콘솔+모바일 모두 잡은 투 트랙 전략 먹혀...
닌텐도식 장인정신으로 제2 전성기 맞아
▎닌텐도의 신제품 ‘스위치’는 콘솔과 모바일이라는 두 마리 토끼를 모두 잡겠다는 야심의 산물이다. 미국에서의 출고가격은 300달러(약 35만원)이며 한국에선 정식 출시되지 않았다. / 사진:닌텐도 제공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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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게임 명가(名家)’ 닌텐도의 화려한 부활 소식은 지난해 미국의 나이앤틱(Niantic)과 선보인 증강현실(AR) 기반 게임 포켓몬 고를 통해 전해졌다. 올해 한국에서도 정식 서비스가 시작된 포켓몬 고는 지난해 미국·유럽·일본 등지에서 출시 6개월 만에 9억5000만 달러(약 1조600억원)의 매출을 올릴 만큼 인기를 모았다. 닌텐도의 최근 실적은 이에 힘입어 탄탄하다. 지난해 4분기 매출이 1743억 엔, 순이익이 646억 엔으로 전년 동기 대비 각각 21.3%, 122.2% 증가했다. 주가 역시 지난해 2월 1만6000엔대에서 하반기 한때 3만 엔대로 껑충 뛰었고, 올해 3월 30일(이하 현지시간) 현재 2만6000엔에 근접해 있다.닌텐도는 올 3월 또 하나의 신무기를 장착했다. 이번엔 게임 소프트웨어(SW)가 아니라 아예 새로운 하드웨어(HW), ‘스위치’다. 월스트리트저널(WSJ)은 “닌텐도가 지난 3월 3일 출시한 스위치의 생산량을 애초 계획됐던 800만 대에서 조정, 내년 3월까지 1600만 대로 늘릴 예정”이라고 보도했다. 출시 직후 시장의 반응이 뜨거운 가운데 예상되는 수요 증가에 발맞추기 위한 조치로 풀이된다. WSJ 등에 따르면 관련 업계는 출시 첫 해 1000만 대 이상 판매에 성공할 경우 HW와 SW 간 판매의 선순환(HW 판매가 많이 돼 SW 개발이 활발해지고, 이렇게 다양하고 매력적인 SW 라인업이 구축되면 다시 HW 판매 증가로 이어지는 것)이 이뤄질 것으로 보고 있다. 닌텐도가 이를 자신하고 있다는 얘기다.스위치는 공개되자마자 신개념 HW로 전 세계 게임 마니아들의 폭발적인 관심을 모았다. 콘솔(TV와 연결해 즐기는 비디오 게임 전용기기)과 휴대용 게임기의 병용이 가능해서다. 평상시 집에서는 TV와 연결해 마이크로소프트(MS) ‘엑스박스’나 소니 ‘플레이스테이션’ 같은 일반 콘솔로 쓰다가, 외출할 땐 거치대에서 분리해 닌텐도 ‘NDS’처럼 휴대하고 다니면서 게임을 즐길 수 있다. 6.2인치짜리 터치스크린 태블릿과 붙였다가 뗄 수 있는 컨트롤러 두 개가 이를 가능케 한다. WSJ는 “두 가지 환경에서 같은 게임을 즐기고 있다는 느낌을 주는 것이 스위치의 차별화 요소”라고 평가했다. 포켓몬 고에 이어 또 하나의 혁신적인 신제품을 닌텐도가 선보였다는 평이다.
