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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화 거듭한 한국 껌 60년사] 미군 풍선껌에서 기능성껌까지 숱한 애환 

해태제과 1956년 국내 최초로 껌 출시 … 롯데껌 누적 매출 4조원 돌파 

허정연 기자 jypower@joongang.co.kr

‘좋은 사람 만나면 나눠주고 싶어요. 껌이라면 역시 롯데껌.’ 1987년 롯데껌 TV광고 ‘즐거운 여행편’에 등장한 CM송이다. 80년대 CF스타 채시라와 87년 ‘미스롯데’로 선발된 이미연이 청순한 모습으로 등장해 껌을 씹으며 친구들과 여행을 떠난다. 광고에 등장하는 쥬시후레쉬·후레쉬민트·스피아민트 3종의 소비자가격은 100원. 현재 동일 제품은 900원(27g 기준)에 팔리며 국내 껌시장 최장수 제품으로 자리를 잡았다. 롯데제과가 이 제품을 개발·판매하기 시작한 것은 1972년이다. 기존 껌에 비해 크고, 양이 많아 업계에선 ‘대형껌 3총사’로 불렸다.

롯데제과 설립과 동시에 탄생한 롯데껌이 누적 매출 4조원을 돌파했다. 롯데제과 측은 1967년부터 5월 현재까지 49년 간 생산·판매한 누적 매출액이 4조500억원에 이른다고 밝혔다. 이는 쥬시후레쉬 300억 통을 살 수 있는 금액이다. 일렬로 늘어 놓으면 1320만km로, 지구를 330바퀴 돌 수 있다. 낱개로 환산하면 2000억 매에 달한다. 지구촌 인구(약 73억5000명)가 약 27회씩 씹을 수 있는 양이다.

최초의 롯데껌은 1967년 선보인 쿨민트껌·바브민트껌·쥬시민트껌·페파민트껌·슈퍼맨 풍선껌·오렌지볼껌 6종이다. 롯데제과는 이를 통해 그 해 3억8000만원의 매출 실적을 거두었다. 롯데제과 관계자는 “당시 껌 가격(2~5원)을 감안하면 결코 적지 않은 실적”이라고 말했다. 1970년대 들어 판매한 대형 껌은 한국 사람의 입맛은 물론 구강 구조와 턱의 강도 등 인체 공학적 설계에 따라 개발된 제품이다. 지금도 연매출 100억원 이상을 올리는 ‘스테디 셀러’다. 롯데제과 측은 “단맛을 내는 쥬시후레쉬 껌은 70~80년대에 허기를 달래주고, 씹는 재미를 동반해 큰 인기를 얻었다”고 설명했다.

스테디셀러로 자리잡은 롯데제과 ‘대형껌 3총사’

현재 껌 시장 점유율은 롯데제과가 앞서지만 국내에서 가장 먼저 껌을 생산한 업체는 해태제과다. 해태제과가 1956년 ‘해태 풍선껌’을 출시할 당시 껌 생산은 국내 제과 업계의 최대 과제였다. 한국전쟁을 겪으며 먹거리가 부족하던 시대에 미국인들이 들여온 껌이 인기를 끌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국내에서 생산할 수 있는 여건이 마련되지 않았다. 원료와 기술력이 부족해 모든 생산과정을 노동력으로 해결해야 했다. 이 때문에 처음 출시된 해태 풍선껌에선 송진 냄새가 났고, 식감도 거칠었다.

시행착오를 거쳐 1959년 출시한 ‘슈퍼민트’는 기계를 이용해 만든 최초의 껌이었다. 국산 기계를 조립해 만든 생산설비라 수동식 작동으로 대부분의 공정이 이뤄졌다. 수입껌만큼의 맛은 아니었지만 당시 외래품 거래에 대한 단속이 강화돼 수입껌 유통량이 줄어들며 슈퍼민트는 국민껌으로 각광받았다. 이후 일본에서 껌 제조시설과 자동포장기 등을 도입한 해태제과는 새로운 제품 개발에 나섰다. 그 결과 ‘시가껌’과 ‘셀렘껌’이 탄생했다. 시가껌은 기존의 껌과 달리 독특한 형태와 포장으로 출시돼 폭발적인 인기를 불러 일으켰다.

