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년 11월 초, 신흥국 침체를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사건이 있었다. 골드먼삭스가 브릭스펀드 운용을 중단하기로 결정한 것이다. 손실이 워낙 커, 더는 회복 기미를 찾을 수 없었기 때문이다. 지난 2007년 글로벌 투자자들의 큰 관심 속에 화려하게 데뷔한 브릭스 펀드는 승승장구했다. 하지만 8억 달러로 시작한 브릭스펀드의 자산 규모는 2015년 11월 현재 1억 달러로 쪼그라들었다. 최근 5년 누적 수익률은 마이너스 26%. ‘브릭스(BRICs)’라는 용어를 처음 만든 곳이 골드먼삭스다.
취약 신흥국, 외국인 자본 유출 우려국제통화기금(IMF)은 2015년 브라질의 경제성장률 전망치를 마이너스 3%로 내다봤다. 러시아는 마이너스 3.8%로 예측했다. 국제신용평가사 무디스는 브라질을 투자위험 국가로 꼽았다. 2015년 한 해 동안 IMF는 신흥국 경제성장률 전망치를 다섯 번 하향 조정했다. 한때 세계 경제의 신성장 동력으로 각광받던 모습은 사라졌다. 2016년 세계 경제에 커다란 악재가 될 것이란 보고서가 곳곳에서 나올 정도로 신흥국의 경제 전망은 어두운 편이다.2016년 신흥국 경제를 부정적으로 보는 이유는 크게 세 가지다. 중국 경기 침체, 원자재 가격 하락, 미국의 기준금리 인상이다. 먼저 중국 경제와 신흥국의 영향을 살펴보자. 신흥국 경제 둔화 우려는 중국 경기 침체와 원자재 가격 하락과 맞물려 있다. 특히 신흥국의 경우 중국 교역 의존도가 높아 중국 수출과 제조업 부진에서 받는 영향이 크다. 국제금융센터가 발간한 ‘2016년 세계 경제 전망’은 중국 경제와 신흥국 간의 연결 고리를 잘 설명해준다. 중국은 내수 중심 성장전략을 펴고 있다. 특히 수입에 의존하던 중간재를 자국산으로 빠르게 대체하고 있다. 중국에 부품·소재를 수출해온 국가들로선 큰 타격이다. 보고서는 수입산 중간재가 중국산으로 대체되면서 중국을 제외한 아시아 9개국 수출 증가율이 글로벌 금융위기 이전 평균 16%에서 이후 0.9%로 대폭 줄어들었다고 분석했다. 중국의 원자재 수입이 줄어든 점도 신흥국에는 위기 요인이다. 중국의 원자재 수요 감소에 따른 원자재 가격 하락을 헤쳐갈 방법이 없다. 대부분 신흥국이 원자재 수요가 늘어날 것을 예상하고 설비 투자를 늘렸지만 오히려 수출량이 줄고 가격까지 하락하는 이중고를 겪고 있다. 캐서린 맨 OECD 이코노미스트는 “세계 무역 교류가 중국을 중심으로 둔화되고 있다”며 “특히 해외 수요가 더딘 가운데 글로벌 경제에 대한 우려의 중심이 유로존에서 신흥국으로 이동하고 있다”고 설명했다.미국의 금리 인상도 신흥국 경제에 어두운 그림자를 드리울 전망이다. 미국 금리 인상으로 가장 우려되는 사안은 외국인 자금의 급격한 유출이다. 미국 금리 인상 전부터 이미 신흥국에서 선진국으로 자금이 이동하는 머니무브가 전 세계적으로 시작됐다. 국제금융센터에 따르면 2015년 들어 10월 말까지 신흥국 주식시장에서 유출된 외국인 자금은 570억 달러(약 64조8000억원)로, 작년 285억 달러에 비해 2배 가까이로 증가했다. 국제금융협회(IIF)는 올해 신흥국 시장의 자금 순유출액이 5400억 달러(약 625조3000억원)에 달할 것으로 추정했다. 문제는 빠져나갈 자산을 메울 방법이 마땅치 않은 데 있다. 미국 경기가 살아나고 있지만, 중국은 물론 일본과 유럽의 여건은 그리 좋진 않다.