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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병오 창업학 박사의 스마트 창업(10) | 프랜차이즈 창업가-이영덕 한솥도시락 회장] 내가 좋아하고 잘하는 분야 택하라 

 

강병오 FC창업코리아 대표이사
가성비 뛰어난 식당 고르는 안목 갖춰 … 도시락 테이크아웃 문화 확산시키며 고속성장

올 들어 국내 외식업종 매출이 지난해 같은 기간 대비 적게는 10%, 많게는 30% 이상 떨어졌다. 그 이유는 더 이상 설명할 필요도 없을 것이다. 국가 경제 상황이 총체적 난국이기 때문이다. 이런 와중에도 국내 대표적인 장수 브랜드인 한솥 도시락은 매장 매출이 크게 증가하고 있다. 지난해보다 가맹점 매출이 15% 증가했다고 한다. 근자에 도시락 창업시장은 신규 브랜드가 속속 생겨나면서, 도시락에 대한 수요 증가 못지않게 도시락 전문점 매장도 많이 생겨 경쟁이 점점 더 심해지고 있다. 유명 연예인을 내세운 전국 4만여 개의 편의점 도시락 종류도 크게 증가하고 있다. 한솥도시락은 주 메뉴 가격대가 2700~5000원 선으로 편의점 도시락 가격과 가장 근접해 있는 브랜드 중 하나여서 편의점과 직접 경쟁해야 한다. 떡볶이나 밥버거 전문점이 편의점의 공세에 큰 타격을 입고 있는 점에 비추어 보면 한솥도시락의 선전은 놀라운 결과라고 할 수 있다. 비결은 뭘까? 창업주인 이영덕 회장(67)의 인생 스토리에서 답을 찾았다.

이영덕 회장은 일본 교토에서 재일교포 2세로 태어났다. 부모는 일제 강점기 때 일본으로 건너가 사업으로 성공한 사람이었다. 그의 어린 시절 교토는 과거 오랜 기간 일본 왕이 살았던 고도(古都)로 전통 문화와 예술, 식문화와 관광산업이 발달한 도시였다. 그의 아버지는 가족을 데리고 교토의 맛집을 찾아다녔고, 어머니는 요리 솜씨가 전문 셰프 수준이었다. 집에서 한식, 일식, 양식, 케이크, 베이커리 등을 직접 만들어 주었다. 이 회장은 자연스럽게 입맛이 까다로운 사람이 되었고, 품질 대비 가격이 만족스러운 식당을 고르는 안목을 가지게 되었다.

적성에 맞지 않는 사업에서 줄줄이 실패

이 회장은 공부도 잘했다. 교토에서 고등학교를 졸업할 때까지 줄곧 1등을 했다. 그러나 그는 한국인으로 살기 위해 일본으로 귀화하지 않고, 1969년 서울대 법대에 진학했다. 졸업 후 그는 이것저것 사업에 손을 댔지만 일본에서 자란 그가 한국에서 처음부터 사업으로 성공하기란 쉬운 일은 아니었다. 실패한 사업들을 찬찬히 생각해보니 모두 그의 적성과 맞지 않는 것이었다. 그는 다시 처음으로 돌아가 자기가 좋아하고 평생 잘 할 수 있는 사업이 무엇인가를 고민했다.

이 회장이 새로운 사업을 구상하던 1990년대 초, 한국은 외식업이 크게 성장하고 있었다. 외식업을 구상하던 중 당시 일본에서 유행하던 도시락 전문점 프랜차이즈 사업을 하기로 했다. 당시만 해도 한국 시장은 일본 시장을 좇아가던 시기여서 한국 도시락 시장의 전망이 매우 밝다는 판단을 했다. 그러나 섣불리 시작할 수 없었다. 평생을 걸 수 있는 확신이 필요했다. 이를 위해 일본의 성공한 기업가에 대한 책을 많이 읽어 보았다. ‘눈앞의 이익이나 돈을 좇아가면 실패한다’는 한결 같은 조언이 있었다. 마침내 그는 ‘따끈한 도시락으로 지역 사회에 공헌한다’를 창업이념으로 정했다. 사업을 왜 하는지에 대한 미션이 명확해진 것이다.

