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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재다능한 자동차 스마트키] 자동으로 주차하고 음주 측정도 하죠 

동작·생체인식 수준으로 발전 중 ... 보안 문제 해결은 숙제로 

박성민 기자 sampark27@joongang.co.kr

▎BMW 7시리즈 스마트키에는 2.2인치 디스플레이가 장착됐고, 스마트키 조작으로 전·후진이 가능하다.
1990년대 초반 한국에서는 자동차 원격 시동장치가 잠시 유행했다. 100m 이상 떨어진 거리에서 리모컨의 버튼을 누르면 자동으로 시동이 걸리는 장치다. 출발하기 5~10분 전 미리 시동을 걸어 예열하면 차의 수명을 늘릴 수 있다는 개념에서 출발했다. 정식 자동차 제조사의 제품이 아니어서 차량 정비소에서 10만~20만원 정도를 주고 별도로 장착했는데 꽤 인기를 끌었다. 아파트 가정에서 리모컨으로 시동을 켠 후, 밖으로 나와 이동하는 모습을 어렵지 않게 볼 수 있었다. 그러나 이 장치의 유행 주기는 생각보다 짧았다. 외부에서 전기 신호를 엔진으로 줘 시동을 켜는 방식이 오히려 차에 무리를 준다는 우려가 나와서다.

1998년 벤츠가 가장 먼저 스마트키 적용


▎국산차 중에서는 기아차 오피러스가 가장 먼저 스마트키 시스템을 채택했다.
비록 그 장치는 금방 자취를 감췄지만, 아이디어는 남아 발전했다. 1998년 독일 메르세데스-벤츠는 자사의 최고급 세단 S클래스에 버튼 조작으로 차 문을 여닫을 수 있고, 시동을 걸 수 있는 스마트키를 세계 최초로 적용했다. 지금의 스마트키와 가장 유사한 형태의 시도로 해당 기술은 독일의 자동차 부품사 콘티넨탈이 개발했다. 콘티넨탈은 1994년에도 자동차 키에 이 모빌라이저 기능을 장착해, 키의 소지자가 가까이 없을 때 차가 이동하면 경보가 울리는 도난 방지 장치를 개발했다.

S클래스 이후 스마트키는 고급차의 전유물이었다. 별도의 시스템을 장착해야 하는 만큼 많은 비용이 들어서다. 최근에는 관련 기술이 많이 발전해 비용이 저렴해졌다. 이제는 가격대가 낮은 소형차나 경차에도 옵션으로 쉽게 접할 수 있는 기술이 됐다. 스마트키의 기본은 편의성이다. 제조사별로 기능의 차이가 있지만 기본적으로 스마트키를 가진 사람이 쉽게 차에 접근하고, 간편하게 출발하도록 돕는다. 최근에는 여러 기능이 추가돼 차량의 도난을 막고, 키를 손에 쥐지 않고 간단한 터치만으로 차의 문을 여는 기능이 추가됐다. 수많은 차량이 뒤섞인 복잡한 주차장에서 키를 소지한 사람이 접근하면 전방과 사이드미러의 등이 켜져 주인을 맞는 ‘웰컴’ 기능도 있다. 차의 문을 잠그지 않은 채 키를 소지한 사람이 멀리 떨어지면 자동으로 문을 잠그는 오토락 기능을 갖춘 키도 있다. 그야말로 ‘스마트’한 키를 개발하기 위한 자동차 브랜드 간의 전쟁이 치열하다.

최근 스마트키 중에서 가장 진화한 형태는 BMW의 7시리즈와 i8에 사용되는 스마트키 ‘Fob’다. 스마트키 자체에 2.2인치 스크린을 내장해 차에 대한 다양한 정보를 볼 수 있다. 자동차 문의 잠금 여부를 파악하는 것은 기본이고, 차량 내부의 온도와 주행정보, 주유정보까지 한눈에 파악할 수 있다. 특히 눈에 띄는 것은 ‘자동 주차 기능’이다. 스마트키 조작으로 차의 전진과 후진이 가능하도록 만든 것이다. 공간이 좁은 곳에 주차하면 차 문을 열 수 있는 공간이 없을 때가 있는데, 주차 각도를 확보한 다음 운전자가 먼저 내리고 스마트키로 후진해 차를 주차하는 기능이다. 아직 안전상 문제로 국내에 출시한 7시리즈와 i8에는 탑재되지 않았지만, 조만간 국내에서도 이 기능을 활용할 수 있을 것으로 예상된다.

