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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명수의 노후 준비 5년 만에 끝내기(35) 은퇴 고독 털기] 취미 준비도 미리 필살기 하나쯤 있어야 

 

서명수 중앙일보 재산리모델링센터 기획위원
은퇴 후 10만 자유시간 보내려면 취미 개발 필수...경제적 수입과 연결되면 금상첨화

▎지난 7월 5일 전남 영암군 영암읍 인조잔디 축구장에서 열린 드론 자격증 취득 실기시험에 앞서 교관들이 드론을 점검하고 있다. / 사진 : 프리랜서 장정필
“드론 자격증만 있으면 7분에 200만원을 번다.” 얼마 전 가수 김건모씨가 한 TV 예능 프로그램에 나와 한 말이다. 이 프로의 영향인지 요즘 은퇴자 사이에 드론 자격증을 따려는 열기가 뜨겁다고 한다. 실제로 전국 주요 드론 전문 교육기관엔 드론 자격증을 따려는 수강생으로 만원사례다. 2015년만 해도 자격증 시험 응시자수가 300여 명에 불과했으나 올해엔 3200명이 응시해 1970명이 합격했다. 서울 목동에 사는 권모(54)씨는 “드론은 취미생활도 되고 돈 벌이도 가능하다”며 “2~3년 후면 회사를 그만둘 예정인데, 노후준비 차원에서 드론 자격증을 따놓았다”고 말했다.

은퇴 후 찾아오는 고독이라는 병

노후준비라고 하면 대부분 재무적인 것을 떠올린다. 그도 그럴 것이 우리나라처럼 사회안전망이 취약한 상황에선 개인적 준비를 병행하지 않으면 노후에 생계를 잇기 어렵기 때문이다. 정부의 복지 시계가 고장났다면 개인은 시장을 기웃거리며 비용을 지불하고 구매할 수밖에 없다. 돈 안 드는 노후준비란 없다. 그러나 돈이 전부는 아니다. 돈이 많지 않아도 얼마든지 행복할 수 있다. 그래서 재무적 준비 못지 않게 비재무적 준비도 중요하다. 비재무적 준비의 핵심은 바로 취미다. 대부분의 은퇴 준비생에게는 취미가 낯선 이슈다. 재무적 준비도 힘겨운 상황에서 한가한 소리로 들릴 수 있다. 그러나 좀 더 보람 있는 은퇴 생활과 자아성취를 위해 취미 개발은 꼭 필요하다. 여기에 드론 자격증처럼 돈 벌이를 겸할 수 있으면 금상첨화다.

은퇴 후 찾아오는 변화 중 하나는 혼자 남아 있는 시간이 많아진다는 점이다. 은퇴 후 30년을 산다고 할 때 밥 먹고 자고, 병치레 하는 시간을 빼면 약 10만 시간이 온전히 활동하는 시간이다. 물론 전적으로 외톨이가 된다는 뜻은 아니다. 은퇴를 하면 직장동료나 사회에서 인연을 맺은 지인들이 멀어지는 가운데 친구나 가족들과의 관계는 계속 이어지지만 교류의 범위는 갈수록 좁아진다. 그러다 보면 자주 외로움이란 장벽과 마주하게 된다. 젊을 때엔 마음을 터놓고 지낼 친구가 많기에 외로움을 느끼고 말고 할 것도 없으나 나이를 먹으면 친구를 사귀기가 쉽지 않고 있는 친구마저도 이런 저런 이유로 소원해지기 십상이다. 남이 찾아주지 않아서가 아니라 스스로 외로움을 자초하기도 한다. 특히 현역 때 고위직에 오른 사람일수록 외로움을 심하게 탄다고 한다. 사소한 일도 처리해 주던 부하직원의 부재는 한동안 금단증세를 일으킨다. 어쨌거나 은퇴자의 피할 수 없는 현실은 혼자다. 하루가 멀다 않고 친구를 만나도, 부지런히 뭔가를 배우려고 쫓아다녀도 혼자 있는 시간이 점점 길어질 수밖에 없다. 그러다가 자식들이 결혼해 독립하고, 배우자와 헤어지기라도 하면 고립무원의 신세가 된다.

