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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상주 기자의 글로컬 컴퍼니 | 필츠코리아(pilz Korea)] “안전은 비용 아닌 장기 투자” 

자동화 기술 기반 안전 자동화 기기 개발부터 산업안전 자격증까지 


▎사진:지미연 객원기자
공기나 물처럼 중요하지만 쉽게 잊는 단어가 있다. 바로 ‘안전’이다. 사고를 피하고 건강과 생명을 유지하는 게 조금 더 잘 먹고 풍족하게 사는 것보다 중요하다. 하지만 늘 안전엔 무신경해지기 쉽다. 설마 나에게 이런 일이 일어나겠느냐는 생각이 들고, 사고가 일어나지 않는다면 투자할 필요가 없는 비용이 들기 때문이다.

특히 기업에선 안전이 딜레마다. 흔히 안전에 들이는 시간과 돈은 당장 매출이나 이익을 늘리는 데 도움이 되지 않는다. 오히려 재무제표에 비용으로만 기록된다. 법규가 정하는 수준만 유지하면 책임질 필요도 없다. 그래서 사고가 일어나면 늘 ‘불행’이라고 말한다. 안전에 조금만 더 투자를 했다면 일어나지 않았을 불행이지만 그런 이야기는 성장주의에 빠진 경제 이슈 중에 쉽게 묻힌다.

지난 11월 10일에도 대우조선 거제옥포조선소에서 LPG선박에 화재가 발생해 2명이 사망하고 7명이 중경상을 입었다. 산업현장은 생활공간보다 안전이 더욱 강조된다. 그만큼 위험 요소가 많고 한 번의 사고도 위중해지게 마련이다. 생산현장 특성상 대형 기계들이 오작동을 일으킬 수 있고 위험물질이 유출될 가능성도 크다.

독일 기업 필츠(pilz)는 산업안전 분야에 적용하는 안전기준을 인증하고 관련 제품을 만드는 글로벌 기업이다. 어떻게 해야 공장이 안전할 수 있는지 아는 기업이 안전 규격에 맞는 제품을 만든다는 것이 이 회사 특징이다. 그래서 필츠는 한국에서 일어나는 각종 산업 재난 등에 대한 주요한 분석 정보를 가지고 있는 것으로도 유명하다.

한국 산업안전 멕시코에도 뒤쳐져


산업안전은 크게 2가지 영역으로 나뉜다. 플랜트나 발전시설, 공항 등의 시설산업 분야와 자동차, 철강, 제지 등의 제조기반 분야다. 시설산업 부문은 최근 일어난 구미 불산 유출 사고 등이 언론에 보도되면서 세인들의 관심을 모았다. 하지만 기계류 등이 중심이 된 제조기반의 안전에 대해선 아직 안전이나 위험에 대해 둔감한 편이다.

기계류 공장에서의 사고는 과거에 비해 크게 줄었다. 하지만 알게 모르게 발생하는 개별 공장에서의 사고는 계속 일어나고 있다. 2013년 기준으로 산업현장에서 1870명이 사망했다. 사망자 수의 29배에 달하는 사람이 중상을 입고 또 그의 29배에 달하는 사람이 경상을 입는다고 한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중 한국은 안전에 있어 29위다. 이보다 나은 28 등이 멕시코다. 김정훈 필츠코리아 대표(45)는 “누군가의 가장이 다치거나 죽고 있는 것은 한국 사회가 규정을 지키지 않고 성과관리 위주로 일터를 만들기 때문”이라며 “정부·경영자·근로자 셋 모두가 안전문제에 대한 인식을 바꿔야 한다”고 말한다.

제조기반 산업의 안전은 공장자동화와 밀접하다. 대부분의 공장이 거대한 기계 시스템으로 돌아가기 때문이다. 자동화가 진행될수록 공장의 위험도는 높아져왔다. 또 한편 안전을 위한 시스템도 자동화 덕에 보다 발전해왔다. 기계 등이 안전 규정에서 벗어나 오작동하거나 사람이 안전하지 않은 상태에 놓였을 때 기계가 자동으로 멈추는 등 위험을 회피하기 때문이다. 자동화는 안전에 있어 양날의 검이다. 김정훈 대표는 “안전 기준에 대해 기업주는 물론 노동자들도 본인의 생명을 스스로 보호하겠단 생각을 가져야 한다”며 “기업도 성과관리 위주의 시각에서 벗어나 안전 수준을 보다 높일 필요가 있다”고 강조한다.

세계 자동화 시장은 연 4190억 유로(2012년 기준)에 달한다. 통상 공장 자동화 분야는 로크웰, 지멘스, 오므론 등이 3분하고 있다. 이들 빅3는 공장 자동화와 에너지 자동화 등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하지만 로크웰이나 지멘스도 공장의 안전 시스템 하드웨어를 담당하는 사람은 한두 명에 불과하다. 원자력 등 고도로 위험한 산업현장을 다루는 안전 인력도 1~2명밖에 없는 실정이다. 이에 반해 안전 관련 제품에는 이들보다 필츠가 한 발 앞서 있다.