배달은 NO, 테이크아웃만으로 차별화

어떻게 하면 지역사회에 공헌하는 사업을 전개할 수 있을까? 살아남기도 힘든 것이 사업일진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구체적인 전략이 필요하다. 첫 번째는 고객을 만족시켜야 한다. 그러려면 품질은 높이고, 가격은 저렴하게 하는 것이 최선이다. 사실 요즘 들어서 ‘가성비’란 말이 일반화 됐지만, 그는 진작부터 회사의 모든 역량을 메뉴의 가성비를 높이는 데 올인해왔다. 다음으로는 가맹점의 이익을 좋게 해야 하고, 협력업체와도 합리적인 거래관계를 형성해야 한다. 이를 위해 가맹본부의 이익을 높이면 안 된다. 그는 흔들림 없는 사업철학이 전제된 가운데, 실현 가능한 과학적인 방법론이 있어야 한다는 결론을 얻었다. 좋은 품질의 식자재를 사용하면서도 가격을 적정하게 유지하기 위해서는 한 치의 오차도 허용하지 않는 과학적인 원가관리 시스템이 필요한 것이다.

3년 간 치밀한 준비를 했다. 일본 도시락산업을 무조건 따라가서도 안 되고, 한국 시장의 경쟁 브랜드와의 차별화 포인트도 찾아내야 했다. 당시 1990년대 초반 한국 창업시장은 배달 전문 도시락 프랜차이즈 브랜드가 10여 개나 될 정도로 1차 도시락 붐이 일고 있었다. 그런데 일본에서는 도시락 전문점들이 배달 대신 테이크아웃 위주로 영업을 하고 있었는데 반해, 한국에서는 음식을 테이크아웃해서 먹는다는 문화 자체가 없었다.

‘남들이 한다고 그대로 따라하면 안 된다.’ 그는 주변의 많은 우려에도 배달은 하지 않고, 테이크아웃 전문점으로 가기로 결정했다. 배달을 안 하면, 원가에서 차지하는 배달비용을 20% 절감할 수 있다. 즉, 20% 싸게 판매 할 수 있다는 의미다. 각 메뉴 하나하나에 원가계산 방법을 갖추고, 조리 매뉴얼과 도시락 세팅 매뉴얼을 과학적으로 완성했다. 이로써 한솥도시락은 배달을 전문으로 하는 경쟁 브랜드보다 비슷한 품질의 메뉴 가격대가 20% 이상 저렴하게 맞출 수 있었다. 문제는 테이크아웃 문화를 어떻게 확산시키느냐에 있었다. 당시만 해도 편의점에 도시락도 없었고, 세계적으로 테이크아웃 문화의 전파 확산 역을 하던 스타벅스도 국내에는 없었다. 거꾸로 생각하면 음식의 테이크아웃 문화를 만들기만 하면 블루오션 시장을 창출할 수 있는 셈이었다.

1993년 7월 7일, 종로 구청 앞에서 26㎡(약 8평) 규모의 점포를 열었다. 첫날부터 점포 앞에 긴 줄을 설 정도로 대박이었다. 고객의 테이크아웃 잠재 수요를 이끌어 낸 블루오션 시장 창출이었다. 그 이듬해부터 가맹점은 매년 50~60개씩 꾸준히 자연발생적으로 늘어났다. 그러나 초기 6~7년 간은 본사의 당기 순이익은 제로였다. ‘고객 이익 먼저, 가맹점과 협력업체와의 공생’이라는 원칙을 고수하다 보니 어느 정도 규모로 올라갈 때까지는 본사가 흑자를 내기가 쉽지 않았다. 금방 흑자로 돌아 설 수 있는 노하우도 알고 있었고, 유혹을 느끼기도 했다. 그럴 때마다 ‘눈앞이 이익과 돈을 쫓아가면 실패한다’는 말을 수없이 되뇌었다. 시스템이 완성 될 때까지 마음이 흔들려서는 안 된다고. 초심을 잃지 않은 덕분에 한솥도시락은 몇 번의 위기도 겪었지만 잘 극복하고 지속적으로 성장해 현재 690여 개 가맹점을 운영하고 있고, 올해 예상 매출액은 1000억 원대에 이른다. 영업이익률도 높은 편이고, 회사의 재무건전성은 업계 최고로 평가받고 있다.

강병오 - 연세대 사회복지학과를 졸업하고 중앙대에서 국내 1호로 창업학 석사와 박사학위를 취득했다. 현재 FC창업코리아 대표이사와 중앙대 산업창업경영대학원 겸임교수로 글로벌 프랜차이즈학과장을 맡고 있다. 주요 연구 분야는 창업가정신, 벤처창업, 프랜차이즈 전략 및 자영업 창업 등이다.

1362호 (2016.12.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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