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효진 8퍼센트 대표가 서울 사당동 본사에서 모바일과 인터넷 홈페이지를 시연하고 있다. / 사진:8퍼센트 제공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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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행과 대부업체 사이의 ‘대출절벽’에 맞닥뜨린 서민·청년층에게 작은 희망이 되고 싶습니다. 이들을 핵심 고객으로 한 중금리대출로 올해 누적 대출액 1000억원을 달성하겠습니다.” 국내 1위 P2P(개인간, Peer to Peer) 대출 중개회사인 8퍼센트의 이효진(33) 대표가 밝힌 올해 포부다. 8퍼센트는 금융권에서 요즘 가장 주목받는 스타트업(창업기업)이다. 창업 1년 6개월(2014년 11월 설립) 만에 1061명에게 188억원을 대출했다. P2P업계에서 가장 많은 대출금액이다. ‘연 8% 안팎의 중금리대출’을 상징하기 위해 사명을 8퍼센트로 짓고 적극적으로 투자자와 대출자를 찾아나선 결과다. 페이스북 같은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를 통한 바이럴(입소문) 마케팅이 주효했다. “지난해 상반기까지만 해도 대출자나 투자자를 구하기 어려웠어요. 대출자는 나중에 이자 더 내라는 거 아닌지, 투자자는 투자금 떼이는 거 아닌지 의심했어요. 그런데 대출 실적이 조금씩 늘고 수익 배당을 받은 투자자가 늘자 분위기가 확 달라지더라고요. 신뢰가 쌓인 거죠.”
P2P 대출의 선두주자P2P 대출은 신개념 핀테크(금융+정보기술)산업이다. 온라인에서 특정인이 대출 요청을 하면 불특정 다수가 십시일반으로 돈을 모아 빌려주는 형태다. P2P 대출 중개회사는 대출자와 투자자를 연결하는 중개 장소(플랫폼) 역할을 한다. 미국·유럽·중국 등에서는 이미 전통 금융권을 위협하는 신산업으로 성장하고 있다. 이효진 대표는 원래 은행원이었다. 포항공대 수학과를 졸업한 뒤 우리은행에 8년 간 근무하며 서울 본점 트레이드부서와 테헤란로 포스코센터지점 등을 두루 거쳤다. 은행원을 택한 데에는 우리은행 본부장 출신인 아버지 이익기씨의 영향도 컸다. 자라면서 은행원이 다른 직업보다 친숙했기 때문이다. 2011년에는 포항공대 1년 선배와 결혼해 가정도 꾸렸다. 잘 다니던 은행을 그만두고 창업하게 된 계기는 2014년 초 당시 시할아버지가 세상을 떠났을 때였다. “가까운 사람의 장례를 처음 치러 보면서 삶에 대해 고민해 봤어요. 계속 은행원으로 살면 후회하지 않을까. 그랬더니 ‘99% 후회한다’는 답이 바로 떠오르더라고요. IT 관련 스타트업을 하고 있던 남편도 ‘하고 싶은 일을 찾으라’고 응원해 줬어요.”이 대표는 사표를 낸 뒤엔 두 달가량을 말 그대로 ‘놀았다’고 했다. 페이스북의 ‘백수클럽’ 회원들과 어울리며 아이디어를 공유했다. 그러던 중 미국의 P2P 금융회사 ‘렌딩클럽’이 중금리 대출로 크게 성공해 뉴욕증시 상장을 준비하고 있다는 뉴스(※같은 해 12월 뉴욕증권거래소에 시가총액 85억 달러에 상장)를 봤다. P2P 금융을 처음 접한 순간이었다. “소개팅 나갔을 때 객관적인 조건이 최상이 아니더라도 느낌이 좋은 사람이 있잖아요. P2P가 제겐 그랬어요.”그 길로 이 대표는 P2P 금융회사 창업을 결심한 뒤 창업 지원기관인 서울 역삼동 은행권청년창업재단(디캠프)에 들어갔다. 밤낮없이 준비한 끝에 2014년 11월 8퍼센트를 설립한 뒤 12월 인터넷·모바일 사이트를 열고 베타(시범)서비스에 들어갔다. 임신 3개월 때였다. 8퍼센트의 투자와 대출 구조는 이렇다. 우선 자체 심사를 거쳐 선정된 대출자의 정보(대출희망액·대출사유·직업·나이·신용도 등)와 대출금리(수익률)를 사이트에 올린다. 