은퇴자들은 외로움 또는 고독을 은퇴의 공적 1호로 꼽는다. 평소 부지런히 경조사를 쫓아다니고, 퇴근 후 술자리에 자주 어울리며, 어떻게 해서든지 모임을 엮으려고 한다는 사실은 고독을 떨쳐내려는 몸부림이다. 어쩌면 한국은 외로워서는 안 되는 사회라고 할 만하다. 그러니 노후의 외로움을 마주하길 두려워하는 것은 당연하다. 외로움이 피할 수 없는 현실이라면 차라리 친구로 만들어 친하게 지내면 어떨까. 혼자서도 잘 노는 힘만 기른다면 외로움을 친구로 만드는 건 어렵지 않다. 은퇴 전문가들은 건강한 노년의 삶은 육체적·정신적 건강뿐 아니라 사회적 건강을 챙기는 것이라고 말한다. 우리나라 사람은 세계적으로 기대수명이 긴 장수를 누리고 있지만 사회적으로 건강하지 못한 삶을 살기에 심각한 문제를 안고 있다. 장수하는 삶을 축복이 아니라 재앙으로 여길 정도로 불안하게 노년을 바라보는 실정이다. 인간관계를 무 자르듯 완전히 끊고 살아가는 사람은 없지 싶다. 주변에 나를 각별히 여기는 선후배와 동창생을 포함해 지인·이웃·친인척을 알뜰살뜰 챙겨가면서 사람들과의 공백을 메워나가는 것이 현명하다. 제아무리 보기 싫은 사람도 시간이 제법 흘러가면 용서의 구간을 통과하면서 사랑스럽게 마련이다. 돈벌이가 됐든, 건강을 지켜주는 취미가 됐든, 아님 활력을 불러 일으켜 주는 일이 됐든 사람을 사귀고 함께 동행하는 것이야말로 최고의 투자다.

여행은 여가활동, 취미는 경제활동

은퇴를 앞둔 사람들에게 은퇴 후 남아도는 시간을 어떻게 보낼 것이냐고 물어보면 여행을 첫째로 꼽는다. 그동안 돈 버느라 고생했으니 이젠 자유롭게 국내로, 해외로 훨훨 날아다니겠다고 한다. 경제적 여유가 있다면 크루즈 호화 여행이나 요트, 승마, 골프 등 장밋빛 생활도 그린다. 그러나 여기엔 돈이 만만치 않게 들고 건강도 허락해야 한다. 이 두 가지를 모두 가진 은퇴자는 많지 않겠지만 당분간 무척 만족스런 노후를 지내게 될 것이다. 그러나 1~2년 지나면 이들 여가활동에 대한 재미나 호기심이 반감하기 시작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 시들해지고 만다. 여행이나 승마, 골프라는 것도 없는 시간을 쪼개 하는 그야말로 여가선용이어야 하는데, 시간 죽이기 식이 돼서는 재미가 점점 덜해지게 마련이다. 돈에 여유가 있다 하더라도 수입은 빤하고 믿는 건 알토란 같은 노후자금이지만 은퇴 이전보다 지출이 늘어나는 활동엔 부담을 느끼게 된다. 나아가 나이가 들수록 병원을 찾는 횟수가 늘어나고, 노후자금에서 의료비가 차지하는 비율이 커진다는 점을 고려하면 여가활동이 그렇게 즐겁지만은 않다.

그렇다면 이들 여가활동의 대안은 무엇일까. 노후를 즐기면서 보낼 ‘재밋거리’를 찾아야만 한다. 노후준비에서 취미를 빼놓아선 안 되는 이유다. 여가활동과 취미는 다르다. 여가활동은 말 그대로 일을 안 하는 자유시간을 즐기는 행위다. 말하자면 시간 보내기다. 이와 달리 취미는 어디까지나 일이고 일종의 경제활동이다. 직장을 중심으로 인간관계를 맺어온 우리나라 사람들은 취미와 여가활동을 잘 구분하지 못한다. 은퇴자들 대부분은 취미가 무엇이냐고 물으면 TV 시청이나 등산이라고 답한다고 한다. 그만큼 취미의 개념마저 잘 모른다는 이야기다. 취미라는 것을 너무 거창하게 생각할 필요는 없다. 과거에 해보고 싶었던 것, 과거에 했지만 오랫동안 손을 대지 않았던 것, 외국어 학습, 요리를 배우는 것, 기타나 색소폰 같은 악기를 배워보는 것 등 무수히 많다. 그중에서 본인의 취향에 맞는 것으로 선택하면 된다. 다만 은퇴 후 취미는 무엇을 하더라도 전문가 수준으로 끌어 올리는 것이 좋다. 직장에 다닐 때야 취미와 여가 활동의 경계선이 모호했지만 노후엔 생활의 일부분이자 어엿한 경제활동이다. 전문가를 뺨칠 정도의 ‘필살기’가 한 개쯤은 있어야 한다. 잘만 하면 노후 소득원으로도 연결할 수 있다. 이런 필살기는 은퇴 전부터 틈틈이 준비해 두어야 은퇴 후에 본격 실력 발휘가 가능하다. 적어도 은퇴 3년 전부터는 필살기 연마에 돌입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한 보험회사에서 최근 퇴직을 앞둔 직장인을 대상으로 설문 조사를 했더니 39%가 같은 취향을 가진 사람과 동호회 활동을 하고 싶다고 답변했다. 또 32%는 취미로 경제적 수입을 만들면 좋겠다고 응답했다. 그만큼 취미를 노후소득의 원천으로 만들려는 욕구가 많다는 걸 시사한다. 꼭 돈이 아니라도 재능 기부라든가 자원봉사로 나설 수 있으면 멋진 은퇴생활이 되지 않을까.

※ 필자는 중앙일보 재산리모델링센터 기획위원이다.

1413호 (2017.12.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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