특히 자동화를 활용한 안전 제품이 필츠의 강점이다. ‘PSS4000’이라는 안전 PLC(프로그램이 가능한 논리회로 제어기)가 대표 상품이다. 자동화된 공장에서 생산라인을 관리하는 PLC의 상위에서 안전등급에 맞춰 각 제품이 제대로 돌아가는지 점검하고 문제가 생기면 전체 시스템을 멈추게 하는 장치다. 수명이나 안정성 등이 일반 PLC보다 훨씬 뛰어나야 하고, 100년에 한 번 작동하더라도 일단 작동하면 정확하게 움직여야 한다. 주로 시속 300km로 달리는 KTX 등에 사용되는 장치로 재앙을 막는 자동화 기술이다. 현대제철이나 삼성전자는 물론, 스키장 리프트나 공항 물류 산업 등에 필츠의 시스템이 도입돼 있다. 최근엔 3차원 카메라로 위험요소를 판단해내는 기술까지 선보이고 있다. 기계가 공간을 인식해 위험한 지역을 분류한다. 위험 지역에 사람이나 이동 기계가 들어오면 관련 시스템을 셧다운시키거나 기계 충돌을 회피할 수 있도록 대안 장치를 가동한다.

이런 안전 관련 장치는 가격이 비싸다. 일반 자동화 부품의 2~3배 수준이다. 센서는 5~10배에 달한다. 모두 높은 안전 관련 인증을 받아야 해서 제품 출시 전 시험과정이 3~4년 넘게 걸린다. 그만큼 정밀하고 정확하게 작동하는 기기다. 이렇게 비싸지만 사업주는 반드시 이런 장치를 자동화 공장에 장착해야 한다. 한국에도 의무인증, 선택인증, 자율신고대상 등으로 나뉜 안전 장치에 관한 규정이 있다. 지난 2013년 3월 10일 나온 KC 인증에 따른 의무다. 위험도가 높은 절복기, 절단기 등은 반드시 안전인증을 받아야 한다. 선진국의 안전 규제에 비하면 상당히 늦은 편이다. 과거 김영삼 정부에서 관련 규제를 시행하려다 외환위기로 좌절되면서 도입이 지연됐다. KC인증 기준은 글로벌 기준에 부합하는 수준이다. 이에 따라 안전장치 미장착 기업들도 하나 둘 공장에 자동화된 안전 장치를 장착하고 있다.

성과주의 벗어나야 산업 스트레스 줄어


▎독일 슈르트가르트에 조성된 필츠 캠퍼스. 본사 건물(왼쪽)과 새로 만든 공장.
실제 한국의 대기업이 공장을 설립하면서 생긴 일이다. 글로벌 공장 자동화 기업에게 안전 설비를 포함해 턴 키 방식으로 공장을 주문했다. 기계의 가동 형태와 각종 행위 법규·지침을 고려해 안전도를 고려한 공장 설계가 나왔다. 하지만 견적을 받은 한국의 대기업은 왜 이렇게 비싸냐고 불평했다. 자동화 기업은 안전 관련 기기를 일부 덜어내고 안전관리인을 두는 식으로 설계를 변경했다. 가격은 훨씬 떨어졌지만 문제가 생겼다. 안전관리를 하는 사람들의 전공이래야 기계나 화학공학 정도인데, 이들은 안전시스템 설계를 할 줄 모르기 때문이다.

공장이 가동한 뒤 KC인증을 받게 된 그 회사는 발등에 불이 떨어졌다. 부랴부랴 안전 자동화 기기를 사들여 설치했다. 하지만 공장의 어느 누구도 그걸 어디에 어떻게 설치해야 하는지, 공장 기계의 동작과 안전 기기가 어떻게 조화를 이루는지 몰랐다. 서류상 안전 요건만 채운 그 공장은 여전히 돌아가고 있다. 실제 사고가 발생하면 또 다시 ‘불행’ ‘불의의 사고’라는 말이 나올 것이다. 김정훈 대표는 “미국이나 유럽에선 이런 안이한 방식으로 사고가 발생하면 노무 관련 로펌이 파고 들어 기업이 파산할 정도로 압박을 가한다”며 “한국에선 이런 문제가 발생하면 근로자에게 사망 위로금을 쥐어주고 쉬쉬해버리는데, 이런 문제는 한국 정부가 직접 나서서 해결해야 할 과제”라고 말한다.

