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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로 치열해지는 위변조와의 전쟁] 뚫느냐 막느냐 그것이 문제로다 

지폐·여권 등 위조 범죄 꾸준히 발생.. 스마트폰 앱으로 진위 가리는 기술 나와 

세종 = 조현숙 기자 newear@joongang.co.kr

▎겉보기엔 그냥 종이지만 스마트폰 전용 앱을 통해 비춰보면 숨어있는 보안코드가 뜬다. 특수 용지에 담을 수 있는 위변조 방지 신기술 ‘암호화 보안코드(히든 코드)’다.
지난 5월 28일 제주도의 한 대학에서 중국인 유학생이 경찰에 붙잡혔다. 위조한 여권으로 토플 대리 시험을 치려다 시험 감독관에게 걸렸다. 조잡하게 위조한 여권이라 감독관에 걸렸을 뿐 위조의 세계는 좀 더 복잡하고 위험하다. 세계적으로 늘어나는 난민과 불법 입국에 여권 위조 기술은 나날이 발전하는 중이다. 프랑스 파리 테러범이 공항을 유유히 빠져나갈 수 있었던 것도 위조 여권 때문이었다. 위조 여권으로 공항을 무사통과하는 사건은 국내에서도 자주 일어난다.

특히 중국 100위안화는 전문 위조 범죄 조직의 단골 타깃이다. KEB하나은행 위변조대응센터의 유진구 차장은 “1999년, 2005년 발행 100위안화 위조지폐가 가장 많이 적발되고 있다”며 “중국을 갔다가 돌아온 한국 여행객이 100위안화 위조지폐로 바뀌치기 당해 국내로 가지고 왔다가 발견되는 사례가 잦다”고 말했다.

위조 여권이나 지폐는 빙산의 일각이다. 주민등록증, 공공기관 신분증, 금괴, 채권, 수표에 토익성적표, 자격증, 졸업 학위까지 위변조의 범위가 넓어지고 있다. ‘위조와의 전쟁’. 그 창과 방패의 싸움을 들여다봤다.

‘더 복잡하게 그리고 더 단순하게’. 이 모순된 원칙이 중요한 세계가 바로 위조 방지 시장이다. “보는 각도에 따라 문자의 색이 달라질 뿐만 아니라 물결 모양으로 움직이게 보이는 색 변환 잉크, 색깔과 모양이 훨씬 복잡하고 화려한 홀로그램 기술을 최근 은행권에 적용하고 있습니다. 제조 기술은 복잡해 그만큼 위조하기도 어렵습니다. 그러나 전문가가 아니더라도 시각적으로 쉽게 구분할 수 있습니다. 복잡하면서도 눈으로는 수월하게 확인할 수 있게 만드는 게 위조 방지 기술의 핵심입니다.” 류진호 한국조폐공사 기술연구원 위조방지센터장의 설명이다.

위변조 범위 갈수록 넓어져


▎위변조 방지 기술은 화폐나 신분증에만 적용되는 게 아니다. 주유기나 택시 미터기에서 불법 조작을 할 수 없도록 하는 ‘전자 봉인 보안모듈’이 개발됐다.
중국 인민은행은 100위안권을 지난해 11월 새로 바꿨다. 지폐 앞면의 ‘100’ 숫자가 보는 각도에 따라 ‘금색→담홍색→녹색’으로 변한다. 특수 소재인 색 변환 잉크를 썼기 때문이다. 만졌을 때 그림에 따라 오돌토돌하게 느껴지게 하는 특수 용지와 인쇄 기술도 새 100위안권에 담았다. 한국 지폐에도 적용된 기술이다. 사실 위조 방지 기술에서 이 정도는 ‘초급’에 속한다. 새로운 기술이 속속 선보이는 중이다. 홀로그램 기술만 해도 진화를 거듭하고 있다. 홀로그램이 지폐 위조 방지 기술로 첫 선을 보인 건 28년 전인 1988년이다. 오스트리아가 5000실링 은행권에 처음 적용했다. 보는 각도에 따라 문양의 형태와 색이 변하는 기술이다. 이후 1997년 독일은 100마르크 안 홀로그램에 ‘디메탈라이징’ 기술을 더했다. 표면에 나노 단위로 금속을 입혀 좀 더 얇고 정밀한 형태의 홀로그램이 나타나게 했다. 2010년 필리핀은 90도로 지폐를 돌려 봤을 때 전혀 다른 색이 나타나도록 한 ‘DID’ 홀로그램을 활용해 500페소 은행권을 만들었다.

