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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준태의 ‘실록으로 읽는 사서’] 부족함보다 고르지 못함을 근심해야 

균역법에 공자의 가르침 담아 ... 백성을 편안하게 하는 게 리더의 책무 

김준태 칼럼니스트이자 정치철학자

어느 날 노나라의 최고 실권자 계씨(季氏) 밑에서 벼슬을 하고 있던 염구와 자로가 스승인 공자를 찾아왔다. “계씨가 전유(노나라의 속국)를 쳐서 손에 넣으려고 합니다.” 공자가 놀라 물었다. “그게 무슨 소리더냐. 혹 너희들이 그렇게 만든 것은 아니냐? 전유는 이 나라 안에 있으니 곧 나라의 신하다. 어찌 정벌한단 말이냐?” 계씨의 권세가 아무리 막강하다고 해도 같은 노 나라 임금의 신하인 전유를 제멋대로 공격한다는 것은 명분도 없을뿐더러 반역으로 볼 수 있었기 때문이다.

“계씨께서 하는 것이지, 저희 두 사람은 모두 원치 않았습니다.” 염구가 변명했지만 공자는 받아들이지 않았다. “구야, 주임(周任)이 말하길 벼슬에 나아가 자신의 능력을 다 펼칠 수 없는 자는 그만두라고 했다. 위태로운데도 붙잡아주지 못하고 넘어지는데도 부축해주지 못한다면 장차 그렇게 보좌하는 신하를 어디에 쓰겠느냐?” 주군의 잘못된 결정을 바로잡아주지 못하는 참모는 존재할 필요가 없다는 것이다. 공자는 이어 말했다. “내가 듣건대 나라와 집을 이끌어가는 자는 사람이 적음을 근심하지 말고 고르지 못함을 근심해야 하며, 재물이 부족함을 근심하지 말고 편안하지 못함을 근심해야 한다고 했다. 계씨는 밖에 있는 전유 땅에 마음을 둘 것이 아니라 먼저 자신의 내부부터 걱정하며 살펴야 할 것이다.” 국력을 키우겠다며 외부의 인적, 물적 자원을 탐하기 전에 먼저 내부부터 제대로 다스리라는 것이다. 백성이 고르지 못한 것을, 백성이 편안하지 못한 것을 근심하고 두려워하지 않는 지도자는 결국 실패하고 그 나라도 위험에 빠지게 된다. 내부를 단속하지 않은 채 전유를 노리다가 가신(家臣) 양호의 역모로 위기에 몰리게 되는 계씨처럼 말이다.

개혁 주도 세력이 정당성의 근거로 활용

논어의 이 대목은 조선왕조실록에서도 자주 인용됐다. 주로 국가제도와 법이 백성들에게 공평하게 적용되고 있느냐를 논의할 때 쓰인다. 조선 초기의 공법 제정, 조선 중후기의 대동법 실시, 양역변통(良役變通) 작업 등에서 개혁 주도 세력은 바로 이 구절을 가지고 정당성의 근거로 삼았다. 양역변통에 관한 발언을 보자. “우리나라는 땅이 좁고 백성이 적어서 군사를 양성하는 일에 온 나라가 총력을 기울이더라도 오히려 부족할까 걱정인데, 그 적은 인구도 신분별로 구분하여 놀기만 하고 게으른 자가 열에 여덟 아홉을 차지하고 간신히 남아 있는 선량한 백성에게만 유독 군역을 부담시키고 있습니다. 공자께서는 땅과 백성이 적은 것을 걱정하지 말고 고르지 못함을 근심할 것이며 부족함을 걱정하지 말고 상하가 편안하지 못함을 근심하라고 하셨습니다. 균등하면 가난하지 않고 화합하면 부족하지 않고 편안하면 나라가 위태롭지 않다고도 하셨습니다. 지금 군역이 고르지 못함이 이런 지경에 이르렀으니 무슨 방법이 있어 백성의 마음을 하나로 묶어 나라가 뒤엎어지지 않도록 할 수 있겠습니까.”(효종 10.2.11)

조선시대에서 백성들이 졌던 3대 의무(토지세, 신역, 공납) 중 하나인 ‘신역(身役)’은 16~60세 사이의 양인(良人, 천민 이외의 모든 백성) 남성에게 부과되었기 때문에 ‘양역’이라고 불렸다. 일정 기간을 군대에 복무하는 ‘군역’이 대표적이다. 국가는 현역 복무자인 ‘정군(正軍)’ 외에 국방 경비를 부담하는 ‘보인(保人)’을 두고 매년 군포 2필을 징수했는데, 전쟁과 대기근으로 인구가 급감하면서 문제가 발생한다. 전후 복구와 국방력 확충 등 늘어나는 재정 수요에 대한 부담이 백성들에게 몇 배로 가중된 것이다. 더욱이 양반이나 부유한 평민들은 납세자 대장에서 빠져나갔기 때문에 군역에 대한 백성들의 원망이 하늘을 찌르고 있었다.