해태제과 측은 “도·소매상들이 시가껌을 배급받기 위해서 연일 해태제과 앞에 장사진을 쳤고, 출하되는 즉시 본사 앞에서 프리미엄이 붙어 상인들 사이에 거래되기도 했다”며 “그럼에도 수량이 모자라 30여종의 유사품이 생겨날 정도였다”고 말했다. 해태제과는 이후에도 껌을 국산화하기 위해 원료 배합과 기술 개선, 생산성 증진을 통해 대량 생산체제를 갖춰나갔다. 1975년 롯데제과에서 나온 ‘이브껌’이 인기를 끌었는데, 과일 맛 위주로 출시됐던 시장에서 장미향의 꽃향기가 첨가된 껌이 나오자 여성들 사이에서 반응이 좋았다. 해태제과는 롯데의 ‘대형껌 3총사’에 대항하기 위해 ‘한마음 시리즈’를 출시하기도 했다. 이어 오리온제과도 과일맛 껌을 출시하며 껌 시장은 3강 체재를 굳혀나갔다.

1980년대 초부터 기능성 껌이 출시되기 시작했으나 큰 반응을 얻지 못했다. 껌이 건강보단 맛을 위해 찾는 기호식품이라는 이미지가 강한 탓이다. 그러나 90년대 들어 이런 인식에 변화가 일기 시작했다. 경제력이 향상되고, 소비패턴이 다양화되며 기능성 껌을 찾는 사람 역시 늘었다. 당시 껌 성분으로 각광받은 것은 ‘후라보노’였다. 제과 업체 3사는 너나 할 것 없이 후라보노 성분을 함유한 껌을 내놨다. 그러나 껌에 대한 부정적인 인식이 생겨난 한편 커피 등 대체 기호식품이 늘면서 껌을 찾는 사람도 줄어들었다.

1995년까지 1500억원에 불과했던 껌 시장 규모는 2003년 5000억원 수준으로 커졌다. 불과 8년 새 3배 이상으로 성장한 것이다. ‘1등 공신’은 ‘자일리톨껌’이다. 롯데제과는 2000년 ‘자기 전에 씹는 껌’이라는 마케팅 전략으로 자일리톨껌을 출시했다. 설탕과 같은 단맛이 나지만 충치 예방에 효과가 있다는 점을 강조했다. 자일리톨의 성공으로 롯데껌 매출은 2002년 2450억원으로 가파르게 증가했다.

당시 우리나라의 전체 과자 수입액 1억5700만 달러(약 1864억원)보다 1.5배 수준으로 많이 벌어들였다. 당시 시중에 출시된 자일리톨껌의 경우 10개 중 9개가 롯데제과 제품일 정도였다. 껌이 날개 돋친 듯 팔려나가며 롯데제과 매출에서 차지하는 비중도 20%를 훌쩍 넘었다. 오리온과 해태제과도 잇따라 자일리톨껌을 내놓으며 1000억원 가까운 매출을 올렸다. 현재도 롯데 자일리톨껌은 연간 1000억원 이상 매출을 올리며 효자 노릇을 톡톡히 하고 있다.

커피·캔디 등 대체 기호식품 늘며 시장 축소

자일리톨 출시로 반전을 꾀했지만 껌의 위상은 예전만 못하다. 2000년대 초반 4000억원 규모로 커졌던 국내 껌 시장은 현재 2500억원으로 쪼그라들었다. 껌을 대체할 기호식품이 많아진 탓이다. 예전에는 주로 졸음을 쫓거나 식후에 입가심으로 껌을 씹었다면 이제는 캔디나 에너지음료·커피 등을 섭취해 대신 충족시키고 있다. 롯데제과 관계자는 “출시 당시만큼은 아니지만 자일리톨껌은 역대 히트상품으로 꼽힐 만큼 시장을 키운 제품”이라며 “앞으로도 껌의 기능성을 강조해 충치 예방효과는 물론, 껌이 치매 예방이나 집중력 향상 등에 도움이 된다는 연구보고를 바탕으로 지속적인 마케팅을 펼칠 예정”이라고 밝혔다.

- 허정연 기자 jypower@joongang.co.kr

1338호 (2016.06.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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