차 시장의 전반적인 내용을 브리핑했다. 급격하게 성장한 수입차 시장을 이야기할 때는 자부심이 넘쳤고, 내년을 전망할 때는 자신감을 보였다. 올해 수입차 시장은 또 한번 도약했다. 역대 최다 판매 기록을 갈아치우며 무서운 기세로 성장했다. 10월까지 총 19만6543대의 수입차가 팔렸다. 이미 지난해 전체 판매량(19만6359대)을 넘어선 수치다. 수입차 시장이 지금처럼 성장하기까지는 1995년 설립된 한국수입자동차협회의 역할이 컸다. 현재 14개 회사의 25개 수입차 브랜드가 협회에 등록돼 국내 시장에서 활약 중이다.


국내에 수입차가 처음 판매되기 시작한 것은 1987년 1월이다. 정부는 2.0L 이상 대형차와 1.0L 이하 소형차 시장을 먼저 개방했다. 이듬해 4월에는 전 차종에 대한 배기량 규제를 풀면서 수입차 시장이 본격적으로 열렸다. 한성자동차(벤츠), 효성물산(아우디·폴크스바겐), 한진(볼보), 코오롱상사(BMW)가 개방 첫해부터 시장에 뛰어들었다. 이듬해인 1988년에는 두산(푸조), 기아(포드), 금호(피아트), 쌍용(르노)이 가세했다. 1990년 2000대가 넘는 수입차가 팔리며 그럴 듯한 시장의 모습을 갖추기 시작했다.

수입차 오너가 세무조사 대상 되기도


하지만 이내 위기를 맞았다. ‘수입차=사치품’이라는 인식이 강해 수입차에 대한 비난 여론이 거셌다. 1990년 수입차 시장을 이끈 모델은 기아에서 판매하는 ‘세이블’이었다. 기아자동차가 주문자생산방식(OEM)으로 수입한 모델이었다. 이 차가 한 해 1579대 팔리면서 돌풍을 일으킨 것. 지금이었으면 ‘국내 자동차 회사가 수입차를 들여와 파는 것’에 여론의 초점이 맞춰졌겠지만 당시에는 ‘수입차 판매가 늘었다’는 자체가 이슈가 됐다. 여론이 나빠지자 정부도 칼을 빼 들었다. 단지 ‘수입차를 탄다’는 이유만으로 수많은 사람이 강도 높은 세무조사를 받았다. 자연스럽게 수입차 시장도 위축됐다. 이후 1993년까지 수입차 판매량은 2000대를 넘지 못했다.

수입차 시장에 다시 훈풍이 불기 시작한 것은 1995년에 접어 들어서다. 국산차 판매가 100만대를 넘어서면서 국내 자동차 시장에 대한 통상 압력이 거세졌다. 이에 따라 정부는 20%에 육박했던 수입차 관세를 8%로 낮췄다. 7000만원 초과 자동차의 취득세도 15%에서 2%로 낮췄다. 같은 해 9월에는 한·미 자동차 협상이 타결돼 특소세와 자동차세도 인하됐다. 이는 수입차 판매의 증가로 이어졌다. 1995년 수입차 판매량이 연간 6000대를 넘어섰고, 1996년에는 수입차 판매 1만대 시대가 열렸다. 수입차 브랜드의 국내 시장 진출이 본격화된 것도 이때다. 1995년 BMW와 크라이슬러·포드가 국내 법인을 설립했다. 해외 브랜드가 직접 시장 진출을 노릴 만큼 규모를 갖추기 시작했다는 뜻이다.