이에 국가에서는 양역변통 작업을 추진하게 되는데 영조에 이르러 결실을 맺는다. “백성은 나라의 근본이니 근본이 튼튼해야 나라가 태평하다고 했다. 오늘날 이 나라는 과연 근본이 튼튼하다고 말할 수 있는가? 백성들이 편안하다고 말할 수 있는가? 지금 백성들은 도탄에 빠져 있다…(중략)…균역법(均役法)을 실시하는 것은 선대왕들의 뜻을 이어받아 백성을 소중히 여겨 나라의 근본을 튼튼하게 하고자 함이다.”(영조26.7.3). 여기서 ‘균’역법이라는 이름에 앞서 소개한 공자의 가르침이 담겨있다 (영조26.5.17).

흔히 국가가 요구하는 조세나 의무가 일부에게만 부과된다면, 그것은 국가의 자원을 효율적으로 활용하지 못하는 것일 뿐만 아니라 불평등에 따라 누적된 불만이 공동체의 화합을 저해하게 될 것이다. 왜 나만 세금을 내야 하는지에 대한 합리적인 이유가 없는데, 흔쾌히 세금을 낼 사람은 없다. 그저 처벌이 두려워 어쩔 수 없이 내는 것이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 공자가 강조한 대로, 국가에 대해 짊어지는 의무가 균등하게 배분되고, 국가가 주는 혜택이 고르게 퍼지며, 국가의 법과 시스템이 공정하게 운용되어야 한다. 주자(朱子)는 ‘균등’의 의미에 대해 구성원들이 각기 알맞은 분수를 얻는 것이라고 주석을 달았는데 이것도 같은 맥락이다. 백성들에게는 각자의 역할과 능력에 따라 적합한 자리가 배분되어야 하며 골고루 기회가 주어져야 한다. 그래야 백성들은 가난하지 않고 부족함이 없이 서로 화합할 수 있게 된다.

‘편안함’도 중요하다. 국민은 국가가 전쟁, 범죄, 재해, 질병 등의 위협으로부터 자신을 보호해주길 바란다. 아무런 걱정 없이 자신의 일과 삶에 집중할 수 있길 원한다. 이는 국민의 기대일뿐 아니라 국가의 당연한 의무이기도 하다. 구성원들의 충성도와 소속감을 높이고, 국가의 자산과 역량을 최대화시키려면 구성원들에게 가해지는 내외부의 위협을 해소하고 편안하게 해주어야 하는 것이다. 공자가 편안하지 못함을 근심해야지 부족함을 근심할 필요가 없다고 말한 것은 그래서다.

오늘날 국가나 기업, 각종 집단을 이끄는 사람들은 외적 확장에 치중하곤 한다. 규모가 확대되고, 구성원들이 늘어나며, 자본금이 증대되는 것을 성공의 지표로 삼는다. 물론 이것이 중요하지 않다는 것은 아니다. 구성원들에게 더 많은 혜택을 주기 위해서라도 그만큼 파이는 커져야 한다. 하지만 내적으로 건강하지 못한 상태에서 외적으로 성장하는 것이 옳은 길일까. 장기에 이상이 생기고 혈관이 곳곳에서 막힌다면, 키가 아무리 커지고 체중이 늘어봤자 그는 환자일 뿐이다.

비옥한 땅과 많은 인구가 있어도…

일찍이 율곡 이이는 국가의 진원지기(眞元之氣)라 할 수 있는 백성이 튼튼해야 나라도 제 자리를 찾게 된다고 했다. 진원지기가 약한 사람은 아무리 훌륭한 자질과 성품을 가졌다고 해도 요절하고 말 듯이, 비옥한 땅과 많은 인구를 가진 나라라 해도 진원지기인 백성이 약하다면 오래가지 못한다. 조직이 커지기를 바라기에 앞서 구성원들에게 눈을 돌려야 하는 이유이다. 구성원들이 균등하고 안전하게 각자의 맡은 바 임무를 수행할 때 비로소 그 조직에게는 한계가 없을 것이다.

김준태 - 칼럼니스트이자 정치철학자. 성균관대와 동 대학원에서 공부하고 성균관대 유교문화연구소와 동양철학문화연구소를 거치며 한국의 정치철학을 연구하고 있다. 우리 역사 속 정치가들의 리더십과 사상을 연구한 논문을 다수 썼다. 저서로는 [왕의 경영], [군주의 조건] 등이 있다.

1314호 (2015.12.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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