초기 호응에 스위치 생산량 확대키로MS나 소니와 달리 닌텐도는 사실상 게임으로만 먹고사는 게임 전문 기업이다. 닌텐도의 과거 영광과 최근의 딜레마는 모두 여기서 비롯됐다. 과거 닌텐도는 콘솔과 휴대용 게임기, 그리고 그 소프트웨어들로 이들 글로벌 기업과 어깨를 나란히 했지만 2010년대 들어 스마트폰이 세계 게임시장 판도를 바꾸면서 위기가 찾아왔다. 모바일 게임시장이 급성장하는 사이 소비자들은 닌텐도의 콘솔과 휴대용 게임기를 외면했다. 2008년 1조 8400억 엔의 매출과 5500억 엔의 영업이익으로 사상 최고 실적을 달성했던 닌텐도는 2011년에 회사 창립 30년 만의 첫 적자를 낸 이후로 3년 연속 적자를 기록하면서 순식간에 몰락할 위기에 처했다.2015년 별세한 고(故) 이와타 사토루 당시 닌텐도 사장은 “모바일 게임산업은 오래가지 않을 것”이라고까지 했지만, 현실은 달랐다. 하나금융투자에 따르면 스마트폰과 태블릿을 합한 글로벌 모바일 게임시장 규모는 2015년 30억3000만 달러에서 지난해 36억9000만 달러로 증가했다. 이 수치는 해마다 급격히 늘어 2019년 53억3000만 달러에 이를 전망이다. 이에 반해 콘솔이나 PC 게임은 성장세가 미미할 것으로 보인다. 지난해 28억9000만 달러 규모였던 글로벌 콘솔 게임시장은 2019년 30억8000만 달러로, 26억9000만 달러였던 PC 게임시장은 29억7000만 달러로 소폭 증가하는 데 그칠 것으로 예상된다.이런 상황에서 닌텐도가 꺼내든 타개책은 콘솔과 모바일 게임 수요 양쪽을 모두 잡는 ‘투 트랙 전략’이다. 우선 기존 휴대용 게임기에 대한 자신감에 따로 뛰어들지 않았던 모바일 게임시장에 2015년 뒤늦게 도전장을 내밀었다. 그 결과물 중 하나가 포켓몬 고였다. 모바일 게임에서는 후발주자임에도 닌텐도가 성과를 거두고 있는 요인은 막강한 독점 지식재산권(IP) 라인업이다. 닌텐도는 포켓몬 고의 흥행을 이끈 ‘포켓몬스터’ 외에도 ‘슈퍼마리오’ ‘동키콩’ ‘젤다의 전설’ 같은 글로벌 히트상품의 IP를 보유했다. 업계 관계자는 “닌텐도는 검증된 IP를 통해 모바일 게임시장에 수월하게 진입할 수 있었다”고 말했다. 니혼게이자이신문에 따르면 닌텐도는 올해부터 연간 2~3개의 모바일 게임 신작을 출시할 계획이다.콘솔 부문에선 지금껏 쌓아온 점유율과 위상을 허물어뜨리지 않되 휴대용 게임기의 장점을 결합할 묘책을 강구했고, 그 과정에서 나온 독창적인 제품이 스위치다. 여기서도 닌텐도가 쌓아온 자산인 IP의 위력이 드러나고 있다. 젤다의 전설 최신작인 ‘젤다의 전설: 야생의 숨결’이 스위치 전용 SW로 출시돼 게임 마니아들로부터 “역대 시리즈 중 가장 완성도가 높은 작품”이라는 호평 속에 판매되고 있다. 다만 시장의 만족감과 기대감 이면에서는 아쉬움의 목소리도 나온다. WSJ는 “스위치는 현재 즐길 수 있는 게임 SW가 부족하고 온라인 서비스도 별로 없다”며 보완책이 필요함을 지적했다. 콘솔과 휴대용 게임기의 장점만 취하려 하다 보니 HW 성능 측면에서 경쟁 콘솔들에 비해 뒤떨어진 점도 극복해야 할 과제다.
모바일 시장 진입 ‘실기’ 만회이처럼 일부 과제가 존재함에도, 지금껏 닌텐도의 투 트랙 전략이 대체로 성공적으로 수행되고 있는 이유는 이 회사가 창립 이후 지금껏 게임에만 ‘올인’하는 장인정신을 발휘하고 있어서다. 기기 혁신도, 적재적소의 IP 활용도, 결국은 축적된 노하우에서 나온다. 그렇다고 해서 기존 노하우에만 의존하진 않는다. 늘 새로움을 추구하고, 그로써 소비자를 사로잡으려 끊임없이 노력하는 것이야말로 닌텐도식 장인정신이다. 이는 닌텐도가 초기 모바일 게임시장 진입 타이밍을 놓치고도 비교적 빠르게 상황을 수습하고, 오히려 제2의 전성기를 맞고 있는 이유이기도 하다.‘닌텐도는 고객에게 물어서 상품을 만드는 것이 아니라 우선 기존 시장에 없는 이질의 상품을 만들고서 고객들을 끌어들이려고 한다. 게임을 해보지 않은 사람들은 자신이 무슨 게임을 좋아하는지조차도 모르기 때문이다. 고객은 자신이 원하는 것을 직접 눈으로 보기 전까지 자신이 무엇을 원하는지 모른다.’ 2010년 출간된 [닌텐도처럼 창조한다는 것]에 나오는 얘기다. 포켓몬 고 또한 대세인 모바일 게임을 무턱대고 좇지 않았다. 스위치도 전에 없던 이질적인 하드웨어다. 닌텐도의 부활 방정식은 ‘혁신이 정체돼 사상누각과 같다’ ‘성장통을 겪고 있다’는 지적이 나오는 한국 게임 업계에도 시사점을 안겨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