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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증시 맥짚기] 美 경제가 최대 복병될 수도 

기대만큼 경기 좋지 않아 … 선진국 주가 현 수준 무너지면 대세 하락 위험 

이종우 IBK투자증권 리서치센터장

▎2월 11일 국내 증시는 최근 4~5년 만에 가장 큰 폭으로 하락했다. 사진:뉴시스
summary | 선진국 주가가 2014년 10월 기록했던 저점까지 내려왔다. 이 선이 무너질 경우 대세 하락이 시작될 수도 있다. 유동성 공급을 늘리거나 미국이 금리 인상을 늦추는 걸로 상황을 진정시키기 힘들지도 모른다. 지난 5년 간 계속돼온 선진국 주식시장의 대세 상승과 우리 시장의 박스권 횡보가 계속 유효한지 의심해 봐야 할 때가 됐다.

올해는 시작부터 국내외 주식시장이 요동을 치고 있다. 특히 2월 11일 국내 증시는 최근 4~5년 만에 가장 큰 폭으로 하락했다. 이날 코스피 지수는 전 거래일보다 56.25포인트(2.93%) 내린 1861.54에 거래를 마쳤다. 2012년 5월 18일 62.78포인트(3.40%) 하락한 이후 최대 낙폭이다. 코스닥 지수는 33.62포인트(4.93%) 떨어진 647.69에 장을 마쳤다. 코스닥 지수 역시 하루 하락폭으로는 2011년 9월 26일의 36.96포인트, 하락률로는 2013년 6월 25일의 5.44% 이후 가장 컸다. 사흘 휴장기간 동안 발생한 북한의 미사일 발사, 개성공단 폐쇄, 일본 증시 급락, 중국 외환보유액 감소, 도이체방크 위기 등의 악재가 한꺼번에 반영된 탓이다.

미국 경기, 생각만큼 좋지 않아

앞으로 주가 변동성이 커진다면 원인은 두 가지일 것이다. 하나는 신흥국에서 위기가 발생하는 경우다. 사안의 성격상 단기에 주가를 빠르게 끌어내리는 형태가 될 것이다. 다른 하나는 선진국 시장이 대세 하락에 들어가는 경우다. 이는 상대적으로 기간이 길고, 하락폭이 클 수 있다. 설 연휴 동안 선진국 주가가 하락하면서 후자의 가능성이 커졌다.

앞으로 주가를 예측하기 위해서는 선진국, 특히 미국 경제에 대한 분석이 필요하다. 그만큼 영향력이 크기 때문이다. 현재 미국 경제는 어떤 상황일까? 대부분이 ‘비교적 양호’라고 인식하고 있다. 2008년 금융위기 이후 장기에 걸쳐 가장 성공적으로 정책을 펴왔고 그 영향으로 다른 선진국에 비해 높은 성장을 유지하고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정말 그럴까? 국제통화기금(IMF)이 발표한 1월 세계 경제 전망치는 2016년과 2017년 모두 이전 전망에 비해 0.2%포인트씩 하향 조정됐다. 미국의 성장 전망이 0.2%포인트, 신흥국 중에서는 브라질과 러시아가 2%포인트 가까이 하향 조정된 반면 여타 지역은 동일하거나 약간 상향 조정됐다. 미국이 선진국 경기 둔화의 장본인임을 알 수 있다. 다른 기관도 비슷하다. 작년 하반기 이후 주요 예측기관의 미국 경제성장률 전망치 평균이 계속 낮아지고 있다. 1월 성장률 예상치 역시 작년 말에 비해 0.1%포인트 하락한 2.4%로 집계됐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실제 발표되는 지표가 예상치를 밑도는 상황이 벌어지고 있다. 경제지표 중에 ‘경기서프라이즈지수(ESI, Economic Surprise Index)’라는 것이 있다. 실제 발표된 경제지표가 시장 예상치와 얼마나 부합했는지를 측정하는 지표다. 기준선 ‘0’을 중심으로 지수가 예상보다 잘 나오면 ‘0’보다 높고, 예상보다 부진하게 나오면 ‘0’보다 낮게 표시한다. 이 지표가 펀더멘털의 추세를 보여주진 못하지만, 경제지표에 대한 이코노미스트들의 시각 변화를 보여준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최근 이 지표의 모습을 보면 중국 및 이머징 국가들은 우상향하거나 플러스 권에 있는 반면 선진국, 특히 미국은 가파르게 하락하고 있다. 미국은 예상에 못 미치고, 신흥국은 예상보다 괜찮다고 본다는 뜻이다.

중국이나 신흥국, 특히 원자재를 수출하는 국가의 경제는 위기가 거론될 정도로 좋지 않다. 그렇지만 이미 사람들이 경기가 나쁜 것을 다 알고 있고, 주가에도 어느 정도 반영됐다. 이와 달리 미국이나 유럽 선진국은 이머징 국가에 비해 경제가 상대적으로 좋지만, 전망 자체가 너무 낙관적인 방향으로 치우쳐 있다. 최근 미국 경기에 대한 부정적인 신호가 나오고 있지만, 이코노미스트들이 이를 무시하거나 전망치에 충분히 반영하지 않고 있는데, 부진한 지표에 대한 시장 반응이 커질 수 있다.

