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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장인 쇼핑 수요 충당하고 빌딩 경쟁력 높여도심 오피스 빌딩의 저층부를 상업시설로 채우는 사례가 늘고 있다. 활용도가 낮은 업무 공간을 다양한 시설로 활용하면서 유동인구를 늘리고 수익성도 높이려는 것이다. 기존 오피스 빌딩 내 리테일은 해당 건물에 입주 기업 편의를 위한 부속 시설이나 인근 직장인을 겨냥한 점포들이 입점했다. 주로 지하에 식당가, 지상 1층에는 카페·은행을 입점시키는 게 일반적이었다. 그러나 최근 등장하는 업무 빌딩 내 상업시설은 맛집 등 경쟁력 있는 업체들이 건물 지상부에 당당히 자리 잡으며 영역을 확장하고 있다.서울 광화문 인근 빌딩에 이 같은 사례가 많다. 이 지역에 최근 들어선 그랑서울·D타워·타워8 같이 새로 지어진 프라임 빌딩의 저층부 상점들이 유명 카페나 음식점으로 채워지면서 인근 다른 상점가의 고객을 흡수하고 있다. 이에 인근의 센터원·페럼타워·종로타워 같은 다른 오피스 빌딩들도 손님을 되찾아오기 위해 저층부를 상업시설로 전환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다른 지역에서도 기존 빌딩 저층부 사무 공간을 상업시설로 전환하는 사례가 늘고 있다. 외국계 투자가인 AEW캐피탈이 이지스자산운용을 통해 사들인 서울 여의도 국제금융센터(IFC) 인근 시티플라자는 사무실로 쓰는 지상 1~3층을 리모델링해 고급 레스토랑 등 식·음료 공간으로 바꿨다. 서울 마포의 삼성생명 동교동 빌딩은 지상 1~3층을 리테일로 확장했다. 인근 현대카드·캐피탈 홍대사옥도 저층부를 리테일로 변경하는 방안을 검토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이들 빌딩에 들어선 상점들은 대부분 이태원, 경리단길, 연남·연희동, 홍대입구, 신사동 가로수길 등에서 주목을 받은 식당이나 카페 등이 옮겨온 경우다. D타워의 푸드코트 ‘파워플랜트’에는 이태원의 ‘부자피자’와 가로수길의 ‘랍스터쉑’ 등이 들어왔다. 1층에는 이태원의 ‘마피아디저트’가 자리를 잡았다. 그랑서울은 ‘식객촌’이라는 이름으로 상점가를 구성했다. 허영만 화백의 만화 [식객]에서 이름을 따와 만화에 소개됐던 식당의 분점들이 들어섰다. 이곳 일부 식당은 평일 점심은 물론 평일 저녁과 주말에도 줄을 서는 곳이 생겼다. 광화문 직장에서 근무하는 김민수(33)씨는 “D타워에서 이미 유명해진 식당들은 정오가 되면 줄을 길게 서 있을 정도로 사람이 붐빈다”고 말했다. 오피스 빌딩 임대업계 관계자는 “기존 오피스 상업시설이 주로 평일 직장인 수요에 의존했다면 최근에는 외부로부터 유동 인구를 끌어들여 건물 인지도를 높이는 역할을 하고 있다”고 설명했다.이로 인해 리테일이 전체 면적에서 차지하는 비중도 커지고 있다. 과거 오피스 빌딩의 리테일은 기껏해야 지하 아케이드가 전부였기 때문에 전체 공간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5% 수준에 불과했다. 하지만 최근에 지어진 그랑서울·타워8·디타워 등은 전체 연면적에서 리테일이 차지하는 비중이 10~20%에 달하는 것으로 추정된다.오피스 빌딩의 저층부가 상업시설로 바뀌는 것은 도심 지역의 높은 오피스 공실률과 수익성 저하가 배경이다. 활용도가 떨어지는 업무시설 공간을 줄여 공실률을 줄이고, 대신 임대료가 비교적 높은 상업시설로 활용하는 것이다. 홍지은 세빌스코리아 상무는 “저층부를 상업시설로 활용할 경우 업무용 시설에 비해 수익성이 올라간다”며 “경쟁이 심화되고 있는 국내 오피스 임대시장에서 공실률을 줄이고 수익성 제고를 위해 국내외 투자자가 적극적으로 오피스 빌딩 저층부를 상업시설로 전환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실제 오피스 공간을 상업시설로 전환할 때 임대수익이 두 배 이상 증가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글로벌 부동산 컨설팅회사 CBRE가 저층부 오피스 공간을 상업시설로 전환한 서울 종로·여의도·홍대 일대 5개 빌딩의 임대료 변화를 조사한 결과 3.3㎡당 월 임대료가 오피스 공간으로 사용할 당시 10만8980원에서 상업시설 전환 후 23만7545원으로 118% 증가했다. 이는 서울 오피스 빌딩에 근무하는 근로자들의 수입 및 지출 증가와도 연관성이 있는 것으로 분석된다. CBRE와 통계청 등에 따르면 서울 오피스 종사자의 평균 소득은 지난 2005년 월평균 410만원에서 2015년 550만원으로 약 37.8% 늘어났다. 같은 기간 지출은 240만원에서 310만원으로 29.2% 늘었다. 이에 따라 투자자도 상업시설 유치에 저극 나서는 추세다. 부동산 업체 젠스타 조사에 따르면 내년 상반기 유망한 투자대상으로 상업시설(24.5%)이 오피스(19.4%)에 비해 선호도가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투자자 선호도 ‘상업시설>오피스’식·음료(F&B)가 주를 이뤘던 임차인의 성격도 점점 더 다양해지고 있다. 상업시설이 임대료를 꾸준히 내기 위해서는 매출이 적정 수준을 유지해야 하는데 지금 같이 F&B에 편중된 구조에서는 내부에서 과당 경쟁이 발생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에 따라 최근에는 D타워처럼 F&B 외에 쇼핑시설이나 의료센터 등을 넣는 오피스 빌딩도 생기고 있다. 도심(CBD) 지역 오피스 빌딩의 리테일 임차인 구성 현황을 보면 식료품이 37%로 가장 높고 디저트 카페(26%), 서비스 관련업(15%), 화장품 매장(10%), 의류 매장(8%) 순이다. 전문가들은 오피스 빌딩의 저층부를 상업시설로 활용하는 트렌드가 당분간 지속될 것으로 보고 있다. 글로벌 부동산 컨설팅회사 쿠시먼앤웨이크필드의 윤화섭 이사는 “빌딩 자산에서 내부 상업시설이 차지하는 중요도가 높아지면서 도심 대형 오피스에서 지하가 아닌 저층부에 상업시설을 독자적으로 개발하는 사례가 점차 늘어날 것”이라고 전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