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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로벌 파워 피플 (111) 레제프 타이이프 에르도안 터키 대통령] 터키의 EU 가입 기회 잡은 강골 정치인 

권위적이지만 경제적 자유주의 정책 견지 ... 인프라 확산으로 한국에 기회의 문 열려 

채인택 중앙일보 논설위원

▎레제프 타이이프 에르도안 터키 대통령. / 사진:뉴시스
레제프 타이이프 에르도안(61) 터키 대통령은 2015년을 가장 뜨겁게 산 글로벌 지도자 중 한 명이다. 무엇보다 에르도안은 올해 터키의 오랜 꿈인 유럽연합(EU) 가입에 한걸음 성큼 다가갔다는 점에서 주목받고 있다. 터키는 사실 제2차 세계대전 직후부터 선진 지역인 유럽의 일원이 되는 꿈을 꾸어왔다. 미국, 중국에 이어 세계 3위 수준의 초거대 경제권인 EU의 일원이 되면 인적·경제적 교류를 통해 비약적인 경제 발전을 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런 터키의 에르도안에게 올해 천운의 기회가 왔다. 국경에서 시리아 등 중동에서 온 난민을 맡아 유럽으로 몰려가지 못하도록 관리하는 임무를 EU로부터 위탁받으면서다. 유럽의 울타리로서 역할을 인정받으면서 그 대가로 EU가입 협상의 길이 열린 것이다.

유럽의 울타리 역할 자임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왼쪽)이 터키 안탈리아에서 열린 주 요 20개국 정상회의에 참석해 레제프 타이이프 에르도안 대통령과 논의하기 전 기자회견을 준비하고 있다. / 사진:뉴시스
지난 11월 29일 벨기에 브뤼셀에서 열린 EU·터키 정상회의에서 터키가 중동 난민을 끌어안는 대신 EU가 터키의 EU 회원 가입 협상을 재개키로 했으며 30억 유로(약 3조7000억원)를 지원받아 난민 수용시설을 자국 내에 짓기로 합의했다. 인권·법률체계·제도 등 조건을 EU의 기준에 맞추면 터키는 대망의 EU 가입을 이룰 수 있다. 터키의 EU 가입에 가장 반대했던 독일의 앙겔라 메르켈 총리가 오히려 터키를 돕겠다고 나섰다. 100만 명의 난민들이 독일로 몰려드는 상황이 메르켈 총리에게 정치적으로 이롭지 않기 때문이다.

다만, 터키의 EU 가입 협상이 순탄하지만은 않을 것으로 예상된다. 에르도안 대통령의 권위주의적인 통치 스타일 때문이다. 서구 언론은 물론 터키 내의 비판 언론들도 에르도안이 정적이나 반대파, 언론인들을 탄압해 왔다고 지적했다. 터키 당국은 자신들에게 비판적인 유명 언론인들을 체포했으며, 소수민족인 쿠르드족을 돕는 변호사가 총격을 받아 숨지기도 했다.

그러나 터키는 무시할 수 없는 나라다. 인구 7800만 명의 대국이다. 국토 면적도 78만3500㎢로 한반도의 3.25배에 이른다. 국내총생산(GDP)은 7980억 달러로 세계 18위다. 군사력도 병력이 100만 명을 넘을 정도로 대군을 유지하고 있다. 러시아는 물론 중동의 군사적 위협에도 대항해야 해서다. 이런 군사력 때문에 터키는 서방 세계의 보루이자 중동의 세력 균형자 역할을 톡톡히 한다는 평이다. 국민개병제로 병력을 유지한다. K-9 자주포 등 한국산 무기를 애용하는 나라이기도 하다. 경제적으로는 1인당 GDP 1만482달러로 유럽 국가에 비해서는 낮지만 중동 국가에선 상당한 수준이다.

국토가 아시아와 유럽에 걸쳐 있어 양쪽 문화를 잇는 다리 역할을 하고 있다. EU에 가입하면 유럽과 중동 양쪽으로 무역을 확대할 수 있다. 터키를 선진국으로 올려놓을 수 있는 절호의 기회가 된다. 터키는 북대서양조약기구(나토) 회원국으로서 서구 동맹의 일원이라는 사실과 영토의 일부가 유럽 대륙인 발칸반도에 있다는 점을 앞세워 이러한 꿈의 실현을 위해 앞장서왔다. 그 꿈을 실현해 터키가 다시 역사의 중심에 서는 작업의 중심에 에르도안이 선 것이다.

이를 위한 터키의 노력은 눈물 겨울 정도다. 터키군이 1950년 한국전쟁에 참전한 것도 미국이 주도하고 유럽이 동참한 나토 가입을 위한 포석이라는 주장도 있다. 소련은 물론 발칸반도의 공산국가인 불가리아와도 국경을 맞대고 있는 터키는 나토에 가입하면서 사실상 서방 세력의 최전방 전진기지 역할을 톡톡히 해냈다.