일본 혼다가 선보인 ‘음주 측정 스마트키’도 눈길을 끈다. 일본 전자업체 ‘히타치’와 협업해 개발한 제품으로 스마트키에 음주 측정 기능을 내장한 기술이다. 올해 열린 ‘2016 디트로이트 자동차부품박람회’에 처음 선을 보여 많은 관심을 끌었다. 스마트키를 보유한 운전자가 술을 마신 것으로 판단할 경우 차의 시동이 걸리지 않는다. 스마트키가 운전자의 안전까지 챙겨주는 시대가 열린 것이다.

스마트키는 또 한번의 진화를 준비하고 있다. 키를 스마트폰이나 스마트워치와 연동해 사용하는 방식이 널리 퍼지고 있다. 키 정보가 입력된 스마트폰만 있으면 키가 없어도 차 문을 열고, 움직일 수 있는 것이다. 이 개념을 가장 먼저 적용한 제조사는 미국의 크라이슬러다. 2009년 개발한 전기차를 아이폰과 연동해 시동을 걸 수 있게 만든 것이 기술의 시초다. 이후 많은 브랜드가 스마트폰과 차를 연결한(connected) 기술을 개발하고 있다. 독일의 아우디와 BMW는 스마트폰으로 주차한 차량의 위치를 파악할 수 있는 기술을 적용하고 있다. 미국 포드와 스웨덴 볼보는 아예 키 자체를 없애려는 시도를 하고 있다. 포드는 2017년 출시하는 세단 퓨전에 스마트폰으로 시동을 걸 수 있고, 잠금 장치를 제어하는 앱의 적용을 계획하고 있다. 볼보는 여기서 더 나아가 2017년부터 출시되는 모든 차종에 스마트키를 없애는 방안을 검토 중이다.

스마트폰과 연동하는 방식은 최근 유행하는 자동차 공유경제 모델과도 궁합이 잘 맞는다. 국내에서도 유명한 자동차 공유업체 ‘쏘카’는 특정 지역에 주차된 차를 움직일 수 있는 정보를 소비자의 스마트폰으로 전달하고, 해당 소비자는 별도의 키 없이 그 차량에 접근하는 방식을 실제 사용하고 있다. 볼보 역시 스마트폰 연동 시스템을 도입하면서, 스웨덴의 차량 공유 업체와 시범사업을 먼저 추진할 계획인 것으로 알려졌다.

전문가들은 스마트키의 가장 진화한 단계를 ‘생체인식’으로 예상하고 있다. 지금도 포드·볼보 등 일부 자동차 업체는 개인의 특정 모션을 인식해 트렁크나 차 문을 여는 시스템을 일부 적용 중이다. 차 문 손잡이에 지문을 인식해 차 문을 열 수 있는 장치도 있다. 여기서 조금 더 발전하면 차가 주인의 목소리(음성인식)를 구분하거나, 홍채를 인식하는 것도 가능하다. 운전 중인 사람의 심장박동을 체크해 알아서 속도를 제어해 주거나, 위험 사항에 대비하는 등 다양한 방식으로 기술이 발전하고 있다.

스마트키 신호 복제해 차량 훔치기도

물론 기술이 항상 좋은 방향으로 진화하는 것은 아니다. 전에 없던 새로운 문제를 낳기도 한다. 최근 중국과 미국에서는 전에 없던 새로운 방식의 차량 도난 사고가 기승을 부리고 있다.스마트키를 소지한 사람이 리모컨을 눌러 차를 작동시킬 때, 근거리에 숨어서 그 신호를 복사해 새로운 스마트키를 만들어 차를 훔치는 것이다. 독일자동차운전자협회가 세계의 19개 자동차 제조사의 차량을 대상으로 해킹 실험을 한 결과, 모든 차종의 신호를 복사할 수 있는 것으로 드러나 충격을 줬다.

이에 자동차 제조사들도 대책 마련에 나섰다. 가장 많이 쓰이는 방식이 스마트키와 차량이 주고받는 신호를 ‘암호화’하는 형태다. 신호를 복사하더라도 그 신호를 지속적으로 사용할 수 없게 만드는 방식이다. 최근 스마트폰 금융거래에 많이 사용되는 OTP 보안카드의 원리를 생각하면 이해가 쉽다. 메르세데스-벤츠, BMW, 닛산 등이 이런 방식을 사용한다. 특히 닛산의 경우에는 차량의 시동을 키고 끌 때마다, 매번 새로 암호화된 신호가 생성돼 신호 복사의 위협에 대응하고 있다.

- 박성민 기자 sampark27@joongang.co.kr

OTP (One Time Password): 고정된 패스워드 대신 무작위로 생성되는 일회용 패스워드를 이용하는 사용자 인증 방식. 주로 금융권의 온라인 뱅킹 등 전자거래에서 사용된다. 일회용 비밀번호를 생성하는 별도의 기기를 보유해야 하는 것이 단점이다.

1338호 (2016.06.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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