이후 수입차 시장은 꾸준히 성장했다. 1997년 외환위기와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에 잠깐 주춤하기는 했지만 빠르게 극복하며 덩치를 불렸다. 수입차의 대중화에도 속도가 붙었다. 도화선이 된 게 한국수입자동차협회가 2000년 개최한 ‘수입자동차 모터쇼’다. 많은 사람이 수입차에 관심을 갖는 계기가 됐다. 이후 메르세데스-벤츠, 아우디, 닛산, 폴크스바겐이 국내 법인을 설립했다. 롤스로이스와 마이바흐 같은 최고급 럭셔리 세단도 국내 판매를 시작했다. 그야말로 파죽지세의 흐름을 이어갔다. 2002년 처음으로 자동차 시장 점유율 1%를 넘겼다. 2007년에는 연간 판매량 5만대를 돌파했다. 2012년에는 시장 점유율 10%대 진입에 성공했다.

수입차 선전에 자극받은 국산차 경쟁력도 높아져


▎BMW 520d
아직도 수입차에 대해 곱지 않은 시선을 보내는 사람이 많다. 수입차는 사치품이라는 인식이 여전하다. 한국 경제를 위해서 국산품을 이용해야 한다는 주장도 있다. 최근에는 수입차의 법인 판매가 늘면서, 수입차가 탈세의 수단으로 이용되는 문제가 불거졌다. 불편하고 비싼 AS문제도 해결해야 할 과제다. 하지만 수입차가 국내 자동차 시장에 미친 긍정적 영향도 있다. 수입차가 등장하면서 자동차에 대한 관심 자체가 늘었다. 전에는 몰랐던 첨단 장치나 안전 관련 편의사항을 꼼꼼히 따지는 소비자가 늘었다. 국산 자동차 브랜드도 소비자의 높아진 눈높이를 충족하기 위해 꾸준히 기술 개발에 매진했다. 이는 국산 자동차가 해외에 진출하는 자양분이 됐다.


▎렉서스 ES300
한국수입자동차협회의 등장으로 수입차 시장에 많은 변화가 생겼다. 대표적인 것 중 하나가 연간 ‘베스트셀링카’ 집계다. 해마다 많은 자동차가 왕좌를 차지하기 위해 치열한 경쟁을 펼친다. 브랜드 입장에서도 순위는 중요하다. 자동차 정보가 많지 않은 대중에게 스스로를 알릴 수 있는 가장 확실한 수단이기 때문이다. 차가 좋아 인기를 끌면 잘 팔린다. 베스트셀링카 순위에 오르면 판매가 또 한번 늘어나는 선순환 구조가 이어진다. 수입차 시장에서 하나의 모델이 2년 연속 베스트셀링카에 오르는 경우가 많은 것도 이 때문이다.


▎혼다 CR-V
수입차 시장이 성숙하기 이전인 1990년대에 가장 잘나가는 수입차는 미국 자동차였다. 포드의 세이블(1994·1995)·토러스(1997)·콘티넨탈(1998)이 연간 판매 1위에 올랐다. 1996년에는 크라이슬러의 스트라투스가 1위에 올랐다. 하지만 2000년대 접어들면서는 패권이 독일 브랜드로 넘어갔다. 메르세데스-벤츠, BMW가 국내 시장 공략을 강화하면서 판매량을 끌어올렸다.

외환위기를 극복하고 수입차 시장이 다시 활기를 띠기 시작한 2002년, 시장에는 뜻밖의 강자가 등장했다. 도요타의 고급차 브랜드 렉서스다. 렉서스는 럭셔리 세단 ES 시리즈를 앞세워 시장을 장악했다. 2002년 혜성처럼 등장해 수입차 최초로 단일모델 1000대 판매를 돌파했다. 기세는 거기서 끝나지 않았다. 2004~2006년 3년 연속으로 수입차 시장 1위를 차지했다. 당시 렉서스 ES가 선보인 부드러운 승차감과 정숙성은 경쟁 모델을 압도하는 수준이었다. 일본 특유의 섬세함으로 고급스러운 차를 만든데다 ‘일본차는 잔고장이 없다’는 인식까지 퍼지며 승승장구했다. 메스세데스-벤츠와 BMW가 7000만~8000만원에 팔릴 때, 렉서스 ES는 5000만~6000만원으로 저렴(?)하기까지 했다. 흠잡을 때 없는 품질에 가격 경쟁력까지 갖췄으니 잘 나갈 수밖에 없었다.