하지만 터키의 유럽 편입은 쉽지 않았다. 터키는 1995년 유럽경제공동체(EEC)에 가입 신청을 했으며, 4년 뒤 EEC가 EU로 확장된 뒤에도 가입 신청을 했지만 번번이 거부당했다. 2005년 정회원 가입 협상이 시작됐지만 프랑스·독일이 반대하면서 진척이 없었다.

터키의 EU 편입 시도 초기에는 유럽에서 지리적인 문제나 역사적인 문제가 걸림돌로 작용했다. 지리적으로 유럽 대륙에는 발칸반도 동남쪽 귀퉁이에 자그마한 영토만 보유할 뿐 대부분의 국토가 아시아 대륙인 소아시아반도에 있다는 점이 지적됐다. 하지만, 그보다 영토가 작은 나라도 회원국으로 가입했다는 점에서 지리적인 문제는 상쇄됐다.

역사적인 문제는 만만하지 않았다. 유럽 문화권과 앙숙이던 오스만제국의 후예라는 점이 가장 큰 문제로 지적됐다. 하지만, 1299년에 건국돼 1923년 군주제 폐지로 사라진 오스만제국은 튀르크계 부족이 세웠지만 튀르크 민족국가가 아닌 포용적인 다민족 국가였다는 점이 인정되면서 이런 논란은 가라앉았다. 군주가 튀르크계이고 지배층과 인구의 대다수는 무슬림이었지만 기독교·유대교 등 다양한 신앙이 허용된 관용의 다종교 사회였다. 영토나 인구, 군사력은 물론 문화적으로도 유럽에 앞선 다문화의 소프트파워 제국이었다. 게다가 오스만제국의 영역이던 발칸반도의 여러 나라가 유럽에 편입되면서 터키의 입지는 훨씬 넓어졌다. 역사적으로 터키와 앙숙인 그리스가 사사건건 반기를 들었지만 경제위기로 발언권이 위축되면서 견제력을 상당히 잃은 것도 터키에는 유리한 상황이다.

터키가 대부분의 유럽 국가와는 달리 국민 대부분이 무슬림(이슬람 신자)이라는 점도 기독교가 주류인 EU 편입을 막는 요인으로 지목됐다. 하지만, 유럽에도 이민자를 비롯한 무슬림이 적지 않은데다 발칸반도 등에는 과거 오스만 시절 무슬림이 된 토착민의 후예가 적지 않다는 점 때문에 이런 논란도 더 이상은 문제가 되지 않는 분위기다. 특히 터키는 1923년 공화국을 선포하면서 ‘세속주의’를 국시로 정하고 이슬람이 정치에 절대 개입하지 못하도록 했다. 제정일치의 전근대적인 오스만제국과 차별화하고 서구화에 박차를 가하기 위해서였다. 아울러 종교를 문제로 EU 가입을 막는 것은 다양성과 공존, 관용을 기치로 내건 EU의 정신에 어긋난다는 지식인들의 주장도 터키에 힘을 보탰다. 다만, 터키의 인권 문제는 여전한 걸림돌이다. 권위주의 지도자인 에르도안이 이를 얼마나 해결하느냐에 터키의 명운이 달린 셈이다.

지리·역사·종교·인권 문제 산적

강골 이미지의 에르도안은 올해 러시아의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과 맞서면서 서방 세계 지도자들에게 주목받고 있다. 지난 11월24일 터키 전투기가 시리아 접경에서 러시아 전폭기를 격추하는 사건이 발생하면서다. 러시아 전투기가 국경을 넘어 터키 영공을 침입했다는 이유에서였다. 에르도안은 러시아가 파리테러 등으로 국제사회의 공적으로 지목되고 있는 IS는 폭격하지 않고 바샤르 알아사드 시리아 대통령 정부에 대항하는 반군을 공격해 알아사드를 돕고 있다고 비난했다. 두 사람이 비난전을 계속하자 미국의 버락 오바마 대통령을 비롯한 서방 진영은 터키 편을 들었다.

그러자 푸틴 대통령은 터키가 잔혹한 인권유린으로 악명 높은 중동 극단주의 무장단체와 거래를 했다고 주장하면서 에르도안을 밀어붙였다. 푸틴은 11월30일 프랑스 파리 근교 르부르제에서 열린 유엔기후변화협약 당사국총회(COP21)에서 이 문제를 직접 거론했다.

그는 “터키가 IS 추종자들이 시리아로 밀입국하는 걸 방조하는 대가로 IS로부터 값싼 원유를 사들여 이득을 챙기고 있다”고 비난했다. 그러면서 에르도안을 향해 “전투기 격추 결정이 IS의 석유를 유조선에 적재하는 터키 항구까지의 공급선을 보호하려는 의도에서 비롯됐다고 여길 만한 충분한 이유가 있다”고 직격탄을 날렸다. 이에 대해 에르도안은 “그런 일이 입증된다면 우리 국가의 고결함을 위해 나는 자리를 지키지 않을 것”이라며 펄쩍 뛰었다.