안전 자동화는 공장 자동화가 진행될수록 사업성이 높아 전망이 밝다. 필츠는 현재 독일에서 시작돼 세계 제조업 전반에서 관심을 모으는 인더스트리 4.0에 기대를 걸고 있다. 자동화 기술을 기반으로 각종 안전 시스템이 하나의 컴퓨터 내에서 독립적으로 작동하는 분산제어시스템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이는 인더스트리 4.0이 실현되기 위한 기초 단계에 필요한 시스템이다.

한국 등에 공급하는 필츠의 제품은 중국에서 생산되고 있다. 그 규모도 늘어나고 있다. 지난 6월 중국 진탄(Jintan)에 공장을 완공했다. 이곳 개발인력은 500여명 정도다. 지난 10월 1일에는 독일 필츠 본사 옆 부지에 설립자의 이름을 딴 Peter Pilz 신 공장을 지었다. 이곳을 ‘Pilz Campus’라고 부른다.

컨설팅과 엔지니어링에 강점

필츠는 거대한 글로벌 기업이지만 경영은 가족회사 방식이다. 창업자 페터 필츠가 1976년 사망한 이후 아내 르네트 필츠가 1994년부터 글로벌 CEO로 활동하고 있다. 현재는 그녀의 딸과 아들이 경영 전면에 나섰다. 필츠가 한국에 들어온 것은 인천 공항공사의 공사를 수주하면서부터다. 2002년 연락사무소 형태로 들어와 있다 2010년까지 25명 규모로 확장했다. 안전자동화 시스템을 만들면서 조직을 재정비해 현재와 같은 한국지사를 설립했다.

필츠코리아의 강점은 컨설팅과 엔지니어링이다. 제조보다는 연구개발과 기술 지원 등 서비스가 중심이다. 각 공장의 위험성 평가와 보안, 안전교육 등의 컨설팅 과정이 한국의 여러 기업으로부터 호응을 얻고 있다. 국제기계류 안전전문가 자격증 코스도 가지고 있어 전문가를 길러내는 것도 중요 업무 중 하나다. 2014년 공장 자동화의 안전 분야만 놓고 보면 한국 2위를 기록하고 있다. 김정훈 대표는 “한국이 글로벌 시장으로 나아가려면 글로벌 산업 법규와 지침을 따라야 하는데, 이 부문은 지속적으로 강화되고 있어 한국 기업엔 또 하나의 장벽으로 작용하고 있다”며 “현재 한국의 제조업 분야 안전재해 수준은 강화되는 국제안전관리법규와 지침에 못 따라가고 있다”고 말한다.

세계로 생산시설을 넓혀가기 위해선 각종 안전 기준을 높여야 하는데 한국은 성장 수준에 비해 안전에 대한 투자와 인식이 낮은 편이란 얘기다. 김 대표는 “단기적으로 보면 안전에 투자하는 것이 추가적인 비용처럼 보이겠지만, 장기적으로 보면 기업의 경쟁력 강화와 이미지 개선, 비용절감 효과를 가져온다”며 “안전은 사회적 책임이자 공유가치를 창조하는 가장 기본적인 방법인 만큼 많은 기업이 관심을 쏟아야 할 부분”이라고 강조했다.

필츠의 가치는 사회적 책임이다. 글로벌 본사부터 한국지사까지 한 목소리로 강조하는 얘기다. 안전 장치이다 보니 효율보다 정확한 작동이 제품 제작의 우선 가치가 될 수밖에 없다. 그래서 다른 자동화 기기 제품을 만들 수 있어도 제품으로 만들어 판매하지 않는다. 안전에 전문화된 기기를 만드는 것이 주요 목적이기 때문이다.

빠르게 공장을 돌리는 것과 안전하게 기계를 운용하는 것은 가치가 상충하는 일이다. 이 때문에 안전 기기는 공장 효율화와 일정 정도 거리를 둘 필요가 있다. 그런 독립성을 유지한 것도 필츠가 안전 자동화 기기 시장에서 브랜드 파워를 키울 수 있게 된 배경 중 하나다. 자동화 업계 글로벌 기업들은 여러 차례 필츠를 인수·합병 대상으로 노려왔다. 하지만 필츠는 안전이라는 가치를 유지하기 위해 제의를 거절해왔다.

- 박상주 기자 park.sangjoo@joins.com

☞ 인더스트리 4.0: 제조업에 IT를 결합한 지능형 공장으로 사물 인터넷(internet of things) 등으로 생산기기와 제품 간 정보교환이 가능한 제조업 혁신. 완전한 자동 생산 체계를 구축하고 전체 생산과정을 최적화하는 산업정책이다. 1차 증기기관, 2차 산업혁명(대량생산, 자동화), 3차 IT의 산업 접목에 이어, 사이버물리시스템(CPS)이 네 번째 산업혁명을 가져올 것이라는 의미에서 4.0이라 이름 붙었다.

1313호 (2015.12.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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