미국차→일본차→독일차로 패권 이동


▎폴크스바겐 티구안
도요타 렉서스의 바통을 이어받은 것은 또 다른 일본차 브랜드 혼다였다. 2007년 혼다는 중형 SUV CR-V를 출시했다. 당시에는 흔하지 않은 SUV인데다 세련미까지 갖춘 차였다. 가격도 3000만원대로 책정해 높은 인기를 누렸다. 세단 중심의 국내 자동차 시장에서 SUV 모델이 1위를 차지하는 것은 기적에 가까운 일이었다. 혼다는 그 기세를 이듬해까지 이어갔다. 2008년 대형 세단 어코드를 4948대 팔아 베스트셀링카 1위에 올랐다. 그러나 아쉽게도 일본 브랜드의 선전은 딱 거기까지였다. 이후 수입차 판매 순위표에서 일본 브랜드 자동차를 찾는 일은 갈수록 어려워지고 있다.

2009년부터 본격적인 독일 브랜드 자동차 시대가 열렸다. 메르세데스-벤츠, BMW, 폴크스바겐이 베스트셀링카 상위권을 휩쓸고 있다. 메르세데스-벤츠가 E300을 앞세워 2010년과 2011년 수입차 시장 1위를 기록했다. 이어서 BMW가 520d 모델로 2년 연속 1위를 차지했다. 2014년에는 폴크스바겐 티구안이 베스트셀링카 1위에 올랐다. 티구안은 올 10월까지 집계에서도 1위를 달리고 있어, 올해도 1위 등극이 유력하다.

독일차의 약진에서 눈여겨볼 모델은 BMW 520d다. 디젤 엔진을 장착하고 판매 1위를 달성한 첫 모델이다. 이전까지는 배기량이 높고, 정숙한 주행감을 뽐내는 모델의 인기가 좋았다. 하지만 강력한 토크로 압도적 퍼포먼스를 선보이는 독일산 디젤 자동차가 시장에 등장하면서 새로운 분위기가 형성됐다. 디젤차는 ‘털털거리는 달구지 소리가 나는 차’라는 편견을 깬 차가 520d다. 수입차 시장에서 디젤차 선호도가 높아진 시기와도 맞물린다. 2012년은 수입차 시장에서 디젤차 판매량이 가솔린차 판매량을 처음으로 앞지른 시기다. 2014년에는 디젤차 점유율이 67.8%로 올라갔다.

‘소형·SUV·디젤·독일’ 유지될까


폴크스바겐 티구안의 선전도 다소 의외라는 반응이 많다. 현재 판매중인 티구안 모델이 국내에 출시된 것은 8년 전이다. 2010년 한번 부분변경을 거치긴 했지만 여전히 오래된 차다. 2013년 무서운 뒷심을 발휘하면 수입차 시장 2위에 등극했다. 그 기세를 몰아 2014년 1위에 올랐고, 올해도 1위 달성이 유력한 상황이다. 티구안은 소비자가 선호하는 모든 요소를 갖췄다. 최근 수입차 시장의 키워드는 ‘소형·SUV·디젤·독일’이다. 이 모든 키워드를 갖춘 차가 티구안이다.

2010년 이후 수입차 시장을 장학한 BMW 520d와 티구안에게 악재가 생겼다. 폴크스바겐의 배기가스 조작 사건으로 독일 디젤차의 인기가 급감하고 있다는 점이다. 비교적 최근 일이라 아직 판매량에는 사건의 여파가 충분히 반영되지 않았다. 2015년 디젤차 점유율도 2014년보다 오히려 늘었다. 본격적인 디젤차 판매의 흐름은 2016년에 판가름 날 것으로 보인다. 내년, 또 그 이후에는 어떤 자동차 브랜드가 수입차 시장에서 돌풍을 일으킬지 관심을 모은다.

- 박성민 기자 park.sungmin1@joins.com

1313호 (2015.12.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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