두 사람의 논쟁을 두고 일부 언론은 (오스만제국의) 술탄과 (제정러시아의) 차르가 맞붙은 것으로 비유했다. 두 사람 다 권위를 강조하는 인물인데다 민족주의를 강조해왔기 때문이다. IS는 매일 최고 5만5000배럴(1배럴은 158.9L)의 원유를 생산해 150만 달러(약 17억4000만원)의 수입을 거둬온 것으로 추정되지만 IS 점령 지역엔 항구가 없어 터키를 통해 수출한다는 의심을 받아왔다. IS가 지난 8개월간 시가 8억 달러어치의 원유를 터키 암시장에 반값에 팔았다는 주장이 모와파크 알루바이 전 이라크 국가안보보좌관에 의해 제기되기도 했다. 이 문제가 어떻게 끝나든 간에 에르도안은 푸틴에 대한 대리전으로 서방 국가의 신뢰를 얻을 수밖에 없다.

2023 비전 선포하고 인프라 확충 나서

에르도안은 2003년 3월부터 2014년 8월까지 11년 이상 총리를 지내다 2014년 8월28일 대통령에 올랐다. 2001년 8월부터 2014년 8월 대통령에 취임하기 직전까지 정의와 개발당 대표를 지냈다. 그러면서 세 차례의 총선에서 승리해 정치력을 보여줬다. 그는 2003년 3월부터 2014년 8월 대통령 취임 전까지 국회의원을 지냈다. 그 전에는 1994년 3월부터 1998년 11월까지 터키 최대 도시 이스탄불의 시장을 지내면서 주민 복지를 강조하는 정책으로 인기를 모았다.

중요한 것은 그의 정치적 이념이 이슬람이라는 것이다. 이는 그가 설립한 정당의 이름에서 잘 드러난다. 1972~81년 국가구제당, 1983~98년은 복지당, 1998~2001년은 미덕당(헌법재판소 결정으로 해산), 2001년부터 정의와 개발당을 창당했다. 국가구제는 이슬람으로 나라를 구하겠다는 의미의 정당이며, 복지당과 미덕당은 이슬람 정신으로 주민 복지를 구현한다든지, 미덕을 장려하겠다는 뜻이다. 그런 국가구제당은 1980년 군사쿠데타로 탄압을 받다가 이듬해 문을 닫아야 했고, 복지당과 미덕당은 헌법재판소 결정으로 해산됐다. 모두 이슬람이라는 종교의 정신으로 정치활동을 벌이는 것은 정치와 종교의 분리와 세속주의 정치를 규정한 헌법에 위배된다고 군부와 헌법재판소가 판단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정부가 해주지 못하는 따뜻한 복지와 배려를 받은 주민들은 일련의 이슬람 정당을 지지했다. 에르도안의 정치적인 자산이다. 에르도안은 사회적으로는 이슬람 정신에 입각한 엄격함을 강조했지만 경제에선 자유주의를 앞세웠다. 에르도안 대통령은 ‘2023 비전’이라는 이름으로 터키 공화국 창건 100주년이 되는 2023년을 맞을 국가 비전을 마련해 추진하고 있다. 여기에는 EU가입과 2001년 시작된 세계적인 재정위기로 인한 경제난의 탈출, 쿠르드족 민병대를 해산하고 민족화합을 이루며 도로, 공항, 고속열차 등 대대적인 인프라 건설로 주민 생활을 향상하고 경제 발전을 위한 기반을 더욱 다지는 내용이 포함됐다. 경제정책이 에르도안 정책의 중심에 있음을 잘 보여준다. 고속철도는 중국이 거의 차지했지만 다른 인프라 투자에선 한국에도 기회의 문이 열린 셈이다. 에르도안의 터키에 주목해야 할 이유다.

에르도안이 직접 창당한 정의와 개발당은 정당 명칭부터 경제 주의적 성격이 보인다. 900만의 당원을 가진 이 터키 집권당은 중도우파정당으로 분류되지만 이데올로기는 상당히 복잡하다. 보수적 민주주의에 사회적 보수주의, 경제적 자유주의를 내세운다. 이슬람의 정신에 따라 가난한 사람을 돕는 정책을 추진하고 사회적인 부패와 타락을 막는 권위적인 보수주의를 앞세우면서도 기업인의 활동과 투자를 촉진하는 강력한 경제적 자유주의를 추진하는 것이다. 이에 따라 경제적, 외교적 업적에도 에르도안을 독재자라고 비난하는 국내외 여론이 확산하는 분위기다. 에르도안이 이를 극복하고 글로벌 스탠더드에 맞는 정책으로 터키를 성공적으로 EU에 가입시킬 수 있을지 주목된다.

- 채인택 중앙일보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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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15호 (2015.12.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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