신흥국의 기업·가계 부채도 심각한 수준이다. IMF는 10월에 발표한 세계 금융안정보고서에서 신흥국 민간기업의 초과 채무가 3조 달러에 육박할 것으로 추정했다. IIF에 따르면 지난 2007년 이후 전 세계 가계부채 증가분 가운데 6조2000억 달러(약 7179조원)는 신흥국에서 발생했다. 국제금융센터 관계자는 “과거 신흥국에 가장 큰 위험요소는 경상수지 적자나 외환 보유액 부족이었는데, 지금은 저성장”이라며 “여기에 부채 우려까지 가세하면 위험도가 올라가게 된다”고 말했다. 조영무 LG경제연구원 연구위원은 “신흥국은 10년 전인 2004년 금리 인상기 때 경험했던 것보다 가혹한 상황에 내몰릴 것”이라며 “당시에는 브릭스가 주도하는 성장의 모멘텀이 있었지만, 지금은 세계 경제의 체력이 달라졌다”고 말했다.신흥국 리스크는 한국 경제에 큰 부담이다. 수출의 50~60%를 신흥국에 의존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주열 한국은행 총재는 “미국의 금리 인상과 중국의 경제 둔화가 맞물리면 국제금융시장의 불안정성이 상당히 높아질 수 있다”며 “신흥국에서 선진국으로 자본이 유출될 가능성이 크다”고 전망했다. 한국금융연구원도 신흥국 경제 불안에 따른 수출입 부진을 한국 경제의 최대 리스크로 지목했다. 더군다나 2015년 한국은 4년 만에 수출 1조 달러 달성에 실패할 것으로 보인다. 2016년 신흥국의 경제 불안은 한국의 수출입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친다. 수출입이 개선되지 않으면 1조 달러 달성은 더욱 멀어질 수밖에 없다. 임진 금융연구원 거시경제연구실장은 “현재의 경기 회복 모멘텀 부진은 대외 수요 요인이 더 크게 작용하고 있다”며 “세계 경제 불확실성, 경쟁적 환율 절하, 자원수출국의 수입 수요 둔화 등으로 과거 경기 회복기와 같은 높은 세계 교역 신장세는 당분간 어려운 상황”이라고 내다봤다.
한국에 전염 가능성 대비 해야물론 비관적 전망만 있는 것은 아니다. 뱅크오브아메리카(BoA)-메릴린치는 ‘중국 등 신흥국 경기 둔화가 지속하는 가운데 미 연방준비제도(연준)의 금리 인상으로 한국 경제는 하방 압력을 받을 것’이라면서도 ‘미국 경기 회복 및 완만한 금리 인상 속도 등에 따라 그 영향은 감내 가능할 것’이라고 평가했다. 또 ‘과거 연준 금리 인상 시 한국은 자본 유출 증가로 원화 가치가 하락했지만 2~3분기 내 이전 수준을 회복했다’며 ‘연준의 금리 인상이 금융시장에 미치는 영향은 단기에 그칠 것’으로 예상했다.국내 경제 전망 기관 역시 미 금리 인상에 따른 충격이 크지 않을 것으로 내다봤다. 현대경제연구원은 “최근 국내 경제 펀더멘털은 과거 미국의 금리 인상 때보다 양호하다”며 “미 금리 인상에 따른 국내 금융시장 불안감이 급격히 확대되거나 외환위기가 발생할 가능성은 작다”고 밝혔다.한국은행도 최근 통화신용정책보고서에서 외환보유액 증가, 기초경제여건 양호, 외국인 차입금 안정성 향상 등으로 미 금리 인상에 따른 금융 불안 확산 가능성은 크지 않은 것으로 평가했다. 홍준표 현대경제연구원 연구위원은 “다만 중국 경기 둔화 및 국제유가 하락으로 발생할 수 있는 신흥국 외환위기가 국내로 전염되는 것에 대비하는 것은 필요하다”며 “금융시장의 과도한 불안감 확대를 방지하고 국제 공조 체제를 강화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조용탁 기자 cho.youngtag@join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