실제로 미국의 경기선행지수나 장·단기 금리차 등 선행성을 가지고 있는 지표들의 흐름이 특히 심하게 흔들리고 있다. 이는 금년에 2~3년을 주기로 하는 순환적인 경기 흐름이 반락할 가능성이 있음을 의미한다. 투자와 동행성 제조업 지표 역시 지난해 하반기를 기점으로 모멘텀이 약해지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그래도 경기가 좋다고 느끼는 건 고용과 소비가 상승 추세를 이어가고 있기 때문이다. 미국에서 매월 25만 개 가까운 일자리가 만들어지고 있다. 1월 실업률은 4.9%로 하락했다. 둘 다 과거 호황기 때에 필적하는 수치다. 작년 4분기 소비 지출은 2.2% 증가했다. 3분기 3%에 비해서는 낮아졌지만 투자·생산 등 다른 지표와 비교하면 양호한 수준이다. 고용과 소비가 가지고 있는 중요성에 비춰 볼 때 경기에 대한 기대가 높아지는 게 당연하다. 문제는 선후관계인데, 이들은 경기에 후행하는 지표들이다. 현재 상황을 판단하는 데 한계가 있다는 의미가 된다. 지금 소비가 좋다는 것이 향후 미국 경기의 지속적인 상승을 담보할 수 없으며, 이전 사이클의 단순한 연장일 수 있다는 점이 부담이 된다.

금융시장의 추세적인 흐름은 펀더멘털의 절대적인 수준과 방향성에 따라 좌우된다. 가격을 유지하는 힘도 펀더멘털에서 나온다. 문제는 단기적인 흐름은 경제에 대한 시장 참여자들의 인식에 따라 좌우될 수 있다는 사실이다. 경기 흐름이 나쁘지만 이미 경기가 안 좋다는 것을 대부분의 투자자가 인식하고 있고, 예측치가 이를 반영하고 있다면 안 좋은 경기가 시장에 미치는 영향은 제한될 수밖에 없다. 반면 경기가 좋더라도 높아져 있는 기대치를 충족시키지 못할 경우 주가가 의외로 약세로 기울 수 있다.

정책만으로 시장 끌고 가기 어려워져

지난 2009년 이후 6년 반 동안 미국 주식시장이 3배 올랐다. 상승률만 보면 호황기였던 1990년대보다 높다. 그리고 작년 한 해 주가가 옆걸음을 계속했다. 그 사이 경제성장률은 2%대 중반을 정점으로 점차 내려오고 있다. 기업 이익도 좋지 않다. 2010년 이후 미국 기업들이 사상 최고 이익을 기록하고 있지만, 거시지표와 괴리 때문에 신뢰를 얻지 못하고 있다. 장기간 만들어진 가격 형태가 바뀌기 전에 펀더멘털 변화가 먼저 나타나는 게 일반적인데, 최근 미국 경기 둔화가 그런 모습이 아닌지 의심스럽다.

금융위기 이후 미국 경기가 항상 좋았던 건 아니다. 중간에 소규모 경기 둔화 사이클로 인해 주가 하락의 위험이 높아졌던 때도 있었다. 그 때마다 저금리와 풍부한 유동성을 가지고 위기를 빠져 나왔다. 2, 3차 양적 완화가 대표적이다. 유동성 공급이 실물 경기를 빠르게 돌려 놓지는 못했어도 주식시장을 안정시키는 역할은 했다.

이제 선진국의 정책에 대한 기대가 낮아졌다. 정책이 6년 넘게 계속되면서 반응도가 현저히 떨어졌고, 동일한 정책이 반복돼 신뢰도마저 하락하고 있다. 정책만으로 시장을 끌고 가기 힘든 상황이 됐는데, 연휴 동안 선진국 주가가 하락한 게 이에 따른 반응이 아니었나 생각된다.

좀 더 열린 생각을 가지고 시장에 접근했으면 한다. 선진국 주가가 2014년 10월 기록했던 저점까지 내려왔다. 이 선이 무너질 경우 대세 하락이 시작될 수도 있다. 유동성 공급을 늘리거나 미국이 금리 인상을 늦추는 걸로 상황을 진정시키기 힘들지도 모른다. 지난 5년 간 계속돼온 선진국 주식시장의 대세 상승과 우리 시장의 박스권 횡보가 계속 유효한지 의심해 봐야 할 때가 됐다. 이 부분에 대한 의심을 접을 수 없다면 주식 보유 비중을 줄이는 게 상책이다.

- 이종우 IBK투자증권 리서치센터장

1322호 (2016.02.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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