홀로그램 신기술도 속속 등장


▎보는 각도에 따라 다른 문양이 나타나는 위변조 방지기술 ‘히든 페이스’. 용지는 물론 상품 케이스에도 적용할 수 있다.
최근 2~3년 사이 전혀 다른 차원의 위폐 방지 홀로그램도 등장했다. 2014년 이스라엘 중앙은행은 50셰켈권에 포토몰리머 홀로그램을 적용했다. 알루미늄이 아닌 특수 플라스틱 소재로 만든 홀로그램 문양이다. 금속 성분보다 훨씬 세밀한 홀로그램이라서 위조가 한층 어렵다. 지난해 11월 유럽중앙은행(ECB)은 새 20유로 지폐를 내놨다. 앞면에서 볼 때와 뒷면에서 볼 때 다른 문양이 나타나는 홀로그램 신기술을 담았다. 다른 무늬의 홀로그램을 나노 단위로 겹쳐 찍어내는 기술이 적용됐다.

위조 방지 기술은 지폐뿐만 아니라 신분증·보안문서·증명서에도 폭넓게 사용된다. 눈에 보이지 않는 형광잉크로 인쇄해 인식기로 위변조 여부를 쉽게 판별할 수 있는 ‘형광 보안 패턴’, 정해진 대역의 빛 파장에만 반응하는 특수물질을 첨가한 ‘특수 물질 용지’는 진품 증명서, 시험 성적서 용지, 보안 문서 용지에 이미 활용되고 있는 기술이다. 지폐 가운데 특수 소재인 폴리머를 활용해 투명창을 만들고 그 안에 보안 문양을 집어넣는 위변조 방지 기술은 호주·피지·몽고·카자흐스탄 은행권을 통해 이미 선보였다. 기념주화나 금괴 같은 금속 소재에도 위조 방지 기술을 적용할 수 있다. 3차원 프린팅 기술로 주화 안팎에 다양한 금속 소재를 조합해 새겨 위변조를 막는 ‘금속 소재 감성 기술’이 최근 나왔다. 보는 각도에 따라 다른 문양이 나타나는 ‘요철 잠상’은 지폐뿐 아니라 금속 주화나 제품에도 적용할 수 있다.

위조 방지 기술에도 스마트 기능이 빠질 수 없다. 스마트폰 기술을 응용해 위변조를 가려내는 기법이 대표적이다. 5월 26일 대전 유성구 한국조폐공사 기술연구원에서 ‘위조 방지기술협의회’가 열렸다. 외교부와 대검찰청, 경찰청 등 11개 기관 20여 명이 참석했다. 주제 발표를 맡은 길정하 조폐공사 위조방지센터 수석선임연구원은 정보통신기술(ICT)과 위변조 방지 기술의 결합을 소개했다. “스마트폰으로 지폐 사진을 찍어 올리면 자동으로 위조 지폐 여부를 가려주는 프로그램이 나왔다”며 “네덜란드 중앙은행에서 유로화 위변조 검증 차원에서 실제 운용 중”이라고 설명했다.

‘인트로 뷰’란 명칭의 스마트 입체 필름도 차세대 위조 방지 기술이다. 스마트폰 전용 앱으로 얇은 필름에 숨겨진 입체 문양을 확인할 수 있다. 인증서·신용카드·신분증은 물론 플라스틱 용기에까지 적용할 수 있는 기술이다. 겉보기엔 일반 용지지만 스마트폰 앱을 통해 숨어있는 보안 인증 코드를 읽어낼 수 있는 ‘암호화 보안코드(히든 코드)’도 개발됐다.

위변조 방지 기술은 각종 기계 봉인 장치로도 응용할 수 있다. 주유기, 전기·가스 계량기, 택시 미터기 등에 달 수 있는 ‘전자 봉인 보안모듈’이 한 사례다. 사물인터넷(IoT) 기술을 적용해 기기 안의 디지털 정보를 보호하면서 위변조도 함께 막는 장치다.

사물인터넷 기술 응용한 위변조 방지 장치도


최근 주목 받고 있는 위변조 방지 기술은 모바일 상품권, 쿠폰, 선불카드와 모바일 출입증, 신분증 영역이다. 손에 직접 잡히지 않는 디지털 상에서도 위변조를 방지하는 보안 소프트웨어 기술에 개발 경쟁도 치열하다.

보안을 뚫으려는 창이 날카로워지면서 이를 막으려는 방패도 더욱 두꺼워지는 위변조 방지의 세계는 여전히 진화 중이다. 지난해 적발된 원화 위조지폐는 총 3031장이었다. 1년 전 3907장에 비해 22.4% 감소했지만 해마다 수천 장의 위조지폐가 여전히 발견된다. 길정하 수석선임연구원은 “한국 은행권을 위조한 지폐는 다행히 유럽 유로화나 중국 위안화에 비해 품질 수준이 높지 않고 잉크젯, 레이저 인쇄로 하는 수준”이라면서도 “현 한국 은행권은 2006년 개편됐는데 나온 지 이제 10년이 넘어간다”고 우려했다. 위조 범죄가 늘고 있고 위조 기술도 발달하고 있어 한국 은행권도 안전하다고 볼 수 없다는 것이다. 그는 “위조 기술의 변화에 따라 위조 방지 기술을 축적해 나가고 있다”고 덧붙였다.

- 세종 = 조현숙 기자 newear@joongang.co.kr

1338호 (2016.06.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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