그러면 이를 본 투자자들이 크라우드펀딩(불특정 다수 투자금 모집)으로 최소 5만원 이상의 투자금을 모아 대출액을 채워준다. 반응은 좋았다. ‘기존 금융권에 신선한 충격이 될 것’이라는 여론의 평가와 투자에 관심을 보이는 벤처캐피털의 문의가 잇따랐다. 그런데 날벼락 같은 일이 벌어졌다. 누적 대출 1억원 달성에 환호성을 지르던 2015년 2월, 금융감독원의 요구로 사이트를 폐쇄해야 했다. 창업 3개월 만의 일이었다. 구청에 대부업 등록을 하기 전 지인에게 시범삼아 대출을 한 게 화근이었다. 다행히 금융당국이 핀테크 육성과 금융 규제 완화 차원에서 폐쇄 조치를 철회하면서 다시 영업을 할 수 있게 됐다. 플랫폼 회사에 대부업체를 자회사로 두는 방식으로 P2P 대출 중개를 할 수 있도록 길을 열어줬다.사이트 폐쇄가 오히려 8퍼센트에게 전화위복이 된 측면도 있다. 폐쇄 논란이 커지면서 P2P 금융에 대한 관심이 커진 것은 물론 8퍼센트의 인지도도 올라갔기 때문이다. 지난해 5월에는 벤처투자자로부터 15억5000만원을 유치했다. 6월에는 딸을 낳았다. 출산 직전까지 일한 그는 출산 이후에도 산후조리원에서 SNS 등으로 경영을 하다가 한달 반 만에 다시 출근했다. 대출희망자와 투자수요가 크게 늘고 있어 원격 지휘로는 한계가 있었기 때문이다. 8퍼센트의 이름이 알려지자 인재가 모였다. 시중은행, 대형 카드사, 신용평가사는 물론 대기업 계열 IT회사 등에 다니던 이들이 합류하면서 사업이 안정화됐다. 이제 직원 수는 어느덧 27명으로 늘었다. 지난해 11월에는 인터넷전문은행 예비사업자로 선정된 케이뱅크(K뱅크)의 주주로 참여했다. 현재 서울 사당동의 사무실도 조만간 광화문 케이뱅크 본사 건물로 옮기기로 했다. 이 대표는 “올해 하반기 케이뱅크가 문을 열면 8퍼센트도 제휴 영업을 통해 한 단계 도약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자체적으로 평가모형 만들어 신용 평가이 대표가 가장 중요시하는 건 투자자 신뢰다. 이를 위해 사업 초반부터 정교한 신용평가에 공을 들였다. 연체율이나 부도율을 최소화해야 투자자들이 믿고 투자할 수 있다는 판단에서다. 이 대표는 신용평가회사의 신용등급 외에 자체적으로 평가 모형(A~D등급 12단계)을 만들어 신용을 평가했다. 자체 분석 결과 중신용자·저신용자라도 사정을 따져보면 신용도가 다를 수 있기 때문이다. SNS 정보도 신용도 평가에 활용하기로 했다. 이 대표는 “저축은행의 고금리 학자금 대출로 고생한 젊은 직장인이나 창업에 실패한 기업인이 8퍼센트 대출로 희망의 끈을 찾을 때 큰 보람을 느낀다”고 말했다. 대출 저변도 넓히고 있다. 자동차 공유서비스 ‘쏘카’, 숙박검색 전문서비스 ‘야놀자’ 같은 모바일 애플리케이션 기반 기업의 대출을 주선하는 한편 부동산담보대출도 늘리고 있다.이 대표는 투자자 보호에도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대출자가 돈을 갚지 않아도 투자금의 절반을 건질 수 있는 ‘안심펀드’를 업계에서 처음으로 도입했다. P2P는 예금과는 달리 원금보장이 되지 않지만 높은 수익률 때문에 투자자가 몰리고 있다. 은행 예금의 이자소득세 15.4%보다 높은 27.5%(소득세법상 비영업대금이익 세율)를 내는데도 연 6~7%대 수익률(세후)을 올릴 수 있기 때문이다.수익모델을 찾는 것도 중요한 과제다. 지금은 서비스 초기라 수수료가 없지만 적절한 시점이 되면 수수료를 받을 계획이다. 이 대표는 “떼돈 벌고 싶은 욕심은 없다”며 “직원 월급 제 때 주고 계속기업으로서 성장할 수 있을 정도의 이익을 내는 게 목표”라고 말했다.- 이태경 기자 unipen@joongang.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